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샤론의 잠 못 이루는 밤

382
등록 : 2001-10-31 00:00 수정 :

크게 작게

총리의 조기퇴진? 관광장관 암살 이후 이스라엘 정부 내 좌파와 우파의 의견대립 첨예

사진/ 암살당한 지비 이스라엘 관광장관. 그의 죽음은 샤론 내각에 참여하고 있는 우파와 좌파의 충돌을 불러일으켰다.(SYGMA)
“아라파트와 빈 라덴은 쌍둥이다. 결코 이스라엘 땅에 팔레스타인 정부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팔레스타인 정부는 이미 요단강 동편에 존재하지 않는가?” 이스라엘에서 샤론 정부 출범 이후 최대 인원인 10여만명이 팔레스타인을 향한 테러와의 전면전을 촉구하고 나섰다. 일반 여론조사에서도 팔레스타인 보복 공격을 중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드높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스라엘 국민 10명 중 7명은 강공책을 촉구하고 있는 가운데 연정 내 우파와 좌파 등 대팔레스타인 정책을 둘러싼 정파간의 충돌로 연정이 균열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샤론호가 풍랑과 암초를 만난 것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간 ‘중재자 없는 충돌’ 가능성이 제기되고 시리아와의 전쟁불가피론도 나오고 있다. 국지전을 넘어 레바논까지 전선이 확대되는 전쟁의 신호탄이 되지 않을까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의 전례없는 철군 요구


샤론이 총리에 당선되자 중동 언론이 들끓었다. 전쟁의 화신, 베이루트의 도살자, 살아 있는 재앙, 이스라엘의 독불장군, 불도저…. 아랍국가 언론들은 수많은 악명으로 그를 불러댔다. 그러나 그도 현실정치인이었다. 팔레스타인과의 타협 불가론자였던 강성 매파인 그가 팔레스타인 국가 창설에 동의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스라엘의 안보가 보장되고 팔레스타인의 비무장이 전제될 경우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창설을 받아들일 것,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국가와 협정을 맺지 않을 것, 국경은 이스라엘군이 통제할 것,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국가 영공을 자유롭게 사용할 것, 예루살렘이 분할되지 않은 채 이스라엘의 수도로 남아 있어야 할 것. 조건이나 전제가 문제가 되었지만 그로서는 큰 진전이었다. 그런데 그나마 이 모든 것이 뒤엉켜졌다. 샤론은 최근 “테러분자와 그들의 협조자, 테러분자들을 파견한 사람들을 근절하기 위한 전쟁을 펼칠 것이다. 지비 장관 암살의 모든 책임은 바로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10월17일 극단적 민족주의 성향의 민족연합당 당수인 레하밤 지비 이스라엘 관광장관이 피살됐다. 이스라엘군은 테러와의 전면전을 주장하며 강공을 퍼부었다. 이스라엘 탱크가 팔레스타인 자치지역 6개 도시에 진입하고 헬기를 통한 미사일 공격이 이어졌다. 이스라엘군은 18일 요르단강 서안 라말라와 제닌에서 탱크 포격을 가해 12살 소녀를 포함해 팔레스타인인 3명을 죽였다. 10월19일 새벽에는 탱크 20대를 앞세우고 요르단강 서안에 있는 베들레헴의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에 진입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시설과 호텔 등 민간시설을 파괴했다. 이어 10월24일 새벽, 탱크를 앞세우고 요르단강 서안 라말라 인근의 베이트 리마 마을을 급습하고 16명의 팔레스타인 주민을 사살했다. 명분은 지비 장관 살해범 검거. 그렇지만 살해범들은 이미 동예루살렘에서 검거된 상태였다.

탈레반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은 전례없이 강경하게 점령지역에서의 이스라엘의 철군을 요구했다. 미국의 ‘방조’에 힘입어 유엔 안보리는 25일 이스라엘군의 즉각 철군을 촉구하는 성명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폭력사태 악화에 우려를 표명하고 양쪽에서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한 데 대해 개탄한다…. 요르단강 서안 팔레스타인 자치지역 내에서 이스라엘군의 전면 철수를 촉구한다.” 이스라엘 안보내각은 팔레스타인쪽이 휴전협정을 준수할 경우 요르단강 서안의 6개 팔레스타인 자치도시에서 병력을 단계적으로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10월27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미 중앙정보국 안보 관계자 연석회의가 열리고 단계적 철군이 협의됐고, 이어 베이트 잘라와 베들레헴 지역에서 이스라엘군이 철수했다. 이번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인해 팔레스타인 해방민중전선(PFLP) 조직원 11명을 비롯한 42명의 무장 조직원이 체포됐고 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 주민간의 유혈충돌이 격화되어 팔레스타인 주민 30여명이 사망했다.

