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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남학생 부진은 남녀공학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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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08-3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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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공부 못하는 남학생’ 문제 대두… 블런킷의 분반 수업안 효과 있을까

최근 영국에서는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공부를 못하므로 일선 중고등학교에서 성별로 분반해서 수업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것도 국가의 모든 교육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현직 교육부 장관이 말한 것이니 예삿일은 아니다.

지난 8월20일 데이비드 블런킷 교육부 장관은 “만약 남녀공학학교에서 분반 수업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면 이를 적극 도입할 수 있다”고 언급한 뒤 “공부 안 하는 요즘 남학생 문화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대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분반 수업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지만 장관이 이런 계획까지 언급하고 나선 데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남학생들의 학업 성취도가 여학생들에 비해서 떨어지고, 해가 갈수록 그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해마다 더 벌어지는 ‘여남격차’


일주일 전에 발표된 A-Level(대학 입학 수학능력평가에 해당됨)에서는 이 시험이 도입된 이후 49년 만에 처음으로 A를 얻은 여학생들의 비율이 남학생들 비율보다 더 많았다. 또 지난 8월24일에 발표된 GCSE(중학교 학력검정 시험, 우리나라의 연합고사에 해당됨)의 결과는, 이 시험이 도입된 1989년 이후 중학생들의 남녀간 성적격차가 지속적으로 커져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5개 이상 과목에서 C 이상의 점수를 받은 학생의 비율을 보면 여학생은 61.1%나 되는데 남학생은 51.9%에 불과하다. 두 집단 사이에는 약 10%포인트의 차이가 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실시된 11살 학생들의 독서능력 평가에서도 여학생들은 61%가 기준치를 통과했으나 남학생들은 겨우 46%만이 합격했다. 이제 영국사회에서는 여학생들이 남학생들보다 공부를 더 잘한다는 것이 아주 보편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블런킷 장관이 특히 우려하는 것은, 노동계층 출신 남학생들의 학업성취도 저하이다. 전통적인 제조업종 취업의 길이 차단되고 점차 고도의 지식기반 사회로 빠르게 바뀌고 있는 현실에서 성적이 나쁜 노동계층 남학생들은 16살만 되면 아무런 준비도 없이 사회로 내던져지게 되기 때문이다.

교육전문가들은 장관의 이러한 문제의식에 대해서는 대체로 공감하는 편이다. 문제는 성별 분반 수업이 과연 남학생들을 책상 앞으로 돌아오게 할 수 있는가이다. 남녀공학을 없앨 수는 없으니까 분반 수업이라도 하자는 것이 이번 주장의 취지인데 과연 효과적인 해결책이 될 것인가에 대한 회의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분반 수업 주장의 근거는 남녀공학의 남학생들보다 남학교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6% 높았다는 점에 있는데, 남학교 학생들이 더 공부를 잘하는 것은 더 우수한 학생들이 진학했기 때문이라는 반격도 있다.

블런킷 발언엔 성차별이 숨어 있다?

일선 학교에서도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학교 관계자들은 정부의 이런 조처가 가시화되면 일선 학교에 대한 정부의 간섭이 더 심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또 현실적으로 어떤 과목을 분반하고 어떤 과목을 합반할지 선택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수학, 물리 등 남학생들이 잘하는 분야에서 여학생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서 분반할 수는 있으나 문학 같은 경우에는 조금 더 복잡하기 때문이다. 여학생들이 더 관심을 갖고 잘한다고 해서 분반하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인가 하는 질문이 제기된다. 이를테면 디킨스와 같이 남성위주의 19세기 가치관을 드러내는 작가의 작품은 남녀가 같이 읽고 토론해야 하기 때문이다.

블런킷 장관의 발언에 대해서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도 많다. “공부 못하는 남학생들의 학업성취도를 끌어올리기 위한 장관의 노력은 가상하지만 여학생이 부진할 때는 당연하게 받아들이다가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떨어지니까 웬 호들갑이냐”는 반응이 여성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하기는 초등학교 교사 83%가 여자로 채워져 있어서 남학생들이 자신이 닮고자 하는 이상적 남성상을 찾기 어렵고 이것이 남학생들의 학업 부적응으로 이어진다는 블런킷 장관의 견해는 그의 남녀차별주의적 발상을 짐작케 하기도 한다.

남녀분반이나 남자교사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식의 차이를 강조하는 제도적 보완보다는, 더 광범위하고 좀더 적절한 커리큘럼, 변화된 직업환경과 연관된 교육이야말로 남녀학생 모두에게 필요한 때가 아닐까 하는 의견도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옥스퍼드=주미사 통신원lamess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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