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첫 국가탄생… 본격 정치무대에 오른 동티모르의 험난한 독립행진
3세기에 걸친 포르투갈의 식민통치, 인도네시아의 24년 강제 점령, 2년간의 유엔통치를 거쳐 동티모르는 독립의 길로 접어들었다. 1999년 8월30일 국민투표를 통해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을 결정한 대가로 혹독한 시련을 치른 지 꼭 2년 만에 동티모르는 조심스럽게 독립을 향한 큰 걸음을 내디뎠다.
“선거가 무섭다. 이번엔 괜찮을는지?” 8월29일 제헌의회 선거 하루 전, 여전히 주민들의 마음 한편에는 2년 전 국민투표 때의 몸서리쳐지는 기억이 남아 있다. “그때도 유엔이 있었지만 반독립파 민병대들에게 쫓겨났고 온 천지 불바다가 되었잖아?” 딜리의 <리안 마우베레> 사진기자 조지 다 실바 같은 이들은 불신감을 감추지 않았다.
축제 분위기? 그런 건 없었다
“인도네시아군의 지원을 받는 친인도네시아계 민병대들이 또 해코지를 할 것이라는데….” 이미 제헌의회 선거 일정이 발표된 뒤부터 동티모르에는 흉흉한 소문들이 끊이지 않았고, 주민들은 말없는 불안감에 싸여왔던 것이 사실이다. 대개 외신들이 희망을 담아 선거 전야의 평화로운 동티모르 풍경만을 타전한 탓으로 현지 주민들의 심정은 상당부분 왜곡되고 말았는데, 그동안 동티모르를 취재해온 경험있는 기자들 사이에는 이날 밤 주민들의 정서를 놓고 술판 논쟁이 제법 심하게 벌어지기도 했다. 말이 난 김에, 동티모르를 취재해본 기자들이라면 하나같이 ‘답답함’을 느꼈을 법한데, 이건 여간해서 진심을 털어놓지 않는 주민들의 정서를 정확히 포착하기가 매우 힘든 탓이다. 300년이 넘도록 외국의 지배를 받으며 몸에 밴 자기보호본능 같은 것을 이방인들이 꿰뚫어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똑같은 장면과 상황을 놓고 동티모르 기사들은 늘 다른 의미로 전해지곤 했다. 물론 외신들을 공들여 번역하고 베껴먹는 신문·방송들은 제외하고. 8월30일 아침 6시 이미 딜리의 투표소에는 주민들이 하나둘씩 몰려들기 시작했고, 7시 무렵에는 긴 줄로 이어졌다. 그러나 주민들의 표정은 무겁게 굳어 있었고 방송과 통신사들이 제1신으로 보도한 축제와 같은 분위기는 전혀 없었다. 캄보디아에서도 페루에서도 습관적으로 그렇게 보도들을 해왔던 것일 뿐. 적어도 오전 10시가 넘어서기 전까지의 표정들에서는 긴장감이 역력히 묻어났고 미소를 흘리는 주민들도 거의 볼 수 없었다. 어쨌든 13개 주의 총 248개 선거구에서 치른 이날 선거는 오후 4시 큰 탈 없이 끝나긴 했다. “이번 선거는 매우 성공적이었고 평화적인… (중략) 동티모르 주민들은 오늘 편안히 잠자리에 들 수 있고, 며칠 뒤 독립·민주 동티모르의 헌법을 만들 인물이 누구인지 알게 될 것….” 유엔선거관리위원회는 저녁 7시 기자회견에서 상기된 표정으로 결과들을 내놓았다. 총인구 73만7811명(유엔인구조사·2001.6.23)에서 유권자 약 42만5천명, 이 가운데 93%가 투표에 참여한 것으로. ‘정국혼란론’과 ‘훈장수여론’
8월31일부터는 동티모르 어디를 가나 선거 결과 예측이 본격적인 화두로 떠올랐다. 16개 정당이 참여한 이번 선거는 지난 24년 동안 무장독립투쟁을 주도했던 동티모르독립혁명전선(FRETILIN)이 처음부터 전설적인 게릴라지도자 사나나 구스마오의 후광을 업고 정치판을 압도해왔던 터라, 이들의 의석 획득에 초점이 맞춰졌다. ‘최소 75%, 최대 90%.” 선거 당일까지 유엔 직원들 대다수의 전망이었고, 외신들은 대개 85%선을 잡아왔다. 그러던 것이, 선거 다음날부터 ‘50:50’ 판읽기 흐름이 곳곳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동티모르 사람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진심을 드러내지 않는다. 겉보기에 독립혁명전선이 100%도 먹을 것 같지만, 찍는 순간까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사회민주연합당 대표 프란시스코가 담담하게 했던 말이 점차 강한 설득력을 얻어갔고, 그동안 자신있게 예측 기사를 내보냈던 기자들은 내남없이 당황하기 시작한 날이었다. 독립혁명전선쪽에서는 애써 여유를 보였으나 후보자들의 입에서도 “처음부터 너무 지나치게 잡았던 것이 사실”이라는 말이 흘러나오면서 분위기를 실감케 했다.
