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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한국의 전철을 밟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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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11-2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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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블로코당 드미트리 렌코프 위원장

WTO 가입 이후의 러시아를 걱정하는 환경운동가의 일침

사진/ (박현봉 통신원)
“드미트리 렌코프. 1940년 생. 레닌그라드 국립대학 생물학 박사. 1990∼93년 레닌그라드지역 대의원. 1992년 야블로코당 상트페테르부르크 지부 위원장으로 선출.”

약력상으로만 보면 정치인으로선 화려한 면모가 없는 렌코프가 유난히 지역주민들 사이에 종종 회자되고 있다. 얼핏 보면 한때 야블로코당의 유명세를 타고 현재는 중앙정치의 중심마당에서 회계원장 자리까지 거머쥐고 있는 빅토르 스테파쉰과 같은 거물과는 전혀 비교가 안되는 일개 지역 정치인일 뿐이다. 그런 렌코프가 최근 ‘반세계화’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조그만 파문을 일으켰다.

극우단체의 반세계화 운동 거부


지난 11월10일 카타르 도하에서 한창 세계무역기구(WTO) 회의가 진행되고 있던 때에 맞춰 러시아에서는 과격한 극우경향의 운동분파로 정평이 나 있는 ‘러시아국민애국연합’(이하 연합) 상트페테르부르크 지부는 ‘반세계화를 말한다’는 주제로 원탁회의를 개최했다. 연합이 중요하게 초빙코자 했던 인물이 바로 드미트리 렌코프였는데 당사자가 불참을 선언했던 것. 연합의 원탁회의를 기획했던 알렉산드르 바르바스의 말에 의하면 드미트리 렌코프는 반세계화 운동의 큰 테두리에서 중요한 영역을 차지하는 이른바 ‘녹색운동’의 이 지역 정신적 지주라는 것이다.

렌코프와의 인터뷰에서 확인된 원탁회의 불참 사유는 간단한데, 이는 그가 평소 간직하고 있던 세계화 및 반세계화 운동에 대한 기본적 입장으로 직결된다. 그의 세계화에 대한 논리는 단순하면서도 힘이 있다. 렌코프는 세계화를 긍정, 부정의 양면이 공존하는 전 인류적 교류영역으로 파악한다. 긍정적인 면은 전 인류의 공동체적 발전을 지향하는 기술, 심리, 경제 등 제반 영역에서 발견된다. 렌코프에 의하면 세계화의 부정적인 요소가 발견되는 경우는 전 지구공동체의 어느 일방이 다른 상대자에게 자신만의 논리나 이익을 강요하는 때다.

이같은 렌코프가 폭력성과 과격 극우경향으로 소문난 연합의 잔치에 참여를 거부한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는 자신의 불참에 대해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내가 회의 참가를 거절한 것은 당연하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이 단체는 과거 나치즘의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과격 극우단체이다. 이 단체에서 반세계화를 논의한다면 폭력과 파괴, 전쟁 이외 도대체 어떤 대안을 낼 수 있겠는가.”

현존하는 반세계화 운동과 관련하여 렌코프가 현실적인 운동의 형태로 고려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독일 등에서는 이미 정치세력화되어 있는 녹색운동이다. 러시아 내에도 정치분파로서의 녹색운동이 있지만 렌코프는 그들에게서 이렇다 할 만한 활동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렌코프는 사회 저변 영역에서 이 운동에 대한 호응도와 참여도가 확산되는 때에 러시아에서도 본격적인 정치세력화가 가능하다고 점친다.

이번 카타르 회의의 결과 이미 중국은 WTO에 가입했고 이제 곧 러시아도 조만간 가입할 예정이다. 이에 대한 렌코프의 첫인상은 그렇게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그는 과거 한국이 이 기구에 가입했던 때를 상기하면서 다음과 같은 우려를 표명한다. “귀하(한국을 의미)에게는 대단히 죄송스런 일이지만 한국이 지난 1997년 WTO에 가입하자마자 대대적인 외환위기, 경제위기를 겪었던 것과 같은 그런 전철을 러시아가 밟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최근 중국의 이 기구 가입과 관련해서도 여기저기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라고 본다.”

아프간 전쟁 지원 말라

정치적 영역에 있어서도 렌코프는 상호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한 평화적 협조를 강조하고 있다. 이같은 원칙에서 볼 때 최근 유행처럼 거론되고 있는 이른바 ‘반테러리즘’ 움직임에는 원칙적인 찬성을 보낸다. 하지만 렌코프는 반테러를 빙자해서 몇몇 강국이 주변 약소국의 내정을 물론 그 나라의 자주권을 박탈한다면 이는 또다른 테러라고 못박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9월11일 미국에서의 테러사건 이후 미국의 군사행동에 대해 나름대로 응하고 있는 현 푸틴 정부에 차가운 눈길을 보내고 있다. 그는 “러시아는 세계화된 미래에서 나름대로의 독자력을 가지고 균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 믿는다. 광대한 영토, 이 영토 내에 3천만명에 이르는 회교신봉자들이 거주하고 있음을 정책담당자들은 직시해야만 한다. 향후 푸틴의 반테러문제에 대한 대외정책도 이같은 나의 신념(당의 기본입장)과 같은 방향에서 펼쳐질 것이라 믿고 있다”며 자신의 전망을 밝혔다.

상트페테르부르크=박현봉 통신원 parkhb_spb@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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