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세계|재외공관 긴급진단
“다시는 발걸음 않겠다”고 이 악물게 하는 중국영사관, 교민들의 불신과 냉소
최근 중국에서 신모씨가 마약혐의로 사형된 사건은, 재판과 사형집행 과정에서 자국민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현지 공관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중국 교민들은 영사관이 교민과 상관없는 기관이라며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세계 곳곳의 교민들도 현지공관의 교민업무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외교부는 인력과 예산 부족을 호소하지만, 교민들은 재외공관원들이 고위관리나 정치인들은 잘 받드는 반면 교민업무에는 소홀하다고 주장한다. <한겨레21> 통신원들이 현지 취재와 생생한 경험을 통해 해외공관의 실태를 집중해부한다. 편집자
사소한 민원이나 사건사고를 당해 영사관 문을 두드려본 교민들은 “다시는 영사관에 발걸음을 하지 않겠다”고 이를 악문다. 그러다보니 교민들은 ‘스스로 알아서 처리’하는 자생능력이 생겼다. 교민들에 대한 영사관의 푸대접이 ‘자립심’을 키워줬다고 해야 할까.
3년 전 교민들이 “주중 한국영사관은 자국민보호기관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린 사건이 있었다. 베이징 하이디엔취(海淀區) 우다커우(五道口)에 살고 있던 약 700가구 이상의 교민들이 쫓겨나갈 위기에 처해 있었다. 당시 중국 공안당국은 이 지역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가 자주 발생하기 때문에 단속을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베이징에선 외국인들의 거주지역이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중국 공안의 명분은 합당한 것이었다. 그러나 현지 교민들이 모두 외국인 합법지역에서 거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당시 이런 지역의 집세는 한달에 1천달러를 넘었다. 우다커우에 살고 있는 교민 대다수는 이같은 집세를 감당할 수 없는 유학생 가족, 소규모 자영업자, 선교사 등이었다. 이 지역은 이미 한국인 외에 일본인, 인도네시아인 등 외국인이 많이 몰려 살고 있었다. 1998년 10월1일 중국 국경절을 전후해 공안당국이 수색에 나선다는 발표가 암암리 전해지고 있을 때, 한국인을 제외한 외국인들은 다른 지역으로 대피한 상태였다. 각 나라 영사관에서 이미 그들에게 ‘단속 사실’을 알렸던 것이다. 오직 한국영사관만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우다커우 한국인들의 수난 불안했던 교민들 일부가 영사관쪽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그때 영사관쪽의 대답은 “왜 불법 거주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는 우범지역에서 살고 있느냐”였다. 당시 몇몇 가구가 모여 대책위원회를 만들고 정식으로 영사관쪽에 항의를 하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두명의 영사가 대책위와 면담을 가졌다. 당시 한국영사관은 우다커우지역에 사는 교민들에 대한 실상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중국 공안에 따르면 한 50가구 정도가 산다고 하더라”는 식의 영사의 발언은 교민들을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다. ‘자국민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의 고민보다 ‘왜 중국법을 어겨가며 사느냐’고 교민을 꾸지람하는 내용으로 면담은 마무리되었다. 당시 교민들은 한밤중에 몰래 이사를 하는가 하면, 호텔로 며칠 동안 피신을 하거나, 타지역으로 외유를 떠나야만 했다. 그 사건에 대해 영사관쪽은 “할 만큼 최선을 다했다”고 말한다. 영사부의 한 관계자는 “여러 차례 공안국을 찾아가 이사 날짜를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으며, 단속을 완화해줄 것을 요구했다”며 “이런 노력으로 지금은 별다른 단속이 없지 않느냐”고 자신들의 공로를 부각시켰다. 이에 대해 교민들은 “지금 다소 단속이 완화된 것은 시대적 변화일 뿐, 한국영사관의 노력이라고는 볼 수 없다”며 “위기상황에서 미리 대처를 하기는커녕 이미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 귀찮은 일거리가 생겼다는 식으로 반응하는 그들이 무슨 노력을 했단 말이냐”고 반문한다. 교민들의 말은 사실이다. 현재 우다커우지역의 거주가 가능해진 것은 집주인인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중국 공안당국에 묵인을 요청해 가능해진 것이다. 석달 전 베이징과 천진을 오가는 대형 고속버스가 전복되는 사고가 있었다. 사상자 가운데 두명이 한국인이었다. 한명은 머리를 70바늘이나 꿰매는 큰 부상을 입었다. 이때 부상자가 영사관에 전화로 도움을 요청하고난 뒤에야 병원을 찾아온 영사는 “특실에 입원해 있으면 나중에 보상금을 받을 때 입원비를 본인이 부담해야 된다”며 은근히 일반 병실로 옮길 것을 권했다. 환자는 밤새 고민을 하다 결국 일반 병실로 옮겼다. 그런데 버스회사쪽은 보상금 협상을 할 때, 입원비는 물론 환자가 요구한 보상금 전액을 지불했다. 환자는 “어려움에 처해 있는 교민을 위해 최대한 유리하게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는커녕 마음고생만 하게 했다”며 영사 업무를 비난했다. 올 봄 중국 청년 4명이 차를 몰고 가다 한국 유학생들과 시비가 붙어 두명의 한국 남학생이 칼에 찔리는 사고가 났을 때도 영사관이 취한 태도는 형식적인 ‘입 외교’에 그쳤다. 부상자가 입원한 병원으로 모 참사관이 만취상태에서 찾아와 ‘횡설수설’했다는 일화는 교민들 사이에서 비웃음거리로 회자되고 있다. 그뒤 사건은 담당 영사가 공안국에 “공정하게 사건을 처리해 달라”고 부탁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그 공정한 처리결과는 ‘쌍방과실’로 처리되었고, 부상당한 남학생은 한국으로 돌아가 대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교민이 사고당해도 형식적 조처만
이번 신씨 사건 취재과정에서 필자는 몇몇 한국인들이 사소한 시비로 중국 공안국에서 조사받는 과정에서도 가족은 물론 영사관쪽에 연락을 취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심한 구타나 모욕적인 대우를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럼에도 영사관 관계자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중국 공안당국에 항의할 수 없다”고 말한다.
