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일상생활까지 통제하는 미국 반테러법 초안 위를 어슬렁거리는 매카시의 망령
대부분의 뉴욕 시민들은 자신들의 일상적인 삶이 관료적인 규정에 얽매이는 걸 질색한다. 2년 전 줄리아니 뉴욕 시장이 도로교통법을 엄격히 시행할 뜻을 내비쳤다. 빨간 신호등을 무시하고 길을 건너면 벌금을 물리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자 많은 시민들이 “뉴욕은 보행자의 천국인데 무슨 소리냐”며 반발했고, 줄리아니 시장은 뒤로 물러서야 했다. 길에서 담배꽁초를 버려도, 경찰이 그런 모습을 뻔히 바라만 보는 곳이 뉴욕이다. 시민생활을 위협하는 강도나 절도, 폭행 따위를 저지르지 않는다면 일상적인 삶에 재갈을 물리는 일은 적어도 뉴욕에선 일어나지 않는다. 뉴욕뿐 아니다. 미국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귀하게 여겨왔다. 그런 미국에서 최근 반테러법을 중심으로 한 통제정책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9·11 테러참사를 겪고난 뒤 미국적 애국주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 바람을 타고 부시 행정부는 필요하다면 개인의 인터넷 사용내역을 들여다볼 수 있고, 도청과 계좌추적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경찰국가 같은 법을 만들려 한다. 9·11 테러사건이 일어난 지 열흘이 채 안 되는 9월19일 부시 행정부는 반테러법 초안을 미 의회에 제출했다. 정식명칭은 Provide Appropriate Tools Required to Intercept and Obstruct Terrorism(PATRIOT) 법안이다. 법안의 머리글자(PATRIOT)는 지금 부는 미국의 애국주의 바람을 떠올린다.
전자우편 아무 때나 엿볼 수 있어
이 반테러 법안을 둘러싸고 두 가지 견해가 팽팽히 맞서 있다. 미국인들이 지금까지 누려온 자유가 훼손돼서는 안 된다는 주장과 테러를 막기 위해선 어느 정도 자유를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테러 법안 초안은 전화통화 엿듣기, 전자우편 엿보기는 물론, 의심스런 자에 대한 입국거부와 추방을 한층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도청감시 시스템에 대한 사용규제를 푸는 것도 주요내용이다. 반테러 법안이 통과되면 미 경찰이나 연방수사국(FBI)은 카노버(Carnivore)라는 교묘한 도청 시스템을 무제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는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가능했던 일이다. 또한 미 중앙정보부(CIA)나 FBI는 미국에 우호적인 국가들과 합동으로 에셜론(Echelon)이란 자료집적 시스템을 통해 은행계좌 거래내역, 신용카드 사용내역 등 한 개인에 대한 광범한 자료를 캐낼 수 있다. 미 법학계에선 에셜론 시스템 운용은 미국 헌법이 규정한 개인의 사생활 자유를 침해한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반테러법이 통과되면, 수사당국은 인터넷 관련회사나 신용카드사에 법원의 영장없이 들이닥쳐 고객의 모든 자료를 다 뒤질 수 있게 된다. 반테러법의 쟁점사항 가운데 특히 시민의 사생활 보호와 관련해 문제가 되는 것이 전자우편 검열이다. 9·11 사건 뒤 FBI는 야후, 아메리카온라인, 마이크로소프트의 핫메일 등 인터넷 서비스업체들의 협조를 얻어 대규모 감청을 실시한 바 있다. 전자우편 계정 이용자 가운데 모하메드, 알라, 알리 등 아랍계 이름을 지닌 사람들은 일단 테러 용의자로 몰려 사생활이 담긴 그들의 이메일이 감시당했다고 보면 틀림없다. 반테러법은 비공식으로 행해지던 그런 경찰국가적 행위에 대해 법적 정당성을 마련해줄 참이다. 번거로운 영장청구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FBI 요원들은 인터넷 감청기술인 카노버로 개인의 전자우편을 아무 때나 열어볼 수 있게 된다. 미국 거주 외국인에게 불어닥친 시련
미국 시민권이 없는 사람들에게 반테러법은 더욱 가혹하다. 일단 테러 용의자로 몰리면, 법원의 영장없이 구금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테러예방대책이란 구실 아래 불법체류자는 물론 영주권자라도 테러범이라는 의심 하나만으로도 국외추방 등 긴급조치를 취할 수 있는 게 반테러법이다. 테러범으로 의심되는 외국인을 48시간 동안 구금하고, 그의 혐의가 드러나지 않더라도 이민귀화국(INS)은 국외추방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이는 지난 96년 제정된 INS 규칙(특수상황 또는 중범죄를 저지른 외국인 불법체류자를 긴급체포해 본국으로 강제추방하고 구금기간도 24시간으로 한정)을 더욱 강화한 것이다.
