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5일 오후,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던 프랑스 수도 파리 도심의 생라자르역 근처. 미국 빈티지 의류 판매 행사장에 옷을 사러 온 젊은이들 무리 사이에서 심한 욕설과 고함이 오갔다. 한쪽은 건장한 극우파 성향의 스킨헤드족, 다른 한쪽은 반파시즘 운동을 하는 좌파 성향의 젊은이들이었다. 그리고 10여 분 뒤, 행사장 밖에서 이들이 몸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청년이 피를 토하며 길바닥에 쓰러졌다. 곧바로 구급차가 현장에 도착해 청년을 병원으로 옮겼다. 뇌사 상태에 빠진 그는 결국 이튿날 숨을 거뒀다.
극우파 폭력 규탄 확산… 위축된 국민전선
19살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이 젊은이는 프랑스 최고 명문 그랑제콜인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 학부 1학년에 재학 중이던 클 레망 메리크다. 그는 새내기 시절부터 반파시즘 운동단체에서 활동한 열정적인 청년이었다. 가해자인 극우파 청년들 쪽은 메리크가 몸싸움을 하던 중 넘어졌다고 주장한다. 그 때문에 뇌손상을 입어 숨을 거둔 것이지, 처음부터 살인할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부검 결과 직접적 사망 원인은 극우파 청년들이 주먹에 낀 이른바 ‘너클더스터’라는 무기로 안면을 가격한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사건이 일어난 다음날부터 프랑스 사회가 술렁였다. 그의 모교에서 학생과 교직원들이 모여 추모집회를 연 것을 시작으로, 프랑스 주요 도시 10여 곳에서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모인 시민들이 극우파의 ‘증오 폭력’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었다. 좌파 정당들은 이 사건의 성격을 ‘극우파의 폭력에 좌파 활동가가 희생된 정치적 사건’으로 규정했다. 반면 우파 정당들은 극우파와 분명한 선을 그으며 비판하면서도, 이 사건을 정치적 사건보다는 청년들의 우발적 폭력 사건으로 규정한다.
여론의 시선은 무엇보다 극우파 정당인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대표에게 집중됐다. 극우파 청년들과 국민전선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의혹 때문이었다. 르펜은 이를 강력히 부인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이어지던 지지율 고공 행진 추세가 이 문제를 계기로 흔들릴 조짐이다. 지난 4월 한 여론조사기관이 실시한 ‘2012 대선 후보자들에 대한 지지도 재조사’에서 우파의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34%)에 이어 르펜(23%)이 2위를 차지했다. 좌파 사회당 소속인 프랑수아 올랑드 현 대통령의 지지율은 19%에 그쳤다. 다시 대선이 치러진다면, 결선투표에서 사르코지 전 대통령과 맞설 후보는 올랑드 대통령이 아니라 르펜이란 얘기다.
메리크를 폭행한 문제의 극우파 청년들은 프랑스 극우파 단체 ‘제3의 길’(TV)의 이른바 전위조직인 ‘혁명적 민족주의 청년’(JNR)지지자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제3의 길’은 냉전이 한창이던 1970년대 반공주의와 반미주의, 반시오니즘을 표방하며 태어난 극단적 민족주의 운동단체다. 1980년대 들어 여러 극우파 단체와 합종연횡을 거듭하며 쇠락의 길로 들어서는 듯했던 이 단체는, 1987년 청년조직이 주축이 돼 프랑스 전역의 신나치주의 성향의 스킨헤드족을 결집한 ‘혁명적 민족주의 청년’을 탄생시키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스스로 ‘신나치’임을 표방하는 이들은 평소 프랑스에서 유대인·아랍인 등 외국인들을 ‘청소’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각종 집회·시위에서 폭력을 휘둘러왔다. 특히 이들은 조직의 리더인 세르주 아유브를 중심으로 정치권 진입도 시도했다. 아유브는 1993년 총선에서 ‘혁명적 민족주의 청년’ 소속임을 내세우며 파리 외곽 지역에 직접 출마했다. 0.17%의 저조한 득표로 끝나자, 1995년부터는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 후보로 정치권 진입을 시도했지만 공천을 받지 못했다.
