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실종가족모임은 독재자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사위인 프라보워가 과거 재야 인사 납치 사건 등을 지휘한 책임에 대해 검찰 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이슬기
“조코위는 인도네시아의 오바마” 조코위가 처음 전국적으로 알려진 것은 시사주간 <템포>가 선정한 ‘2008 인도네시아 지자체장 10명’ 중 한 명으로 다뤄지면서다. <템포>는 그의 인본적 리더십에 주목했다. 솔로 도심 전통시장과 거리노점 재배치를 위해 50번 이상 노점에 찾아가 밥을 먹고 상인들과 대화를 나눈 뒤 폭력이나 물리적 충돌 없이 사업을 해냈다는 점이 그가 좋은 리더로 뽑힌 이유였다. 솔로시장 시절 보여준 서민친화적 리더십과 블루수칸(Blusukan·불시에 현장을 방문해 시찰한다는 뜻의 자와 속어)은 현재까지 그를 다른 정치인과 차별화하는 두 가지 핵심 이미지다. 거기에 그가 차기 대통령감으로 전국적 인기를 얻은 계기는 2012년 초. 솔로시 고등학교 학생들이 직접 만든 스포츠실용차(SUV) 에셈카(Esemka)를 자신의 관용차량으로 사용한다고 발표하고 상용화를 위해 자신이 직접 나서 독일 자동차회사에서 투자와 기술 지원을 받아내면서부터다. 조코위는 지금껏 자신의 대선 전략이나 차기 정부 구상 등을 직접 드러낸 적이 없다. 현재로선 그의 정치적 비전은 솔로와 자카르타 리더로서 보인 지난 행보와 그의 대선 캠프인 이른바 ‘11인의 팀’ 면면을 통해 유추해볼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더해 당대표 메가와티의 입도 지켜봐야 한다. 조코위가 대통령이 되면 자연스레 실질적 정국 구상은 메가와티로부터 나올 거란 우려가 뒤따르고 있다. 이런 탓에 조코위를 위협하는 경쟁자의 위세 또한 만만찮다. 조코위의 강력한 경쟁자이자 2009년 메가와티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에 출마했던 프라보워는 조코위와 매우 대조적인 인물이다. 그간 프라보워는 자신의 정치적 권력 의지를 감추지 않았다. 프라보워는 이미 2012년 9월께 자카르타 외신기자클럽을 찾아 오랜 기간 치밀하게 준비한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발표하는 등 적극적으로 자신의 대권 의지를 밝혔다. ‘소비하는 나라에서 생산하는 나라로’ 같은 인도네시아 경제 발전에 대한 뚜렷한 지향을 제시하는 식이다. “도서국인 우리가 소금과 생선을 수입해야 한다니 부끄럽다. 모든 것을 수입해야 하는 현실, 우리 국민이 값싼 임금의 노동자만 되고 있는 현실은 정치 엘리트들 때문이다.” 수카르노가 생전 연설 때마다 사용했던 것과 똑같이 제작된 마이크로 울려퍼진 이 프라보워의 음성이 자카르타 붕카르노 주경기장을 메웠다. 지난 3월25일 열린 그린드라당 선거운동 현장에는 약 150만 명이 운집했다. 그는 연설 내내 ‘지금이 아니면 언제’라는 당 선거 구호가 새겨진 티셔츠를 맞춰 입은 사람들에게 “지금이 아니면 언제 바꾸겠느냐”고 소리쳤다. 농부와 노동자의 표 모으는 프라보워 프라보워는 대중 연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농부의 자식, 노동자의 자식이 교수가 되고 출세하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가 계속해서 강조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부유해지는 시스템, 자립적인 경제 등의 어젠다는 수하르토 집권 시기의 어젠다와 비슷하다는 게 시민사회의 평가다. 프라보워의 애국적·민족주의적 경제관과 발전관은 아버지로부터 받은 영향이 크다. 수하르토 집권 시기 경제부 장관과 연구기술부 장관을 지낸 수미트로 조요하디쿠수모는 인도네시아의 저명 경제학자다. 그는 인도네시아농부협회(HKTI) 회장으로 농심을 공략해왔고, 올해 노동절에는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견고한 조직력을 갖춘 인도네시아노조연합(KSPI)과 인도네시아금속노조연맹(FSPMI)이 프라보워 지지를 선언하면서 농부와 노동자의 표를 모으고 있다. 