미국시민자유연합(ACLU) 워싱턴지역 책임자 로라 머피는 “반테러 법안은 합법 또는 불법 이민자들이 억울하게 체포되었을 경우 자신을 변호할 어떠한 기회도 주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반테러법 초안에 따르면 어떤 시민도 “평화적인 목적”말고는 생화학물질을 만질 수 없다. 중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의 DNA 추출도 합법적이 된다. ACLU를 비롯한 163개 시민단체들은 공동성명을 발표, 미국 내 인권단체들은 이 개정안이 인권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법령이라고 비판했지만, 부시 행정부는 그런 쪽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한마디로 전례가 없는 시민권 제한이 추진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비판자들은 매카시즘 바람이 21세기에 부활하는 것이 아니냐고 걱정한다.
반테러 법안 추진 사령탑인 존 애슈크로프트 법무장관은 부시 행정부 안에서도 대표적인 강경 보수주의자다. 그는 “앞으로도 늘어날 테러행위를 막기 위해선 강력한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며 반테러법이 이른 시일 안에 의회에서 통과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원 법사위에서 현재 계류중인 반테러 법안은 심의를 거쳐 10월 중순쯤에 통과될 전망이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테러와의 전쟁이라지만, 실제로 미국이 2차 세계대전 같은 심각한 전시상황에 놓여 있는 것도 아닌데 부시 행정부가 시민의 자유를 속박하려든다”고 강하게 반발한다.
미국 역사에서 전시상황마다 시민의 자유가 제한받은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남북전쟁 당시 링컨 대통령은 언론출판의 자유를 제한하고 정치범을 군사재판에 넘겼다. 1917년 1차 세계대전 참전을 선언한 뒤 미 의회는 般반역, 반란, 폭력행위”를 선동하는 내용을 우편으로 보내는 것을 금지하는 법률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윌슨 대통령은 적에 도움이 될 정보를 출판하는 자에게 당시로선 거금인 1만달러 벌금에 10년 징역형을 내릴 수 있는 스파이법마저 의회에 제출했다(당시 미 의회는 격론 끝에 184 대 144로 부결시켰다). 그러나 이런 예들은 실제로 미국이 엄청난 전쟁상황에 들어갔을 때 벌어진 일들이다. 미 시민단체들은 “부시 행정부가 9·11 테러사건을 이용, 경찰국가의 우두머리로 자리매김하려 한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민주당도 몸을 사리고
10월 초 이틀 동안 열린 의회 청문회에서도 필요론과 부작용론이 맞서 뜨거운 논전이 벌어졌다. 애슈크로프트 법무장관은 “반테러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시민의 기본권이 훼손당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비판론을 달래려 했다. 그러나 조지타운대학의 데이비드 콜 교수 같은 이들은 “법안 초안이 우리 시민들이 부딪힐 위협을 꼼꼼하게 따져보지 않았다”면서 법안이 너무 졸속으로 급히 만들어진 점을 지적했다. 콜 교수는 이민자들을 단지 의심스럽다는 이유 하나로 구금한다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입장이다. 워싱턴 아메리카대학의 브리안 포스트 교수는 반테러 법안이 결과적으로 부시 행정부에 강력한 법적 도구를 안겨주겠지만 그 부작용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50년대 시민운동가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았던 매카시즘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임 FBI 국장 로버트 뮐러는 반테러 법안 통과를 위해 물밑에서 활발한 로비활동을 펴왔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이 법안을 2003년 12월까지만 운용하자는 대안을 내놓았다. 