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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나토는 평화를 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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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11-0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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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슬픈 발칸(중) - 외세개입

‘응징’을 명분으로 끊임없이 발칸에 개입한 서구 열강의 의중에는 무엇이 있을까

사진/ 나토의 유고폭격 당시 이륙하는 미 해병대의 전파방해기.
“(협상안에) 사인을 하든지 아니면 공격을 당하든지 하라는 기가 막히는 최후통첩이다. 이건 협상의 방법이 아니다. 왜 세계가 우리를 이렇게 증오하는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왜 나는 유고슬라비아에서 태어났을까? 처음에는 슬로베니아, 다음에 마케도니아, 보스니아, 크로아티아, 이제 코소보…. 그 다음엔 우리, 팔레스타인 민족처럼 나라없는 민족이 될지도 모른다.” 이런 절망적인 심정이 나토의 1999년 3월24일 유고폭격이 시작되던 날 유고슬라비아 한 대학생의 일기장에 잘 나타나 있다.

나토 ‘동진’의 걸림돌


당시 나토의 유고폭격은 미국과 유럽의 나토회원국들이 유고의 ‘인종청소’를 심판한다는 명분으로 감행되었다. 70일 가까이 지속된 이 폭격으로 세르비아에서는 1500명이 목숨을 잃고 수만명이 부상당했다. 대부분의 공공시설과 중요한 건물들이 파괴되어 폭격 전 수준으로의 경제회복에 30년 이상이 걸린다는 진단이 나올 정도로 파괴를 경험해야만 했다. 이어 미국이 원하던 대로 세르비아에서는 새로운 정부가 혁명적으로 들어섰고 밀로셰비치는 권좌에서 밀려나 지금은 헤이그전범재판소에서 자신의 운명이 결정될 날만 기다리는 처지로 전락했다. 코소보는 미국을 비롯한 17개국의 수중에 떨어졌고 여전히 미래가 불투명한 처지에 놓여 있다.

사진/ 정찰임무를 띠고 세르비아로 출동하는 미 해병대원들.
당시 미국은 ‘인도적 차원’에서 세르비아의 인종청소를 눈뜨고 볼 수 없어서 코소보와 유고슬라비아를 폭격하고 군대를 파견한다고 발표했다. 그렇다면 과연 미국이 내세웠던 명분은 정당한가. 미국이 과연 ‘정의의 기사’로서 세계무대에서 그 역할을 제대로 해왔던가.

90년대 들어와서 세계 최대의 학살로 꼽히는 1994년 르완다학살사건 당시 미국 정부는 르완다학살에 대한 발표조차도 꺼려했고 마지못한 발표에서도 학살(genocide)이란 말을 삭제했다. 이후 아프리카를 공식순방중이던 빌 클린턴 대통령은 르완다학살에 대한 미국의 ‘방관’에 공식사과까지 했다. 또한 지금도 기본적인 인권조차 말살당한 채 살아가는 쿠르드족에 대한 터키 정부의 박해와 강제이주 정책은 수만명을 희생시켰으며 100만명이나 되는 쿠르드족을 난민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미국은 군사동맹국인 터키로부터 인쥐릭 공군기지의 사용권과 군사적 협력을 얻는 대가로 쿠르드노동당(PKK)을 테러리스트단체로, 쿠르드족은 테러리스트단체를 지원하는 민족으로 규정하여 터키 정부의 박해를 정당화시켰다. 군사정권과 함께 ‘인종청소’의 공범역할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팔레스타인 민족이나 스리랑카의 타밀족처럼 지금도 지구상에는 많은 민족들이 소수민족이란 이유로 다른 민족으로부터 박해당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지만 미국은 눈을 감고 있다. 미국의 세계정책은 철저히 이기적이다. 유고슬라비아는 ‘재수없게도’ 미국이 의도적으로 처음부터 노려온 경우에 해당된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1949년 소련과 그 동맹국의 군사적인 위협의 가능성으로부터 서유럽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창설된 기구이다. 그러나 1990년 이후 동구권의 몰락으로 사실상 소련과 바르샤바조약기구 국가들의 군사적 위협이 소멸된 상태에도 나토를 해체하기는커녕 ‘개혁’의 기치를 내걸고 동유럽 국가들을 나토회원국으로 가입시키려는 공을 들여왔다. 폴란드, 체코, 헝가리 등은 이미 나토의 후보국으로 거의 회원국의 문턱에 들어서 있고, 발틱 3개국을 비롯하여 다른 동구권 국가들도 나토로부터 제의를 받고 있다. 사실상 나토를 조직했던 미국은 나토를 발판으로 서유럽의 정치경제를 좌우하는 영향력을 행사해왔고 계속 그 영향력을 동유럽 국가들에 확대해왔다. 유럽연합 후보국들은 모두 나토의 후보국으로 중복가입된 상태며 공교롭게도 폴란드, 헝가리, 체코 3개국이 유럽연합 후보국 중에서 일순위로 2004년부터 정식회원국이 될 전망이다. 터키만 하더라도 미국의 나토를 통한 유럽지배를 실감나게 한다. 유럽연합은 터키가 유럽연합 가입조건에 미달한다는 이유로 협상대상국에서조차 제외시킨 상태지만 나토회원국인 터키는 미국을 상대로 유럽연합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원유 수송이 주요 목적

