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진보는 아시아로부터

376
등록 : 2001-09-12 00:00 수정 :

크게 작게

책으로 보는 세계/ <민주화의 길>

한국과 동남아시아의 한 꼭지점인 필리핀은 우리와 여러 가지 공통된 점이 많다. 끝없는 외세 침입에 놓여 있었던 우리 역사와 마찬가지로 300여년간의 스페인 통치가 끝난 1898년 이후 줄곧 미국의 식민지하에 있었던 필리핀은 같은 시기에 30여년간의 독재정권이라는 정치적 아픔이 있었다. 그리고 한반도에 남북분단의 아픔이 남아 있다면 지금 필리핀은 무슬림 중심의 민다나오섬에서 평화와 갈등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공통된 부문은 사회민주화의 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60년대 말 가톨릭과 기독교를 기반으로 세워진 아시아 사회운동의 뿌리, 아시아대중조직연합(ACPO)에서부터 함께 나눈 사회운동가간의 친분관계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70년대 초반 필리핀 마닐라 톤도의 대단위 빈민지역은 한국의 민주화운동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수도권선교위원회(SMCO) 활동가들의 훈련장소이기도 했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던 엄혹한 유신독재 시절에 일본과 필리핀은 바깥 세상에 소식을 알리는 유일한 창구였다. 재정적 도움이 이들로부터 왔음은 물론이다.

마침내 독재의 뿌리를 흔들었던 피플 파워는 필리핀이 우리보다 한해 이른 1986년에 일어났다. 1983년 독재자 마르코스가 자신의 정적 아키노 상원의원을 살해했던 그해로부터 3년 동안 끈질긴 투쟁 끝에 수많은 대중이 모인 거리에서 코라손 아키노의 대통령 취임식이 있었다. 그리고 미국의 동남아시아 전진기지인 필리핀에서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미군을 철수시킨 것이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90년대 들어서 투기자본의 세계화로 빈부의 격차가 커졌을 때에도 아시아에서 반세계화 운동연대를 구축한 곳 역시 필리핀이다.

60년대 중반에는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부국에 속했던 필리핀, 비록 지난 수십년간 커다란 빈부격차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아시아에서 이들의 잠재력은 그 누구도 무시 못한다.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6만여 비정부기구(NGO)들이 활동하고 있는 필리핀, 시민사회의 역할이 중요시되는 21세기 아시아에서 이들의 역할은 이미 우리를 한발 앞서서 가고 있다. 그리고 대학 구내에 NGO 건물을 설립하고 지원하는 필리핀 아테네오대학에서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한데 모아 출판한 <민주화의 길>(1988)은 ‘우물 안의 개구리’를 자극할 만한 책이다.


이 책에서는 수많은 NGO를 구분하는 다양한 잣대를 버리고 간단하게 바닥대중공동체(Grassroot: Peoples Organization)와 이를 지원하기 위한 NGO로 나누어 자신의 운동을 정리하고 있다. 이 책은 “새로운 지식과 단편적인 정보는 미국와 유럽에서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세계와 더불어 호흡하려면 먼저 아시아를 기반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충고를 우리에게 던진다.

마닐라=나효우 통신원 nahyowoo@yahoo.com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