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선택권 주어지는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평등교육과 엘리트 양성 병행
델핀(17)은 고교 2학년이다. 학과목 중에서 단연 수학을 선호하는 델핀은 수학만큼은 늘 최고점수를 받는다. 나중에 수학교사가 될 거라고 서슴지 않고 말하는 델핀이지만, 그 여정이 쉽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수학 외 과목엔 좀체 흥미를 가질 수 없고, 특히 국어인 불어를 비롯해 인문사회계 과목은 쳐다보기도 싫을 때가 있다. 아니나 다를까 1학년 말 성적에서 수학총점이 20점 만점에 17점이지만, 불어 9점, 지리 8점 등 과목에 따라 격차가 심했다. 델핀의 2학년 승급문제는 학교상임위원회에 부쳐졌고, “유급시킨다”는 최종결정이 내려졌다. 그래서 델핀은 2년간의 1학년 생활을 거치고 2학년이 될 수 있었다. 바칼로레아시험(프랑스의 수능시험)에서 과학바칼로레아를 준비중이라 이번 학년에 이수하는 과목 중에는 인문사회계 과목이 줄어들고 과학과목들이 늘어 즐겁다. 2학년에서 다시 유급당하지 않으려면 점수관리도 잘해야 할 것이다.
난해하게 얽힌 거미줄 교육?
디아부(16)는 고교 1학년이다. 중학교 때까지 늘 상위권에 속했던 그는 아무런 문제없이 인문고등학교로 진학했다. 하지만 고교생이 되면서 교사들의 까다롭고 엄격한 통제와 중학교 때보다 심도있는 분석을 요하는 수업내용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학업이 힘든 만큼 더 열심히 하면 된다고 믿고 있는 디아부에게 큰 위안이 되는 것은 학년 초 교장선생님의 말씀이다. “우리 학교의 바칼로레아 합격률이 80%선을 웃돌고 있으니, 여러분들이 끝까지 평형을 잃지 않고 학업에 열중한다면 바칼로레아로 크게 고민할 것은 없습니다.” 디아부는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학교에서 이끌어가는 대로 따라만 가면 바칼로레아 합격은 문제가 없다’는 의미로 해석하며, 학교수업에 전념할 것을 다짐하고, 광고마케팅에 특히 관심이 있는지라 학교선택에 심혈을 기울일 생각이다.
포에드는 2남2녀 중 두 번째로, 어릴 때부터 집에서 자랑할 만한 우등생은 아니었다. 학교성적이 중간수준을 간신히 넘는 가운데 중학교를 마친 포에드는 고교선택 때 많은 고민을 했다. 중학교의 학업내용보다 십중팔구 더 어려울 일반고교학업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기술을 배워 직업을 가져 일찌감치 독립된 생활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결국 기술고교를 선택했다. 자동차 만지기를 좋아해서 친구들보다 훨씬 빨리 운전면허증을 취득하기도 한 포에드의 희망은 자동차 정비 기술을 익히는 일이다. 현재 파리근교의 한 기술고등학교 마지막 학년에 재학중인 그는 학업수료에 따른 기술 증서를 받겠지만, 그와 더불어 내년이나 내후년쯤엔 기술 바칼로레아를 치를 생각이다. 이상은 필자가 만나본 고등학생들 중 세 가지 예다. 프랑스 고교생활의 일면을 읽을 수 있는 단적인 경우인데, 별다른 일이 없는 한 델핀과 디아부는 바칼로레아를 거친 뒤 고등교육기관으로 진학할 것이며, 포에드는 바칼로레아를 치른 뒤 정식으로 직업세계로 향할 것이다. 고교와 수능시험 그리고 대학이라는 단순체계의 중등 및 고등교육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우리에게 프랑스의 입시제도와 고등교육기관으로의 진학은 마치 난해하게 얽힌 거미줄과도 같아 보인다. 