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문화 교류의 장… 과나후아토 축제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
축제의 밤, 산 로케 성당 앞마당, 으슥한 골목에서 나타난 붉은 벨벳 망토를 두른 여자와 부풀어오른 줄무늬 반바지를 입고 은빛 스타킹을 신은 남자가 등장한다. 순간 이곳은 고스란히 17세기 스페인의 거리로 변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행하는 기적은 진정한 기독교인들만이 볼 수 있다고 사람들을 속인다. 누구도 기적을 보지 못했지만 사람들은 이단자로 몰리지 않기 위해 모두들 기적을 본 것인 양 행동한다. 종교재판과 마녀사냥이 횡행하던 스페인 제국의 황금시대를 배경으로 한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의 걸작 막간극 <기적의 무대>의 한 장면이다.
식민지의 심장부, 축제로 부활
이웃한 산 페르난도 거리, 성서의 묵시록에서 영감을 얻은 ‘네명의 기수(騎手)’들이 거리를 질주한다. 사람 키만한 나무 막대를 양손으로 짚고 두발은 목발 위에 올라서 사람 키의 두배는 족히 되어보이는 이들. 두명의 악사들이 심벌즈와 북을 두들기며 이들의 질주에 긴장을 부여한다. 독특한 의상과 날카로운 분장은 은은한 노란빛 가로등 빛을 헤치며 거칠게 달려오는 이들을 더욱 위협적으로 느끼게 한다. 거리는 온통 달리는 기수들을 피하는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는 바람에 소란스럽다. 이들은 바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온 스탈커 극단의 배우들이다.
라 파스 광장, 아담한 잔디밭 한복판엔 스페인의 제국 황금시대를 이끈 카를로스 1세와 펠리페 2세가 보낸 은빛 기단의 조각상이 우뚝 서 있고 그 너머엔 17세기에 지어진 바로크풍의 웅장한 교회가 솟아 있다. 그 앞 가설무대에선 라 밤바로 유명한 베라크루스 출신 악사들이 등장하고 이들이 연주하는 4분의 3박자의 경쾌한 리듬에 맞춰 새하얀 블라우스 차림의 여성과 하얀 멕시코 전통 모자를 쓴 남성이 발장단을 넣고 춤을 춘다. 이들의 춤과 음악에 반한 관객들. 그렇게 축제는 시작되었다. 과나후아토는 한 떠돌이 광부가 우연히 발견한 은광맥을 기반으로 1554년 스페인 제국의 식민지 도시로 세워져 16세기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곳으로 묘사되기도 했던 ‘식민지의 심장부’이다. 원주민과 혼혈 메스티소 노예 광부들의 분노가 폭발했고 1810년 독립 영웅 미겔 이달고 신부의 군대가 최초로 진군했던 곳, 1910년대 멕시코 혁명전쟁 당시엔 혁명동지들간의 권력 투쟁이 휩쓸고 간 도시. 사람들은 하나둘씩 떠나고 육중한 바로크풍 건물들과 화려한 추리게라식 성당들만 쓸쓸히 남아 있던 곳, 그나마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이름으로 위로 받는 도시, 이곳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것은 바로 축제였다. 1953년 과나후아토대학 교수이자 대학극단의 창설자인 엔리케 루엘라스에 의해 세르반테스의 걸작 막간극작품들이 황금시대의 스페인의 모습을 간직한 거리에서 초연되면서 이곳은 문화도시로 단장할 준비를 하게 되었다. 72년 연방정부의 도움 아래 드디어 제1회 세르반테스 축제가 ‘영혼의 축제’라는 이름으로 탄생했으며 ‘세르반테스 마을’이 조성되었고 옛 카타 광산의 소광장엔 세르반테스가 탄생시킨 세계적인 주인공 돈 키호테 기념상이 세워졌고 세르반테스 극장이 들어섰다. 올해 스물아홉돌을 맞는 이 축제엔 지난 10월10일부터 10월28일까지 전세계 40여개국 2천여명의 예술가들이 참여했고 약 100여만명의 국내외 관람객이 몰려들었다. 도시 전체가 무대
새 천년을 맞은 세르반테스 축제는 올해부터 2005년까지 세계를 다섯 대륙으로 나누어 매년 한 나라씩, 멕시코를 다섯 지역으로 나누어 매년 한주씩 특별 초청하기로 했다. 이번엔 오세아니아 대륙의 오스트레일리아, 멕시코 남동부지역의 베라크루스주가 특별 초청되었다. 이런 특별 행사를 바탕으로 2006년 명실상부한 ‘세계 다문화 페스티벌’을 개최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수립했다.
