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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탄저균보다 무서운 ‘탄저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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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10-2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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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생화학 테러 공포와 함께 부는 우경화 바람… 국가 안전을 외치는 자들의 저의는?

사진/ 하루 수십만명의 관광객이 지나다니는 거리에서, 경찰이 총을 들고 유대인 예배당을 지키고 있다.
‘공포’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미국을 짓누르고 있는 탄저병의 공포는 유럽에서도 그 위세를 떨치고 있다. 모방범죄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경찰과 소방서는 비상대기 상태에 들어갔고, 연일 신문과 방송들이 찾아낸 ‘새로운 공포’의 소재들은 사람들을 집단적 히스테리 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이에 호기를 만난 듯 각국 정부들이 ‘안보정책’을 경쟁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부활하는 지문날인


지난 10월12일 이탈리아 집권 우파 연정이 제출한 새로운 ‘외국인 법’이 의회를 통과했다. 연정에 참여하고 있는 극우정당들은 지난 총선 기간 동안 “이슬람의 침략에 반대한다”, “범죄적인 외국인 이주를 거부한다” 등의 구호를 내걸었고, 이를 이번 외국인 법에 고스란히 옮겨놓았다. 엄밀히 따지면 ‘선거 공약’의 실천으로 볼 수 있으나, 외국인의 노동권을 극적으로 제한하는 이번 법안이 커다란 사회저항 없이 의회를 통과한 것에 대해 이탈리아 언론들은 한결같이 9·11 테러사건을 그 배경으로 지적하고 있다.

같은 날 사회당, 공산당, 녹색당으로 구성된 프랑스 내각은, ‘일상생활의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개인 자유권에 대해 제약을 가하는 19개 법률 수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2003년 12월1일까지 한시적이라는 조건을 달고 있다고는 하나, 이는 “20세기 프랑스가 이룩한 사적 자유권 신장에 대한 중대한 침해”로 <르몽드>는 지적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경찰에 의한 개인 자택 수색이 금기시돼왔다. 심지어 여행가방에 숨겨진 마약도 ‘개인 거주공간의 확장’으로 해석되어, 이에 대한 수색이 쉽지 않은 것이 프랑스 법체계의 특징이다. 그러나 수정 법률안에 따르면, 거실, 지하실, 차고, 여행가방 등이 테러에 대한 ‘의심’만으로 경찰의 손에 넘겨지게 된다. 관공서, 공공장소에서는 ‘수상한 자’에 대한 몸수색도 가능해진다. 이 ‘일상생활의 안전’ 법안을 제출한 프랑스 내무장관은, 1995년 당시 우파 정부가 동일한 내용을 담은 법안을 상정하였을 때, 이를 “자유에 대한 도적질”이라고 격렬히 비판했던 당사자다.

10월15일 독일 의회에서는 ‘종합 안전대책1’이 통과되었다. 이 법률에 따라 테러 혐의가 있는 단체에는 결사의 자유가 부정되며, 이슬람이라는 종교명칭을 포함하는 모든 단체는 자동적으로 이 혐의선상에 놓이게 된다. 또한 동유럽, 중동의 소수민족 해방운동 세력들도 감시의 범위 안에 포함됐다. 더욱 우려되는 사실은, 법안이 통과된 지 단 하루 만인 16일, ‘종합 안전대책2’가 연방 내무장관에 의해 내각에 제출되었다는 것이다. 각 행정부처에는 단 이틀간의 법률 검토기간이 주어졌고, 슈뢰더 총리는 적극적인 지지 의사를 밝히면서 내각 의결을 기정사실화했다.

‘국제 테러리즘 퇴치를 위한 법안’이라는 이름을 가진 두 번째 ‘종합 안전대책’에 따르면, 유럽국가 중 처음으로 신분증에 이른바 ‘지문날인’이 도입된다. 특히 매년 300만명이 넘는 독일 비자 신청자들에게 ‘지문날인’이 의무화되며, 나아가 출신 국가 및 종교, 그리고 민족까지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또한 현재까지는 구체적 혐의사실을 입증할 증거자료를 법원에 제출할 때에만 외국인을 포함한 각 개인에 대한 정보접근이 가능한데 반하여 ‘종합 안전대책2’는, 경찰과 정보기관에게 모든 외국인의 신상자료에 대한 상시적이고 포괄적인 접근 권한을 부여한다. 이에 대해 베를린 훔볼트 법과대학 쿠차 교수는, 이 ‘지문날인’ 법안이 9월11일 직후 내각에서 논의되었다가, 내부 저항에 의해 자체 폐기되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탄저균 공포가 독일 전역으로 확산된 시기에 맞춰 정부가 ‘기습작전’으로 법안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는 이번 안이 “공포 심리를 이용한 대중 인기주의”에 불과하며, “범죄 혐의 근거를 단지 출신 국가나 민족에 두는 것은 명백한 ‘인종차별’”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베를린 시장 선거전에서 우익 약진

