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의 한 극장에서 영화 <수카르노>가 시작하기 전 관객들이 일어서서 인도네시아 국가를 부르고 있다.
역사 왜곡 시대착오적 내용 많아 최근 인도네시아에서는 역사적 지도자의 삶을 다룬 영화를 극장에서 자주 만나게 된다. 브라만티오 감독이 연출한 것만 세 편이다. 2010년 이슬람 지도자이자 무함마디야 설립자인 아흐마드 다흘란의 일대기를 그린 <상 펜츠라>(Sang Pencerah)를 시작으로 2012년 12월에는 32년 수하르토 철권통치가 무너지고 부통령에서 대통령직을 승계한 하비비 3대 대통령과 그의 작고한 부인 아이눈의 로맨스를 주제로 한 <하비비와 아이눈>(Habibie and Ainun)을 만들었다. 2013년 5월에는 3천만 회원을 둔 이슬람 사회단체 나들라툴울라마(NU) 설립자 하심 아샤리의 일대기를 그린 라코 프리얀토 감독의 영화 <상 키아이>(Sang Kiai)가 개봉했다. <상 키아이>는 NU를 전국적 지지 기반으로 한 국민각성당(PKB) 의원과 당원들이 반드시 봐야 할 ‘교육용’ 영화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국민각성당 조직위 총무 루크만 눌하킴은 지난해 5월 당의 단체관람 전 만난 자리에서 “<상 키아이>를 통해 선거를 앞둔 당의 과제와 결집력, NU 회원들의 충성도를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역사책에 나오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상업영화가 쏟아지는 이유는 뭘까. 시사주간지 <템포>에서 15년간 연극·문화면을 담당해온 고참 기자 세노 조코는 “최근 3~4년간 두드러진 트렌드”라고 말했다. 브라만티오 감독의 <상 펜츠라>부터 프리얀토 감독의 <상 키아이>, 그리고 가린 누그로호 감독이 인도네시아 최초 주교 수기야프라나타를 다룬 2012년작 <수기야> (Soegija) 등을 대표적 예로 꼽았다. “아직 반공주의가 생생하게 살아 있는 인도네시아에서 수카르노가 아니라 인도네시아공산당(PKI) 지도자 탄 말라카에 대한 상업영화도 만들 수 있을까. 대중적 인기가 있는 수카르노를 영화화한 건 안전한 흥행 전략인 거다.” 조코의 분석이다. <상 펜츠라>는 3500만 무함마디야 회원이 잠재 관객이고, <상 키아이> 역시 설립자 아샤리의 이야기를 보려는 NU 회원만 3천만 명이라는 설명을 더했다. 실제로 <상 펜츠라>와 <하비비와 아이눈> <수카르노>를 연출한 브라만티오 감독은 수카르노처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지도자에 대한 이야기는 관객 동원이 쉽고 투자자와 제작자를 찾는 것도 수월하다고 말했다. 이들 영화의 흥행 성적을 살펴보면 <하비비와 아이눈>은 450만 관객 동원으로 2012년 최다 관객 수를 기록했고, <상 키아이>는 400만 명, <상 펜츠라>는 120만 명이 봤다. 인도네시아에서 역대 최다 관객을 동원한 2001년작 <젤랑쿵>(Jelangkung)의 성적이 570만 명인 것을 기준으로 보면 선전이다. 지난 1월6일 자카르타 남부 스나얀 의회 사무실에서 만난 멜라니 레이마나 수할리 국민협의회(MPR) 부의장은 “젊은 세대에게 서구가 아닌 우리 역사 속 이상적 지도자의 예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런 영화가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수카르노 정부의 부총리, 보건부 장관을 역임한 국가 영웅 요하네스 레이메나의 딸인 멜라니 민주당 의원은 이런 상업영화가 지도자상을 제시하는 친근한 부교재가 될 수 있다고 봤다. 인도네시아 사회비평 칼럼으로 엮은 <나의 이슬람> 저자인 사회학자 줄리아 수르야쿠수마는 이런 유형의 영화가 성행하는 배경으로 ‘리더십 위기’와 ‘역사 이해에 대한 갈증’이라는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2014년 선거에서도 그 나물에 그 밥인 후보군을 보며 좋은 리더십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이 커지고 있다는 징후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수르야쿠수마는 “상업적 이익 논리에 따라 영화가 역사를 왜곡하거나 시대착오적인 내용으로 채워지는 경우가 많다. 이런 영화는 역사 이해의 관점에서 보면 상당히 미숙하다”고 평가했다. “독립 뒤 영웅들 다 부패 비리로 끝나” 상영 5주째에 접어든 현재 극장에서 <수카르노>를 본 사람은 90만 명 정도. 건국의 아버지를 기억하는 전국 2억4천여 명을 아우를 거라는 감독의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이다. 자카르타 사무직 직장인들 대개가 ‘호기심에 봤는데 별로’라며 혹평했다. 오토바이택시 ‘오젝’ 기사 아디(40)는 “독립 뒤 영웅이라 할 만한 지도자들은 다 부패 비리로 끝났다. 수카르노도 좋지만 이제는 새로운 진짜 영웅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자카르타(인도네시아)=글·사진 이슬기 통신원 skidolma@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