사진/ 유고폭격의 풍경들. 폐허가 된 아프트건물(좌측상단). 폭탄에 맞아 끊어진 다리(좌측하단). 폭격이 진행되는 가운데 들판에서 일하는 농부.
나토의 존립근거가 무너졌음에도 ‘동진’을 강행해온 나토는 동진의 최대걸림돌인 유고슬라비아와 맞부딪히게 됐다. 폴란드, 헝가리, 체코 등은 서구의 시장경제정책을 대부분 수용했고 루마니아나 불가리아 등은 이를 부분적으로 수용하면서 친미나 친유럽으로 돌아선 반면 유고슬라비아, 특히 세르비아는 이를 거부하고 독자적인 길을 걸어왔다. 세르비아의 ‘반항’에 나토는 세르비아, 특히 밀로셰비치가 미국과 유럽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언론플레이를 통해 인구 1천만명의 작은 국가를 미국과 유럽을 위협하는 거대한 공룡으로 조작하여 나토의 존립과 확대에 정당성을 불어넣었다.

미국의 발칸 개입은 군사전략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경제적인 이익과도 직결되어 있다. 필자가 지난 6월 마케도니아를 취재하면서 입수한 암보프로젝트 자료를 통해서도 밝혔듯이 미국은 중앙아시아의 유전지대에서 생산된 원유를 흑해와 불가리아, 마케도니아, 알바니아를 통해 수송하려는 계획을 세운 바 있으며 벌써 공사가 진행중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특히 발칸에서는 미국이 지하원유수송관을 설치하여 흑해에서 수송된 원유를 불가리아에서 마케도니아를 거쳐 알바니아로 수송하여 다시 해상로를 통해 유럽으로 수송하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세우고 있다. 이 지역에서 미국의 정치군사적 지배가 필수 조건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따라서 현재 진행중인 마케도니아 내전은 남발칸지역에서 세르비아의 영향력을 차단하고 미국의 영향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또다른 목적이라 볼 수 있다. 현재 진행중인 아프간 전쟁도 중앙아시아에서 생산중인 원유 수송과도 깊이 관련돼 있다는 것이 국제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테러공격을 당한 당사국도 아닌 영국이 참전한 것도 순수한 ‘의리’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이미 우즈베키스탄을 대아프간 침공의 기지로 만든 미국은 중앙아시아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차단하여 사실상 유전개발, 원유생산과 수송을 독점하려 하고 있다. 이곳에서 생산된 원유를 흑해와 발칸을 통해서 유럽과 미국으로 수송하는 경로 확보가 현재 미국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가장 큰 사업이다.

미국이 남발칸에 초점을 맞췄다면 북발칸지역은 독일의 영향권 안에 들어갔다. 독일은 유럽의 나토회원국 중에서도 가장 발칸지역을 탐낸 국가이다. 동서독이 통일될 때 이미 ‘동진’을 계획해놓은 상태에서 때만 기다리고 있었던 독일은 미국과 함께 발칸을 파편화시킬 계획을 세우고 실행해나가게 된다. 실제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전쟁이 끝나면서 북발칸지역인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등은 독일의 정치·경제적인 영향력 아래 들어가게 된다. 즉, 독일은 간절히 원했던 아드리아해로의 접근이 가능하게 되었다. 독일이 잠정적으로는 현재 라인강과 다뉴브강을 잇는 운하를 통해서 3천t급의 배들이 북해에서 흑해까지 항해할 수 있는 뱃길을 확보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들만의 신세계질서

또한 유고내전에서 바티칸의 개입도 확인되었다. 보스니아전쟁 중 바티칸이 약 4천만달러를 크로아티아 정부에 무기구입비로 지원한 사실이 2년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법정에서 밝혀진 바 있다. 영국, 프랑스 등 모든 유럽국가들이 나토의 이름으로 유고슬라비아를 작은 조각으로 만드는 데 일조하면서 거기서 나오는 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미국과 나토의 유고폭격은 나토확대의 걸림돌을 제거하면서 동쪽으로 뻗어나갈 발판을 열어놓았고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공고히 해왔다. 걸프전 당시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이미 밝혔던 ‘신세계질서’는 클린턴 대통령의 조금 세련된 표현인 ‘자유시장구조’와 ‘세계화’로 나타났지만 9·11테러 이후 아들 부시 대통령은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면 적”이라는 직설적인 ‘마피아식’ 표현으로 신세계질서의 구도를 시사했다. 미국은 유고내전의 개입을 통해 신세계질서의 의미를 세계에 보여주었고 유럽의 나토회원국들은 미국의 정책에 보조를 맞추면서 함께 그 이익을 챙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테네=하영식 통신원 youngsig@otenet.g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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