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세계|재외공관 긴급진단
한국문화원 만들기 위해 10년을 뛰어다닌 그리스 학자, 공무원들의 안일주의에 두손 들다
그리스에서도 한국대사관은 이미 낯선 곳이 돼버렸다. 이는 낯선 곳에서 대사관밖에 믿을 곳이 없는 교민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감정이다. 아테네에 거주하는 이모씨는 “한국대사관에 부득이한 일로 갈 수밖에 없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가능하면 가고 싶지 않다. 한국대사관이지만 내가 꼭 외국대사관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세계 어디에 있는 한국대사관을 가더라도 다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대사관의 문턱이 높다’는 말은 어제오늘에 생겨난 말이 아니다. 특히 해외여행이 개방된 뒤 많은 한국사람들이 급속히 세계로 진출해나가면서 돌고 도는 말이 돼버렸다. 오랜 세월을 많은 나라에서 생활해온 교민 김모씨는 “대사관이 교민들에게 봉사하는 곳이라기보다는 마치 감시하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멀리 떨어져 살고 싶다”는 심정을 밝혔다. 또 다른 교민은 “대사관에서 뭘 해줄 것이라는 기대는 아예 없다”고 말했다.
대사가 되신 장군님들…
아테네 한국대사관의 초대대사의 이름은 다름아닌 채명신 장군이었다. 오랜 군사정권의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는 외교분야 보직들도 오랫동안 ‘장군’들의 차지였다. 군사정권 당시 중요한 나라의 대사자리는 대부분 장군들이 차지한 과거가 있었기 때문에 힘없는 직업외교관 출신들은 아예 찬밥신세를 면치 못했다. 열심히 일해봐야 언제나 군 출신의 낙하산 인사들로 중요한 자리들이 채워짐으로써 많은 공관직원들이 일할 의욕을 잃고 관료적인 무사안일주의에 빠져들었다. “국방부 시계만 가는 게 아니라 외무부 시계도 간다”는 말이 있다. 큰 실책없이 시간만 가면 진급이 보장되는 것이 우리 공무원사회다. 따라서 일을 많이 하든 적게 하든 주어지는 보상은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교민들을 상대로 하는 일은 가능하면 벌이지 않는 것이 공무원사회의 구조에서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는 사실이다. 일을 하다가 만에 하나 잘못되기라도 하면 앞날이 불투명해진다. 상에는 약하고 벌에는 강한 게 공무원사회의 체질인 상태에서 영사업무는 누구나 꺼리기 때문에 신참외교관들에게 주로 맡겨진다. 새파란 젊은 영사가 외국생활에서 ‘닳을 대로 닳은’ 교민들을 상대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사증발급업무와 문서처리건수가 많아지게 되면 교민들을 돌보는 업무는 자연히 소홀해지기 쉽다. 특히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 ‘작은 정부’를 추구한다면서 많은 공관을 축소했고 공관의 인원도 많이 줄었다. 얼마 전 문제가 생겼던 중국영사관의 인원이 10명인데 하루에 1천건의 팩스가 온다니 한 사람이 하루에 100건의 팩스를 살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어떤 대사관에서는 일거리가 너무 많아서 탈이고 어떤 곳에서는 대사관 직원들이 “골프만 치러 다닌다”는 등의 불만도 터져나올 정도로 너무 일이 없는 것도 재외공관 업무의 현주소이다. 파리7대학에서 한국민속학을 전공하여 석사, 박사학위를 받은 바 있는 그리스인 조애리(한국이름·45) 박사는 한국을 한국사람보다도 더 사랑하는 외국인이다. 15년을 한국학 공부를 위해 모든 것을 투자했으며 심지어는 민속학연구를 위해 연세대학교에서 6년을 보낸 바 있다. 아테네로 돌아온 뒤 그는 한국문화원을 만들어 한국문화를 그리스인들에게 보급할 꿈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물론 한국학이 개설된 대학이 아테네에 없기 때문에 한국학과목을 개설하기 위해 혼자서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쉽지 않았다. 또 대사들이나 대사관 직원들을 만나, 대사관의 도움을 받아 문화원을 열어보려고 거의 10년 가까이 면담도 해왔으나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는 자신의 아파트 한채를 아예 한국문화원 공간으로 사용하도록 제공하겠다는 의향까지도 밝힌 바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문화원문제로 대사관 담당자와 접촉하고 어느 정도 얘기가 본궤도에 올랐다 싶으면 이 대사관 담당자는 한국으로 떠나가버린다는 것이었다. 다시 후임으로 온 담당자와 얘기를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고 그러다보면 다시 떠나고…. 이렇게 10년이 지났지만 아무것도 이루어진 일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2년 전부터는 아예 제안하는 것을 포기했다. 