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NGO 전략회의에서 논의된 희망… 내년 유엔인권위원회에서 한국 정부의 역할은?
지난주 제네바의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잡은 퀘이커교의 주제네바 유엔활동 사무국에 주요 국제 인권NGO 활동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른바 인권NGO전략회의. 주제는 내년 3~4월 제네바에서 열리는 제58차 유엔인권위원회에서 의제로 다루어질 양심적 병역거부권이고 참석자는 주최쪽인 퀘이커교를 비롯해서 국제앰네스티, 반전 인터내셔널, 국제평화사무국, 화해를 위한 국제친우회 등 주요 단체의 대표다.
1998년의 ‘대헌장’
9·11 테러사태와 아프카니스탄 공습 이후 첫 모임이라 자연스럽게 테러리즘과 양심적 병역거부권의 문제로 대화가 시작되었다. 지난달 터키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석하고 돌아온 반전 인터내셔널의 바트 호어만(379호 특집기사 참조)이 “최근 동아시아 지역 특히 대만과 한국에서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는데 테러사태가 부정적 영향을 끼칠지 모른다”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모두가 ‘군사주의 분위기가 팽배해진 현 국제정세에서 어떻게 비폭력 평화를 실천하는 양심적 병역자들의 권리를 보호할 것인가’ 문제로 가슴앓이를 해오던 터라 이야기가 꼬리를 물며 이어졌다.
드디어 이번 모임의 좌장격인 퀘이커교의 레이첼 브레트(Rachel Brett)가 내년 인권위원회에 대한 브리핑을 시작했다. 영국 에섹스대학에서 국제인권법 교수를 역임하고 93년부터 제네바에서 일해온 그는 양심적 병역거부권에 관해서 가장 인정받는 전문가이다. 그는 “1998년 인권위 결의안에서 사실 우리가 원하던 것의 대부분을 성취했다. 따라서 2000년 결의안에서 제시했듯이 이제부터는 해당 국가가 이를 구체적으로 실행해나가도록 우리의 전략을 만들어나갈 필요가 있다”며 과거 결의안의 내용과 배경 및 그 의미를 상기시켰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쉽게 동의했다. 대다수의 한국인에게 아직 생소한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국제사회에서 보편적 인권으로 인정받은 것은 1987년 유엔인권위원회로 20년도 훨씬 넘었다. 당시 가톨릭의 대표적인 인권평화 NGO인 팍스 로마나(Pax Romana)와 팍스 크리스티(Pax Christi) 두 단체가 주축이 되어 10여년간 공들여 이루어낸 성과였다. 이 문제는 이후에도 유엔인권위원회에 격년 의제로 상정되어 논의되면서 내용에서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해왔다. 1998년 결의안이 가장 포괄적이고 진보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양심적 병역거부권의 ‘대헌장’(Magna Carta)으로 불리기도 한다. 1998년 결의안은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세계인권선언 제3조인 생명권과 신체의 자유와 안전을 누릴 권리와 세계인권선언(UDHR)과 시민정치적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의 제18조인 사상, 양심 및 종교의 자유에 대한 권리에 따른 정당한 인권으로 재확인했다. 또한 구체적으로 모든 국가들에 △병역거부로 투옥이나 반복된 징계를 받지 않도록 조처할 것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보장하는 제도가 없는 국가들은 독립적이고 공정하게 병역거부의 타당성을 검토하는 기관을 설립할 것 △특히 특정 신념을 지녔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지 않도록 조치를 취할 것 △강제징집제도가 있는 나라의 경우 처벌의 성격이 아닌 공익증진을 목적으로 비전투요원이나 민간인으로 참여할 수 있는 양심적 병역거부권의 취지에 합당한 군복무대체제도를 마련할 것 △병역 복무중인 모든 사람에게 군복무제도에 대한 양심적 병역거부권 자체와 이를 행사할 수 있는 수단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것 등을 요청하고 있다. ‘개인통보제도’를 적극 이용하라
2000년 결의안에 따르면 모든 국가가 1998년 결의안의 관점에서 자국의 현행법과 관행을 점검하고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은 정부, 유엔 기구 및 NGO로부터 정보를 모아 양심적 병역거부권에 관한 모범적 실천사례 분석 보고서를 작성해 2002년 인권위에 제출하도록 되어 있다. 마침 회의를 참관하던 스테파니 그라피가 “모범적 실천사례에 관한 질문서의 답변 마감이 10월 말로 불과 열흘밖에 남지 않았는데 7개국만이 응답을 보내왔다”며 “자료가 적어 보고서 작성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는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에서 보고서 작성 책임을 맡고 있는데 간접적으로 NGO에 긴급 협력을 요청하기 위해 이 모임에 참석했다. 많은 인권문제 가운데 이 양심적 병역거부권은 대다수 정부에서 ‘기피대상’ 목록에서 우선순위를 차지한다. 국방 및 국가안보문제와 직결되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의 적극적 협력을 이끌어내기가 매우 어렵다.
보고서 작업 협력에 대한 논의가 마무리되자 이번에는 인권위 이외에 유엔의 다양한 인권기구를 활용하는 문제가 의제에 올랐다. 점심시간을 쪼개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달려온 유엔 인권이사회(Human Rights Committee)의 한 관계자가 몇 가지 제안을 내놓았다.