사진/ '안전을 위한 안전한 선택'으로 사회적 공포 분위기를 이용한 독일 기민당의 선거 포스터.
그러나 70년대 인권운동의 기수였기도 했던 현 연방 내무장관은, 한 방송과의 회견에서 “자유와 안전을 서로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 테러의 위협을 받는 사람은 결코 자유롭게 살 수 없기 때문이다”라며 “좀더 많은 시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이번 법안의 추진은 불가피한 것임을 재차 강조했다. 또한 “독일 혼자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현 분위기에 동승하여 이 법안을 유럽연합 차원으로 확대할 계획임을 강조했다.

테러, 안보, 그리고 외국인. 최근 독일 정치권에 빈번히 등장하는 단어들이다. 지난 9월21일 사민당의 승리로 끝난 베를린 시장 선거전은, 9월11일 테러와 탄저병 공포가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었다. 최근 10년간 최악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던 보수 기민당(기독교민주당)은 선거구호를 “안전을 위한 안전한 선택”으로 신속히 바꾸면서 6%포인트 가까운 득표율 상승을 맛보았다. 기민당 지원 유세에서 나선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도, 이번 선거를 “자유와 사회주의간의 마지막 전투”로 몰아세우면서, ‘통일 총리’라는 역사적 명성을 값싼 ‘안보 심리’로 맞바꾸었다.

한편 9월11일 이전에는 20%가 넘는 지지율을 보이며, 시장 자리까지 넘보던 공산당은 10% 간신히 넘는 득표율을 기록하며 테러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되었다. 연방국회에서 유일하게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습을 반대했던 공산당은 한때 평화주의자들의 지지를 예상하기도 했으나, 결국 “베를린 시민은 정치적 실험보다는 안정을 택했다”는 표현으로 패배를 인정해야만 했다. 독일 보수화 바람의 가장 큰 수혜자로 독일 남부 바이에른 주지사 쉬토이버를 꼽을 수 있다. 그는 지난 10월13일 기민당의 형제당인 기사당(기독교사회당)의 당대표로 재선출된 자리에서, “냉전은 끝났다. 그러나 국제 테러리즘과 더욱더 차가운 전쟁이 시작됐다”, “독일에 50만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 이슬람 근본주의자를 모두 색출, 추방하자”라며 기염을 토했다. 이 독일 전후 최고의 보수 정치인에 대해, 일부 언론에서는 “9월11일이 그를 슈뢰더 현 총리에 대적할 강력한 총리 후보로 만들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텔레비전을 켜지 마라?

사진/ 지난 10월13일 베를린 반전시위에 약 3만명이 모였다. 세계무역센터를 상징하는 두개의 검은 기둥에는 '전쟁 반대'가 적혀 있다.
그의 초강경 보수적 발언이 생중계 되었던 10월13일 토요일 오후, 독일, 스위스, 스웨덴, 영국, 이탈리아 등 전 유럽지역에서 크고 작은 반전시위가 일어났다. “눈에는 눈, 이것이 우리의 눈을 멀게 합니다”라며 베를린 반전시위 행사연단에 오른 한 고등학생 대표는, 미국의 폭격에 대한 반대뿐만 아니라, 아랍 학급 동료가 마치 범죄자 취급받는 데 무관심한 자신들의 모습을 반성하고 있다.

최근 독일교회의 출석률이 부쩍 증가했다고 한다. 종교세는 꼬박꼬박 납부하면서도, 평생동안 단 세번- 세례식, 결혼식 그리고 장례식- 교회에 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는 곳에서 말이다. 최근 한 심리학자는 “공포와 히스테리에 대한 가장 좋은 처방전은 아예 텔레비전을 켜지 않는 것”이라고 조언한다. 우편물, 공기, 물 등 예방 불가능한 경로를 통해 일상생활로 파고드는 테러의 위협에 대한 보도 앞에서, 사람들은 병적인 공포에 빠지게 될 수밖에 없음을 지적하는 말이다. 50년대 미국 정부는 원자폭탄의 공포에 떨고 있는 시민들에게 “Duck and Cover”라는 대피요령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바닥에 엎드릴 것, 그리고 가방 등으로 머리를 덮을 것.” 50년대처럼 지금 생화학 무기에 뾰족한 방어수단은 없을 것이다. 공포감만 더해가는 다양한 정보에 노출되는 것보다는, 마음의 안정을 주는 “Duck and Cover”와 같은 간결한 행동지침에 차라리 귀가 솔깃해진다.

베를린=글·사진 강정수 통신원 jskang@web.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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