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에서 지진을 겪고 있는 최근정씨가 편지를 보내왔다. 최씨는 지난해 8월부터 네팔인 남편 커겐드라, 아들 최 린 구릉과 함께 네팔 카트만두 푸라노바네수워에서 살고 있다. 그는 현지에서 비정부기구(NGO) 활동을 하고 있다. 최씨는 안양전진상복지관 이주노동자의 집(현 사단법인 아시아의 창)에서 7년 동안 일했는데, 이주노동자로 온 커겐드라를 그곳에서 만났다. 그는 노들장애인야학 교사도 했는데, 글은 노들야학 선생님들께 보내는 형식으로 쓰였다. _편집자
한국의 선생님들께.
세월호 희생자의 이야기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보내달라고 선생님께 전자우편을 보낸 게 불과 며칠 전이었지요. 여기에 책이 도착하면 우체국에서 전화가 와요. 그러면 저는 템푸(삼륜 미니버스)를 타고 네팔 중앙우체국에 소포를 찾으러 갈 생각이었어요. 여긴 우체부가 없거든요. 그런데 선생님, 지금은 보내지 마세요. 우체국도 부서졌을지 모르겠어요. 지진이 났던 지난 토요일, 4층 건물에 혼자 있었던 저는 맨 위층 사무실 책상 밑으로 숨어들어가 혼자 공포에 떨었어요. 천장이 무너지고 죽는구나 싶었지요. 저는 혼자 악을 쓰며 책상 밑에서 “린, 린, 린!”을 불렀어요. 그때가 지금도 계속 떠올라요.
최근정씨가 사는 네팔 푸라노바네수워엔 하늘을 겨우 가리는 천막밖에 없지만,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최근정 제공
하늘만 가려주는 천막에 모인 동네 사람들
제가 사는 동네는 지진 피해가 큰 고도시 박타푸르와 그리 멀지 않아요. 차로 20분이면 닿는 가까운 곳, 카트만두 동쪽에 있는 푸라노바네수워입니다. 푸라노는 네팔어로 ‘낡은, 오래된, 옛’이라는 뜻입니다. 푸라노바네수워에서 태어난 시동생 썬토스는 서른이 다 된 지금까지 이곳에 살고 있고, 제 남편 커겐드라도 이곳을 절대 떠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 중 한 명이에요. 그만큼 정이 들었고 이웃끼리도 잘 아는 동네니까요.
4월30일, 지진이 나고 엿새째입니다. 그사이 사흘이나 비가 내렸어요. 지진의 진앙지인 고르카 지역 어느 마을엔 300가구 중 3가구만 남았다는데…. 여기도 주검이 얼마나 많은지 힌두 최대 사원인 퍼수퍼티 사원 화장터만으로는 모자랍니다. 그래서 물 마른 박머티강 어느 곳에서나 수습된 주검에 그 자리, 그대로 불을 얹고 있어요.
우리 동네엔 텐트가 없어요. 이웃 고빈다의 집에 큰 천막이 있어서 다행이었어요. 영국에 있는 가족이 보낸 이 천막은 마침 지진 전날 딱 도착했는데 마치 지진 때 쓰라고 보낸 듯 요긴했습니다. 하늘만 가려 이슬을 막았을 뿐 사방이 트인 잠자리는 무척 추웠습니다. 언제 지진이 또 날지 모르니 누구든 달려와 앉을 수 있도록 사방을 막지 않는 게 오히려 나았습니다. 갑자기 바닥이 갈라져 그 속에 함몰되는 끔찍한 상상을 떨쳐낼 수 없습니다. 이렇게 허술한 천막에 모인 동네 사람이 어림짐작으로 200명은 되는 듯합니다.
선생님, 오늘 아침엔 새소리도 들립니다. 새들이 돌아왔나봅니다. 뒷집 까마귀들도 다시 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꽃도 피었건만…. 지진이 나고 둘쨋날, 천막에서 첫날밤을 함께 보낸 이웃들은 저에게 한국에 언제 가냐고 물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얼른 가라”고 했습니다. “하미 틱처웅”, 저는 괜찮다고 답했습니다. 아뇨, 사실은 괜찮지 않아요. 세 살배기 아들 린도 땅이 흔들리는 기미만 있으면 단박에 뛰어오고, 저도 머리가 어지러워 자꾸 오른쪽으로 몸이 쏠리는 느낌이에요. 두려운 게 없는 사람 같았던 남편 커겐도 집안으로 들어가길 겁내요. 그래도 우린 커겐, 린, 부모님, 그리고 시동생인 라진과 썬토스, 아가씨 프로바까지…. 우린 이렇게 같이 있잖아요, 괜찮은 거잖아요.
