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크루스에 어둠이 내리면…
등록 : 2001-09-12 00:00 수정 :
사진/ 게릴라투쟁을 하다가 끌려간 뒤 감방에서 시체로 돌아온 요아오 도스 산토스(왼쪽)와 98년 민주화투쟁과정에서 의문의 죽임을 당한 세쿤디나 도스 산토스(오른쪽)
일요일 저녁나절, 지난한 독립투쟁의 에너지를 제공해왔던 산타크루스 공동묘지는 적막감에 싸여 있다. “동생도 딸도 모두 여기 묻었다.” 땅거미 지는 공동묘지 한구석에 마지막 참배객으로 쪼그려 앉은 시민 유스토 도스 산토스(53·전직교사)는 끝도 없이 무덤을 어루만지고 있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 언니였는데….” 마리아 요아라(15)는 1998년 수하르토 독재타도 구호가 자카르타를 휩쓸 무렵 의문의 죽임을 당한 언니 세쿤디나 도스 산토스(당시 21살)를 향해 눈시울을 적셨다. 제법 처녀티가 나는 유스티나 베노(17)는 땅만 쳐다보며 감정을 삭였고, 어머니 지타 아메리아(49)는 한풀이하듯 딸 이야기를 이어갔다. “딸을 누가 죽였는지, 왜 죽였는지도 모른 채….”
1998년 자카르타의 가자야나 말랑대학 경제학과에 다니던 세쿤디나는 동티모르 포럼을 준비하던 중 의문의 죽임을 당했고, 그의 죽음은 삼촌 요아오 도스 산토스(당시 26살)가 살해된 지 꼭 20년 만에 다시 산토스 가족사에 선명한 핏자국을 남겼다. “참 똑똑한 놈이었지. 용감했고….” 동티모르 독립투쟁의 전설적인 게릴라 지도자 사나나 구스마오와 7년 동안 산악투쟁을 함께했던 유스토의 기억 속에 동생은 아직도 영웅으로 살아 있었다.
먼저 간 동생 요아오는 형 유스토와 함께 1975년 동티모르독립혁명전선(FRETILIN)에 참여해 게릴라투쟁을 하던 중, 1977년 수도 딜리작전에서 인도네시아 정부군에 체포당했고, 그로부터 1년 동안 감방에서 갖은 고초를 겪다가 1978년 싸늘한 시체로 산토스 가족의 품에 돌아왔다. “동생이 심심해할 것 같아서 내 딸을 한자리에 묻어주었어. 둘 다 좋아하겠지.” 유스토의 공허한 너털웃음 속에는 동티모르 가족사의 한맺힌 비극과 동시에 빛나는 독립투쟁의 역사가 함께 흘러내렸다.
그러나 동티모르 독립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은 기운이다. 이렇게 ‘먼저 간’ 이들이 슬픈 가족사로만 남아 있는 한. “지금은 자유를 얻은 것만 해도 더 바랄 게 없지만, 새 정부가 들어서면 무엇보다 먼저 독립을 위해 싸웠던 이들을 보살피는 일부터 시작해야 옳을 텐데….” 시민 유스토의 바람만일까? 20만 시민의 희생 위에 세워진 국가, 20만 시민의 희생 위에 탄생한 정치, 그러나 아직 어디에서도 독립투쟁의 영혼들을 따뜻하게 보살필 조짐은 보이지 않는데, 산타크루스에는 오늘도 속절없는 어둠이 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