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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김칫국부터 마신 아라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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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10-1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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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독립국 지지' 발언에 반미시위 강경진압… 당혹감에 휩싸인 팔레스타인 민중

사진/ 아라파트는 자충수를 둔 것인가. 인티파다를 중지하자는 그의 주장은 팔레스타인 민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SYGMA)
팔레스타인에서는 미국이 던진 당근 때문에 내분이 일고 있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은 중동지역에 또다른 전쟁의 시작이었다. 전쟁의 불씨는 화려한 말의 성찬이다. “팔레스타인 국가 창설은 언제나 중동평화를 위한 미국의 비전 가운데 일부였다.”(조지 부시) “팔레스타인인들은 자신들의 영토에서 거주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토니 블레어) “팔레스타인과의 역사적인 타협을 통해 팔레스타인 국가가 창설될 것을 확신한다.”(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외무장관)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의 생존권을 인정하는 한 팔레스타인 국가는 존재해야 한다고 믿는다.”(조지 부시) 아프가니스탄 탈레반과 벌이고 있는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을 전후하여 미국이 제시한 당근의 하나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실현 청사진이다. 그런데 이 당근이 ‘뜨거운 감자’가 되어버렸다. 역설적이게도 부시 행정부와 이같은 태도 변화는 팔레스타인의 분열을 초래하고 있다.

의심스런 ‘팔레스타인 끌어안기’

테러 이후 <알자지라> 등 아랍방송과 신문은 연일 전쟁에 대한 특집을 내보냈다. 그 와중에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주민간의 유혈 충돌로 사망자의 장례 행렬은 계속됐고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반미·반전시위도 이어졌다. “테러증거 제시하라”, “미국의 공습은 국제법을 무시한 명백한 침략행위이다”라는 구호가 널리 퍼지고 있다. 그런 와중에 돌발사태가 발생했다. 하나는 미국이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창설을 지지한다는 연이은 입장 발표, 다른 하나는 팔레스타인 반미시위대에 대한 팔레스타인 경찰병력의 총격사건이다.


그동안 중동문제에 방관적인 태도를 보이던 부시 대통령이 갑자기 ‘팔레스타인 끌어안기’에 나선 것은 현재 진행중인 대(對)테러 전쟁에서 이슬람권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시도이다. 아라파트 수반도 미국이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아랍권의 눈치를 살피며 중동문제 해결에 적극 나설 수밖에 없는 정세를 활용하고 있다. 미국에 대한 테러가 발생하고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에 대한 미국의 공습이 시작되기 전에도 팔레스타인문제 조기 해결은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되어왔다. 사실 미국으로서는 파키스탄이나 인도네시아 등 여타 지역에서의 반미·반전 분위기는 큰 변수가 아니다. 미국의 주요 관심 대상은 아랍 국가들이다. 중동과 중앙아시아 순방에 나선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이나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아랍권 끌어안기에 여념이 없었다. 테러와의 전쟁은 이슬람과의 싸움이 아니며 군사공격이 주류도 아니라고 강변하면서 아랍국가의 지지를 얻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아랍 민중은 미국의 이스라엘에 대한 무조건 편들기가 제2, 제3의 테러의 빌미를 제공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이스라엘의 국가 테러리즘에 대한 팔레스타인의 자위권적 저항은 테러가 아니라고 항변해왔다. 아울러 이스라엘이 대테러 연대에 참여하거나 팔레스타인을 계속 공격한다면 테러와의 전쟁에 협력하기 곤란하다는 게 아랍권의 일반적인 입장이었다.

사실 미국이 주도하는 대테러 전쟁의 성패는 외교전에 달려 있다. 외교전의 관건은 이슬람권의 지지 확보다. 미국이 이전처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을 수수방관한다면 이슬람권의 지지를 얻어낸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미국이 이스라엘 아닌 아랍 편을 드는 생소한 광경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미국의 대테러 전쟁 동안만이라도 아랍인들의 감정을 자극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이 잠잠해져야 한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이라는 화두이다.