지난 11월7일 한승수 외무장관은 신모씨 사형파문에 대해 ‘전 공관직원의 영사화’와 ‘24시간 영사업무’를 발표하면서 사건을 수습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 발표로 인해 주중 대사관과 영사관의 업무태도가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교민은 아무도 없다. 외교관이 특권층이라는 엘리트의식을 바꾸지 않는 한 영사업무는 고압적일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다. 3년 전 우다커우 강제이주 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L씨는 “영사관의 모든 직원을 동사무소 직원으로 바꾸는 게 낫지 않은가”고 반문한다.
교민들이 영사관을 찾을 때는 급박하거나 어디에도 호소할 때가 없는 억울한 일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간신히 담당 영사를 만나면 그 억울함이 배가 되어 돌아온다. 여권을 분실해서 찾아가면 “혹시 돈 받고 판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가 하면, “퇴근시간인데 전화를 했다”며 불평을 털어놓는 게 영사관의 업무태도다.
베이징 한국영사관에는 1년 전만 해도 ‘자국민 전용 창구’조차 없었다. 언제나 국제결혼 민원이나 비자를 발급하려는 조선족들로 만원을 이루는 대열에 섰다가 오후 4시가 되면 다시 발길을 돌려야 했던 자국민들의 불평이 줄을 이었다. 퇴근시간과 휴일은 정확히 지키면서 ‘자국민 보호’라는 영사업무는 늘 태만했던 영사관이 과연 ‘24시간 업무체제’를 지속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본국 상관이 오면 전 직원 비상대기?
교민들의 영사업무 불만에 대해 영사관 관계자는 “민원인의 입장에서 모든 것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늘 불평이 있게 마련이다”며 교민들의 높은 기대치를 지적했다. 과연 교민들의 영사관의 기대치가 높았던 것일까. 취재 과정에서 교민들은 한결같이 결과보다는 “영사관의 태도”에 대해 지적하고 있었다.
베이징에 사건사고를 담당하는 영사는 1명뿐이다. 선양, 칭다오, 상하이, 광저우 등 영사관이 있는 곳을 제외한 나머지 중국 전역에서 발생한 한국인 사건사고는 1명의 영사가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담당영사는 절대적인 인력부족을 호소하고 있었다. 교민보호를 위한 비상대기체제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관을 모시는 일’에는 재외공관 전 직원의 비상대기가 일사불란하게 이뤄지는 곳이 주중대사관과 영사관이다.
본국에서 국회의원이나 장관 등이 오게 되면 공항 마중에서부터 배웅까지 대사관 차량이 줄을 잇는다. 마치 전 직원이 총출동한 비상체제를 방불케 한다. 베이징에 있는 몇몇 고급 한식당은 늘 대사관 손님들로 북적댄다. 얼마 전 중국외교학회의 초청으로 한국에서 국회의원과 정부 관료들이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참석했던 한 교민의 말이다. “대사관 직원들은 외유오는 상관들 모시는 일만으로도 인력이 모자랄 것 같아요. 그들이 가는 곳마다 몇십명의 직원들이 늘 대기하고 있는 걸 보면서 살벌한 충성심을 느끼겠더군요.”