바로 눈앞에서 죽음을 목격하고
어제 낮, 센터 사무실에 잠깐 갔다 왔습니다. 가는 길 곳곳에 무너진 집들과 벽돌, 금간 건물들…. 아, 네팔…. 사무실 근처 카펫 공장에서 나흘 밤을 지내고 있는 우리 센터의 직원들을 만나러 갔습니다. 태어난 지 두 달 된 울밀싸는 자고 있었습니다 울밀싸의 엄마인 우리 센터 재봉공동작업장의 메하 총괄자는 예의 조용하게 앉아 있었어요.
고향에서 이번 지진으로 팔을 다친 할아버지를 모셔온 컴퓨터 교사 텐지도 만났습니다. 텐지네는 시골 유지라 그나마 할아버지가 헬리콥터를 타고 카트만두에 치료를 받으러 오실 수 있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치료도 제대로 못 받고 있습니다. 텐지네 시골집도 무너졌습니다.
새로 들어온 공부방 교사 나왕의 할아버지가 이번 사고로 돌아가셨고, 도서관 체튼 사서의 친척 두 분도 돌아가셨습니다. 공부방 아시스 교사의 아버지도 집에서 탈출하다 넘어져 다리를 다쳤습니다. 청소하는 시타 언니의 아이들 4명이 버선다라로 놀러가 연락이 끊기는 바람에 언니는 애가 탔는데 다행히 아이들은 무너진 버선다라 탑에 올라가지 않고 그 주위에서 놀았다고 합니다. 시타 언니네 아이들 4명은 버선다라에서 걸어 걸어 조르파티 집에 도착했습니다. 한국봉사단원인 고진은 박타푸르 골목을 돌아나와 광장에 서자마자 건물이 무너져 바로 눈앞에서 죽음을 목격해야 했고, 김나희는 무너지는 건물 더미에 깔리지 않으려고 먼지 속을 사력을 다해 뛰었습니다.
꽃은 피었건만… 네팔은 무너졌습니다. 지진이 나고 이틀째 린이가 똥이 마렵다고 했어요. 모퉁이에서 린의 바지를 벗겨 막 앉히려는 찰나, 막내 시동생 썬토스가 천막에서 독수리같이 빠르게 달려와 린을 확 낚아채갔어요. 땅이 이미 흔들리고 있었던 거예요. 저도 바로 뛰었어요. 첫날 지진만큼 큰 흔들림이었어요. 시간이 조금 짧아서 우리는 안심했어요. 천막에 앉아 여진이 가라앉기를 기다린 다음 린에게 “똥은 조금 있다 누자”고 했더니 “엄마, 괜찮아”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잠시 뒤 잠이 들었어요.
그 다음날, 린은 두 번이나 “똥이 마렵다”고 해 쪼그려 앉혔는데 도로 일어나고 말더니, 세 번째 똥 누러 가서야 비로소 누었어요. 그날 밤 천막에서 잠든 린은 “엄마, 아찌 아요”(엄마, 똥 나와요)라는 잠꼬대를 두 번이나 했어요. 이렇게 지진은 지나간 공포가 아니라 여진의 나날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썹 틱처, 써버이 틱처, 엑떰 틱처”
물이 문제다. 상수도 시설이 부족한 네팔에서 물은 생존의 문제다. 푸라노바네수워 천막에서 아이가 물을 마시고 있다. 최근정 제공
그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는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사실 마음이 아주 불안합니다. 오늘 오후, 갑자기 다시 동네가 웅성거렸어요. 2시간 안에 큰 지진이 온다는 소리가 어디서부턴가 나왔기 때문이에요. 결국 그 말을 떠들고 다닌 두 사람이 경찰에 잡혔는데, 이 소문이 얼마나 삽시간에 번졌는지 온 나라가 들썩였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소문은 얼마든지 더 생길 듯싶습니다. 다만 네팔 사람들 마음이 사나워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혹시 도움을 주실 분은 ‘우리은행 1002 336 336349 최근정’으로 성금을 보내시면 됩니다. 멀리서 기도해주셔서 고맙고, 선생님께 편지를 쓰니 이제야 더 실감이 나서 눈물이 납니다.
아, 네팔… 그전의 삶으로 돌아가려면 얼마나 걸릴지… 그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는지….
카트만두에서 두 손 모아 근정 드림.
최근정 비정부기구(NGO) 활동가
*도움 주실 계좌번호: 우리은행 1002 336 336349 (최근정). 보내주신 성금은 푸라노바네수워 청년들을 중심으로 한 구호활동에 쓰이게 된다. 후원금 규모에 따라 활동 지역은 확대될 수 있다. 그의 전자우편 (moong70@hanmail.net)으로 연락하면 네팔 소식을 받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