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함 침몰 사건의 책임추궁은 어디로… 위축된 군부, 세력다툼 불거져
러시아 현대사에서 8월은 특히 정치적인 달로 손꼽힌다. 지난해 8월9일 푸틴 현 대통령이 총리로 지명되었고, 지난 8월14일은 그의 대통령직 수행 100일을 맞는 날이었다. 이 중요한 시점에 맞추기라도 한듯 최근 발생한 두개의 대형사건이 푸틴 정부를 강타했다. 8월 초에 모스크바 도심 한복판에서 일어난 폭발사건과 러시아 북해함대 소속 대형 핵추진잠수함 쿠르스크호의 침몰사건이 그것이다. 특히 잠수함 침몰사건은 최근 10년 이래 발생한 가장 큰 사고인데다, 사고가 묘하게도 푸틴의 대통령 집권 100일 전야에 일어나 푸틴의 명예를 더욱 실추시켰다.
‘몸조심’하는 고위장성들
러시아의 잠수함 침몰사는 1960년 흐루시초프 시절로 거슬러올라간다. 그 이후 지금까지 러시아는 모두 21건의 잠수함 사고를 경험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잠수함 강국이었던 옛 소련은 가장 많은 잠수함 사고를 경험한 나라이기도 하다. 현재 전세계 대양에 침몰돼 건지지 못한 잠수함은 총 6개로, 그 중 2개가 미국 국적인 트레셔호와 스콜피오호이고 나머지는 모두 러시아 북해함대 소속이다.
이번에 침몰한 쿠르스크호는 최신형 핵추진잠수함으로 건조비가 23억달러나 들었기 때문에 현재 러시아 예산으로는 만들기 불가능한 배이다. 최대 1천m까지 잠수할 수 있고 사정거리 500km의 핵미사일 26기를 탑재할 수 있는 쿠르스크호는 그동안 러시아에서 가장 믿음직한 잠수함으로 여겨져왔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이 사건은 러시아 해군력의 약점을 드러냈을 뿐 아니라 열강으로서의 러시아의 자존심을 추락시킨 사건으로 평가된다. 결국 쿠르스크호 침몰과 함께 ‘강한 푸틴’의 신화도 같이 침몰한 셈이다. 일각에서는 이 사건을 계기로 그간 일고 있던 군 개혁 작업이 가속화될 수도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일간 <코메르산트>는 구조작업이 종료되는 대로 책임자 문책이 이어질 것이며, 그 결과에 따라 한바탕 군부 내 인사태풍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아직 정확한 침몰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사고에 대비해 수병들과 지휘부가 만반의 준비를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라고 이 신문은 분석하고, 16일부터 군 검찰이 사고원인과 경위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침몰사건을 두고 군 고위관계자들은 말을 아끼고 있다. 그간 군부 내 세력다툼을 일으켜왔던 참모총장 아나톨리 크바시닌과 국방장관 이고리 세르게예프도 모두 ‘정중동’이다. 구조대 지휘본부 관계자들조차 일절 함구하고 있다. 얼마 뒤면 사건의 책임을 질 ‘속죄양’을 찾을 것임을 모두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중대사건이 발생하면 책임소재를 규명하고 관련자를 처벌하는 게 으레 있는 일이지만 이번 사건의 책임자 조사는 그간 군부 내 국방장관 계열 장성들과 참모총장 계열 장성들간에 벌어진 주도권 다툼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체첸전의 지연으로 그렇지 않아도 불편한 위치에 있는 세르게예프 국방장관이 몸을 움츠리고 있음은 당연하다. 크바시닌 참모총장 또한 함대 기동훈련의 1차적인 책임을 지고 있어 섣불리 대응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크바시닌 제안’이 몰고 온 권력투쟁
그간 군부 내에서는 국방장관 이고리 세르게예프 원수의 은퇴가 내년 봄으로 예정됨에 따라 그 후계자 자리를 놓고 국방부 산하 장성들과 참모본부 산하 장성들간에 주도권 다툼이 물밑에서 전개되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갈등은 지난 7월12일 제1국방차관직을 맡고 있는 아나톨리 크바시닌 참모총장이 정례 국방부회의에서 ‘2016년까지의 러시아 국방력 발전계획’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크바시닌의 제안은 한마디로 현재 독립적인 군 형태의 하나인 전략로켓군의 독립성을 없애고 이를 공군산하에 배치한다는 게 골자이다. 이 제안이 그대로 실현될 경우 군 개편의 방향은 종래의 전통적 군 형태인 재래군의 발전에 모아질 것이다.
