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권통치의 허물 벗고 젊은 대통령과 함께 개혁의 바람 일으키는 시리아를 가다
중동의 전통 강국이었던 시리아. 30년간 철권통치를 한 ‘아랍의 비스마르크’라 불리던 시리아의 전 대통령 하페즈 알 아사드가 지난해 7월 초 숨진 뒤 36살의 젊은 대통령이 대권을 이어받았다. 우려 반 기대 반으로 시작된 그의 집권이 이제 막 1년을 넘어섰다. 중동에서 가장 젊은 통치자를 둔 시리아인들은 “바샤르와 함께 희망, 이스라엘과는 절망”을 말하고 있다. 이제 막 바샤르 집권 1년을 지난 시리아에도 이미 크고 작은 변화들이 감지되고 있다. 그 변화는 무엇이며,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유혈충돌을 보는 민심은 어디에 있을까.
정치는 유지, 경제는 대수술
요르단과 시리아를 잇는 두 국경지역 자베르와 람사에는 한밤중이 되어도 국경을 넘나드는 발걸음이 멈추지 않는다. 지난 한해 일자리를 찾아 요르단을 찾은 시리아인은 90여만명. 지금도 하루에 줄잡아 4천∼5천여명의 시리아인들이 돈을 벌기 위해 요르단을 출입하고 있고 약 20여만명의 시리아인이 암만을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하루벌이에 나서고 있다. 시리아 국민들의 평균월급이 90여달러라면 요르단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은 그 평균치의 몇배에 이른다. 그 매력적인 수입이 시리아인들의 요르단행을 지속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아직도 회복되지 않은 시리아 경제의 단면을 반영하지만 그렇다고 그리 절망적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요르단 암만에서 국경 택시를 타고 3시간 정도면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에 도착한다. 시리아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맞이하는 것이 있다. 하페즈 알 아사드 전 대통령이 미소짓고 있는 사진이 걸린 대형 선전판이다. 게다가 6년 전에 교통사고로 사망한 장남 바실의 사진도 곳곳에서 쉽게 발견된다. “지구상에서 북한과 가장 비슷한 나라”라는 평가에 걸맞게 곳곳에서 위대한 지도자 아사드 전 대통령의 동상과 초상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거리는 아직 폐쇄·통제정책의 영향이 잔존하고 있는 듯하다. 약 500만명이 거주하는 다마스쿠스에만도 정보요원이 2만5천여명에 이른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러나 철저한 사회주의 독재국가인 시리아에도 변혁의 바람이 불고 있다. 충성과 존경을 강요해온 전임 대통령과는 달리 젊은 지도자는 자신의 이미지 광고에 나서는 등 새로운 변화를 이끌고 있다. 바샤르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취임식에서 아랍식 사회주의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주축으로 하는 경제개혁과 부정부패 추방 등을 역설했다. 이와 함께 평균 100달러에 불과한 공무원 월급을 25% 인상하는 한편 자본주의 경제모델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우선 현재 최고 60%인 세율을 30∼45%로 내렸다. 지난해 12월에는 37년 만에 처음으로 민간은행 설립이 허용됐다. 또한 바샤르 대통령은 주식시장을 개설하고 고정환율제인 달러 대 시리아파운드화 환율을 변동환율제로 바꾸는 작업을 추진중이다. 바트당 1당독재라는 정치 형태는 유지한 채 점진적으로 프랑스와 같이 사회주의를 혼합한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일자리를 찾아 요르단을 자주 오간다는 아딜 살레는 “바샤르의 개혁정책은 아사드 전 대통령 시절에 비해 많은 진전이 있다. 하루벌이도 많이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바샤르의 개혁은 정치가 아닌 경제개혁과 부흥에 초점을 두고 있다. 빵문제가 해결된다면 자연스레 그 힘이 정치로 옮겨질 것을 고려하는 듯하다.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의 요구도 거세게 일고 있다. 지난 1월에는 교수·문인·예술가 등 지성인 1천여명이 성명을 내고 다당제 허용, 정치적 자유와 민주개혁, 금융개방 등을 요구했다. 법조인 70명도 같은달 성명을 내고 표현 및 집회·결사의 자유를 인정할 것과 63년 이후 발령중인 계엄령을 해제할 것을 촉구했다. 지난해 11월 아사드 전 대통령 시절에 수감됐던 정치범 600명이 석방과 함께 사면복권되었고 몇 차례 걸쳐 사면조처들이 있었다. 모두 아사드 전 대통령 시절에는 꿈도 못 꿀 일이다. 팔레스타인과 다시 어깨걸고
