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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한때의 꼴사나운 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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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8-1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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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싸우면서 인도국민군-일본군 동맹, 극우적 힌두민족주의 촉진에 한몫

일본이란 무엇인가?

인도 시민들에게 일본은 일종의 호기심거리다. 매력적이긴 한데 수수께끼와 같이 잘 잡히지 않는다. 현실 속에서 일본은 인도의 가장 중요한 무역 대상국이면서도 이상하리만큼 생산분야에서는 또 별 상관이 없다. 인도의 최대 원조국인 일본의 대인도 자본투자는 또 선진7개국(G7) 가운데 최저수준이다.

영웅으로 떠오른 부바쉬 찬드라 보스


이처럼 뭔가가 잘 어우러지지 않는 게 바로, 시민들이 지닌 일본에 대한 인상이다. 좀 다른 쪽으로 보자면, 시민들이 그저 “동아시아 여성은 아름답다”고 여기는 정도가 일본 이해의 수준 같기도 하고. 이건 아마도 기모노를 걸친 일본 여성들이 찍힌 부채가 크게 유행했던 1930년대부터의 일이 아닌가 싶다.

어쨌든 인도는 일본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둘 사이의 접촉과 노출은 문화적으로든 예술적으로든 또는 사회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매우 제한적인 형태 속에서만 이루어져왔던 것이다. 불교를 통한 접촉도 인도사회에서는 주로 주변적인 일로만 여겨왔고, 심지어 내로라 하는 식자층에서도 아키라 구로사와 영화를 논쟁거리로 삼는 걸 본 적이 없으니 가부키와 노 같은 전통 분야에 대한 이해수준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그저 몇몇 일본 식당들이 인도에 존재하는 것으로 인도는 일본을 볼 뿐이다.

좋든 싫든, 일본에 대한 인식 결핍은 서양중심주의에 물든 엘리트들이 사회를 주도한 탓인데, 이건 식민지 경험에서 유래한, 말하자면 ‘영국흠모’와 ‘서양망상’에 눈이 뒤집힌 노예적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좋은 본보기로 인도의 외교관들은 말 배우기가 어렵다는 걸 빌미로 일본이나 한국으로 발령나는 걸 상당히 고통스러워해왔는데, 이들은 상대적으로 비중이 떨어지더라도 유럽의 작은 수도를 좋아한다고들 한다.

돌이켜보면, 일본이 처음으로 인도 시민들에게 정치적 실체를 드러낸 건 영국의 동맹국들에 적으로 부상한 2차대전의 주축국으로서다. 당시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인도국민의회의 젊은이 수천명은 영국인도군(British Indian Army) 일원으로 동남아시아전선에 뛰어들었다. 물론 버마전선을 제외하고는 실제로 인도군이 일본군과 직접 교전한 곳도 없었고, 또 북동부 일부 지역을 빼고는 일본군의 폭탄이 인도 땅을 때린 적도 없었지만, 일본은 인도 시민들에게 공격적인 군인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러다 1942년 국민의회가 화해운동을 벌이면서 영국을 공격하고, 부바쉬 찬드라 보스가 이끌던 인도국민군(Indian National Army)을 지원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마하트마 간디가 이끌었던 국민의회의 생각과 달리, 인도국민군은 군대로 식민정권을 뒤엎을 수 있다고 믿으면서부터 강한 파시스트 기질과 강권적인 특성을 드러내며 일본 정부와 동맹을 맺기에 이르렀다. 그 불온한 동맹은, 당시 일본군 포로 가운데 강제징집당했던 인도인 전쟁포로가 나온 것으로 증명되었다. 민족주의 기운이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영감을 부여한 탓이었는데, 이런 분위기는 영국인도군 내부에서 폭동을 선동하기도 했고, 특히 해군에서는 더 급진적인 반란도 일어났다.

이런 모순과 이중성을 지녔던 인도국민군은 결론적으로 보자면 영국 식민주의자들의 계산에 중대한 의미를 던졌다. 전쟁이 끝난 뒤, 영국에는 식민지 인도에 국민군이라는 신뢰할 수 없는 집단의 위험성이 존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으니. 결국 영국에 최상의 선택은 인도의 독립을 인정하며, 그 이중성을 지닌 국민군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난다는 쪽으로 결말이 났고, 부바쉬 찬드라 보스는 영웅으로 떠올랐다.

외눈박이 세계관 가졌던 셈

이런 과정 속에서, 대부분의 인도 시민들은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저질렀던 전쟁범죄라는 야만적인 역사를 깨닫지 못했다. 다시 말해 영국으로부터 독립이 지상과제였던 당시의 현실 속에서 인도 시민들은 외눈박이 세계관을 지녔던 셈이다.

50년이 지난 오늘, 불행하게도 일본인들이 야수적인 전쟁의 역사를 감추며 지워나가고 있듯이 인도에서도 흉포한 전쟁과 평화의 중요성이 지워져버렸다. 이 전쟁 역사의 삭제는 결국, 파괴적인 군사문화의 확장과 광신적 힌두민족주의로 무장한 극우세력을 신장시키는 촉진제가 되고 말았다. 인도와 일본, 이 두 나라에는 지금 극우분자들의 쌍둥이 물살이 도도하게 흐르고 있다. 역사의 경험은 역사의 교훈이라고 하는데, 과연 이 쌍둥이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인가.

정신차리고 지켜보아야 하는 일이 이제 건강한 시민들의 의무로 넘어왔다.

프라풀 비드와이(Praful Bidwai)

전 <타임 오브 인디아> 편집장·핵 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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