‘신나치’ 표방하며 국민전선과 협력
이후 ‘혁명적 민족주의 청년’은 급격히 쇠퇴의 길로 접어드는 듯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조직을 새롭게 정비해 다시 부활했다. 특히 국민전선의 지지도가 급상승해온 최근 몇 년간 이 조직에도 많은 젊은이가 새로 가입하면서 활력을 찾았다. 각종 시위에서 수십 명에서 수백 명까지 건장한 스킨헤드족들이 검은 옷을 맞춰 입고 행진하며 종종 세력을 과시했다. 그들은 다른 극우 청년단체들과 때로는 협력을, 때로는 경쟁을 통해 청년 극우 운동을 주도하며 존재감을 조금씩 키워갔다. 이들은 2010년 지방선거와 2012년 총선·대선을 전후로 국민전선을 통한 제도 정치권 진입을 다시 모색해보았으나 국민전선 청년조직(FNJ)과의 노선 차이로 인해 성사시키지 못했다. 대신 평소 국민전선 활동에 자원봉사 형식으로 참여하거나, 대선에서 사실상 지지 활동을 벌였다. 국민전선 쪽은 “그들의 일방적인 구애”였을 뿐 그동안 ‘혁명적 민족주의 청년’ 쪽과는 일정 거리를 유지해왔다며, 이번 사건과 국민전선을 연계시키는 여론은 부당하다고 항변하고 있다. 그러나 집권 사회당 정부는 메리크의 사망 사건을 계기로 극우파 조직들의 강제 해산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마뉘엘 발스 내무장관은 지난 6월6일 프랑스 공영방송 <채널2>에 출연해 “프랑스 공화국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 극우파 단체의 해산에 대한 법적 조치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이틀 뒤 장마르크 에로 총리는 발스 내무장관에게 “극우파 단체의 강제 해산을 추진하라”고 명했다. 지난 6월11일 사회당이 주도하는 프랑스 하원의회에서도 이와 관련된 논의 절차에 들어갔다. 사회당 “극우 단체 강제 해산 검토” 그러나 극우파 단체의 강제 해산과 관련해 우파 진영은 물론 좌파 진영에서도 현재 논란이 분분하다. 논란은 크게 ‘강제 해산의 실효성’과 ‘강제 해산의 적법성’ 문제, 두 갈래로 나눠볼 수 있다. 강제 해산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은 이렇게 지적한다. “극우 단체를 강제로 해산하면, 이들이 지하조직으로 발전해 도리어 잠재적 위험을 키울 수 있다.” 이는 주로 공안 관련 부처 정부 당국자들 사이에서 나오는 의견인데, 극우 단체가 공개적인 활동을 할 수 있게 해줘야 경찰이나 정보기관에서 이들의 동향을 면밀히 파악하고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특정 단체를 강제 해산시켜도, 다시 새로운 조직을 만들면 그만이기 때문에 해산의 실효성도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2002년 요인 암살을 시도해 강제 해산된 한 신나치주의 극우파 단체는 지금 다른 이름의 단체로 부활해 활동하고 있다. 강제 해산의 적법성 논란은 주로 정치권과 학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사회당 정부가 극우파 단체 강제 해산의 명분으로 사용하려는 법적 근거는 1936년 1월10일 제정한 ‘민병대와 전투조직에 관한 법’이다. 이 법에 따르면 “종교·인종·출신지 등의 이유로 개인에게 증오와 폭력을 행사하는 단체나 거리에서 무장 시위를 하는 단체는 해산시킬 수 있다”고 돼 있다. 실제로 이 법에 근거해 프랑스에서는 지난 76년 동안 100여 개 단체가 강제 해산된 선례도 있단다. 그러나 이른바 ‘무장 시위’는 판단의 근거가 비교적 명확할 수 있지만, ‘개인에게 증오와 폭력을 행사하는’이라는 문구는 법률적으로 판단이 애매한 경우가 많다는 점이 문제다. 실제로 프랑스의 최고 행정법원 역할을 하는 ‘국사원’은 이 문제로 단체의 강제 해산을 몇 차례 무효화한 전례가 있다. 