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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재퍼니즈의 절규 "나는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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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11-2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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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최근 개봉된 제3세 재일동포 영화 세편이 보여주는 정체성 혼란과 상처

사진/ 영화 <청(靑)chong> 의 팸플릿.
철로에 내려선 한 소년은 지하철이 거의 플랫폼에 도착하자, 지하철을 뒤로 한 채, 다음 역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달리는 장면은 정지화면으로 분할되고, 풀리지 않는 자신의 정체성은 미친 듯 질주하는 장면으로 외화된다. 최근 일본에서 개봉된 영화 <GO>의 첫 장면은 이처럼 거칠고 팍팍하다. 하지만 자이니치(재일동포)의 정체성이라는 딱딱한 주제는 사랑, 폭력, 멜로라는 청춘영화 문법에 충실한 엔터테인먼트로 포장된다.

조선학교의 상징은 폭력

원작은 아쿠타가와상과 함께 일본 최고의 문학상이라고 일컬어지는 제123회 나오키상을 수상한 코리안 저패니즈(그는 자신을 이렇게 불러주길 원한다)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 원작소설만으로도 15만부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러이다. 주인공 스기하라는 중학교 시절까지만 해도 조선학교를 다녔지만,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 일본인 고등학교에 진학한다. 처음으로 접하게 되는 차별에 그가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주먹. 농구장에서의 집단 이지메에 대항하는 주인공의 연기는 가히 일품이다. 이후 학교 주먹들의 계속되는 도전에 맞선 그의 전적은 24승무패. 그 도전자들 중 한명이 그를 무척 위해준다. 그 친구의 생일 댄스파티에서 소녀 사쿠라이를 만나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재일한국인이라는 사실이 그들의 사랑을 방해한다. 조선학교의 뛰어난 수재인 친구 정일의 갑작스런 죽음, 북으로 간 삼촌의 죽음, 마르크스주의자였던 복서 출신 아버지와의 갈등 역시 그를 괴롭힌다. 하지만 아픔은 그를 성숙시키고, 무수한 역경을 통해 그는 더욱 단단해진다. 일종의 재일동포 소년의 성장영화인 셈이다.


재일동포 아이덴티티를 묻는 또다른 최근 영화로는 리상일 감독의 <청><(靑)-chong>과 역시 재일동포 3세인 마쓰에 데쓰야키가 감독한 영화 <안녕 김치>가 있다. 젊은 신인감독의 등용문으로 가장 권위있는 제22회 피아 필름페스티벌에서 그랑프리 등 4개 부문을 휩쓴 리 감독의 영화 <청>은, 영화 <GO>와 마찬가지로 조선학교 시절의 사랑이야기를 매개로 한 재일동포 3세의 정체성 묻기가 그 주된 테마. 그러나 <안녕 김치>는 이와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찾아간다. 한국에 대해 별로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갖고 있던 주인공이 할아버지의 죽음을 매개로, 자신의 뿌리를 찾아 할아버지의 고향인 충청남도를 찾아가고, 그곳에서 창씨개명과 귀화라는 문제와 조우하게 된다. 야마가타 국제 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아시아 천파만파 특별상과 최우수 아시아영화 특별상 등을 수상했다.

조선학교 학생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역시 ‘폭력’이다. <GO>에서 복서 출신의 재일동포 2세인 주인공의 아버지는 아들이 어렸을 때, 네가 주먹을 쥐고 한 바퀴 돌아서 생긴 공간만이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공간, 자기라는 인간의 크기라고 가르친다. 일본인 고등학교에 가서도 폭력만이 자기 존재를 인식시켜주는 유일한 창구역할을 한다. 일종의 자기확인 방식인 셈이다. <청>에서도 조선학교 고등부 3학년생들 역시 주먹과 칼로 위협하는 거리의 불량배들을 아주 가볍게 때려눕힌다. 교실에서 선생에게 맞고 돌아온 아들을 보고 그의 아버지는 대뜸 “쪽발이에게 맞고 들어오는 거냐”고 묻는다. 선생에게 맞을 순 있어도, 일본애들한테 맞아선 안 된다는 것이 재일동포 2세의 일반적인 교육방침이란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에일리언도 자이니치도 아니다”

이같은 폭력과 성격은 다르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또다른 폭력을 이들 작품은 놓치지 않고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조선학교 내부의 폭력,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규율로서의 폭력이다. ‘우리말 100% 사용하기 운동’을 벌이고 있는 조선학교에서 일본어를 썼다는 이유로 주인공 스기하라는 김 선생으로부터 ‘민족반역자’라는 말과 함께 무차별적인 폭력을 받는다. 빨간 스카프를 맨 채 열을 지어 행진하던 <GO>의 스기하라는 열과 정반대의 방향으로 걸어가고, 그 길의 끝에는 피가 난무하는 현재의 폭력현장이 놓여져 있다. 이들 영화에서 조선학교가 그다지 긍정적인 모습으로 반영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조선학교는 비틀려져 묘사되고, 종종 개그화되기까지 한다. 가령 <GO>에서 스기하라가 싸움을 벌일 때 아무리 맞아도 쓰러지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현대조선혁명력사-중급3>이라는 책을 배에 차고 갔기 때문이랄지, <청>에서 교과서에 실린 김주석 사진을 덮은 습자지로 땀을 닦는 장면 등이 그것이다. 조선학교에 대한 우회적이지만 강렬한 저항의식을 엿보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같은 문제의식들은 철저히 사랑이야기로 포장된다. <GO>에서 조금만 심각한 장면이 나올라치면 으레 “이것은 나의 연애이야기”라는 멘트로 관객을 안심시킨다. 실제로 거칠고 무거운 테마들은 달콤한 사랑얘기에 알맞게 녹아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망설이고 망설인 끝에 스기하라가 자신이 ‘자이니치’란 사실을 고백했을 때, 애인 사쿠라이가 보인 태도는 이 영화에서 연애이야기가 결코 포장일 수 없다는 것, 자이니치라는 문제가 얼마나 일상 깊숙한 곳에서 문제시되고 있는가를 역설해 보여준다. 사쿠라이는 “무섭다”면서 그의 손길을 피한다. “한국인이나 중국인과는 사귀지 말라고 아빠가 얘기했다”면서. 그리움의 날들이 지나고 크리스마스 이브, 사쿠라이의 연락을 받고 나간 스기하라가 절규하듯이 토해내는 대사들, “나는 에일리언도 아니고, 자이니치도 아니다.” “나는 나다.” 사자머리를 휘날리는 구보즈카 요스케의 터프하고 강렬한 연기력이 곁들여진 그 길고 긴 절규는 가히 스크린을 압도한다.