최근 미국과 이스라엘쪽이 팔레스타인 국가 창설에 대해 긍정적 입장을 취하자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내부의 대이스라엘 강경파에 대한 본격 제재 움직임을 보이고 나섰다. 지난 10월6일에는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이 이스라엘과의 휴전협정을 지키지 않으면 처벌할 것”임을 밝혔다. 자치정부는 이 성명에서 “휴전협정을 깨고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행위는 팔레스타인의 이익에 반하는 행위”라며 그 어느 때보다 강도 높게 무장단체들을 비판했다. 이어 팔레스타인 경찰은 이스라엘 당국이 수배중인 하마스, 이슬람 지하드 조직원 2명을 체포했다. 이같은 일련의 강경조치는 이스라엘이 요구한 강경론자 108명 처벌에 대한 화답의 일환이었다.

무장투쟁단체들 연대 움직임

사진/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반미시위가 거세다. 지난 10월8일 아라파트의 강경진압으로 7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SYGMA)
10월8일에는 좀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에 항의하고 오사마 빈 라덴을 지지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시위가 발생했다. “아프가니스탄 만세, 이슬람 만세, 팔레스타인 만세”, “빈 라덴! 빈 라덴!”이라는 연호가 이어졌다. 여느 때 같았다면 일상적인 반미시위였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 시위가 팔레스타인 경찰병력에 의해 제지당하고 총격전이 발생하여 7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자치정부는 10월9일 가자지구를 비롯한 모든 학교들에 휴교령을 내리고 모든 외신기자들의 취재를 봉쇄했다. <예루살렘 포스트>는 팔레스타인 당국이 이스라엘쪽에 시위 진압 장비의 제공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이런 일들이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유혈충돌의 근본 원인은 이스라엘과의 휴전을 준수해야 한다는 야세르 아라파트 자치정부 수반과 휴전을 거부하는 하마스 등 팔레스타인 무장단체간의 알력이다.

팔레스타인의 유혈 내분사태는 미국 주도의 대테러 전쟁을 지지하는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이에 반대하는 하마스, 이슬람 지하드 등 무장단체들간의 갈등이 드러난 것이다. 하마스, 이슬람 지하드 등 팔레스타인 강경세력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폭력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들은 아라파트 수반의 휴전명령을 거부하고 있으며 팔레스타인 주민들로부터 지지를 얻고 있다. 현재 하마스와 이슬람 지하드뿐만 아니라 아라파트 휘하에 있는 무장조직인 파타까지 반아라파트 공동연합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라파트로서는 지난 91년 걸프전 때 줄을 잘못 서 낭패를 본 쓰라린 경험을 되씹고 있는지 모른다. 아울러 교착상태에 빠져버린 독립국가 건설의 호기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시위 강경진압은 자칫 과격한 시위 분위기가 오히려 팔레스타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킨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게다가 미국의 대중동정책의 근본이 바뀔 것이라는 불투명한 전망도 아라파트를 다급하게 만들고 있다. 미국 내 여론 주도층을 형성하고 있는 유대인들의 반발은 부시 행정부로서도 넘기 어려운 산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제기하다시피 이번 미국의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이라는 화두가 미국이 아프간 공격에 필요한 아랍국가들의 병참 지원을 확보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띄우고 있는 애드벌룬인지도 모른다. 장기적인 테러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아예 원인치료 차원에서 새로운 중동 평화전략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라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이제까지의 미국의 편향된 정책이 테러를 불러일으켜왔다는 대한 자각과 반성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사실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라파트와의 투쟁, 이슬라엘과의 투쟁

전문가들은 아라파트의 이같은 움직임을 두고 자충수라고 분석한다. 정권유지에 과도하게 집착해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다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가 최근 들어 팔레스타인 국가 창설을 지지하고 나섰지만 아무런 구체적인 대안도 내용도 없지 않느냐는 반문이 거세다. 독립국가 건설을 앞두고 지난 수년간 이스라엘과 벌여온 상호 이견도 좁히지 못했는데 이 난리판에 무슨 결론이 나겠냐는 회의론이다. 그 어느 때보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반아라파트 감정이 거세다. 적 이스라엘을 향해 겨눠져야 할 총부리가 자신들을 향해 겨눠졌다는 당혹감이 그 기저에 깔려 있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아라파트 진영에 대항하면서 이스라엘을 상대로 하는 인티파다 전선을 동시에 유지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는지도 모른다.

암만=김동문 통신원 yahiya@hani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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