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WSL 일본위원회 공동대표 도노 하루히
‘아래로부터의 세계화’ 전략을 강조하는 일본 활동가… 아시아의 빈곤은 모두의 책임
“아, 한국에서 오셨어요?” 그는 한국에서 왔다는 말을 듣자 얼굴이 환해졌다. 노동자 투쟁이 활발한 나라라는 뜻일 터이다. 아시아태평양 노동자 연대회의(APWSL·이하 아태노련)의 공동의장인 도노 하루히(50). 얼마 전만 해도 아태노련 일본위원회의 공동대표까지 맡고 있었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일본위원회 공동대표직은 그만두었다.
작은 키였지만, 70년대 후반부터 기지촌 여성문제, 매춘관광문제, 아시아에 진출한 일본계 기업의 여성노동자문제 등에 온 힘을 기울여온 활동가답게 아주 단단해보였다. 그가 공동의장직을 맡고 있는 아태노련은 네팔, 스리랑카, 타이, 홍콩, 오스트레일리아 등 아시아·태평양지역에 모두 15개의 국가별 위원회를 가진 조직이다.
시애틀 노동자 투쟁의 한계를 보며
일찍부터 다국적기업과 투쟁해온 그였지만, ‘세계화’라는 문제를 화두로 심각하게 고민하고 그 방법론을 모색하게 된 것은 역시 1999년 ‘시애틀 투쟁’ 이후라고 설명한다. 그가 말하는 시애틀 노동자 투쟁이란 미국 최대 노조연합체인 미국 노동총동맹 산별회의(AFL-CIO) 소속 노동자들이 환경보호운동 소속 젊은이 등과 함께 투쟁에 나선 사건을 가리킨다. 그들의 투쟁과정에서 그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기존의 국제연대 투쟁노선의 한계였다. 시애틀 노동자집회를 주도한 AFL-CIO의 목표는 국제노동기구(ILO)의 국제노동기준에 기초한 ‘사회조항’을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포함시키는 것이었다. 이른바 국가권력에 압력을 가해 “위로부터의 노동조건을 개선한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AFL-CIO 집회에 참석한 노동자들은 견해를 달리했다. WTO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는 북미자유지역협정(NAFTA)엔 일찍이 노동·환경조항이 그 부대조항으로 첨부되어 그를 위반한 나라엔 벌금을 부과해왔지만, 그 결과는 노동조건 악화, 남과 북 노동자간의 갈등뿐이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후 노동워크숍을 열어 열심히 토론을 거듭했고, 그렇게 해서 찾아낸 것이 ‘기업행동규범’ 전략이었습니다.” 기업행동규범 전략이란 노동조건의 기준은 ‘사회조항’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은 정반대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위반한 다국적기업이 있는 해당국가를 WTO에 의해 제재하는 ‘위로부터’의 방식이 아니라, 부유한 나라의 소비자운동을 배경으로 기업의 책임을 추궁해가는 노동자와 시민이 연대한 ‘밑으로부터’의 세계화 방식이다. “원래 ‘기업행동규범’은 1993년 타이와 중국에서 일어난 대규모 화재사건을 계기로 크게 부각되었습니다. 타이의 홍콩계 완구제조 다국적기업에서 발생한 화재로 사망 187명, 부상 350명의 대참사가 일어났는데, 그해 11월 중국에서도 홍콩계 완구제조 다국적기업에서 소녀들 87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는 새로운 밑으로부터의 국제노동연대투쟁의 모범을 만들어내는 계기가 됐다. 사고 직후 홍콩 노동NGO인 AMRC, CIC 등과 타이 노동NGO들이 연대하여, ‘완구안전생산연락회’라는 것을 결성했으며, 이들은 ‘긴급국제완구캠페인’ 운동을 함께 벌인 끝에, 1995년 ‘완구 안전생산헌장’(기업행동규범)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한국,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집에서 공장까지 4km 혹은 10km 되는 거리를 민속의상을 입은 젊은 여성들이 걸어가고 있었어요. 수해를 피하기 위해 높게 지은 바라크의 1평 남짓한 방에 농촌에서 올라온 16∼18살의 여성들이 4명 정도씩 살고 있었습니다.”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의 봉제공장 노동자의 비디오를 설명하는 그의 얘기 속에서, 전태일이 분신하던 70년대 청계천 봉제공장을 연상할 수 있었다. 70년대 청계천의 모습은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등으로 이전된 것일 뿐이다. 게다가 한국계 다국적기업이 선 자리는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입장이다. “오늘 저녁 필리핀에서 도요타노동조합 사람들이 일본에 와요. 내일은 도쿄본사에 항의투쟁을 하러 갈 계획입니다. 물론 일본 노동자들을 비롯한 일본 NGO 사람들과 함께지요.” 도요타투쟁이 끝나면 12월엔 또다시 타이 노동자들을 찾아 떠날 계획이라고 한다. 강철은 그렇게 단련되고 있었다. 도쿄=신명직 통신원mjshin@hotmail.com