‘국적’에 관한 재일동포들의 고민을 그린 대목들도 주목할 만하다. <GO>에서 재일동포 2세인 아버지 수길은 하와이에 가고 싶다며, 재일 조선인에서 재일 한국인으로 국적을 바꾼다. 총련 활동을 열심히 하고, 동생은 이른바 ‘귀국운동’으로 북송선을 타 북쪽에 있지만, 아들의 장래를 생각해 국적을 바꾼 것이다. 하지만 아들에겐 선택을 강요하지 않는다. 어느날 바닷가로 아들을 데려가 바다를 함께 바라본다. “먼 바다를 네 눈으로 보고 생각하고 판단하라”고.

국적은 생활의 문제

사진/ 농구부에서 집단 이지메를 당하자 모두를 상대로 싸움을 벌인 뒤 붙잡혀가는 <GO>의 스기하라(맨위). <GO>의 나오키상을 수상한 원작 소설(왼쪽아래). 영화 <안녕 김치>의 영화 팸플릿(오른쪽아래).
<안녕 김치>는 재일동포에서 일본으로 국적을 바꾼 경우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같은 문제를 심각한 톤으로 처리하지 않는다. 주인공의 엄마는 집안 깊숙한 곳에 놓여 있던 아빠의 귀화신청 이유서를 꺼내 읽어준다. 그곳엔 자잘한 생활상의 이유들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들이 적혀 있다. 아들을 쳐다보며, “넌 이런 심정 이해할 수 있겠니?”라고 묻는다. 귀화문제는 거창한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생활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식이다. 주인공의 누이도 “할아버지가 일본으로 건너와 결혼했고, 아버지는 일본에서 엄마를 만났고, 그래서 우리가 태어날 수 있었던 것 아니냐”며 가볍게 웃어넘긴다. 자기는 “일본이 더 편하다”며 그만 벌렁 드러눕는다.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지 않으냐는 투다. <안녕 김치>의 마지막 장면. 가족들 모두는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국기를 고른다. 할머니는 한국 국기, 엄마 아빠는 한국기와 일본기, 미국사람과 결혼한 이모는 미국기, 누이동생은 일본기를 선택한다. 국가와 국기가 지닌 거대담론들이 아주 가볍게 반전되고 만다. 마치 기호식품처럼.

하지만 ‘이름’문제에 이르면, 그들의 고민도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좀더 철저한 일본인이 되기 위해 자신의 묘비명조차 일본식 이름을 썼던 <안녕 김치>의 할아버지. 그러나 그도 막상 세상을 떠나 화장되는 순간엔 옛 한국이름을 쓸 수밖에 없었다. 첫 호적에 일본식 이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름은 세상에서 가장 짧은 저주

“세상에서 가장 짧은 저주”가 바로 이름(최근 일본의 인기만화 <음양사>의 얘기처럼)이라는 말도 있지만, 마지막 순간마저 재일동포는 이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안녕 김치>의 주인공은 그러다 할아버지 고향 충청도에서 자신의 성인 ‘마쓰에’(松江)가 창씨개명 당시 본래의 한국 성과 본적인 강릉을 일본식으로 결합한 이름이란 사실을 발견해 낸다. 아무런 연유조차 없을 줄 알았던 자신의 이름이 지닌 그런 역사성을 그는 아주 소중하게 생각한다.

<GO>에서도 스기하라의 뒷이름은 자신이 재일동포라는 사실을 사쿠라이에게 고백할 때에서야 비로소 밝혀진다. “이름이란 무엇일까? 장미라 불리는 꽃을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그 향기는 그대로….” <GO>의 원작소설 첫 페이지에 인용되어 있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구절처럼, 이름은 재일동포의 숙명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들의 절박한 고민을 한국사람들은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안녕 김치>에서 주인공은 한국의 먼 친척을 찾아, 자기가 한국인이면서 일본인이 되면 안 되겠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그같은 물음은 너무도 단호하게 거절된다. 돌아오는 것은 ‘반쪽바리’라는 손가락질뿐. 재일동포 3세인 그들은 스스로를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니라고 답한다. <청>에서도, <GO>에서도 그들은 한결같이 “나는 나”라고 주장한다. 재일동포를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라는 관점에서가 아니라, 바로 그들 자신의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좋은 영화들이다.

도쿄=신명직 통신원 mjshin59@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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