바샤르의 등장 이후 시리아를 둘러싼 정치적인 역학관계도 많은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이라크와의 관계개선, 레바논 주둔 시리아군의 철수에 대한 긍정적 검토는 물론, 팔레스타인과의 관계개선에 힘을 쏟고 있다. 시리아는 공식·비공식적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의 독립을 향한 대이스라엘투쟁에 힘을 모으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말과 행동으로 팔레스타인 지지를 표명하는 몇 안 되는 중동국가이다. 다른 국가들이 말로만 이스라엘에 대한 경제, 정치적 제재조치를 주장한다면 시리아는 몸으로 보여준다. 지난해 10월 개최된 카이로 아랍정상회담은 총 10억달러의 팔레스타인 지원기금을 긴급 제공하기로 결의했다. 시리아가 지불 완료한 금액은 사우디아라비아 2억1천만달러에 이어 두 번째인 1억달러였다. 시리아의 경제수준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규모다. 그런 식으로 팔레스타인 문제와 관련해 시리아는 국론통일이 이루어진 셈이다. “이스라엘과의 평화공존, 그거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힘으로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말이 통해야지요. 그들과의 공존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지난해 9월 인티파다(반이스라엘 봉기)가 시작된 이래 지금도 시리아의 한 방송은 선무방송을 방불케 하는 인티파다 지원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기득권층의 반발이 문제
그러나 일반의 생각과는 달리 그동안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의 관계는 껄끄러움 그 자체였다. 지난 93년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과 오슬로평화협정을 체결한 이후 관계는 악화됐다. 시리아는 대이스라엘과의 협상에서 아랍권의 공동보조를 깬 배반자라며 아라파트에 대한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오슬로평화협정이 이스라엘 점령 영토의 전면 반환 등을 규정한 유엔결의안에 위배되는 것이며, 최소한의 팔레스타인쪽 권리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이라고 비판해왔다. 아라파트 수반은 94년 아사드 전 대통령의 큰아들 바실이 사망했을 때와 지난해 아사드 전 대통령이 사망했을 때 조문차 시리아를 방문했다. 그때에도 정치적 대화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지난해 7월 바샤르 대통령이 취임하고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과의 협상에서 강경입장을 고수함에 따라 양쪽 관계가 개선되기 시작했다. 급기야 이번주 아라파트 수반이 시리아를 공식 방문하기에 이르렀다.
시리아는 이스라엘과 풀어야 할 과제를 가지고 있는 당사국이다. 73년 점령당한 골란고원 반환을 둘러싼 양쪽의 갈등은 또다른 화약고이다. 이스라엘과 시리아는 지난해 1월 평화협상을 재개했으나 골란고원 반환에 대한 입장차이를 좁히지 못해 협상을 결렬시켰다. 바샤르는 “모든 공동체와 신념에 대한 상호인정을 통해서만 평화가 정착될 수 있고 이는 시리아와 레바논 없이는 불가능하다. 평화를 위한 조건 중에는 이스라엘이 1967년 3차 중동전쟁 당시 점령한 골란고원을 시리아에 적법하게 반환하는 것도 포함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시리아의 바샤르호가 헤쳐가야 할 항로는 순탄하지만은 않다. 바샤르 대통령의 개혁의지가 현실 속에서 실효를 거두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가 넘어야 할 가장 큰 걸림돌은 옛시대 기득권층이다. 내각을 구성하고 있는 각료도 대부분 아사드 전 대통령과 평생을 함께한 혁명동지들이다. 그동안 기득권을 누려온 친위대 등 군부와 대기업의 반발이 이미 개혁추진의 장애물이 되고 있다. 그들은 서구식 자유주의 개혁으로 아랍의 전통이 무너진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의 ‘몽니’가 가장 큰 걸림돌임은 분명하다. 개혁이 주춤해지자 과감한 개혁을 바라는 지식인과 대학생 계층은 그를 ‘우유부단한 인물’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슬람의 소수파인 알라위 일파가 정관계 노른자위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기득권층이 자신의 살을 베어낼 수 있는지 반신반의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바샤르 대통령이 기득권층의 반발을 잠재울 수 있을 정도의 정치적 기반을 얼마나 빠르고 견고하게 확보하는가가 가장 큰 관건이다.
