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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허름한 차림의 ‘국왕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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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8-1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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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 제도를 철저히 파괴한 노르웨이, 그러나 왕가의 권위가 유지되는 이유는…

겉으로 보기에는 극히 합리적일 것으로 보이는 북유럽인들의 생활에서 그야말로 외부인으로서 이해하기 어려운 ‘불가사의한’ 부분을 꼬집는다면, 왕실의 지속과 그 식을 줄 모르는 경외와 인기부터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것은, 가정 제도를 비롯한 일체 전통들이 비중을 잃어버린 초(超)개방주의 국가, 초등학생들도 선생님과 동등한 인격체로 간주되는 국가, 권위라는 것을 일체 부정하는 노르웨이에서 과연 왕가의 권위가 어떻게 유지되는가라는 것이다. 왕권을 가부장 제도의 연장으로 보는 일반적인 입장에서, 가부장 제도를 가장 철저하게 파괴한 노르웨이·스웨덴·덴마크의 왕권에 대한 지속적 지지는 여간 큰 모순으로 보이지 않는다.

미혼모와 동거했던 하콘 왕세자

사진/ 개인주의의 승리? 마약 복용 혐의가 있는 미혼모 메테 마릿과 약혼해 화제가 됐던 왕세자 하콘.(GAMMA)
그러나 현재 왕족 자신들과 노르웨이 보수 매체들이 만드는 왕권의 이미지를 좀더 깊이 지켜보게 되면 이 모순이 풀리기 시작한다. 먼저 알 수 있는 것은, 현재의 노르웨이 국왕인 하랄드(Harald)와 왕족이 가장 기피하는 것이 바로 전통적인 가부장, ‘사회의 어른’의 모습이라는 사실이다. 왕과 일부의 왕족이 지금도 오슬로 중심부의 전통 왕궁에서 친위부대의 호위를 받으면서 살고 있지만, 매체에서 자주 등장하는 왕과 그 가족의 모습은 궁전의 호화로운 내부나 황금 왕관이 아니라 일반인과 똑같이 차표를 사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겨울철에 대부분의 노르웨이 사람들처럼 신나게 스키를 즐기거나, 공원에서 산책하면서 행인들과 똑같이 시간을 보내는, 가장 평범하고 일상적인 이미지이다.


물론 미디어는 왕과 일반인들을 완전히 동일시하려고 하지 않는다. 완전한 속화(俗化)는 결국 왕권의 필요성에 대한 회의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인의 생활을 하면서 일반인과 아무 거리낌없이 어울리는 왕은, 그러면서도 행동거지에서 나름대로의 ‘귀공자의 풍’을 그대로 지닌다. 그러나 ‘왕권’이라면 쉽게 연상되는 ‘권위주의’를 찾아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가 일반인이 아니면서도 일반인과는 간극이 없다”는 그들의 입장을 노르웨이의 왕세자인 하콘(Haakon·1973년생)의 행동에서 가장 선명하게 읽어낼 수 있다. 일반 공립학교를 졸업한 뒤에 정치학 학사 학위를 얻은 하콘은, 왕궁도 아닌 시내의 한 서민층 아파트에서 살면서 최근에 유행하는 테크노 팝음악에 몰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싸구려 옷을 입고 음반을 구하는 데에 여념이 없는 그의 모습을, 오슬로 시내 북부의 음반가게나 커피숍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테크노음악에 대한 무한한 애호보다 더 왕세자를 유명하게 만든 사람은 그의 약혼녀 메테 마릿(Mette Marit)이다. 약혼 이전에도 왕세자와 동거생활을 즐겨왔던 메테 마릿이 그 이전에 이미 미혼모였다는 사실 자체가, 결혼을 구시대적인 귀찮은 법적 절차로 생각하는 그리고 동거자의 교체를 도덕적으로 전혀 문제삼지 않는 노르웨이에서 별로 파문을 일으키지 않았던 것이다.

매년 비주류 좌익당에선 “폐지”주장

사진. 5월 17일 노르웨이 국가의 날에 왕실 발코니에서 손을 흔드는 왕실 일가. '왕권'이라면 쉽게 연상되는 '권위주의'를 그들에게서 찾아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문제는, 메테 마릿의 전 동거자가 젊은이들을 상대로 난교·마약파티를 조직하다 적발되어 마약 보유죄로 현재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메테 마릿 자신도 그러한 유의 파티에 한때 몰두하여 마약 복용도 하였으리라는 의혹이다. 그래서 메테 마릿이 장차 왕비가 될 자격이 있는가에 대한 논란이 인 적도 있지만, 결국에는 그녀와 왕세자의 결혼은 왕가에서 받아들여졌다. 비록 의혹이 있어도 죄가 법정에서 증명되지 않은 한 마약보유문제에서 메테 마릿의 무죄를 전제해야 한다는 법치주의 논리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왕세자 개인의 사랑이라는 개인주의 논리가 승리를 거둔 셈이다.