9월1일부터는 현장의 기자들이나 관련자들 모두 현실감을 지니고 조심스런 태도로 나름대로 가능한 선들을 통해 결과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학생운동 출신의 페르난도 데 아라우요가 주도하는 민주당(PD)과 인도네시아 점령기에 주지사를 지낸 마리오 카라스카라오의 사회민주당(PSD) 그리고 동티모르독립혁명전선의 창설자였던 프란시스코 사비에르 아마랄의 티모르사회민주연합당(ASDT)이 예상보다 선전하고 있다는 사실이 감지되었다.
결국 9월5일, 선거 전 예상을 깨고 강하게 대두된 ‘50:50’은 현실로 드러났다. 독립혁명전선이 유효투표 수 가운데 57%밖에 얻지 못해 전체 88석 가운데 55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고, 9%를 얻은 민주당이 7석으로 제2당 그리고 8%를 얻은 사회민주당과 티모르사회민주연합당이 각각 6석을 얻어 제3당이 되었다.
그렇다면 선거 결과를 어떻게 볼 것인가. 현장의 눈으로 보자면 ‘정국혼란론’과 ‘훈장수여론’이 함께 드러난다. 독립혁명전선이 헌법제정에 필요한 3분의 2 의석 확보에 실패함으로써 정치적 경험이 전무한 동티모르 정국이 상당한 혼란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이 하나라면, 주민들이 정당에 관계없이 독립투쟁에 봉사한 이들에게 표를 분배함으로써 보답과 동시에 견제세력을 설정해놓았다는 긍정론이 다른 하나다.
잿더미 위의 걸음마일지라도…
아무튼 독립을 향한 동티모르의 숨가쁜 행진은 이제 본격적인 정치무대로 들어섰다. 9월15일 제헌의회가 소집되고, 그로부터 3개월 안에 헌법을 만들고, 내년 4월 대통령선거를 거쳐 5월 독립을 선포한다는 것이 동티모르의 독립행진표다. 그러나 독립을 향한 동티모르의 앞날은 아직도 멀고 험하기만 하다. 인도네시아 군부 강경파들이 대 동티모르 ‘야망’을 완전히 버렸다는 단서를 찾을 수 없는데다 서티모르에 흩어져 있는 난민문제가 볼모로 잡혀 있는 꼴이라 안보·방위문제는 거저 허술한 봉합상태에 지나지 않는 상황이다.
경제는 ‘잿더미 위의 걸음마’를 연상케 할 만큼 열악한 상태라 계획도 전망도 달리 없는 실정이다. 연간 예상 수익 2억달러로 추산하는 티모르해의 가스에 민족경제의 운명을 걸어야 할 판인데, 그 사업 상대가 오스트레일리아라 녹록한 형편도 아니다. 게다가 300년이 넘도록 외국의 지배를 받는 동안 문화적인 저력을 상실해버렸고, 사회 통합의 심장 노릇을 할 공용어 문제마저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다. 민족어라 부를 만한 ‘테툼’은 교육의 주제어로 한계를 지녔고, 연령층에 따라 포르투갈어와 인도네시아어가 혼용되는 형편이다. 여기에 유엔을 낀 국제사회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어 외교적으로도 숨을 쉬지 못하는 입장이다. 이렇듯 동티모르의 독립행진, 21세기 최초의 독립국 탄생은 가혹한 가시밭길을 지나도록 명령하고 있다.
