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타이 방콕에서 개최된 성소수자 관련 국제행사 뒤풀이.
타이-영국 동성 커플이 베트남으로 날아간 이유
노이, 고향 치앙마이에서 대학 강사를 하다 외국 대사관 근무를 거쳐 지금은 외국계 비정부기구(NGO)에서 일한다. “집안에 동성 커플이 있어선지 거부감이 별로 없었”단다. “맞아, 노이 이모님이 레즈비언이셔!” 사이몬이 맞장구를 쳤다.
사이몬(오른쪽)과 노이는 영국-타이 게이 커플이다. 두 사람은 2년 전 베트남 주재 영국대사관에서 ‘시민연대’ 절차를 밟아 공식 커플이 됐다. 그러나 영국법으로만 보호받을 뿐 이들이 살고 있는 타이에서는 아무런 보호 장치가 없다.
베트남 정부는 2012년부터 관련법 개정에 착수했다. 그해 5월 법무부는 관계기관에 보낸 공문에서 “인권의 관점에서 피해갈 수 없는 이슈”라고 적었다. 두 달 뒤 법무부 장관은 “동성 커플에 대한 법적 틀을 고려할 때”라고 언급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후 속도가 빨라졌다. 국회는 성소수자를 초청해 프레젠테이션 기회를 줬고, 해외 학자들도 초청해 세계 흐름을 경청했다. 동성혼 금지 조항 삭제는 이런 과정의 1차 산물이다. 이 과정에서 NGO ‘정보공유센터’(ICS)와 ‘아시아에서 LGBT로 살아가기’ 프로젝트를 추진해온 유엔개발계획(UNDP)의 기여도 컸다.
“유엔인권위원회 이사국 희망과 관련 있을 것”
지난 3월8일 타이 방콕의 ‘여성의 날’ 행사는 페미니즘 운동과 깊이 연계된 레즈비언 단체가 주도했다. 최근 기안을 마친 타이 신헌법에 ‘젠더’ 개념이 도입될 예정인 가운데 성소수자들은 ‘젠더 평등’을 강조하고 있다.
베트남톱게이 타오 Mr.Thao PFLAG(‘게이 레즈비언 부모와 친구들‘ 모임) 행사중 발언. Information Connecting Sharing (ICS) 제공
“직설법 문화가 아니라서 관용적으로 비친다”
지난해 말, 인터넷에 오른 영상 하나가 타이 사회의 관용을 도마 위에 올렸다. 지상철(BTS) 안에서 키스하던(장면은 안 담겼지만) 톰디에게 한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뭐하는 짓이냐?”고 따져물었고 “내가 ‘빠랑’(서양인)이라도 당신이 소리 질렀겠냐?”며 톰이 받아쳤다. ‘타이 전통’을 내세운 여성과 ‘개인 자유’를 내세운 커플 간에 언쟁이 오갔다. 승객들은 모두 ‘먼 산’을 봤고 상황을 정리한 건 ‘레이디보이’다. “톰보이라도 예의를 지켜야지! 인터넷을 봐봐. 공공장소에서의 애정 표현을 다들 비난하고 있다고.” 이후 BTS 쪽은 핫라인을 개설해 애정 행각 발견시 신고를 하라고 공지했다. ‘착하고 도덕적인’ 거리 만들기로 종결된 이 소란은 타이식 관용의 속살을 잘 보여줬다.
“겉만 보고 관용적이라는데, 성소수자들 삶의 수준을 봐야 한다. 소외계층, 지방으로 가면 (성소수자를 겨냥한) 강제결혼, 성폭행도 적잖다.” 레즈비언 단체인 평등실천연대(TEA) 활동가 타오는 타이 사회가 직설법 문화가 아니라서 관용적으로 비치는 거라고 말했다. 성소수자들이 진정으로 존중받는지는 별개의 문제라며.