한국영사관은 얼마 전 새집으로 이사를 했다. 대기실에 들어가면 편안하고 쾌적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러나 이 대기실에 앉아 또 얼마만큼의 시간을 보내야 담당 영사를 만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베이징=황훈영 통신원 kkccjjhh@hanmail.net

사진/ 베이징영사관 앞에 줄서 있는 교민들. 베이징에 사건사고를 담당하는 영사는 1명에 불과하다.(이정용 기자)
3년 전 교민들이 “주중 한국영사관은 자국민보호기관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린 사건이 있었다. 베이징 하이디엔취(海淀區) 우다커우(五道口)에 살고 있던 약 700가구 이상의 교민들이 쫓겨나갈 위기에 처해 있었다. 당시 중국 공안당국은 이 지역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가 자주 발생하기 때문에 단속을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베이징에선 외국인들의 거주지역이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중국 공안의 명분은 합당한 것이었다. 그러나 현지 교민들이 모두 외국인 합법지역에서 거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당시 이런 지역의 집세는 한달에 1천달러를 넘었다. 우다커우에 살고 있는 교민 대다수는 이같은 집세를 감당할 수 없는 유학생 가족, 소규모 자영업자, 선교사 등이었다. 이 지역은 이미 한국인 외에 일본인, 인도네시아인 등 외국인이 많이 몰려 살고 있었다. 1998년 10월1일 중국 국경절을 전후해 공안당국이 수색에 나선다는 발표가 암암리 전해지고 있을 때, 한국인을 제외한 외국인들은 다른 지역으로 대피한 상태였다. 각 나라 영사관에서 이미 그들에게 ‘단속 사실’을 알렸던 것이다. 오직 한국영사관만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우다커우 한국인들의 수난 불안했던 교민들 일부가 영사관쪽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그때 영사관쪽의 대답은 “왜 불법 거주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는 우범지역에서 살고 있느냐”였다. 당시 몇몇 가구가 모여 대책위원회를 만들고 정식으로 영사관쪽에 항의를 하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두명의 영사가 대책위와 면담을 가졌다. 당시 한국영사관은 우다커우지역에 사는 교민들에 대한 실상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중국 공안에 따르면 한 50가구 정도가 산다고 하더라”는 식의 영사의 발언은 교민들을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다. ‘자국민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의 고민보다 ‘왜 중국법을 어겨가며 사느냐’고 교민을 꾸지람하는 내용으로 면담은 마무리되었다. 당시 교민들은 한밤중에 몰래 이사를 하는가 하면, 호텔로 며칠 동안 피신을 하거나, 타지역으로 외유를 떠나야만 했다. 그 사건에 대해 영사관쪽은 “할 만큼 최선을 다했다”고 말한다. 영사부의 한 관계자는 “여러 차례 공안국을 찾아가 이사 날짜를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으며, 단속을 완화해줄 것을 요구했다”며 “이런 노력으로 지금은 별다른 단속이 없지 않느냐”고 자신들의 공로를 부각시켰다. 이에 대해 교민들은 “지금 다소 단속이 완화된 것은 시대적 변화일 뿐, 한국영사관의 노력이라고는 볼 수 없다”며 “위기상황에서 미리 대처를 하기는커녕 이미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 귀찮은 일거리가 생겼다는 식으로 반응하는 그들이 무슨 노력을 했단 말이냐”고 반문한다. 교민들의 말은 사실이다. 현재 우다커우지역의 거주가 가능해진 것은 집주인인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중국 공안당국에 묵인을 요청해 가능해진 것이다. 석달 전 베이징과 천진을 오가는 대형 고속버스가 전복되는 사고가 있었다. 사상자 가운데 두명이 한국인이었다. 한명은 머리를 70바늘이나 꿰매는 큰 부상을 입었다. 이때 부상자가 영사관에 전화로 도움을 요청하고난 뒤에야 병원을 찾아온 영사는 “특실에 입원해 있으면 나중에 보상금을 받을 때 입원비를 본인이 부담해야 된다”며 은근히 일반 병실로 옮길 것을 권했다. 환자는 밤새 고민을 하다 결국 일반 병실로 옮겼다. 그런데 버스회사쪽은 보상금 협상을 할 때, 입원비는 물론 환자가 요구한 보상금 전액을 지불했다. 환자는 “어려움에 처해 있는 교민을 위해 최대한 유리하게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는커녕 마음고생만 하게 했다”며 영사 업무를 비난했다. 올 봄 중국 청년 4명이 차를 몰고 가다 한국 유학생들과 시비가 붙어 두명의 한국 남학생이 칼에 찔리는 사고가 났을 때도 영사관이 취한 태도는 형식적인 ‘입 외교’에 그쳤다. 부상자가 입원한 병원으로 모 참사관이 만취상태에서 찾아와 ‘횡설수설’했다는 일화는 교민들 사이에서 비웃음거리로 회자되고 있다. 그뒤 사건은 담당 영사가 공안국에 “공정하게 사건을 처리해 달라”고 부탁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그 공정한 처리결과는 ‘쌍방과실’로 처리되었고, 부상당한 남학생은 한국으로 돌아가 대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교민이 사고당해도 형식적 조처만

사진/ 지난 11월7일 한승수 외교통상부 장관이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한 뒤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한겨레 강창광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