되면 되고 안 되면 안 된다는 뚜렷한 대답없이 시간만 끌어오면서 한 외국인의 소중한 뜻을 왜곡하고 마음에 상처만 안겨준 것은 다름아닌 외무행정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가능하면 일을 벌이지 않고 시간만 끄는 것이 행정담당자의 태도였다. 10년 동안 누구 하나 뚜렷하게 일을 매듭지은 적이 없다. 조애리 박사는 “부임해오는 대사마다 만나서 이 문제를 논의했으며 전임대사들로부터 긍정적인 대답도 들었지만 아무것도 되는 일은 없었다”고 말한다. 감옥 같은 공관구조 중국에서 일어난 한국인 마약사범 사형을 계기로 다시 쏟아져나오는 영사업무에 대한 재외교민들의 불만은 해묵은 것이다.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군사정권 시절 모든 국민들이 정부의 감시와 통치의 대상이었던 관행이 지금도 외무부 외교행정에서는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극소수의 교민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교민들이 대사관에 대해서 받는 느낌은 군사정권 시절에 가져왔던 선입견 그대로이다. 현지공관들이 교민들과 벽을 허물고 가까워지려면 먼저 대사관의 내부구조부터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아테네의 한 교민은 “서울에 있는 그리스 대사관에 갔을 때 너무나 다른 느낌을 받았다. 마치 내가 이웃집을 방문한 것같이 확 트였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한국대사관은 들어서자마자 마치 감옥에 면회간 느낌이 든다. 담당직원과 방문자를 가로막고 있는 플라스틱 벽과 거기에 뚫린 구멍을 통해서 오고 가는 서류들, 이런 분위기보다 조금 더 개방된 내부구조로 바뀌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남겼다. 필자가 알고 있는 한 런던이나 파리의 한국대사관 구조도 마찬가지다. 또한 교민들은 체류나 도난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현지 정부와의 적극적인 외교활동을 해야 한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아테네의 한 외교관은 “부족한 인력과 재정으로 최선을 다하지만 인력과 재정면에서 다른 선진국 대사관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것이 현실”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미국대사관의 영사업무를 모범적 사례로 들면서 얘기하는데 우리 형편에서 이것은 비현실적”임을 지적했다. 어쨌든 재외공관의 외교관들에게 가장 요청되는 덕목은 무엇보다도 교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정신이다. 이역만리 떨어진 타국에서 믿을 곳이라고는 대사관밖에 없는 교민들을 포용하는 모습 속에서 교민들과의 벽은 허물어질 것이고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들은 힘없이 땅에 떨어질 것이다.
아테네=하영식 통신원 youngsig@otenet.gr

사진/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전경. 문화교류의 장을 만들기 위해 재외공관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아테네 한국대사관의 초대대사의 이름은 다름아닌 채명신 장군이었다. 오랜 군사정권의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는 외교분야 보직들도 오랫동안 ‘장군’들의 차지였다. 군사정권 당시 중요한 나라의 대사자리는 대부분 장군들이 차지한 과거가 있었기 때문에 힘없는 직업외교관 출신들은 아예 찬밥신세를 면치 못했다. 열심히 일해봐야 언제나 군 출신의 낙하산 인사들로 중요한 자리들이 채워짐으로써 많은 공관직원들이 일할 의욕을 잃고 관료적인 무사안일주의에 빠져들었다. “국방부 시계만 가는 게 아니라 외무부 시계도 간다”는 말이 있다. 큰 실책없이 시간만 가면 진급이 보장되는 것이 우리 공무원사회다. 따라서 일을 많이 하든 적게 하든 주어지는 보상은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교민들을 상대로 하는 일은 가능하면 벌이지 않는 것이 공무원사회의 구조에서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는 사실이다. 일을 하다가 만에 하나 잘못되기라도 하면 앞날이 불투명해진다. 상에는 약하고 벌에는 강한 게 공무원사회의 체질인 상태에서 영사업무는 누구나 꺼리기 때문에 신참외교관들에게 주로 맡겨진다. 새파란 젊은 영사가 외국생활에서 ‘닳을 대로 닳은’ 교민들을 상대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사증발급업무와 문서처리건수가 많아지게 되면 교민들을 돌보는 업무는 자연히 소홀해지기 쉽다. 특히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 ‘작은 정부’를 추구한다면서 많은 공관을 축소했고 공관의 인원도 많이 줄었다. 