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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자피노스’로 되살아나는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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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8-1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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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악연과는 상관없이 일본문화에 함락된 필리핀사회, 이 거대한 건망증

일본, 아시아의 그 어떤 나라보다도 필리핀 시민을 혼란스럽게 만든 존재다. 특히 1945년의 짧았지만 혹독했던 침략의 역사를 통해서. 일본의 야수적인 인상은 필름 속에서뿐만 아니라, 2차대전에 참전했던 생존자들의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다. 필리핀에서 저질렀던 일본의 그 포악한 행실은 지울 수 없는 치명적인 오점으로 남아 있다는 말이다.

“가라오케의 발명지는 필리핀!”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은 필리핀성 안에 남아 있는 폭격의 상처를 보면서 할아버지와 어머니의 말씀이 옳았다는 사실을 대물리며 배워왔다. 한국의 할머니들과 마찬가지로 필리핀의 할머니들도 일본제국주의 군대의 욕정 앞에 치욕적인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을 또 배워가고 있다. 이렇게 사회 전체가 야만적인 일본의 전쟁 아래 고통을 겪었으면서도, 놀라운 건 일본과 그 국민들에 대한 진지한 연구가 없다는 사실이다. 기껏 분노의 잔재라는 것이 일본인의 신체적 특성을 가리키며 사캉(안짱다리)이라 낄낄거리거나 영어 구사력이 부족한 사람들이라는 편견 정도뿐이다.


되돌아보면 최근까지도 필리핀-일본의 관계는 강한 애증이라는 생각이 든다. 1970년대와 80년대를 통해 필리핀은, 한때 식민 지배국이었던 미국의 독점적 지원에서 벗어나 일본의 제3세계 개발원조자금(ODA)에 의존하기 시작했고, 필리핀 시민들은 일본을 다시 보게 되었다. 바로 같은 시간, 필리핀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일본 사내들의 변태적인 성적 스캔들로 필리핀 시민들의 분노도 높아갔다. 그 무렵, 독재자 마르코스가 추진했던 노동수출정책도 결국은 야쿠자가 중심이 된 불법적인 구조로 편입되면서 일본 화류계에 필리핀 여성 홍수라는 병적 현상만 초래했고, 필리핀 시민들 사이에는 노여움만 증폭되고 말았다.

일본에서 일하던 필리핀 여성 무대노동자들이 살해당하면서 필리핀-일본의 관계는 피부가 벗겨지는 쓰라린 통증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몇년 전부터는 무관심하게 버려진 수천명의 자피노스(일본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 태어난 아이)가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일본에서 태어난 자피노스는 일본인 아버지가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인정해야만 일본 국적을 받을 수 있는 희한한 법 논리 탓에 희생당하고 있는 아이들이다. 일본인 아버지가 인정하지 않으면 아기들은 어머니의 나라 필리핀으로 조건없이 되돌려 보내지는 괴상한 현상을 낳았고, 부양능력이 없는 어머니들은 이 아이들을 방치해버림에 따라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런 수많은 악연과는 상관없다는 듯, 판을 치고 있는 일본문화를 보노라면 필리핀사회의 건망증이나 또 가볍기 짝이 없는 시민사회도 모두 알아줄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강력한 전염성을 지닌 일본문화는 지금 온 필리핀을 감염시키고 있다. 요즘 필리핀 중산층 시민들 사이에는 ‘스시’와 ‘덴뿌라’를 게걸스럽게 먹는 게 유행이다. 과거야 어찌됐건, 관계야 또 어떻게 흘러가든, 분명히 필리핀 시민들은 ‘헬로 키티’와 ‘가라오케’로 무장한 일본문화에 함락된 상태다.

참고로 적어도 <한겨레21> 독자들이라면, 오늘밤 마이크를 잡기 전에 출처 정도는 아는 것이 어떨까 싶다. 일본이 자신들의 발명품으로 또는 일본문화의 상징으로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가라오케가 사실은 필리핀이 발명해서 필리핀에서 유행했던 도구라는 사실. 김치가 기무치로 포장되어 세상에 돌아다니는 것처럼!

무릎 꿇리고 용서 받아내야

사진/ 2차대전 기간 필리핀에 진주한 일본군. 필리핀에서 저질렀던 그들의 포악한 행실은 아직도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다.
요즘 마닐라의 외신판에도 새로운 현상이 드러나고 있다. 대개의 서양 신문과 방송사들이 마닐라 지국을 폐쇄하고 떠난 것과는 반대로 일본의 언론사들은 오히려 특파원 수를 늘리고 새로운 지국을 개설하고 있으니,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언론이 가장 민감하게 미래를 준비하는 잣대라고 보면 틀림이 없을 터이다.

뭔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예감이다. 필리핀과 일본 사이에는. 그래서 그 뭔가가 일어나기 전에 분명히 짚고넘어가야 할 일이 있다. 사과를 받아야 하고, 무릎 꿇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 이게 바로 역사에서 필리핀의 권리고 일본의 의무다.

필리핀에서 현재, 환영받고 있는 건 일본도 일본 사내도 아닌, 그저 일본의 돈뿐이라는 사실을 일본이 깨달아야만, 관계는 성숙될 수 있을 것이다.

마리테스 시손(Marites Sison)

전 <마닐라타임스> 기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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