각 교육의 특성을 살려 세분화해 있는 고등교육기관들 중 어떤 곳에서 어떤 학업을 하고 앞으로 어떤 직업의 길로 나아갈 것이냐는 문제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거나 뜻밖의 시험운에 의해 좌우되지 않으며, 학업을 수행해오는 오랫동안 자신을 관찰하고 파악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이는 고교와 고등교육기관을 연결하는 시험제도인 바칼로레아에서도 드러난다. 프랑스는 고등교육기관에 진학하는 방법으로 우리처럼 시험전형제를 두는데 그 시험을 바칼로레아(이하 바크)라고 부른다. 주관식 논술형인 바크는 탄생한 지 올해로 200주년을 맞이하는 전통과 역사를 자랑한다. 우리의 수능시험처럼 고등교육기관으로 진학하기 위한 통과증 역할을 하는 동시에, 중등교육을 종결하며 얻을 수 있는 학위의 기능도 갖는, 이중적인 기능을 담당한다. 바크에 합격하면 그것이 해당 바크의 학위가 되고 학력을 대변하므로 프랑스에서 고등학교 졸업이라는 표현은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바크 소지자냐 아니냐, 어떤 바크냐라는 표현이 그를 대신한다. 학력을 표현할 때도 바크+2, 바크+4 등의 표현이 주로 쓰이며, 거기에 해당 학위가 덧붙는다. 200년 동안 보편화의 길 걸어
일반바크, 기술바크, 직업바크로 크게 나뉘는 바크는 전공과 진로방향에 따라 세분된다. 일반바크의 경우 문학, 과학, 경제·사회 등 세 종류가 있다. 고등교육기관으로 진학할 예정이며 문학분야에 자신이 있는 경우는 일반바크의 문학(문학바크)를, 직업고교를 거쳐 곧장 서비스업종으로 진출하는 학생이 자신이 수료한 중등학업의 학위를 인정받기 위해선 직업바크나 기술바크에서 자신의 분야와 관련되는 바크를 선택해서 치르면 된다. 종류에 따라 치르게 되는 과목도 다른데, 일반바크의 과학, 즉 과학바크의 의무과목이 과학과목에 치우치는 반면, 문학바크는 문학, 언어, 철학부문에 점수비율이 높아지며 과학과목은 거의 전무하다. 그런가 하면 기술바크나 직업바크에서는 그런 학문적인 과목보다는 구술과 실기를 중점으로 한 전공기술체크에 중점을 둔다.
200년이라는 긴 여정을 거쳐왔기 때문에 바크는 그 세월과 함께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20세기 후반 바크가 겪은 변화 중에 특기할 만한 것으로는 직업교육의 강화·세분화, 그에 따른 학위 필요성에 의해 직업과 기술바크의 활성화가 이루어졌다는 것과 ‘교육기회의 평등’이라는 기치 아래 바크가 점차 보편화돼온 현상을 지적할 수 있다. 그 결과 2000년 바크의 총합격률은 69.5%(일반바크 34.2%, 기술바크 21.7%, 직업바크 13.6%)이며, 일반바크의 합격률은 79.4%(문학바크 82.3%, 과학바크 79.1%, 경제·사회바크 77.8%)를 기록하고 있다.
매년 6월 과목별·전공별로 약 일주일간 치르는 바크는, 총 20점 만점에 10점 이상이 돼야 합격이 되며, 16점 이상은 최고등급인 ‘tres bien’, 14점 이상은 ‘bien’, 12점 이상은 ‘assez bien’ 등의 등급이 매겨진다. 합격선에서 오락가락하는 경우, 학생들을 구제하는 목적으로 그들을 대상으로 구술시험이 특별히 실시된다. 거기서 통과되면 바크 합격으로 인정하며, 긴급한 사정으로 6월에 바크를 치르지 못한 학생들에게는 9월에 바크특별전형이 실시되는 등의 융통성을 보인다.