“사회적 지위가 낮다 싶으면 행동거지가 좋아야 해. 민주주의, 계엄령 같은 도전적 의제는 삼가고 국가를 위해 헌신하면 성소수자라도 사람들이 당신을 좋아할 거야.” 6년 전 양성애자로 커밍아웃한 플라(29)의 말이다. 플라의 엄마와 이모 넷은 모두 성노동자로 살며 자식을 부양하고 생계를 일궜다. 플라가 15살 때부터 공장과 주말학교를 병행해 다니고 개방대학을 5년 동안 기를 쓰고 이수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실제로 타이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트랜스젠더인 ‘레이디보이’는 이 사회의 관용을 상징하지만 차별의 주 대상이기도 하다. 예컨대 섹스 투어리즘의 허브 파타야에 뜨는 단속은 트랜스젠더들을 겨냥할 때가 많다. 트랜스젠더 모델로 미국 뉴욕까지 진출한 사리나 타이조차 지난 2월 눈물을 글썽이며 인권위를 찾았다. 방콕 한 클럽의 문지기가 사리나의 신분증을 보고 출입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타이에는 성전환자가 무수히 많지만 성별 정정은 허용치 않는다.
“형법과 민법을 건드려야 하는데 두 법은 한 세기 동안 변하지 않은 바이블이다.” 레인보스카이타이협회(RSAT) 사무차장 라피푼 좀마렁은 ‘왜 성별 정정 소송 사례가 없는가’라고 묻자 그렇게 답했다. 타이가 동성애를 비범죄화한 건 1956년. 그러나 “동성애는 정신병이 아니다”라는 보건부의 공식 발표는 2002년에 나왔다. 2007년 헌법에 ‘성정체성으로 인해 차별받지 아니한다’는 조항을 최초로 넣었지만 지난해 쿠데타로 종이 조각이 됐다.
지난 1월 군정 의회 헌법기안위원회(CDC)는 ‘제3의 성’을 신헌법에 넣겠다고 밝혔다. ‘펫 사팝’, ‘섹스’보다는 ‘젠더’에 가까운 신조어다. CDC 부의장 수칫 분봉칸 쭐랄롱꼰대학 교수는 최근 신헌법 관련 포럼에서 “성정체성과 성적 활동의 다양성을 인정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라피푼은 획기적 조치로 환영하면서도 절차의 복잡성을 짚었다. “관련법에 명시되려면 타이국립어학원에서 관련 신조어를 승인해줘야 하고 이를 법조계에서 받아들여야 한다. 지난한 절차가 될 것이다.”
베트남톱게이 타오 Mr.Thao. Information Connecting Sharing (ICS) 제공
“민주적 체제하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면…”
2011년 9월 타이 인권위와 ‘다양한 성 네트워크’(Sexual Diversity Network)가 동성혼 합법화 안을 정부에 제안했다. 다음해 12월 정부는 ‘동성 커플을 위한 시민파트너십 구현 법안 작성위’를 꾸렸고 2013년 9월 ‘시민파트너십법’(Civil Partnership Act)이 몸통을 드러냈다. 법안은 “20살 이상 동성 커플은 시민파트너십으로 등록 가능”하며 “두 사람 중 한 명은 반드시 타이인”이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보험, 연금, 세금 감면, 유산 문제 등 이성 커플에 해당하는 권리 사항도 모두 다뤘다. 단, 입양권은 허용치 않았다. 2013년 12월, 국회 논의와 통과를 기다리던 파트너십 법안은 반정부 시위대에 밀린 당시 잉락 친나왓 총리가 의회를 해산하면서 물거품이 됐다. 초당적 지지가 뚜렷한 사안이지만 늪에 빠진 정치가 발목을 잡았다.
동성 파트너십 법제화의 중요성은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사이몬-노이 커플 사례에도 잘 투영된다. 영국법으로는 보호를 받지만 이들이 살고 있는 타이에서는 아무런 보호 장치가 없다. 노이가 아파 병원에 입원해도 배우자 자격이 없는 사이몬은 어떤 종이에도 사인할 수 없다.
베트남톱게이 타오 Mr.Thao와 친구들. Information Connecting Sharing (ICS)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