얼마 전 문제가 생겼던 중국영사관의 인원이 10명인데 하루에 1천건의 팩스가 온다니 한 사람이 하루에 100건의 팩스를 살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어떤 대사관에서는 일거리가 너무 많아서 탈이고 어떤 곳에서는 대사관 직원들이 “골프만 치러 다닌다”는 등의 불만도 터져나올 정도로 너무 일이 없는 것도 재외공관 업무의 현주소이다. 파리7대학에서 한국민속학을 전공하여 석사, 박사학위를 받은 바 있는 그리스인 조애리(한국이름·45) 박사는 한국을 한국사람보다도 더 사랑하는 외국인이다. 15년을 한국학 공부를 위해 모든 것을 투자했으며 심지어는 민속학연구를 위해 연세대학교에서 6년을 보낸 바 있다. 아테네로 돌아온 뒤 그는 한국문화원을 만들어 한국문화를 그리스인들에게 보급할 꿈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물론 한국학이 개설된 대학이 아테네에 없기 때문에 한국학과목을 개설하기 위해 혼자서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쉽지 않았다. 또 대사들이나 대사관 직원들을 만나, 대사관의 도움을 받아 문화원을 열어보려고 거의 10년 가까이 면담도 해왔으나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는 자신의 아파트 한채를 아예 한국문화원 공간으로 사용하도록 제공하겠다는 의향까지도 밝힌 바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문화원문제로 대사관 담당자와 접촉하고 어느 정도 얘기가 본궤도에 올랐다 싶으면 이 대사관 담당자는 한국으로 떠나가버린다는 것이었다. 다시 후임으로 온 담당자와 얘기를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고 그러다보면 다시 떠나고…. 이렇게 10년이 지났지만 아무것도 이루어진 일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2년 전부터는 아예 제안하는 것을 포기했다. 되면 되고 안 되면 안 된다는 뚜렷한 대답없이 시간만 끌어오면서 한 외국인의 소중한 뜻을 왜곡하고 마음에 상처만 안겨준 것은 다름아닌 외무행정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가능하면 일을 벌이지 않고 시간만 끄는 것이 행정담당자의 태도였다. 10년 동안 누구 하나 뚜렷하게 일을 매듭지은 적이 없다. 조애리 박사는 “부임해오는 대사마다 만나서 이 문제를 논의했으며 전임대사들로부터 긍정적인 대답도 들었지만 아무것도 되는 일은 없었다”고 말한다. 감옥 같은 공관구조 중국에서 일어난 한국인 마약사범 사형을 계기로 다시 쏟아져나오는 영사업무에 대한 재외교민들의 불만은 해묵은 것이다.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군사정권 시절 모든 국민들이 정부의 감시와 통치의 대상이었던 관행이 지금도 외무부 외교행정에서는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극소수의 교민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교민들이 대사관에 대해서 받는 느낌은 군사정권 시절에 가져왔던 선입견 그대로이다. 현지공관들이 교민들과 벽을 허물고 가까워지려면 먼저 대사관의 내부구조부터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아테네의 한 교민은 “서울에 있는 그리스 대사관에 갔을 때 너무나 다른 느낌을 받았다. 마치 내가 이웃집을 방문한 것같이 확 트였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한국대사관은 들어서자마자 마치 감옥에 면회간 느낌이 든다. 담당직원과 방문자를 가로막고 있는 플라스틱 벽과 거기에 뚫린 구멍을 통해서 오고 가는 서류들, 이런 분위기보다 조금 더 개방된 내부구조로 바뀌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남겼다. 필자가 알고 있는 한 런던이나 파리의 한국대사관 구조도 마찬가지다. 또한 교민들은 체류나 도난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현지 정부와의 적극적인 외교활동을 해야 한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아테네의 한 외교관은 “부족한 인력과 재정으로 최선을 다하지만 인력과 재정면에서 다른 선진국 대사관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것이 현실”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미국대사관의 영사업무를 모범적 사례로 들면서 얘기하는데 우리 형편에서 이것은 비현실적”임을 지적했다. 어쨌든 재외공관의 외교관들에게 가장 요청되는 덕목은 무엇보다도 교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정신이다. 이역만리 떨어진 타국에서 믿을 곳이라고는 대사관밖에 없는 교민들을 포용하는 모습 속에서 교민들과의 벽은 허물어질 것이고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들은 힘없이 땅에 떨어질 것이다.
인터뷰|조애리 박사 ![]() |
아테네=하영식 통신원 youngsig@otenet.g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