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형님’은 사기꾼이었다네

372
등록 : 2001-08-14 00:00 수정 :

크게 작게

대동아공영권 명분 아래 이뤄졌던 각종 경제수탈은 포장만 바뀐 채 계속되고 있다

일본만 생각하면, 그리고 2차대전만 떠오르면 부끄러워진다. 한때, 일본을 ‘형님’이라 불렀던 인도네시아의 기억 탓이다.

전쟁 초기 동 칼리만탄섬의 타라칸 같은 곳에서는 상륙한 일본군을 형님처럼 대접했다는데, 당시 네덜란드로부터 독립을 찾아주겠다고 사기치는 일본을 순진하게 믿었던 모양이다.

1942년 8월, 자바섬을 공격해 들어온 이 형님은 본격적으로 인도네시아 지도자들과 독립운동조직들에 일본을 지원하라며 윽박질렀고, 독립 뒤 초대 대통령이 된 수카르노는 일본과 협력하기를 원했다고 한다.

수난중의 수난, 회교사회


사진/ 일본과 협력했던 수카르노. 그는 뒷날 자신의 실수를 고백햇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자바섬과 동남아시아를 거쳐 버마를 연결하는 일본의 전쟁철도사업에 강제 동원된 인도네시아 젊은이들의 고문관 노릇을 하기에 이른 수카르노는 “인도네시아 노동자의 강제징발은 대동아공영권의 목표달성을 위한 의미심장한 기여고, 일본은 우리의 독립을 지원해줄 것이다”고 역설했고, 그로부터 일본은 온 인도네시아의 모든 것을 싹쓸이해갔다. 남성은 강제노동이나 군대로 끌려갔고, 여성들은 일본군의 성노예로 잡혀갔다. 뒷날 수카르노는 자신의 실수를 고백했지만, 이미 늦어도 한참 늦은 뒤였다.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협력’을 말하던 사이, 6만여명의 꽃다운 여성들은 일본군 특별막사에서 하루 수십명의 눈 뒤집힌 정욕들을 받아내야 했고, 정신적·육체적 고통에 못 이긴 여성들은 여기저기서 목숨을 끊어나가고 있었다. 심지어 수카르노의 여성마저 일본군의 성 노리개로 전락해버렸고…. 이 세상 어떤 협력의 명분이 여성을 잡아가서 군인들의 성노예로 삼았던가.

일본의 굶주림이 성욕에만 있는 것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가정집 놋그릇에서부터 철로에 이르기까지 인도네시아에 존재하는 쇳조각이란 쇳조각은 모조리 군용트럭에 실어갈 정도였으니. 쇳조각이 이런 판이니 보석은 말할 것도 없었다. “보석은 대동아공영권의 최후 승리와 영광을 보장할 것이다.” 이런 구호 아래 일본이 강탈해간 다이아몬드만 무려 2만캐럿에 이르지만, 인도네시아가 독립할 때까지 일본의 약속은 결코 지켜진 적도 사실로 드러난 적도 없는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일본이 인도네시아를 노략질해가는 사이, 인도네시아 시민들은 거친 마대로 옷을 지어 입었고 짐승먹이로 끼니를 때우는 고통을 겪었다.

일본의 침략 기간 동안, 인도네시아는 사회·종교적으로도 가혹한 시련을 겪었다. 특히 일본이 강요한 ‘천황폐하’에 대한 기도는 회교중심사회인 인도네시아가 겪은 수난 중의 수난이었다. 회교법이 결코 용서하지 않는 ‘다른 신에 대한 기도’를 강요한 셈이니. 말하자면 ‘형님’에게 모든 것을 바쳤지만, 아우에게 남은 것은 한맺힌 도탄뿐이었다.

그나마 1945년 8월17일 인도네시아가 독립을 선포한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만약 그날까지도 일본에 대한 믿음을 지니고 있었다면, 인도네시아는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진 이름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6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섣불리 일본의 정체를 단정하기 힘들다는 것이 상식적인 인도네시아 시민들의 생각이다. 일본은 여전히 부정적인 경제 방식으로 인도네시아사회를 위태롭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하르토 독재 시절 공직자들을 매수하여 각종 이권사업을 따내고 시장의 독점적 지위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창출해간 사실을 인도네시아 시민사회는 잘 기억하고 있다. 일본이 포장만 전쟁에서 경제로 바꿨지, 내용물과 버릇은 2차대전의 연장선이라고 시민들은 믿고 있다.

역사교과서문제, 그럴 줄 알았다

역사교과서문제도 바로 이 일본의 정체성 탓이다. 왜곡, 이런 건 전혀 새로운 사실도 놀랄 만한 일도 아니다. “일본은 아시아의 해방과 번영을 지원한 유일한 국가다.” 이미 옛날부터 이렇게 교과서에 기록해 온 작자들 아닌가. 거짓말을 접고 사과를 하면서 문명인으로 다시 태어날 것인지 아니면, 국제사회가 안겨준 그 불명예스런 이름을 자손대대로 물려주든지, 그건 이제부터 일본의 선택일 뿐이다.

인도네시아한테 일본은, 일본인들이 생각하거나 기대하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더 저속한 수준임을 깨닫는 것이 시각교정의 첫 번째 과정이 될 것이다.

아흐마드 타우픽(Ahmad Taufik)

시사주간지 <템포> 기자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