또한 축제의 무대를 과나후아토시에서 과나후아토주로 넓히고, 축제의 프로그램에 세계적인 예술가들과 함께 하는 학술회의, 문화강좌를 포함시켰다. 과나후아토 주민들이 진정한 축제의 주인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축제의 친구들’이란 이름의 자원봉사단을 대대적으로 조직하고 주민들에게 다채로운 문화체험의 기회를 베풀기 위해 티켓 할인제를 도입했다. 바야흐로 세르반테스 국제페스티벌은 명성에 안주하지 않는 자기혁신을 꾀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를 위하여”라는 표어를 내걸고 준비하는 세르반테스 축제의 계획엔 과나후아토의 거리, 광장, 공원 곳곳을 축제의 무대로 만드는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과나후아토엔 세개의 험준한 계곡이 만나는 비탈진 경사면에 작게는 68cm 폭을 가진 꾸불꾸불한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다채롭게 색칠된 아기자기한 집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다. 시내 중심은 차 한대 겨우 지나갈 차도와 한 사람 겨우 지나갈 좁은 인도인데다가 빈번한 홍수와 잦은 교통체증을 유발해서 아예 지하에 터널을 뚫었다. 도시 전체가 17세기 유럽풍의 연극 무대처럼 보이는 과나후아토 거리 곳곳은 무명의 거리 예술가들의 차지였다.
안데스 산맥의 우수에 찬 피리 ‘께나’에 실린 ‘엘 콘도르 파사’를 들려 주는 라틴아메리카 음악가들부터 재기 발랄한 몸짓으로 무대 위를 껑충껑충 뛰어다니는 젊은 펑크밴드들. 아프리카 서부에서 전래된 젬베라는 북을 두들기고 불로 재주를 부리기 위해 멕시코 전역에서 모여든 보헤미안들부터 부시의 아프카니스탄 공격과 비센테 폭스 현 대통령의 친미정책을 신랄하게 풍자하며 사람들을 웃기는 체 게 바라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반체제 가수들. 이들 거리예술가들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축제의 명성을 일구어왔고 도시 전체를 흥분과 열광의 분위기로 물들여온 이들이었다. 이제 축제의 기획자들이 그들의 업적을 인정한 것이다.
본래 유럽 축제협회의 회원인 세르반테스 국제축제는 유럽과 라틴아메리카의 문화적 교류의 장으로 출발했지만 이제 서서히 아시아 대륙과의 문화교류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번 축제엔 일본이 가장 많은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시각디자이너 케냐 하라의 포스터’라는 학술회의는 일본의 시각예술 100년사를 소개하는 자리였고 ‘일본의 새로운 영화들’이라는 이름으로 상영된 16mm 필름 17편은 2차대전 이후, 냉전시대에 경제기적을 이뤄낸 일본사회의 빛과 어둠을 조명하는 자리였으며 ‘소호 히구라시씨의 다도(茶道)’라는 행사는 일본의 차문화를 소개하는 행사였다.
