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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보증금에 기가 막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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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8-2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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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원 NG 리포트

일러스트레이션/ 설은영.
루마니아에 장기 체류할 때 외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것은 역시 아파트다. 최근에 건축된 현대식 빌라는 주위환경이나 안전 측면에서는 적합하지만 2천달러가 넘는 월세는 웬만한 경제사정으로는 감당하기 힘들다. 아파트를 임대할 때 가장 선호하는 방법은 복덕방을 통하는 것이다. 복비는 임차인과 임대인이 각각 첫 월세의 50%를 내고, 월세는 보통 3개월 또는 6개월치를 미리 일시불로 지불하는 것이 관례로 돼 있다. 복비를 지불하기 아까워 집주인이 직접 광고를 내는 아파트도 있는데, 이런 경우 사기를 당할 위험성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꺼리는 편이다.

루마니아에서 아파트를 임대할 때는 집의 상태도 보아야 하지만 그보다 먼저 집주인을 잘 알아봐야 한다. 5년 전의 일이다. 아파트의 위치나 상태도 좋고, 집주인도 나쁜 사람 같지 않아서 6개월짜리 계약을 했다. 물론 조금 낡기는 했지만 침대나 소파, 냉장고 등의 시설이 모두 갖춰져 있었다.

그 집주인의 ‘본색’은 계약이 끝나기 며칠 전 나타났다. 원래 낡아서 삐걱거리던 소파였는데 내가 고장냈다는 것이다. 새로 고쳐야 한단다. 너무 어이가 없었다. 그는 다음날 소파를 고치는 사람을 데려와서는 완전히 새 소파처럼 뜯어고치고 150달러를 요구했다.

루마니아에서는 일반적으로 집을 계약할 때 월세를 제외하고 보증금을 요구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아파트의 시설이 파괴되거나 손상됐을 경우를 대비해서이다. 그런데 이 보증금 제도가 외국인들에게 악용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100달러에서 수천달러에 이르는 이 보증금을 집주인이 말도 안 되는 억지를 써서 가로채는 것이다. 어떤 한국인은 벽에 낙서가 돼 있어서 집 전체를 다시 페인트칠해야 한다고 우기는 집주인 때문에 몇백달러의 보증금을 날리기도 했다.

외국인을 괴롭히는 또 하나의 보증금은 바로 전화료 보증금이다. 전화료는 보통 사용 뒤 한달이 지나야 부과되는데 주인은 전화요금이 나오기 전에 평소 전화료의 몇배를 요구한다. 간혹 계약이 끝나는 달에 국제전화를 일부러 많이 사용하고 도망가는 외국인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보증금보다 적게 나왔더라도 그 돈을 다시 돌려받는 것은 포기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아예 국제전화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전화국에 요청하는 한국인들도 종종 있다.


그 이후론 이사할 때가 되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금은 다행히도 너무 좋은 집주인을 만나 정신적 고통없이 살고 있지만.

부쿠레슈티=황정남 통신원 jungnam@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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