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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짧은 겨울, 전기 없어 더 추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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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8-1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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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를 즐기기 위해 고산지대로 가는 브라질 사람들… 전력난으로 온수 쓰기도 겁나네

사진/ 8월이 되면 브라질 아가씨들은 겨울코트를 옷장에서 꺼내 한껏 멋을 낸다.
브라질에서는 밋밋하게 덥기만 하다가 날씨가 추워지는 겨울이 바로 7월과 8월이다. 너무 혹독하게 춥지도 않고 지루하게 길지도 않은 겨울이라서 브라질사람들은 겨울이 오는 걸 무척 즐거워하며 맞는다. 젊은 아가씨들은 몇번 입을 일이 없지만 그래도 장만해둔 가죽점퍼나 겨울코트를 옷장에서 꺼내고 일년 내내 신발장 안에 세워놨던 가죽부츠를 닦아 신고 나갈 기회라서 즐거워한다. 털모자에 색깔 맞춰 털목도리나 숄을 두르면 민소매 바람으로 벗고 다닐 때보다 우아하고 폼이 나게 마련이다.

“안 추우면 호텔비 반환 보장!”

난방 시스템이라는 게 없는 나라인데 고급주택이나 아파트에는 집 안에 벽난로를 만들어놓는다. 한달 가량밖에 안 되는 이 겨울 동안에 장작불을 피워놓고 포도주를 마시는 낭만을 즐기기 위해서다. 사실 겨울이라고 해봐야 가로수는 여전히 무성한 푸른 잎을 달고 있고 심지어는 색색가지 꽃들이 쌀쌀한 바람 속에서도 조화처럼 매달려 있으니 겨울 기분을 내기가 좀 쑥스럽다. 그래서 겨울철이 되면 조금이라도 더 추운 곳으로, 그래서 진짜 겨울 분위기를 누릴 수 있는 곳으로 주말이나 8월 휴가를 보내러 놀러가는 경우가 많다.


추운 날씨를 느낄 수 있는 곳은 아무래도 지대가 높은 산간지방이다. 상파울루에서 두어 시간 고속도로를 타고 나가면 평균기온이 10도 정도 낮은 고산지대 도시들이 있다. 이런 곳에서는 겨울철 여행객을 잡느라 유럽풍으로 온 도시를 단장하고 겨울 페스티벌 프로그램을 열심히 유치한다. 이런 관광도시들이 내세우는 선전문안을 보면 “정말, 확실하게 춥습니다”, “안 추우면 호텔비 반환 보장!”이라고 외치는 듯한 느낌을 준다.

1700m 고도에 위치한 내륙도시인 캄푸스 도 조르당은 “브라질의 스위스”라고 불리는 대표적인 겨울철 관광도시다. 브라질 전국에서 유일하게 옥외 스케이트장이 있는 이곳을 찾는 관광인구는 이른바 7, 8월이면 주말마다 5만명이 넘는다. 높고 깊은 산 속에 자리잡아 싸늘하게 맑은 공기가 사람들을 불러모은다.

이렇게 감질나게 금방 지나가는 겨울도 올해는 브라질 전국이 몸살을 앓고 있는 전력난 때문에 그리 반갑지 않은 계절이 돼버렸다. 지난 6월부터 시작된 전력사용량 제한정책에 따라 각 가정에는 전년도 소비량에서 20%를 줄인 절전목표가 전달된 바 있다. 정부에서는 목표한도 이상을 초과하여 소비하는 가정에 대해서는 3일간 단전을 실시하고 단전 및 재연결 비용을 소비자에게 부과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그러더니 7월 초에 6월 전기소비량이 계산돼 나오자 단전조치는 다음달부터 실시한다고 연기했다.

“왜 못하는 줄 알아요? 왜 단전조치를 연기할 수밖에 없는 줄 알아요? 이거 다 불법이에요. 헌법에 위반하는 거예요. 시민단체에서 변호사 대서 소송 걸면 정부가 질 수밖에 없어요.” 얼마 전 탔던 택시의 기사가 한 말이었다. 택시에 올라타자마자 필자의 집 전기사용량은 얼마냐라고 묻기에, 하도 묻고 대답해서 일자리 숫자까지 외우고 있는 평균소비량과 목표량을 말해줬다. 그 역시 일자리 숫자까지 똑 떨어지게 자기 집 소비량과 목표량을 대면서 “더이상 아낄 데가 없어요. 목욕용 온수기가 전기를 많이 쓴다는데 집에 애가 둘이에요. 애들 목욕 안 시킬 순 없잖아요”라고 열을 냈다. 필자도 올해는 전기난로를 꺼낼 생각도 안 했으며 샤워기 온도 조절도 ‘중간 뜨겁기’로 해놨다가 도저히 추워서 안 되겠어서 그냥 ‘아주 뜨겁기’로 올려놨노라고 했다.

극빈부층이 오히려 더 절전

재미있는 현상은 살기 어려운 서민들 사이에서 절전목표량 달성률이 더 높았다는 것이다. 당초 한달에 100kW 이하 소비가정에 대해서는 굳이 전기를 아낄 필요가 없다고 돼 있었다. 한달 100kW라고 하면 냉장고 한대, 텔레비전 한대, 온수기 한대, 전구 세개를 간신히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그런데 일반인들 사이의 절전율이 20%에 머문 데 비해 100kW 미만 사용자인 극빈층 서민들 사이의 절전량은 40%까지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500kW 이상 사용자들 가운데 전기사용량을 목표한도 아래로 끌어내리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일부 지역에서는 절전목표가 달성되지 못하자 다시 주4일근무제를 도입하자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런 ‘신나는 일’이 생기지는 않을 것 같다. 안 그래도 해가 짧아지는 계절, 저녁 무렵이 되면 두개 건너 하나만 가로등을 켜고, 화려한 네온사인들이 많이 줄어든 상파울루 도심 거리가 어둡고 서늘하다.

상파울루=오진영 통신원 ohnong@ig.com.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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