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 미등록 로힝야 난민캠프. 당국의 비협조로 한 비정부기구(NGO)만이 제한적으로 구호활동을 펴고 있으며, 식량 구호는 전혀 없다. 대부분의 주거지는 대나무와 짚을 엉성하게 엮은 수준으로 매우 촘촘히 붙어 있고 그중 몇몇은 ‘주저앉은’ 모양새다. 그동안 기자가 접해본 수많은 난민캠프 중 가장 열악한 환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난민캠프 안 교육이 허용됐다면 지금쯤 교육받은 로힝야 세대가 형성돼 있을 텐데. 그 시간을 다 놓쳐버렸다.” 여기까지는 그나마 난민 인정을 받아 구호물품을 받고 초등교육이 가능한 등록 캠프의 상황이다. 미등록 캠프와 로힝야 슬럼가로 눈을 돌려보자. 그 열악함은 도저히 묘사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쿠투팔롱·레다 등 두 개의 미등록 캠프에 대략 7만~8만 명의 난민이 산다. 캠프에 속하지 않는 훨씬 많은 이들은 콕스바자르에서 멀지 않은 쇼미티파라, 파하라톨리, 그리고 배를 타야 닿을 수 있는 모헤시칼리 내 고립된 슬럼가 등에서 ‘숨죽이며’ 살고 있다. 슬럼가에는 아예 아무런 지원이 없고, 미등록 캠프를 대상으로 구호활동을 벌이는 비정부기구(NGO)는 국경없는의사회(MSF), 무슬림에이드(Muslim Aid) 그리고 기아반대행동(ACF) 세 곳이다. 이곳 난민들이 받는 구호는 식수·주거자재·의료 세 가지에 영양실조 방지 프로그램이 가미된다. 법적으로 노동이 금지돼 있으니 먹거리를 구하기가 막막하지만 식량 구호는 ‘쌀 한 톨’ 없다. 2012년 7월 방글라데시 정부는 이 제한적 구호마저 중단하라고 통보했다. 그 한 달 전인 6월 아라칸주에서 발생한 반로힝야 학살로 난민 대탈출이 예상된 직후였다. ‘(난민 구호가 잘되면) 더 많은 난민이 쏟아져 들어올 것’이라는 게 정부의 논리다. 당시 방글라데시 정부는 밀려드는 난민을 막고자 나프강 국경도 폐쇄했고, 국경수비대(BGF)는 보트피플로 도착한 이들마저 강으로 떠밀었다. 나날이 까다로워지는 대난민 정책이 암시하듯 난민캠프에 대한 외부인의 출입은 2012년 아라칸주 학살을 계기로 거의 불가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등록 캠프는 ‘허가증’으로 출입을 통제했다. 미등록 캠프에는 방문객을 주시하는 밀고자가 득실거렸다. 특히 미등록 캠프에서는 ‘로컬 멤버’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고는 오가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런 가운데 <한겨레21>은 지난 3월 미등록 캠프 한 곳을 뇌물 공여 없이 난민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방문할 수 있었다. “구호가 허용됐다 할 만한 상황 아냐” 캠프로 향하는 길 검문소는 다행히 느슨했다. 오전 11시께 들어선 캠프 안은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치며 걸어야 할 만큼 인파가 넘쳤다. 자잘한 채소 좌판과 이발소, 휴대전화 가게 등이 있었지만 학교도, 갈 곳도, 할 일도 없었다. 애나 어른이나 하릴없이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NGO의 도움으로 최근 보강을 했다는 몇 채의 주거지도 열악했다. 그렇지 않은 집들은 대나무와 짚이 엉성하게 엮여 있을 뿐이다. 이런 오두막들이 따닥따닥 붙어 있다. 그중 몇몇은 문자 그대로 ‘쓰러져간다’. 그동안 기자가 접해본 여러 난민캠프들 중 최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 여성이 기자를 의사로 착각했다. 손이 굽은 자매를 데리고 나와 보이자, 여기저기 아픈 아이를 데리고 나와 보이려는 엄마들이 길을 막아섰다. 꼽추로 태어난데다 몇 해 전 사고까지 만나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4살 소년 소메야딴은 치타공 병원에서 5만타카를 내야 수술을 받는다는 말을 듣고 발길을 돌렸다고 한다. “구호를 허용했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현재 우리가 하는 게 충분치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이상 아무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미등록 캠프를 지원하는 한 NGO 직원의 볼멘소리다. “그럼에도 유엔의 지원을 받는 등록 캠프와 식량 지원 없는 미등록 캠프를 비교해봤을 때 후자의 영양 상태가 전자와 크게 다르지 않은 건 기적 같은 일이다.” 릭샤, 고기잡이배… 온갖 저임금 시장 그 ‘기적’의 비밀은 뭘까. 미등록 캠프에서 활동하는 한 NGO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미등록 난민 가정의 평균수입은 월 5천타카고 지출은 1만타카 정도다. 수입의 일부는 보트피플로 떠나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일하는 가족들이 송금해준다. 등록 캠프에 친척이 있는 경우에는 구호 식량과 물자를 나눠 쓰기도 한다. 영양 상태가 ‘하향 평준화’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릭샤(세바퀴자전거 모양의 인력 교통수단) 운전이나 고기잡이배 승선, 건설일, 농사일 등 치타공·콕스바자르·테크나프 일대의 저임금 시장이 로힝야 난민들의 불법 노동으로 가득 메워져 있다. 콕스바자르 타운의 릭샤 운전자들은 대부분 로힝야 난민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0년 1월3일 방글라데시 당국이 콕스바자르에서 로힝야 단속에 들어갔을 때도 가장 먼저 단속 대상이 된 게 바로 이 릭샤 운전사들이었다.
방글라데시 미등록 로힝야 캠프에 사는 한 어린이가 굽은 손가락을 보이고 있다. 흔한 설사병에서부터 이 아이처럼 원인을 잘 알 수 없는 질병과 증세까지 구호활동이 제한된 캠프 난민들의 건강 상태는 열악했다(왼쪽). 같은 캠프에 사는 4살 소년 소메야딴은 꼽추로 태어나 사고까지 만난 뒤 늘 숨을 가쁘게 몰아쉰다. NGO가 운영하는 캠프 내 병원에서 기본적인 의료 지원만 가능할 뿐 질병 ‘치료’ 같은 건 꿈도 못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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