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원 NG리포트
외국 생활에서 부딪치게 마련인 이른바 ‘문화충격’의 경험은 브라질로 떠나기 전부터 시작됐다.
브라질에 갈 준비를 하면서 포르투갈어 과외 공부를 하던 시절에 생긴 일이다. 비슷한 또래의 아가씨 한명과 함께, 당시 서울에서 몇달간 머물고 있던 브라질 동포 총각 두명에게 포르투갈어를 배우러 다녔다. 지금은 상파울루 동포사회에서 알아주는 중견 사업가들이 된 그들은 그때는 88년 서울올림픽에 통역 아르바이트를 하러 왔다가 잠시 귀국을 미루면서, 서울에서 뭐 해볼 만한 일이 없을까 기웃거리고 있던 방황하는 20대 후반이었다.
포르투갈어를 많이 배웠던 것 같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젊은 남녀들이 어울려서 시시덕거리는 재미에 두어달을 다녔고 그러다가 청년들은 갑자기 “그냥 브라질에 돌아갈래요”하면서 출국 날을 잡았다.
‘포르투갈어 선생님’들이 떠나던 날, 같이 공부하던 여자친구와 나는 김포공항까지 배웅을 나갔다. 출국장으로 들어가는 문까지 같이 걸어가서는 이제 잘 가라고 손을 흔들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선생 총각 중 한명이 같이 갔던 친구를 대뜸 붙잡더니 두볼에 입을 맞추는 게 아닌가.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친구한테 뽀뽀를 했으니 이제 나에게도 하러 오겠구나, 생각하면서 가슴이 덜덜 떨렸다. 그때까지 남자하고 키스 한번 해본 적 없었다… 라는 건 물론 아니지만 그렇게 공공연한 장소에서 남자가 내 볼에 입을 맞춘다는 건 상상도 못해본 일이었다.
그렇게 얼떨결에 뺨에 작별인사 키스를 받느라 놀라고 긴장했던 날로부터 몇달이 지난 뒤 나도 브라질로 왔다. 그리고 10년이 넘게 여기서 살면서 이제는, 하루 종일 같이 있었던 친구라도 그 다음날 다시 만나면 마치 오랜만에 보는 듯이 반갑게 끌어안고 볼에다 입을 맞추는 브라질식 인사에 익숙해진 지 오래다. 브라질에 사는 한국 사람들, 특히 여자들 중에는 “아무리 오래 살아도 잘 모르는 남자가 입 맞추자고 끌어안는 건 정말 싫어요. 그래서 가까이 오면 얼른 손 내밀어 먼저 악수 청하고 말지요”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살(肉)맛’보다 더 좋은 게 없는데 왜 그럴까 하며 혼자 갸우뚱거린다. 만나면 끌어안고 볼을 맞대는 인사에는 얼른 길이 들었지만 여럿이 만나는 자리에 도착할 때면 반드시 한명한명 붙들고 안부를 묻고 또 헤어질 때 다시 일일이 한명씩 붙들고 작별 키스를 하는 브라질식 인사가 습관이 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지난해 서울 방문 길에 오랜만에 대학 동창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모임에는 주로 남자 동창들이 많이 나왔다. 10년 만에 만났지만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 같은 모습들이 참 반가웠다. 한명씩 품에 얼싸안고 볼에 입을 쪽쪽 맞췄으면 속이 시원하겠는데 동창들은 가까이 다가오지도 않고 멀찌감치 서서 쳐다보며 웃기만 했다. 개별적인 안부 인사라는 것도 없었다. 가장 친밀하게 개인적인 관심을 보였다는 말이 고작 “너 왜 이렇게 살이 쪘냐?”였다. 모임이 끝날 때까지 온몸이 근질거렸지만 헤어지는 자리에서도 한국 사람들답게 빨리빨리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다음에 다시 만나는 날에는 꼭 브라질식으로 끌어안고 뽀뽀를 해줘야지 벼르면서 집에 돌아왔다.
상파울루=오진영 통신원 ohnong@ig.com.br

일러스트레이션/ 설은영
지난해 서울 방문 길에 오랜만에 대학 동창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모임에는 주로 남자 동창들이 많이 나왔다. 10년 만에 만났지만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 같은 모습들이 참 반가웠다. 한명씩 품에 얼싸안고 볼에 입을 쪽쪽 맞췄으면 속이 시원하겠는데 동창들은 가까이 다가오지도 않고 멀찌감치 서서 쳐다보며 웃기만 했다. 개별적인 안부 인사라는 것도 없었다. 가장 친밀하게 개인적인 관심을 보였다는 말이 고작 “너 왜 이렇게 살이 쪘냐?”였다. 모임이 끝날 때까지 온몸이 근질거렸지만 헤어지는 자리에서도 한국 사람들답게 빨리빨리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다음에 다시 만나는 날에는 꼭 브라질식으로 끌어안고 뽀뽀를 해줘야지 벼르면서 집에 돌아왔다.
책으로 보는 세계|<아흔아홉가지 중국인의 성격> ![]() |
상파울루=오진영 통신원 ohnong@ig.com.b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