사회당 내부에서조차 “여론에 휩쓸려 지나치게 성급하게 이 문제를 처리하기보다는, 조금 더 차분히 시간을 갖고 신중하게 접근하자”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파 “극좌 단체도 해산” 맞불 사회당 정부가 이번 강제 해산의 칼날을 극우파 단체에만 휘두르는 것에 대한 형평성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우파 진영은 사망한 메리크가 주로 활동해온 ‘파리 외곽 지역 반파시스트자들’(AAPB)이라는 단체가 극좌파 성향의 단체라고 주장한다. 강제 해산의 칼날이 극우파는 물론 극좌파에도 동시에 가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부 언론은 메리크가 그동안 이 단체의 활동 과정에서 벌인, 경찰 쪽에 의해 채증된, 격렬한 시위 장면을 보여주며 이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러한 논란에도 사회당 정부의 의지는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하다. 올랑드 대통령의 지지도 하락과 동성 결혼과 동성 부부 입양 합법화 반대 시위로 수세에 몰렸던 정국의 반전을 꾀해보려는 정치적 셈법도 엿보인다. 무엇보다 프랑스 공화국의 헌법적 가치와 역사를 위협하는 극우파가 꾸준히 세력을 확대해온 지난 10여 년에 대한 위기감이 그 근저에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몰역사적이고 극우적인 사고방식이 독버섯처럼 퍼져나가는 것에 대한 위기감이 프랑스 사회에서 어느 때보다 크다. 파리(프랑스)=윤석준 통신원 semio@naver.com
‘무력시위?’ 프랑스 극우단체 ‘제3의 길’의 전위조직인 ‘혁명적 민족주의 청년’(JNR) 회원들이 건장한 스킨헤드족을 앞세우고 거리시위를 벌이고 있다.JNR 제공
이후 ‘혁명적 민족주의 청년’은 급격히 쇠퇴의 길로 접어드는 듯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조직을 새롭게 정비해 다시 부활했다. 특히 국민전선의 지지도가 급상승해온 최근 몇 년간 이 조직에도 많은 젊은이가 새로 가입하면서 활력을 찾았다. 각종 시위에서 수십 명에서 수백 명까지 건장한 스킨헤드족들이 검은 옷을 맞춰 입고 행진하며 종종 세력을 과시했다. 그들은 다른 극우 청년단체들과 때로는 협력을, 때로는 경쟁을 통해 청년 극우 운동을 주도하며 존재감을 조금씩 키워갔다. 이들은 2010년 지방선거와 2012년 총선·대선을 전후로 국민전선을 통한 제도 정치권 진입을 다시 모색해보았으나 국민전선 청년조직(FNJ)과의 노선 차이로 인해 성사시키지 못했다. 대신 평소 국민전선 활동에 자원봉사 형식으로 참여하거나, 대선에서 사실상 지지 활동을 벌였다. 국민전선 쪽은 “그들의 일방적인 구애”였을 뿐 그동안 ‘혁명적 민족주의 청년’ 쪽과는 일정 거리를 유지해왔다며, 이번 사건과 국민전선을 연계시키는 여론은 부당하다고 항변하고 있다. 그러나 집권 사회당 정부는 메리크의 사망 사건을 계기로 극우파 조직들의 강제 해산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마뉘엘 발스 내무장관은 지난 6월6일 프랑스 공영방송 <채널2>에 출연해 “프랑스 공화국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 극우파 단체의 해산에 대한 법적 조치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이틀 뒤 장마르크 에로 총리는 발스 내무장관에게 “극우파 단체의 강제 해산을 추진하라”고 명했다. 지난 6월11일 사회당이 주도하는 프랑스 하원의회에서도 이와 관련된 논의 절차에 들어갔다. 