다마스쿠스=김동문 통신원 yahiya@hanimail.com

사진/ 죽은 자들에 대한 향수인가? 서거한 아사드 전 대통령이나 장남 바실의 초상은 시리아 곳곳에서 발견된다. 국민들 속에 남아 있는 이들에 대한 기억을 어떻게 통치에 활용하는가도 하나의 과제이다.
요르단 암만에서 국경 택시를 타고 3시간 정도면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에 도착한다. 시리아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맞이하는 것이 있다. 하페즈 알 아사드 전 대통령이 미소짓고 있는 사진이 걸린 대형 선전판이다. 게다가 6년 전에 교통사고로 사망한 장남 바실의 사진도 곳곳에서 쉽게 발견된다. “지구상에서 북한과 가장 비슷한 나라”라는 평가에 걸맞게 곳곳에서 위대한 지도자 아사드 전 대통령의 동상과 초상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거리는 아직 폐쇄·통제정책의 영향이 잔존하고 있는 듯하다. 약 500만명이 거주하는 다마스쿠스에만도 정보요원이 2만5천여명에 이른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러나 철저한 사회주의 독재국가인 시리아에도 변혁의 바람이 불고 있다. 충성과 존경을 강요해온 전임 대통령과는 달리 젊은 지도자는 자신의 이미지 광고에 나서는 등 새로운 변화를 이끌고 있다. 바샤르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취임식에서 아랍식 사회주의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주축으로 하는 경제개혁과 부정부패 추방 등을 역설했다. 이와 함께 평균 100달러에 불과한 공무원 월급을 25% 인상하는 한편 자본주의 경제모델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우선 현재 최고 60%인 세율을 30∼45%로 내렸다. 지난해 12월에는 37년 만에 처음으로 민간은행 설립이 허용됐다. 또한 바샤르 대통령은 주식시장을 개설하고 고정환율제인 달러 대 시리아파운드화 환율을 변동환율제로 바꾸는 작업을 추진중이다. 바트당 1당독재라는 정치 형태는 유지한 채 점진적으로 프랑스와 같이 사회주의를 혼합한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일자리를 찾아 요르단을 자주 오간다는 아딜 살레는 “바샤르의 개혁정책은 아사드 전 대통령 시절에 비해 많은 진전이 있다. 하루벌이도 많이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바샤르의 개혁은 정치가 아닌 경제개혁과 부흥에 초점을 두고 있다. 빵문제가 해결된다면 자연스레 그 힘이 정치로 옮겨질 것을 고려하는 듯하다.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의 요구도 거세게 일고 있다. 지난 1월에는 교수·문인·예술가 등 지성인 1천여명이 성명을 내고 다당제 허용, 정치적 자유와 민주개혁, 금융개방 등을 요구했다. 법조인 70명도 같은달 성명을 내고 표현 및 집회·결사의 자유를 인정할 것과 63년 이후 발령중인 계엄령을 해제할 것을 촉구했다. 지난해 11월 아사드 전 대통령 시절에 수감됐던 정치범 600명이 석방과 함께 사면복권되었고 몇 차례 걸쳐 사면조처들이 있었다. 모두 아사드 전 대통령 시절에는 꿈도 못 꿀 일이다. 팔레스타인과 다시 어깨걸고

사진/ 레바논 선거 포스터들. 선거철만 되면 시리아 후광을 입어야 당선이 가능한 레바논에서는 시리아의 속국이 아닌가 하는 비아냥거림이 나온다.

사진/ 시리아 다마스쿠스의 국경 택시 정류장. 레바논, 요르단 등을 연결하는 국경 택시들이 이곳을 오간다. 이들은 시리아 개방을 열어가는 첨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