프랑스 고등교육기관의 입학자격은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모두 바크 소지자로 제한하고 있으며, 학교에 따라 바크뿐 아니라 다른 학위나 시험을 요구하는 곳도 있다. 그들의 다양한 입학전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프랑스 고등교육기관의 양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프랑스의 고등교육기관은 크게 일반대학(universite)과 특수교육기관 및 그랑제콜(grandes ecoles: 전문인 양성교육기관)로 나눌 수 있다. 일반대학은 국공립으로 지역별로 골고루 주요 행정도시에 분포되어 있으며, 고등교육 진출자의 가장 많은 수를 받아들이는 곳이다. 전공에 따라 다양한 학위가 주어지는데, 우리식의 학사, 석사, 박사 등의 학위를 준비할 수 있는 대학은 2년간의 일반과정을 거친 뒤 3년째에 전공단계로 진입한다. 특수교육기관으로는 건축대, 음대, 미대 등 그 분야의 특수교육을 요하는 교육기관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대부분 5년의 교육기간을 두고 있다.
최고의 인재를 선별하는 그랑제콜
마지막으로 그랑제콜은 각 분야의 전문인을 양성해내는 교육기관으로, 프랑스에서만 보게 되는 독창적인 교육기관이다. 프랑스혁명을 전후하여 전문분야의 최고실력자를 양성하기 위해 창설된 이래, 국가에 의해 적극적으로 장려되고 발전해온 프랑스 고등교육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국립행정학교, 국립고등사범학교, 국립공학학교(폴리테크닉), 국립광산학교, 국립상업학교, 국립정보통신학교, 국립농림학교 등이 있다. 그랑제콜은 각 분야의 최고 전문인 양성을 수행하고 있다. 현 프랑스 대통령과 총리가 모두 국립행정학교(ENA) 출신이고, 프랑스 주요기업 간부들의 상당수가 국립상업학교(HEC) 학위보유자이며, 노벨상을 수상한 프랑스인의 절대다수가 그랑제콜 출신임을 감안하면 프랑스사회에서 그랑제콜이 갖는 역할을 익히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그랑제콜과 일반대학을 굳이 특색지우면, 전자가 특정 분야의 최고 전문인 양성기관인 반면, 후자는 일반지식인을 양성하는 대중적인 고등교육기관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일정 분야의 학위를 일반대학에서 취득할 수도 그랑제콜에서 취득할 수도 있지만, 취업길에서 그랑제콜의 학위는 일반대학의 학위보다 더 빛을 발한다. 입학전형에도 차이가 있어 일반대학의 입학요건은 바크 소지자에 한하지만, 그랑제콜은 대개 바크 +2년 이상의 학위에다 바늘구멍에 비유되는 까다로운 시험을 학교별로 실시하고 있다.그랑제콜 입학을 위해 특별히 그랑제콜 준비를 담당하는 교육기관이 따로 있는 이유도, 그랑제콜 입학이 그만큼 힘들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랑제콜 준비학교 중 합격률에서 선두를 차지하는 학교를 꼽으면 파리의 루이르그랑고교, 생루이고교 등을 들 수 있다. 거기엔 그랑제콜을 준비하기 위해 전국에서 모여든 수재들이 까다로운 입학전형을 거쳐 선발되어 학업에 전념하고 있다. 그랑제콜 준비학교 학생들은 이미 바크를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한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보통 2, 3년간의 학업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후 진로방향을 바꾸어 일반대학에 진학할 경우는 바크+2의 학력이 인정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진로상담
프랑스의 진학 및 진로과정은 자신에게 적합하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일이 절실히 요구된다. 여기서 대두되는 문제가 바로 진로상담의 중요성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여 프랑스의 고교에서는 교사 한명당 9∼12명의 학생이 분담되는, 교사와 학생간의 긴밀한 진로상담을 하고 있다. 그외에도 전국에 걸쳐 약 4500여명의 진로와 심리상담원들이 중·고등학교와 연계를 맺고 활동하고 있다. 거기다 다양한 직업을 소개하고 직업과 학업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크고 작은 박람회들이 열려서 진로에 대한 갈등과 궁금증을 해소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상시 개설되어 있는 문헌자료실이나 도서관에서도 이와 관련된 자료를 쉽게 구할 수 있다. 학교수업에 따른 자신의 취향에 비추어 장래의 직업분야를 결정하는 일이나, 희망하는 직업을 위해 거쳐야 하는 학업단계를 살펴보는 일은 이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서 상당히 긍정적인 결과를 낳고 있다.