실제 내용면에서 보면 크바시닌의 제안은 첨예한 편가르기를 유도할 만큼 새로운 내용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와 유사한 안이 이미 97년 옐친의 포고령에 의해 공포된 바 있고, 현재 러시아가 미국에 제안한 ‘제3단계 전략무기감축협정’에 따르면 핵탄두를 2003년까지 1500기로 제한하게끔 돼 있다. 다만 크바시닌이 국방장관을 무시하고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했다는 데서 장관의 분노를 산 것이다.
군부 갈등의 발단은 크바시닌의 제안 이전에 국방부 계열인 로켓군 장성들이 주축이 돼 각군에 산재한 전략핵무기를 하나로 통합해 별도의 부대를 만든다는 이른바 ‘통합전략핵부대’ 시나리오를 내면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있다.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새로 창설될 부대는 현재 전략로켓군을 맡고 있는 블라디미르 야코블레프의 통제하에 들어가게 되고 그의 직급이 크바시닌의 지위와 동등한 제1국방차관급으로 상향조정되게 돼 있다. 따라서 이 안은 이고리 세르게예프가 후계자로 자기 계열의 야코블레프를 염두에 두고 있는 데서 나온 졸속안이라는 게 크바시닌쪽의 평이다. 이 시나리오가 참모총장쪽 장성들에게 위기감을 조성한 것은 당연했다. 이 위기감 속에서 크바시닌의 군 개편 제안이 나온 것이다.
지난 7월 말 푸틴은 국방부 소속 장성 10명의 해임 포고령에 서명함으로써 일단 대세는 크바시닌쪽으로 기울어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해임은 연기됐고, 8월11일 열린 국가안보회의에서 군 고위직의 급격한 인사조처는 일어나지 않았다. 세르게예프도 크바시닌도 모두 자기 직위를 유지했고 크바시닌의 제안은 그가 제안한 방식 그대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전략로켓군의 운명에 관한 논의는 2006년으로 연기되었다. 이런 사태를 가리켜 언론들은 군부 내에 ‘이중권력’이 확립되었다고 묘사했다. 그러나 크바시닌의 안과 유사하게 전략핵을 감축하고 전략로켓군의 독립적인 지위를 점진적으로 해체, 종국적으로 공군에 부속시킨다는 방침을 정함으로써 회의 분위기는 크바시닌 편에 기울어졌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었다. 이를 상징하듯 푸틴은 자신의 기조연설 뒤 마이크를 크바시닌에게 넘겨주었다.쿠르스크호는 그간의 군부 내 갈등을 일단락지었다고 생각한 푸틴이 홀가분한 마음으로 소치에서 여름휴가를 즐기는 바로 그 시점에 침몰했다. 이 사건이 향후 군부 내 주도권 장악과 군 개편 방향에 줄 여파와 관련해 8월16일 일간 <스미>는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쿠르스크호의 침몰사건으로) 군은 갈등 당사자의 옳고 그름과는 별개로 근본적으로 다음과 사실 즉, 러시아는 이제 물리적으로 과거 옛 소련이 누렸던 군사강대국의 지위를 그대로 보유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문민 국방장관 탄생할까
쿠르스크 사건 이후 군 개편의 방향을 짐작게 해주는 경제적 해석 또한 주목할 만하다. 8월14일치 <베도모스치>는 그간의 군 내부 갈등과 관련해 최근 열린 국가안보회의가 국방장관과 참모총장 중 누구의 편으로 마무리되었는가에 상관없이 현재 군부를 보는 푸틴의 시각이 매우 비판적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전반적인 군의 위상약화가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이를 입증하는 예로 이 신문은 내년 군 예산이 올해에 비해 GNP 비율면에서 0.5%포인트 정도 감축된 사실을 들었다. 내년 군사비 총액은 경제성장에 힘입어 올해의 1464억루블에서 1705억루블로 증가할 전망이지만 비율면에서는 올해 책정되었던 GNP의 2.7%에서 2.2%로 삭감되었다는 것이다. 군 예산의 최종결정은 안보회의 직전 푸틴이 경제발전 및 통상장관인 게르만 그레프와 부총리 알렉세이 쿠드린과 숙고한 끝에 내린 조처로 알려져 있다. 이 신문은 “세르게예프와 크바시닌이 군내 권좌 다툼에 빠져 경제부처 장관들과 교섭하는 데 실패했다”고 비꼬았다. 감축된 예산은 다른 권력부처 즉, 경찰, 검찰 및 사법부에 돌려질 예정이다.