사진/ (신명직 통신원)
일찍부터 다국적기업과 투쟁해온 그였지만, ‘세계화’라는 문제를 화두로 심각하게 고민하고 그 방법론을 모색하게 된 것은 역시 1999년 ‘시애틀 투쟁’ 이후라고 설명한다. 그가 말하는 시애틀 노동자 투쟁이란 미국 최대 노조연합체인 미국 노동총동맹 산별회의(AFL-CIO) 소속 노동자들이 환경보호운동 소속 젊은이 등과 함께 투쟁에 나선 사건을 가리킨다. 그들의 투쟁과정에서 그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기존의 국제연대 투쟁노선의 한계였다. 시애틀 노동자집회를 주도한 AFL-CIO의 목표는 국제노동기구(ILO)의 국제노동기준에 기초한 ‘사회조항’을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포함시키는 것이었다. 이른바 국가권력에 압력을 가해 “위로부터의 노동조건을 개선한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AFL-CIO 집회에 참석한 노동자들은 견해를 달리했다. WTO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는 북미자유지역협정(NAFTA)엔 일찍이 노동·환경조항이 그 부대조항으로 첨부되어 그를 위반한 나라엔 벌금을 부과해왔지만, 그 결과는 노동조건 악화, 남과 북 노동자간의 갈등뿐이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후 노동워크숍을 열어 열심히 토론을 거듭했고, 그렇게 해서 찾아낸 것이 ‘기업행동규범’ 전략이었습니다.” 기업행동규범 전략이란 노동조건의 기준은 ‘사회조항’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은 정반대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위반한 다국적기업이 있는 해당국가를 WTO에 의해 제재하는 ‘위로부터’의 방식이 아니라, 부유한 나라의 소비자운동을 배경으로 기업의 책임을 추궁해가는 노동자와 시민이 연대한 ‘밑으로부터’의 세계화 방식이다. “원래 ‘기업행동규범’은 1993년 타이와 중국에서 일어난 대규모 화재사건을 계기로 크게 부각되었습니다. 타이의 홍콩계 완구제조 다국적기업에서 발생한 화재로 사망 187명, 부상 350명의 대참사가 일어났는데, 그해 11월 중국에서도 홍콩계 완구제조 다국적기업에서 소녀들 87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는 새로운 밑으로부터의 국제노동연대투쟁의 모범을 만들어내는 계기가 됐다. 사고 직후 홍콩 노동NGO인 AMRC, CIC 등과 타이 노동NGO들이 연대하여, ‘완구안전생산연락회’라는 것을 결성했으며, 이들은 ‘긴급국제완구캠페인’ 운동을 함께 벌인 끝에, 1995년 ‘완구 안전생산헌장’(기업행동규범)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한국,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집에서 공장까지 4km 혹은 10km 되는 거리를 민속의상을 입은 젊은 여성들이 걸어가고 있었어요. 수해를 피하기 위해 높게 지은 바라크의 1평 남짓한 방에 농촌에서 올라온 16∼18살의 여성들이 4명 정도씩 살고 있었습니다.”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의 봉제공장 노동자의 비디오를 설명하는 그의 얘기 속에서, 전태일이 분신하던 70년대 청계천 봉제공장을 연상할 수 있었다. 70년대 청계천의 모습은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등으로 이전된 것일 뿐이다. 게다가 한국계 다국적기업이 선 자리는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입장이다. “오늘 저녁 필리핀에서 도요타노동조합 사람들이 일본에 와요. 내일은 도쿄본사에 항의투쟁을 하러 갈 계획입니다. 물론 일본 노동자들을 비롯한 일본 NGO 사람들과 함께지요.” 도요타투쟁이 끝나면 12월엔 또다시 타이 노동자들을 찾아 떠날 계획이라고 한다. 강철은 그렇게 단련되고 있었다. 도쿄=신명직 통신원mjshin@hot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