교육내용에서 개성 및 창의성 개발에 힘쓰는 프랑스의 교육은 공교육을 주축으로 운영되고 있다. ‘교육기회의 평등’의 좋은 예가 되는 프랑스 교육제도의 또다른 강점은 그런 가운데서도 국가를 짊어질 전문엘리트 양성에 힘써, 교육의 보편화와 전문화를 무사히 병행하고 있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파리=글·사진 이선주/ 자유기고가

사진/ 소르본대학이 자리한 소르본광장 풍경. 카페는 언제나 학생들로 가득하다.
포에드는 2남2녀 중 두 번째로, 어릴 때부터 집에서 자랑할 만한 우등생은 아니었다. 학교성적이 중간수준을 간신히 넘는 가운데 중학교를 마친 포에드는 고교선택 때 많은 고민을 했다. 중학교의 학업내용보다 십중팔구 더 어려울 일반고교학업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기술을 배워 직업을 가져 일찌감치 독립된 생활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결국 기술고교를 선택했다. 자동차 만지기를 좋아해서 친구들보다 훨씬 빨리 운전면허증을 취득하기도 한 포에드의 희망은 자동차 정비 기술을 익히는 일이다. 현재 파리근교의 한 기술고등학교 마지막 학년에 재학중인 그는 학업수료에 따른 기술 증서를 받겠지만, 그와 더불어 내년이나 내후년쯤엔 기술 바칼로레아를 치를 생각이다. 이상은 필자가 만나본 고등학생들 중 세 가지 예다. 프랑스 고교생활의 일면을 읽을 수 있는 단적인 경우인데, 별다른 일이 없는 한 델핀과 디아부는 바칼로레아를 거친 뒤 고등교육기관으로 진학할 것이며, 포에드는 바칼로레아를 치른 뒤 정식으로 직업세계로 향할 것이다. 고교와 수능시험 그리고 대학이라는 단순체계의 중등 및 고등교육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우리에게 프랑스의 입시제도와 고등교육기관으로의 진학은 마치 난해하게 얽힌 거미줄과도 같아 보인다. 각 교육의 특성을 살려 세분화해 있는 고등교육기관들 중 어떤 곳에서 어떤 학업을 하고 앞으로 어떤 직업의 길로 나아갈 것이냐는 문제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거나 뜻밖의 시험운에 의해 좌우되지 않으며, 학업을 수행해오는 오랫동안 자신을 관찰하고 파악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이는 고교와 고등교육기관을 연결하는 시험제도인 바칼로레아에서도 드러난다. 프랑스는 고등교육기관에 진학하는 방법으로 우리처럼 시험전형제를 두는데 그 시험을 바칼로레아(이하 바크)라고 부른다. 주관식 논술형인 바크는 탄생한 지 올해로 200주년을 맞이하는 전통과 역사를 자랑한다. 우리의 수능시험처럼 고등교육기관으로 진학하기 위한 통과증 역할을 하는 동시에, 중등교육을 종결하며 얻을 수 있는 학위의 기능도 갖는, 이중적인 기능을 담당한다. 바크에 합격하면 그것이 해당 바크의 학위가 되고 학력을 대변하므로 프랑스에서 고등학교 졸업이라는 표현은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바크 소지자냐 아니냐, 어떤 바크냐라는 표현이 그를 대신한다. 학력을 표현할 때도 바크+2, 바크+4 등의 표현이 주로 쓰이며, 거기에 해당 학위가 덧붙는다. 200년 동안 보편화의 길 걸어

사진/ 수학과목을 너무 좋아해서 앞으로 수학교사가 될 꿈을 갖고 있는 고교 2학년 델핀.

사진/ 파리의 학원가로 유명한 거리인 카르티에 라탕. 생미셸에서 팡테옹 저편까지 프랑스의 유명한 교육기관들이 즐비해 있다.
인터뷰|그랑제콜 준비생 카트린 ![]() |
파리=글·사진 이선주/ 자유기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