인도네시아 기자들은 조코위와 프라보워의 상반된 리더십 스타일에 따라 취재 환경도 극명하게 갈릴 것으로 보고 있다. <템포>의 정치부 기자 박자는 “만약 프라보워가 대통령이 된다면, 기사 하나 잘못 써서 정보기관이든 대통령궁 뒷문으로든 불려가는 일이 생길 것”이라며 우려를 숨기지 않았다. “조코위라면 관료주의의 벽이 무너지고, 기자들이 어디서든 대통령을 불러세워 현안에 대한 의견을 들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프라보워 대통령’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있는데도 이처럼 프라보워가 높은 지지도를 유지하는 이유는 뭘까. 조코위가 등장하기 전까지 프라보워와 그가 이끄는 그린드라당은 부정부패에서 자유롭다는 평가가 많았다. 깨끗한 정부, 일하는 정부를 약속했던 SBY 정부가 각종 부패와 비리 사건에 얽힌 까닭에 프라보워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는 게 정치평론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여전히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한데, 전직 군인 SBY는 실패했고 아직 부패·비리 오점이 없는 프라보워에게 기대를 걸어본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임파르샬의 사무총장 풍키 인다르티는 유권자들이 과거 인권 탄압을 자행했던 인물을 다시 지도자로 진지하게 고려하는 상황에 대한 책임을 인권위원회의 태만으로 돌렸다. 인권위가 대선 후보의 과거, 특히 인권 탄압의 과거를 철저하게 조사하고 진실을 대중에게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실패하면, 프라보워 같은 반인권적 국가폭력 범죄자가 대통령이 되면 인도네시아의 민주주의는 후퇴할 것이다.” 지겨운 질문, 앵무새 같은 대답 프라보워는 자신이 1997~98년 재야 인사 납치 사건과 동티모르 독립운동 게릴라 유혈 진압 지휘 책임에 연루됐다는 비판에 대해 줄곧 “당시 군인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그때는 그것이 옳은 일이었지만 시대가 바뀌어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이 되었다”고 반박해왔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프라보워는 지난해 11월 <템포>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내가 지휘해 납치됐던 사람들이 나에게 와서 감사하다고 했다. 그들 중 일부는 그린드라당으로 출마해 의원이 됐다. 이제 그들은 내가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조코위와 프라보워, 두 사람 가운데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까? “이젠 그 질문에 답하기 지겹다.”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인 조코위와 프라보워는 서로 다른 질문에 똑같은 답을 내놨다. 이 둘이 지겨워하는 언론의 질문은 이렇다. “대선 출마설이 있는데, 자카르타 주지사 임기를 채울 건가?”가 2012년 9월 취임한 자카르타 주지사 조코위를 향한 것이라면, “시위자 납치 지휘 혐의 등 인권 탄압자로 지목되는데?”는 전직 특전사령관 프라보워를 향한 단골 질문이다. 이들은 매번 끈질기게 따라붙는 기자들의 질문에 “자카르타 주지사로 다음 5년을 보내기로 약속했다”(조코위), “나는 군인으로서 당시 나에게 주어진 업무를 수행했을 뿐이다”(프라보워)라고 앵무새처럼 답해왔다. 현재로선 그들의 대권 향배를 가늠해볼 수 있는 실마리는 명료하다. 조코위가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메가와티와 PDI-P에 모든 결정을 내맡길지, 그리고 프라보워가 자신을 향한 인권 탄압 책임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자카르타(인도네시아)=이슬기 통신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