미혼모와 동거하면서 허름한 옷차림으로 음반 구입에 몰두하는 왕세자의 모습에서, ‘권위주의’는 물론 어떠한 ‘권위’도 찾아보기 어렵다. 독서량이 비교적 많고 교양이 있는 그의 몸가짐에서 약간 독특한 품위를 느낄 수 있지만, 그 행동 자체는 그 나이 또래의 일반 사람과 별다른 차이는 없다.

그러나 노르웨이의 전체 분위기에 맞추어 전통적인 가부장적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난 왕권이 존재하게 된 근거가 과연 무엇이었을까? 왕과 왕족도 평등성과 개방성을 과시해야 하는 사회에서 왜 하필이면 결코 싸지 않은 왕궁 유지비를 국고에서 지불해야 하는가? 사실, 비주류 좌익당들은 이미 몇십년 전부터 꾸준히 국회에다 왕권 폐지·공화제로의 전환에 관한 법안을 제시하곤 하였다. 그러나 매번 대다수의 표로 부결되어 패배하곤 했다. 우익은 물론, 정권을 잡고 있는 노동당도 ‘봉건 잔재 청산’이라는 그들의 주요 표어와는 정반대로 왕권 폐지를 적극적으로 저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현재의 노르웨이 왕권이 ‘봉건적’이라기보다는 근·현대적 민족주의적 색채가 강하다는 데 있는 것 같다.

정치적 발언권조차 없는 ‘국가와 국민의 상징’인 왕과 왕족은, 말 그대로 현재의 ‘평균적 노르웨이 사람’의 생활·행동양식을 그대로 상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국왕의 과시적인 ‘스키 사랑’은, 노르웨이사회를 결속시키고 통합시키는 ‘겨울 스포츠의 숭배’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왕세자가 보여준 ‘연애에서의 철저한 개인주의’도, 바로 최근의 가부장적 가정 모델을 대체시켜 ‘민족의 행동양식’이 된 극단적인 개인주의적 ‘탈(脫)가정적 가정의 모델’에 따르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독서·음악에 대한 왕가의 애호도, ‘민족적인 행동양식’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풍부한 취미생활’의 한 모형을 보여주는 것이다.

‘민족적 행동양식의 상징’으로서의 왕가의 역할은 상당히 복합적이다. 한편으로 이미 사회적으로 ‘주류’로 인정받은 경향들(개인주의, ‘탈(脫)가정주의’ 등)을 몸으로 실천하는 왕과 그 가족들은, 사회적 통합에 긴요한 경향들(국민적 ‘스포츠 숭배’ 등)에 의미를 적극적으로 부여한다. 그리고 높은 인기와 인지도를 가지는 ‘모범적인 노르웨이 사람’인 노르웨이 왕가는, 국경이 거의 무의미해진 유럽의 상황에서 노르웨이인들 사이에서 민족적 소속감과 긍지의 정서를 고취하기도 한다. 어느 집단이든 소속감을 거부하려는 요즘의 유럽인들이 철저한 개인주의자를 ‘자랑스러운 상징’으로 내세우게 됨으로써 소속감과 함께 자긍심을 가질 확률이 높은 것이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배타적 요소

사진/ 스키장에서 국기를 흔들며 열광하는 광중. 국왕의 '스키 사랑'은 평균적 노르웨이 국민의 취향을 반영한다.
구멍난 옷과 평범한 미혼모와의 동거가 ‘민족’의 상징이 될 정도면, 선진형 자유주의적 민족주의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과연 이와 같은 민족주의에 어두운 ‘그늘’이 전혀 따르지 않을까? 물론 일반적으로 겉으로 보기에는 별다른 ‘그늘’을 찾아보기란 힘들다. 그러나 폭력을 완전히 거부하는 평화주의자의 입장에서는, 왕과 왕세자의 군 복무 경력이 상징하는 노르웨이 민족주의의 ‘국방적’ 측면들이 어떤 면에서는 ‘주류로부터의 압박’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군 복무 대신 대체복무를 선택할 왕세자가 앞으로도 나타나지 않는다면, 왕가가 대표하는 노르웨이 민족주의와 평화주의자들간의 신념 대립들은 계속 충돌을 일으킬 것이다. 그리고 만약에, 왕세자가 선택한 여인이 동양인과 같은 비(非)서구 계통에 속했다면, 왕비로 받아들여지기가 쉬웠을까? 사실 노르웨이뿐 아니라 스웨덴, 덴마크 등의 왕족의 결혼 상대자 중에서도 비(非)서구 계통은 전혀 없다. 과연 그것이 우연인가? 나토의 일원인 노르웨이 국군, 그리고 인종적·문화적 장벽을 수용하고 있는 노르웨이의 왕가와 그가 상징하는 민족주의는 여전히 철저한 인종적·종교적·문화적인 배타적 요소를 그대로 지니고 있는 것이다.

박노자/ 오슬로 국립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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