예산 배정면에서 상대적으로 약화된 군의 위상에 따라 2001년으로 예정된 세르게예프의 퇴임 뒤 누가 그 자리를 이을 것인가에 더욱 관심의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그동안 일각에서는 블라디미르 쿠르도예프 해군참모총장 기용설도 제기됐으나 이번 쿠르스크 침몰사건으로 쿠르도예프 대안은 일단 물밑으로 가라앉았다고 보아야 한다. 지금은 크바시닌 안이 유력해지고 있지만, 러시아 역사상 최초로 문민 국방장관을 임용할 것이라는 설도 난무한다. 푸틴 대통령이 국가안보회의 기조연설에서 “현재 군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비효율적”이라고 혹평하면서 “군 발전과 군 개혁은 국방부 혹은 참모본부 등 어느 일개 부처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가적인 사안”이라고 못박은 것도 이같은 가능성을 점치게 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박현봉 통신원parkhb_spb@yahoo.com

(사진/러시아의 최신형 핵잠수함 쿠르스크호.이번 침몰사건은 러시아 군부에 적지않은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침몰한 쿠르스크호는 최신형 핵추진잠수함으로 건조비가 23억달러나 들었기 때문에 현재 러시아 예산으로는 만들기 불가능한 배이다. 최대 1천m까지 잠수할 수 있고 사정거리 500km의 핵미사일 26기를 탑재할 수 있는 쿠르스크호는 그동안 러시아에서 가장 믿음직한 잠수함으로 여겨져왔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이 사건은 러시아 해군력의 약점을 드러냈을 뿐 아니라 열강으로서의 러시아의 자존심을 추락시킨 사건으로 평가된다. 결국 쿠르스크호 침몰과 함께 ‘강한 푸틴’의 신화도 같이 침몰한 셈이다. 일각에서는 이 사건을 계기로 그간 일고 있던 군 개혁 작업이 가속화될 수도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일간 <코메르산트>는 구조작업이 종료되는 대로 책임자 문책이 이어질 것이며, 그 결과에 따라 한바탕 군부 내 인사태풍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아직 정확한 침몰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사고에 대비해 수병들과 지휘부가 만반의 준비를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라고 이 신문은 분석하고, 16일부터 군 검찰이 사고원인과 경위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침몰사건을 두고 군 고위관계자들은 말을 아끼고 있다. 그간 군부 내 세력다툼을 일으켜왔던 참모총장 아나톨리 크바시닌과 국방장관 이고리 세르게예프도 모두 ‘정중동’이다. 구조대 지휘본부 관계자들조차 일절 함구하고 있다. 얼마 뒤면 사건의 책임을 질 ‘속죄양’을 찾을 것임을 모두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중대사건이 발생하면 책임소재를 규명하고 관련자를 처벌하는 게 으레 있는 일이지만 이번 사건의 책임자 조사는 그간 군부 내 국방장관 계열 장성들과 참모총장 계열 장성들간에 벌어진 주도권 다툼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체첸전의 지연으로 그렇지 않아도 불편한 위치에 있는 세르게예프 국방장관이 몸을 움츠리고 있음은 당연하다. 크바시닌 참모총장 또한 함대 기동훈련의 1차적인 책임을 지고 있어 섣불리 대응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크바시닌 제안’이 몰고 온 권력투쟁

(사진/크르스크호 승무원 구조작업.이번 사건의 책임규명은 현재 러시아군부의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지난 8월17일 소치에서 휴가중이던 푸틴 대통령이 잠수함 침몰사건에 대한 입장을 언론에 설명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