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추위가 다가오는 ‘생명력’의 땅, 아프간 취재 10년 정문태 기자의 렌즈에 잡힌 속살
1989년 소비에트군이 철수한 뒤, 대소항쟁의 빛나는 주역들이 인종·종파·정치적 차별성을 극복하지 못한 채 90년대 들어 내전상태로 접어든 아프가니스탄. 그 지난한 전쟁의 땅을 지난 10여년간 취재해 오면서 나는 말할 수 없는 연민의 정을 느껴왔다. “이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아가는 아름다운 땅의 비극은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크리스천과 무슬림, 힌두를 동서남북으로 가르는 문화적 충돌지대라든지, 냉전의 남북을 갈랐던 지정학적 조건이라든지, 영국식민주의자들의 인종분열정책 탓이라든지, 혹은 중앙아시아를 관통하는 천연자원의 이동로로서 경제적 가치 때문이었든지, 아니면 그 모든 조건들을 동시에 지녔든 세상에 나도는 모든 원인을 모조리 적용시켜봐도 30년 넘도록 한 나라가 이처럼 국제대리전장으로 처절하게 파괴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가 없었던 탓이다.
그러다가 한번 두번 거듭 아프가니스탄을 취재하는 동안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생명력’이다. 결코 쓰러지지 않는 아프가니스탄의 힘을 느끼면서, 슬픈 기운이 담긴 아름다움으로만 보아왔던 그들의 눈빛에서 강렬한 희망의 빛을 보기 시작했다. 아프가니스탄은 처음부터 건드리지 말았어야 할 땅이라는 나름의 결론을 얻은 것은, 비단 문화·종교·인종의 표본실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다채로운 ‘색깔’을 지닌 인류 전체의 보물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누구도 그 땅을 범접할 수 없었고, 그 땅을 건드린 자들은 모두 패배를 안고 돌아갔다는 역사를 본 까닭이었다.
혹독한 침략과 시련을 겪으면서도 그 땅을 지켜왔던 이들에게는 ‘저항’이 태생적 문화로, ‘격퇴’가 성장의 원천으로 도도한 역사를 이뤄왔다. 역사를 통틀어 아프가니스탄에는 가장 강력한 무장집단들이 몰려들었지만 저마다 뼈아픈 패배를 맛보았거나 빈손으로 돌아갔다. 알렉산더도 칭기즈칸도 무굴제국도 문화를 접붙이고 돌아갔을 뿐이고,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세상을 호령했던 영국도 2차례 아프간-앵글로전쟁에서 대패하면서 나락의 길로 빠져들었고, 세계 최고의 무장을 자랑하던 소비에트도 10년 전쟁에서 굴욕적인 패배를 당한 뒤 현대사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 인류 역사상 가장 강한 제국을 이룩했다는 미국이 마침내 자존심을 걸고 아프가니스탄에 도전장을 던진 꼴이다.
엄청난 공습에 이어, 웨스트포인트식 교범과 레이저유도무기로 무장한 최첨단·최정예 미군의 특수부대도 모자라 영국을 비롯한 온 세상이 동맹군으로 참여한 21세기판 세계대전, 그 아프가니스탄 전쟁터에도 이제 겨울이 오고 있다. 혹독한 추위와 강풍만이 온 천지를 뒤덮을 그 땅에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지금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다. 역사는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지?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나는 그동안 아프가니스탄을 취재해오면서 배웠다.
글·사진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asianetwork@news.hani.co.kr

사진/ 미군의 최신예 전폭기들을 향해 불을 뿜고 있는 탈레반의 대공포는 사거리 4천m 남짓한 80mm 구형포들이다(1998년).

사진/ 탈레반의 화력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것은 바그람전선의 다탄두로켓포다. 소비에트제 구식탱크보다 기동력과 정확도가 더 뛰어난 이 다탄두로켓은 추후 본격적인 지상전이 벌어질 경우 미군에 상당한 장애가 될 것으로 보인다.(1998년)
엄청난 공습에 이어, 웨스트포인트식 교범과 레이저유도무기로 무장한 최첨단·최정예 미군의 특수부대도 모자라 영국을 비롯한 온 세상이 동맹군으로 참여한 21세기판 세계대전, 그 아프가니스탄 전쟁터에도 이제 겨울이 오고 있다. 혹독한 추위와 강풍만이 온 천지를 뒤덮을 그 땅에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지금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다. 역사는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지?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나는 그동안 아프가니스탄을 취재해오면서 배웠다.
![]() 미국의 대아프가니스탄 공습이 처음부터 특별한 타격점이 없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카불 전경. 20년 전쟁을 거치는 동안 카불은 온전한 건물 하나 없을 만큼 초토화된 상태였다(1997, 1993년). |
![]() “파키스탄 침략자로부터 국가의 독립을 수호하는 일은 우리의 도덕적 의무다.”1996년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한 뒤에도 여전히 나붙어 있던 전 랍바니 정부(현 북부동맹군의 일원)의 대중 구호(1997년). |
![]() 무너진 왕정의 처참한 상징인 다룰아만궁. 미국과 국제사회가 추진하는 아프가니스탄의 왕정복고를 과연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희망하고 있을지…. 1920년대 아마눌라왕이 사용했던 이 왕궁은 소비에트침략군이 한때 방위사령부로 사용하기도 했다(1997년). |
![]() 카불의 겨울은 성큼 다가오고 있다. 먹을 것도 땔감도 없는 혹독한 추위 속에서 시민들은 파키스탄행을 꿈꾸고 있다. 탈레반이 살아 있는 생명체는 그 어떤 것도 촬영할 수 없다고 선언했지만, 신분증- 주로 여행증명서- 을 만들기 위한 사진만은 인정하고 있다(1997년). |
![]() 바깥세상이 궁금한 형제. 내전 중 카불 시민들은 외출을 할 수 없어 이렇게 조그마한 창을 통해 바깥세상을 보면서 자신들의 삶과 죽음을 관측했다(1992년). |
![]() 카불을 비롯한 탈레반이 점령한 지역들과 달리 아프가니스탄은 전통적으로 여성들의 사회활동을 보장했던 개방적인 사회였다. 탈레반이 점령하기 직전의 마자르 이 샤리프대학 강당에서 열린 학생총회 풍경(1997년). |
![]() 불발탄을 파괴시킨 현장에 즉시 몰려드는 주민들. 불발탄의 쇳조각들이 빵을 대신하는 현실은 아프가니스탄의 생존문제를 대변하는 한 풍경이다(1997년). |
![]() 현재 탈레반 점령지역의 여성들이 반드시 착용해야 하는 의무복인 부르카를 만드는 손길(1998년). |
글·사진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asianetwork@news.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