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인의 구겨진 자존심을 달래주는 특종들… 성역없는 취재로 급부상한 <알자지라>
“미국은 동서남북 모두 두려움에 가득 차 있다. 미국이 현재 맛보고 있는 것은 우리가 겪어온 것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10월7일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습 이후 사태의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세계인들이 놀랄 만한 일이 발생했다. 또박또박 미국의 공습을 맹비난하고 반미성전 의지를 밝히고 있는 그는 분명 오사마 빈 라덴이었다. 어찌된 일인가? 공습이 시작된 지 2시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군복 차림의 그가 뉴스에 등장했다.
이는 이 검은 밤하늘 화면만 보여주며 안타까워하고 있을 때 <알자지라>가 보도한 특종이었다. <알자지라>는 9·11 테러 이후 숱한 특종을 낚아냈다. 라덴이 9·11 테러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성명을 발표한 것도 <알자지라>를 통해서였다. 지난 9월24일에는 빈 라덴의 자필 서명이 담긴 성명서를 독점 보도하였다. 당시 그의 소재를 두고 논란이 일던 때였다. 뿐만 아니라 9월26일 아프가니스탄 카불 주재 미대사관이 성난 아프간 군중에 의해 불타는 장면, 미군 특공대 체포설, 10월6일 아프간 상공에 나타난 서방 항공기의 모습을 단독으로 방송했다. 10월7일 공습이 시작되자마자 최고의 뉴스메이커 오사마 빈 라덴, 탈레반 국방장관 등과 독점 인터뷰를 잇따라 내보내 등 서방 언론들이 이를 그대로 받아 방송해야 했다.
아랍어 뉴스 사이트도 열풍
미국의 공습 이후 현장을 생방송으로 보도중인 <알자지라>는 여러 면에서 아랍인들에게 보다 나은 존재로 평가된다. 걸프전이 ‘의 전쟁’이었다면, 미국의 아프간 공격은 ‘<알자지라>의 전쟁’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이같은 결과는 아랍 지도자들의 전횡조차도 거침없이 비판해온 중립적 보도 태도와 2년 전부터 카불에 지사를 두고 빈 라덴쪽과 접촉해온 노력 때문이다.
카타르 수도 도하에 중앙방송사를 두고 24시간 방송되는 <알자지라>는 아랍세계의 대표적인 자유 언론이다. 96년 11월 현 통치자 알사니가 집권한 직후 첫 전파를 발사했다. <알자지라>는 카타르의 알사니 일가가 1억5천만달러를 투자해 민간방송 형식으로 만든 것이지만 실제로는 카타르 정부의 상당한 지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방송사도 국영 TV빌딩 안에 있다.
세계 곳곳의 뉴스를 24시간 실시간으로 방송하고 있는 <알자지라>의 기자들과 직원들 대다수도 등 서방 언론사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가장 큰 특징이라면 아랍인의 관점에서 중동문제를 보도한다는 점이다. 이들에 의해 폐쇄적인 중동지역에선 가히 혁명적이라 할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알자지라>의 성장 과정에는 볼거리가 그리 많지 않은 중동지역의 높은 위성 방송 수신율과 보수적인 언론 보도 관행에 반하는 신속 정확한 보도에 힘입은 것이다. 아랍권 전체를 가시청권으로 하면서 3500만명의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다. 중동 일부 도시의 경우 시청률이 40%를 넘는다는 보도도 있다. 최근에는 영국과 유럽에서 방송 판매계약을 따내기도 했다.
그동안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아랍 지도자들조차 거침없이 비판하던 <알자지라>의 위력은 이제 출범 5년여 만에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계기로 서방권에까지 맹위를 떨치고 있다. <알자지라>가 뉴스 방송만 주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인터넷의 아랍어 뉴스 사이트도 이미 우위를 차지했다. 올해 1월 벽두부터 오픈한 알자지라 넷(www.aljazeera.net)의 방문자도 폭증하고 있다. 시작한 지 1년도 안 되어 가장 대표적인 아랍어 뉴스 사이트로 떠올랐다. <알자지라>의 영향력 때문인지 가 10월16일(현지시각) 자사 인터넷 사이트(www.gn4msnbc.com)를 통해 아랍어 뉴스서비스를 개시하기에 이르렀다. 영국 도 아랍어 뉴스 사이트(news.bbc.co.uk/hi/arabic/news/)를 운영중이다.
<알자지라>의 보도 관행에 대한 미국쪽의 과민반응도 나타났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게 과도하게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빈 라덴의 메시지는 미국인 살해를 조장하는 선전이 될 수 있으며 추종자들에게 추가적인 테러 공격을 명령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콜린 파월의 항의가 그 단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일을 직업정신으로 계속 이어갈 것입니다. 그것이 아프가니스탄이든 아니면 다른 곳에서든, 그 발단이 무엇이든지 간에 특종을 낚을 것이며, 우리가 찾은 곳이 어디든지 간에 뉴스를 보도할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사장 빈 사메르 알사니는 단호하다. 그는 빈 라덴과 알 카에다에 대한 종전의 보도 방식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 걸프전 당시 이 사담 후세인의 육성을 무삭제로 보도했을 때 시비를 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서방 지도자 인터뷰도 독점 보도
블레어도 부시도 이제는 <알자지라>를 무시할 재간이 없다. 유럽이나 서구 각국의 명망가들도 인터뷰를 피하지 않는다. 아니 적극적으로 인터뷰 요청을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알자지라>로서는 서구 정상들과의 독점 인터뷰를 내보냄으로써 그동안 “빈 라덴과 탈레반 정권의 입”이란 지적을 받아온 일부의 비난을 잠재우고 있다. 이제는 전쟁의 쌍방 주역이 모두 발언대로 삼는 중요 매체로 떠올랐다. 서구 언론을 불신하는 빈 라덴 및 탈레반 정권의 교묘한 언론전술과 아랍인들에게 공격의 정당성을 선전해야 하는 미·영쪽의 필요가 만난 것이다.
“미국의 공습이 이뤄지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알자지라> 타이시르 울루와니였습니다.” 지난 걸프전 당시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생방송하며 주가를 올리던 여기자를 기억하는 이들은 이제 <알자지라>의 타이시르를 기억해야 할 것 같다. 아랍인 대다수는 “아프간 전쟁과 관련하여 양쪽의 입장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매체다”라는 감정을 갖고 있다. 지금도 <알자지라>의 아프가니스탄 특종은 이어지고 있다.
암만=김동문 통신원 yahiya@hanimail.com

사진/ <알자지라>의 다양한 프로그램들. 특히 <무제한><더 많은 의견>등의 시사토론프로그램은 성역깨기에 한몫을 한다(위쪽). 사장 셰이크 함마드 빈 사메르 알사니. '중동의 '을 일궈낸 인물이다(아래).

사진/ 빈 라덴은 자신의 입장을 밝히기 위해 <알자지라>를 자주 이용했다(위). <알자지라>의 보도장면. 미국 공군의 공습으로 무너진 집더미에서 발굴된 아프가니스탄 젊은이의 시신.

사진/ 미국의 공습으로 화염이 치솟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 근교의 장면을 <알자지라>는 특종 보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