사회당 “극우 단체 강제 해산 검토” 그러나 극우파 단체의 강제 해산과 관련해 우파 진영은 물론 좌파 진영에서도 현재 논란이 분분하다. 논란은 크게 ‘강제 해산의 실효성’과 ‘강제 해산의 적법성’ 문제, 두 갈래로 나눠볼 수 있다. 강제 해산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은 이렇게 지적한다. “극우 단체를 강제로 해산하면, 이들이 지하조직으로 발전해 도리어 잠재적 위험을 키울 수 있다.” 이는 주로 공안 관련 부처 정부 당국자들 사이에서 나오는 의견인데, 극우 단체가 공개적인 활동을 할 수 있게 해줘야 경찰이나 정보기관에서 이들의 동향을 면밀히 파악하고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특정 단체를 강제 해산시켜도, 다시 새로운 조직을 만들면 그만이기 때문에 해산의 실효성도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2002년 요인 암살을 시도해 강제 해산된 한 신나치주의 극우파 단체는 지금 다른 이름의 단체로 부활해 활동하고 있다. 강제 해산의 적법성 논란은 주로 정치권과 학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사회당 정부가 극우파 단체 강제 해산의 명분으로 사용하려는 법적 근거는 1936년 1월10일 제정한 ‘민병대와 전투조직에 관한 법’이다. 이 법에 따르면 “종교·인종·출신지 등의 이유로 개인에게 증오와 폭력을 행사하는 단체나 거리에서 무장 시위를 하는 단체는 해산시킬 수 있다”고 돼 있다. 실제로 이 법에 근거해 프랑스에서는 지난 76년 동안 100여 개 단체가 강제 해산된 선례도 있단다. 그러나 이른바 ‘무장 시위’는 판단의 근거가 비교적 명확할 수 있지만, ‘개인에게 증오와 폭력을 행사하는’이라는 문구는 법률적으로 판단이 애매한 경우가 많다는 점이 문제다. 실제로 프랑스의 최고 행정법원 역할을 하는 ‘국사원’은 이 문제로 단체의 강제 해산을 몇 차례 무효화한 전례가 있다. 사회당 내부에서조차 “여론에 휩쓸려 지나치게 성급하게 이 문제를 처리하기보다는, 조금 더 차분히 시간을 갖고 신중하게 접근하자”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파 “극좌 단체도 해산” 맞불 사회당 정부가 이번 강제 해산의 칼날을 극우파 단체에만 휘두르는 것에 대한 형평성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우파 진영은 사망한 메리크가 주로 활동해온 ‘파리 외곽 지역 반파시스트자들’(AAPB)이라는 단체가 극좌파 성향의 단체라고 주장한다. 강제 해산의 칼날이 극우파는 물론 극좌파에도 동시에 가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부 언론은 메리크가 그동안 이 단체의 활동 과정에서 벌인, 경찰 쪽에 의해 채증된, 격렬한 시위 장면을 보여주며 이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러한 논란에도 사회당 정부의 의지는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하다. 올랑드 대통령의 지지도 하락과 동성 결혼과 동성 부부 입양 합법화 반대 시위로 수세에 몰렸던 정국의 반전을 꾀해보려는 정치적 셈법도 엿보인다. 무엇보다 프랑스 공화국의 헌법적 가치와 역사를 위협하는 극우파가 꾸준히 세력을 확대해온 지난 10여 년에 대한 위기감이 그 근저에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몰역사적이고 극우적인 사고방식이 독버섯처럼 퍼져나가는 것에 대한 위기감이 프랑스 사회에서 어느 때보다 크다. 파리(프랑스)=윤석준 통신원 semio@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