한국 대표로 김영희 무용단 참가
이번 축제에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사절단으로 김영희 무용단이 참가했다. 세르반테스 국제페스티벌의 주무대인 후아레스 극장을 가득 메운 500여명의 멕시코 관객 앞에서 한국 전통무용을 바탕으로 하되 혁신적인 안무로 다듬은 무용을 선보였다. 의상, 음향, 춤사위, 소도구엔 한국적인 요소들을 담았지만 안무자 김영희씨의 작가주의에 힘입어 새롭게 창조된 작품들이었다. 세르반테스 축제에 대한 인상을 묻는 질문에 김영희 씨는 “제가 놀랜 것은 온 국민들이 축제에 참여한다는 것이지요. 사실 무용 공연하면 무용하는 사람들만 많이 오거든요. 그런데 이곳은 일반관객이 참 많이 보러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랬지요”라고 즐거워했다.
고대 그리스 도리아식 원기둥으로 건물을 세우고 지붕의 정면과 측면엔 학문과 예술을 관장하는 뮤즈 신들의 상을 세운 후아레스 극장 옆,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서 프랑스에서 온 거리의 예술가들이 바이올린과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춤을 추고 샹송을 부른다. 사람들이 길을 가다 멈추고 하나둘 모여든다. 축제는 늘 그렇게 거리에서 시작되고 늘 그렇게 사람들의 바쁜 걸음을 붙잡는 것이다.
과나후아토(멕시코)=글·사진 박정훈 통신원 jhpark2001@hotmail.com

사진/ 라 파스 공원의 가설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멕시코만 연안 항구 베라크루스 출신 악사들.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할아버지와 어린 소년이 함께 연주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라 파스 광장, 아담한 잔디밭 한복판엔 스페인의 제국 황금시대를 이끈 카를로스 1세와 펠리페 2세가 보낸 은빛 기단의 조각상이 우뚝 서 있고 그 너머엔 17세기에 지어진 바로크풍의 웅장한 교회가 솟아 있다. 그 앞 가설무대에선 라 밤바로 유명한 베라크루스 출신 악사들이 등장하고 이들이 연주하는 4분의 3박자의 경쾌한 리듬에 맞춰 새하얀 블라우스 차림의 여성과 하얀 멕시코 전통 모자를 쓴 남성이 발장단을 넣고 춤을 춘다. 이들의 춤과 음악에 반한 관객들. 그렇게 축제는 시작되었다. 과나후아토는 한 떠돌이 광부가 우연히 발견한 은광맥을 기반으로 1554년 스페인 제국의 식민지 도시로 세워져 16세기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곳으로 묘사되기도 했던 ‘식민지의 심장부’이다. 원주민과 혼혈 메스티소 노예 광부들의 분노가 폭발했고 1810년 독립 영웅 미겔 이달고 신부의 군대가 최초로 진군했던 곳, 1910년대 멕시코 혁명전쟁 당시엔 혁명동지들간의 권력 투쟁이 휩쓸고 간 도시. 사람들은 하나둘씩 떠나고 육중한 바로크풍 건물들과 화려한 추리게라식 성당들만 쓸쓸히 남아 있던 곳, 그나마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이름으로 위로 받는 도시, 이곳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것은 바로 축제였다. 1953년 과나후아토대학 교수이자 대학극단의 창설자인 엔리케 루엘라스에 의해 세르반테스의 걸작 막간극작품들이 황금시대의 스페인의 모습을 간직한 거리에서 초연되면서 이곳은 문화도시로 단장할 준비를 하게 되었다. 72년 연방정부의 도움 아래 드디어 제1회 세르반테스 축제가 ‘영혼의 축제’라는 이름으로 탄생했으며 ‘세르반테스 마을’이 조성되었고 옛 카타 광산의 소광장엔 세르반테스가 탄생시킨 세계적인 주인공 돈 키호테 기념상이 세워졌고 세르반테스 극장이 들어섰다. 올해 스물아홉돌을 맞는 이 축제엔 지난 10월10일부터 10월28일까지 전세계 40여개국 2천여명의 예술가들이 참여했고 약 100여만명의 국내외 관람객이 몰려들었다. 도시 전체가 무대

사진/ 후아레스 극장 옆에서 공연하는 프랑스에서 온 거리예술가들.

사진/ 후아레스 극장에서 춤을 추는 김용히 무용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