그는 먼저 “정기적인 국가 인권보고서를 심의할 때 인권NGO들이 이 문제를 좀더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시민정치적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의 선택의정서에 가입한 국가의 경우 개인의 인권침해를 다루는 통보제도를 적극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과거 핀란드의 한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인권이사회의 개인통보제도를 통해서 자신의 문제를 제기했는데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된 적이 있다. 그뒤 93년까지 양심적 병역거부자와 인권단체들은 인권이사회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개인통보제도에 따르면 시민정치적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이 인정하는 인권이 침해된 경우, 국내법 절차를 통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 인권이사회에 인권침해 사례를 제기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인권이사회는 정부대표로 구성된 인권위원회와 달리 독립적인 신분을 지닌 개인자격의 인권전문가 18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그는 “한국은 90년부터 선택의정서의 적용을 받게 되었는데 제기된 사례가 없는 것으로 기억된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92년과 99년, 한국 정부의 인권보고서 심의가 있었지만 정부와 NGO 양쪽 모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권 문제가 제기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의 답변을 유심히 듣던 브레트는 “인권교육을 위해 94년에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당시엔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며 “지금이라도 감옥에 갇혀 있는 대다수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인권단체의 도움을 얻어 이 통보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며 나섰다.
한국의 상황을 세계에 알린다
긴 공식 회의가 끝나고 다과를 곁들인 조촐한 ‘제네바식’ 뒤풀이 시간이 이어졌다. 한 참석자가 고민하는 표정으로 퀴즈를 냈다. ‘2002년 인권위에서 한국 정부의 역할’에 관한 것이었다. 그동안 결의안을 주도해온 핀란드가 국내 사정으로 내년에는 그 역할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그는 내년에 결의안을 주도할 정부를 찾고 있던 중이었다. 98년과 달리 한국 정부 대표는 2000년 인권위에서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고 김대중 대통령은 그해 10월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올해는 국가인권위원회도 만들어졌다. 그는 “이런 추세라면 한국 정부가 내년 인권위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권 결의안을 주도하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 것이다.
주제네바 한국 대표부의 인권담당 관계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대답은 시기상조라는 것이었다. 국내에서 법정비 및 실질적인 제도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관련 부처간 협의와 합의가 없이는 무리라는 것이다. “결의안을 찬성했으면 국내적으로 실행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침묵. 해답은 제네바가 아니라 서울에서 찾아야 한다는 의미였다.
올해에도 국내에서 약 500여명의 젊은이들이 자신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자발적 죄인’이 되어 감옥에 갔다. 그러한 양심적 병역거부권 행사가 유엔이 인정한, 한국 정부도 동의한, 보편적 인권인데도. 그러나 이제부터는 상황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국내 및 국제 인권NGO가 내년부터 유엔인권위원회와 다른 여러 인권제도를 통해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권 문제를 유엔에 적극적으로 제기할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네바=이성훈 통신원 almolee@yahoo.com

사진/ 57차 유엔인권위원회 회의장면. 내년에 열리는 58차 회의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집중적으로 논의될 예정이다.(이성훈)
드디어 이번 모임의 좌장격인 퀘이커교의 레이첼 브레트(Rachel Brett)가 내년 인권위원회에 대한 브리핑을 시작했다. 영국 에섹스대학에서 국제인권법 교수를 역임하고 93년부터 제네바에서 일해온 그는 양심적 병역거부권에 관해서 가장 인정받는 전문가이다. 그는 “1998년 인권위 결의안에서 사실 우리가 원하던 것의 대부분을 성취했다. 따라서 2000년 결의안에서 제시했듯이 이제부터는 해당 국가가 이를 구체적으로 실행해나가도록 우리의 전략을 만들어나갈 필요가 있다”며 과거 결의안의 내용과 배경 및 그 의미를 상기시켰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쉽게 동의했다. 대다수의 한국인에게 아직 생소한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국제사회에서 보편적 인권으로 인정받은 것은 1987년 유엔인권위원회로 20년도 훨씬 넘었다. 당시 가톨릭의 대표적인 인권평화 NGO인 팍스 로마나(Pax Romana)와 팍스 크리스티(Pax Christi) 두 단체가 주축이 되어 10여년간 공들여 이루어낸 성과였다. 이 문제는 이후에도 유엔인권위원회에 격년 의제로 상정되어 논의되면서 내용에서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해왔다. 1998년 결의안이 가장 포괄적이고 진보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양심적 병역거부권의 ‘대헌장’(Magna Carta)으로 불리기도 한다. 1998년 결의안은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세계인권선언 제3조인 생명권과 신체의 자유와 안전을 누릴 권리와 세계인권선언(UDHR)과 시민정치적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의 제18조인 사상, 양심 및 종교의 자유에 대한 권리에 따른 정당한 인권으로 재확인했다. 또한 구체적으로 모든 국가들에 △병역거부로 투옥이나 반복된 징계를 받지 않도록 조처할 것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보장하는 제도가 없는 국가들은 독립적이고 공정하게 병역거부의 타당성을 검토하는 기관을 설립할 것 △특히 특정 신념을 지녔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지 않도록 조치를 취할 것 △강제징집제도가 있는 나라의 경우 처벌의 성격이 아닌 공익증진을 목적으로 비전투요원이나 민간인으로 참여할 수 있는 양심적 병역거부권의 취지에 합당한 군복무대체제도를 마련할 것 △병역 복무중인 모든 사람에게 군복무제도에 대한 양심적 병역거부권 자체와 이를 행사할 수 있는 수단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것 등을 요청하고 있다. ‘개인통보제도’를 적극 이용하라

사진/ 터키에서 열린 반전인터내셔널 연례 세미나. 이 회의에서도 한국 상황은 주요 이슈로 언급됐다.(신윤동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