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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여가와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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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8-2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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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보는 세계/ <여가의 출현:1850∼1960>

내각에 ‘자유시간’을 담당하는 부서를 둔 나라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프랑스밖에 없을 것이다. 프랑스는 지난 81년 미테랑 정부 아래서 “국민들이 여가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며 여가활동 전담부서를, 가히 혁명적으로 도입했다가 2년 뒤 200만명의 실업자가 발생하는 경제위기가 터지자 문을 닫았다. 여가문제를 둘러싼 좌우 대립의 오래된 상처를 들추며 ‘나태의 부서’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이 부서의 취지는 프랑스사회의 여가개념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소르본대학의 역사학 교수인 알랑 코르방은 최근의 저서인 <여가의 출현:1850∼1960>(플라마리옹출판사 펴냄, 2001년)에서 항상 일상생활에서 시간에 쫓기고 시간이 모자란다고 느끼는 감정, 시간을 아껴야 한다는 걱정 등이 이 책을 저술하게 된 출발점이었다고 밝힌다. 그는 19세기 중반 이후 여가의 개념과 그것의 활용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광범위한 역사적 사례를 토대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지금의 여가문화가 논쟁없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지배계층을 제외하고 일하는 사람에게 여가가 죄악시되던 시대가 있었다. 무위도식이 ‘모든 악의 모태’라는 강박관념이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가문화에 대해서는 수많은 반대와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산업자본주의 발전 속에서 여가는 부르주아나 인텔리계층이 누리는 제한적인 것이었다. 20세기 초 노동자들에게 유급휴가의 권리를 부여하려는 움직임 속에서 자본가를 중심으로 이에 반대했던 사람들은 노동자들이 여가를 활용할 능력이 없다는 억지논리를 펴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이 1930년대 들어 바뀌면서 여가는 노동력의 재생산을 위해 필요한 시간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기 시작했다. 1936년 인민전선의 승리와 더불어 등장한 레옹 블룸 정부 아래서 사회주의자 레오 르그랑주 의원이 여가와 스포츠 조직을 담당하면서 유급휴가에 관한 법률을 채택할 것을 호소했다. 이렇게 탄생한 첫 법률에 의해 한 직장에서 1년 근무한 경력을 가진 노동자들은 2주간의 유급휴가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저자는 노동자의 여가가 갖는 유일한 합법성이 노동력 재생산을 위한 것으로만 치부되었던 상황에서 벗어나 2차대전 이후 여가가 독자적인 사고의 대상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데에 주목한다. 여가는 개인의 총체적 발전을 위한 투자의 시간으로 정립돼야 한다는 것이 저자가 내리는 결론의 핵심이다. 그래서 여가의 활용은 오늘날 프랑스 문화정책을 지배하는 ‘모두를 위한 문화’ 개념과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 책은 공식적으로 한해에 5주의 유급휴가를 갖고 주 35시간 노동제가 실시된 이후 격주로 하루를 쉬는 프랑스 노동자들의 여유로운 삶, 그리고 국민들의 여가활용에 대한 정부의 정치적, 문화적 고려 등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파리=신순예 통신원 soonye.sin@libertysurf.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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