문제는 팔레스타인 자치지구가 아니라 이스라엘 내에서 더욱 격화되는 양상이다. 지비 장관 암살을 계기로 첨예해진 연정 내의 강온 대립은 샤론 정부 출범 이래 최대의 위기를 불러왔다. “팔레스타인을 격퇴, 무장해제시킬 때까지 전면전에 나서야 한다”(민족연합당),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에서의 이스라엘군 병력을 즉각 철수시켜라. 그렇지 않으면 즉각적으로 연정을 탈퇴하겠다”(노동당), “페레스 장관과 아라파트 수반간의 회담이 성사되면 아예 연정을 탈퇴하겠다”(샤스당).

극우세력은 이미 탈퇴 시작

사진/ 베들레헴에 진주한 이스라엘의 탱크. 범인이 체포된 뒤에도 수많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희생됐다.(SYGMA)
이같은 갈등은 태생적인 것이었다. 거국내각을 표방하는 샤론 총리 정부에는 리쿠드당과 좌익성향의 노동당을 최대 정파로, 극단적인 정통파 종교정당 샤스당, 러시아계 이민자들의 이스라엘 발리야당과 이스라엘 베이테이누당, 극우파인 민족연맹, 노동자당인 단일국가당, 암살된 이츠하크 라빈의 딸 달리아 라빈 펠로소프가 결성한 새로운 길당 등 8개의 다양한 이면과 노선의 정당이 참가하고 있다.

물론 관건은 샤론 정부가 정권유지가 가능한 의회 내 120석 가운데 60석 이상의 과반수 의석을 확보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미 피살된 지비 장관이 포함된 민족연맹당과 이스라엘 베이테이누 등 8석의 극우연립 진영은 연정탈퇴를 선언했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샤론 총리의 제재완화 조치에 정면 반발한 것이다. 요르단강 서안 헤브론 2개 지역 군병력 철수를 이행한 뒤였다. 게다가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에서 이스라엘군이 철수를 시작했다. 이에 반발하고 있는 극우연립 진영이 완전히 연정을 탈퇴한다면 어느 정도 정치적 타격을 입겠지만 정권유지는 가능하다. 그러나 이반세력이 잇따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또다른 변수는 노동당이다. 24석을 차지하고 있는 연정 내 최대 정파인 노동당은 역으로 팔레스타인 자치지역 내의 이스라엘 철군이 조속히 이뤄지지 않으면 연정을 탈퇴할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노동당의 이같은 입장이 곧이곧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보는 의견은 많지 않고 정치적인 입장 표명에 그칠 것이라는 여론이 다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론 총리로서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노동당 지도부는 여전히 연정에 잔류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지를 재고하고 있다. 노동당이 연정에 참여할 때, 명분은 아라파트 수반과의 평화회담을 추진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그동안 수차례 샤론 총리와 내무장관을 맡고 있는 정통 유대교 정당인 샤스당 당수인 엘리 이샤이에 의해 제지당해왔다. 노동당은 샤론 총리가 아라파트 수반을 제거하기로 마음을 굳혔으며 비밀경찰 ‘신 베트’도 아라파트 수반과 자치정부를 전복시켜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평화회담 실현의 명분이 약화된다면 노동당의 연정탈퇴는 가시화될 가능성이 있다.

아라파트도 샤론도 위기상황

사진/ 지비 장관의 장례식. 미국은 팔레스타인 철군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스라엘 국민들은 강공을 지지한다.(SYGMA)
샤론 총리가 지금처럼 군부와 강경파들의 의견을 따를 경우 미국이 통제할 수 없는 예측불능의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최악의 상황은 아라파트의 팔레스타인 자치기구가 와해돼서 내부 분열로 이어지고, 샤론 총리가 이끄는 연정이 붕괴되어 조기 퇴진하는 경우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 따라 예상되는 얼마간의 요동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는 미국이 주도하는 테러와의 전쟁이 조성한, 좀더 큰 구도에 따라 전개될 전망이다. 샤론 정부는 미국과 영국이 주도하는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협상에 다시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암살과 보복으로 이어진 이번 사태가 남긴 상처는 크다. 이미 지난 13개월간의 유혈충돌로 730여명의 팔레스타인 주민들과 180여명의 이스라엘 시민, 군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 모두는 폭력의 악순환이라는 덫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팔레스타인이 아라파트의 지도력 한계로 갈등을 겪고 있고, 이스라엘이 샤론 총리의 불안한 동거 정권으로 파열음을 접하고 있는 순간에도 두 나라간 유혈충돌은 현재진행형이다.

암만=김동문 통신원 yahiya@hanimail.com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