테러 방지를 위해서라면 한시적으로 받아들이자는 논리다. 이같은 어정쩡한 태도는 9·11 테러사건 전에 카노버 도청 시스템에 대해 “인권침해가 아니냐”며 목청을 높이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미국적 애국주의 열풍에 정치인들도 몸을 사리는 모습이다. 9·11 테러사건으로 부시 행정부는 반테러 연합전선 형성에 집착한 나머지, 그동안 인권탄압을 저질러온 우즈베키스탄, 파키스탄 등 아시아의 독재국가들에 추파를 던져왔다. 인권을 잣대로 외교관계를 가늠한다던 이른바 인권외교는 말끔히 실종된 상태다. 다시 동서냉전시대의 외교 잣대(우리편이냐, 적이냐의 이분법)가 등장했다. 덩달아 미국의 인권도 침해될 참이다. 이를 두고 많은 시민단체들은 “정말로 조지프 매카시의 망령이 살아나는 거냐”는 걱정스런 눈길로 부시 행정부를 지켜보고 있다.
뉴욕=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 kimsphoto@yahoo.com

사진/ 미국인들 사이에도 반테러법을 보는 시각이 엇갈려 모이면 입씨름을 벌인다. 시민단체들은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정치권은 몸을 사리는 모습이다.(김재명)
이 반테러 법안을 둘러싸고 두 가지 견해가 팽팽히 맞서 있다. 미국인들이 지금까지 누려온 자유가 훼손돼서는 안 된다는 주장과 테러를 막기 위해선 어느 정도 자유를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테러 법안 초안은 전화통화 엿듣기, 전자우편 엿보기는 물론, 의심스런 자에 대한 입국거부와 추방을 한층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도청감시 시스템에 대한 사용규제를 푸는 것도 주요내용이다. 반테러 법안이 통과되면 미 경찰이나 연방수사국(FBI)은 카노버(Carnivore)라는 교묘한 도청 시스템을 무제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는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가능했던 일이다. 또한 미 중앙정보부(CIA)나 FBI는 미국에 우호적인 국가들과 합동으로 에셜론(Echelon)이란 자료집적 시스템을 통해 은행계좌 거래내역, 신용카드 사용내역 등 한 개인에 대한 광범한 자료를 캐낼 수 있다. 미 법학계에선 에셜론 시스템 운용은 미국 헌법이 규정한 개인의 사생활 자유를 침해한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반테러법이 통과되면, 수사당국은 인터넷 관련회사나 신용카드사에 법원의 영장없이 들이닥쳐 고객의 모든 자료를 다 뒤질 수 있게 된다. 반테러법의 쟁점사항 가운데 특히 시민의 사생활 보호와 관련해 문제가 되는 것이 전자우편 검열이다. 9·11 사건 뒤 FBI는 야후, 아메리카온라인, 마이크로소프트의 핫메일 등 인터넷 서비스업체들의 협조를 얻어 대규모 감청을 실시한 바 있다. 전자우편 계정 이용자 가운데 모하메드, 알라, 알리 등 아랍계 이름을 지닌 사람들은 일단 테러 용의자로 몰려 사생활이 담긴 그들의 이메일이 감시당했다고 보면 틀림없다. 반테러법은 비공식으로 행해지던 그런 경찰국가적 행위에 대해 법적 정당성을 마련해줄 참이다. 번거로운 영장청구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FBI 요원들은 인터넷 감청기술인 카노버로 개인의 전자우편을 아무 때나 열어볼 수 있게 된다. 미국 거주 외국인에게 불어닥친 시련

사진/ 에슈크로프트 법무장관(위)과 메카시 전 상원의원(아래쪽, 왼쪽에서 두번째). 지금 미국에선 1950년대와 마찬가지로 "내 편이냐, 적이냐"의 이분법이 판을 치고 있다.(SYGM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