그러나 이 황폐하고 메마른 땅, 전망없는 어두운 땅에도 우리가 누려보지 못했던 기쁨은 있다. 독립을 위해 싸웠던 이들이 독립정부를 구성한다는 이 당연한 사실이 동티모르의 독립행진을 현장에서 바라보는 기자의 부러움이었다. 온갖 잡동사니 반독립·친일·반공분자들이 정부를 구성한 한국 현대사의 치욕적인 장면이 적어도 동티모르의 것은 아니었기에.
21세기 최초로 독립국가 창설을 준비하고 있는 동티모르의 가치는 인류사에 투쟁의 존엄성을 확인시켜준 빛나는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번 선거는 그 투쟁에 대해 주민들이 존경심을 표현한 의식이었던 셈이다. “그래도 자유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 해도 이제 더 바랄 게 없다.” “그래도 평화를 느낄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너무 행복하다.” 동티모르 주민들의 이 정서는 온전한 독립을 성취하지 못했던 우리가 결코 느껴보지 못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딜리= 글·사진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아시아네트워크 팀장
asianetwork@news.hani.co.kr

사진/ 불바다의 악몽을 넘어…동티모르의 가치는 인류사에 투쟁의 존엄성을 확인시켜준 빛나는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딜리의 한 성당에서 기도하는 신도들.
“인도네시아군의 지원을 받는 친인도네시아계 민병대들이 또 해코지를 할 것이라는데….” 이미 제헌의회 선거 일정이 발표된 뒤부터 동티모르에는 흉흉한 소문들이 끊이지 않았고, 주민들은 말없는 불안감에 싸여왔던 것이 사실이다. 대개 외신들이 희망을 담아 선거 전야의 평화로운 동티모르 풍경만을 타전한 탓으로 현지 주민들의 심정은 상당부분 왜곡되고 말았는데, 그동안 동티모르를 취재해온 경험있는 기자들 사이에는 이날 밤 주민들의 정서를 놓고 술판 논쟁이 제법 심하게 벌어지기도 했다. 말이 난 김에, 동티모르를 취재해본 기자들이라면 하나같이 ‘답답함’을 느꼈을 법한데, 이건 여간해서 진심을 털어놓지 않는 주민들의 정서를 정확히 포착하기가 매우 힘든 탓이다. 300년이 넘도록 외국의 지배를 받으며 몸에 밴 자기보호본능 같은 것을 이방인들이 꿰뚫어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똑같은 장면과 상황을 놓고 동티모르 기사들은 늘 다른 의미로 전해지곤 했다. 물론 외신들을 공들여 번역하고 베껴먹는 신문·방송들은 제외하고. 8월30일 아침 6시 이미 딜리의 투표소에는 주민들이 하나둘씩 몰려들기 시작했고, 7시 무렵에는 긴 줄로 이어졌다. 그러나 주민들의 표정은 무겁게 굳어 있었고 방송과 통신사들이 제1신으로 보도한 축제와 같은 분위기는 전혀 없었다. 캄보디아에서도 페루에서도 습관적으로 그렇게 보도들을 해왔던 것일 뿐. 적어도 오전 10시가 넘어서기 전까지의 표정들에서는 긴장감이 역력히 묻어났고 미소를 흘리는 주민들도 거의 볼 수 없었다. 어쨌든 13개 주의 총 248개 선거구에서 치른 이날 선거는 오후 4시 큰 탈 없이 끝나긴 했다. “이번 선거는 매우 성공적이었고 평화적인… (중략) 동티모르 주민들은 오늘 편안히 잠자리에 들 수 있고, 며칠 뒤 독립·민주 동티모르의 헌법을 만들 인물이 누구인지 알게 될 것….” 유엔선거관리위원회는 저녁 7시 기자회견에서 상기된 표정으로 결과들을 내놓았다. 총인구 73만7811명(유엔인구조사·2001.6.23)에서 유권자 약 42만5천명, 이 가운데 93%가 투표에 참여한 것으로. ‘정국혼란론’과 ‘훈장수여론’


사진/ 초대 대통령으로 가장 유력시되는 사나나 구스마오. 그의 후광을 업은 동티모르독립혁명전선은 이번 선거에서 57%의 지지를 얻었다.

사진/ '게릴라에서 국방군으로' 국가수립을 앞두고 체계적인 군사훈련을 받는 동티모르독립혁명전선 전사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