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한 정부에 던져진 개발원조자금, 오히려 캄보디아의 자연과 자원을 바닥내버린다”
오랜 내전을 거치며 황폐해진 땅, 서투른 운영과 터무니없는 관리체계로 엉망진창이 된 사회, 게다가 연중 행사처럼 벌어지는 홍수에다 지독한 부패…. 이래서 캄보디아경제는 없다. 만약, 사회복구와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는 일본의 원조를 제외한다면.
91년부터 7억3천만달러 지원
“일본의 지원은 캄보디아경제의 숨통, 그 자체다.” 캄보디아사회 전 부문에 걸쳐 막대한 지원을 하고 있는 일본을 놓고 경제재무부 차관 항 추안 나론이 직설적으로 내뱉은 말이다. 일본의 원조로 캄보디아는 숨을 쉬고 있다는 뜻이다. 일본의 원조를 빌미로 삼고, 일본 원조금을 보증으로 삼아 캄보디아 정부는 다른 해외자본을 유치하고 무역을 하며 재정수익을 올리고 있는 현실이니, 틀린 말도 아니다. 캄보디아는 연간 약 5억달러의 해외원조로 버티는 사회인데, 이 가운데 일본이 혼자서 5분의 1을 지원하고 있다. 이쯤되니, 캄보디아 주재 일본대사 오타로 오가와가 “일본의 개발원조자금은 캄보디아의 항구적이고 포괄적인 개발에 기여하고 있다”며 뿌듯해하는 걸 아무도 탓할 수 없다.
1991년부터 따져보니, 일본이 제3세계 개발원조자금(ODA)을 통해 캄보디아를 지원한 총액(다국간지원계획포함)이 7억3천만달러를 넘는다. 그래서 일본을 향한 시민들의 고마움은 가히 무조건적이다. “장담하건대 일본의 지원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길도 다리도 없었을 것이다.” 프놈펜에서 약국을 경영하는 멩 보파 라스(39)의 흥분처럼. 실제로 일본은 8천만달러를 들여 톤레사프와 메콩강에 신식 다리를 놓았고, 수백만달러를 투입해서 길을 보수해왔다. 곳곳에 일본마크가 새겨진 병원을 짓고 부두와 상수도와 발전소를 건설하고 있다. “일본의 지원은 캄보디아의 동맥이 될 사회기반시설에 집중되고 있어 매우 긍정적이다.” 굳이 캄보디아 평화협력연구소의 카오 킴 호른 소장이 말하지 않더라도 곳곳에 나붙은 일본 프로젝트를 보노라면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그러나 야당 정치인 삼 라인시 같은 이들은 완전한 조건이 성숙되기 전에 돈부터 풀고 보는 일본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일본은 돈이면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특히 캄보디아에서….” 전직 재무장관이었던 그의 독설은 이어졌다. “일본은 그 자신이 돈의 노예다. 여기에 말려들어 캄보디아가 원조의 하수구가 될 수는 없다.” 삼 라인시는 세금을 내는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돈이 어떻게 낭비되고 있는지를 눈여겨보는 것이 원조에 대한 자부심보다 더 중요한 시민의 의무라고 덧붙였다. 그는 올 6월 도쿄의 국제원조자회의에서도 쌍심지를 켰다. “국제사회의 대캄보디아 지원은 비효율적인 정책을 지닌 부패한 정부에 감시체계 없이 던져진 꼴로 원조가 오히려 캄보디아의 자연과 자원을 바닥내버린 실정이다. 원조금은 비생산적인 분야에 일관성 없이 투입되면서 모조리 허공으로 날아가버렸다.” 캄보디아는 없다, 일본은 있다 하지만 삼 라인시의 소리에 귀기울여 주는 이들은 별로 없다. 캄보디아에서도 일본에서도, 세상 어디에서도. 현실 속에서 일본, 시민들 사이에서 일본, 그 일본은 누가 뭐라고 떠들어대든 분명히 굉장한 이름이다. 앙코르와트보다도 더 자주 시민들의 대화에 오르내리는 걸 보면.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과거의 일본을 뒤적거려 그 물주의 심장을 상하게 할 만한 용기가 캄보디아에는 없다는 뜻일까. 일본의 교과서가 어떻게 돌아가든, 캄보디아에서는 역사 같은 무형적인 가치보다는 단 한푼의 유형적인 현찰이 중요하다는 뜻일까. 캄보디아에 일본은 있지만, 캄보디아는 없다. <한겨레21>이 던진 화두인 “일본은 무엇인가”를 대답하기 전에 “캄보디아는 무엇인가”를 대답할 자신도 근거도 없다는 게 정직한 나의 고민이었다. 푸 키아(Puy Kea) <교토뉴스> 프놈펜 특파원

1991년부터 따져보니, 일본이 제3세계 개발원조자금(ODA)을 통해 캄보디아를 지원한 총액(다국간지원계획포함)이 7억3천만달러를 넘는다. 그래서 일본을 향한 시민들의 고마움은 가히 무조건적이다. “장담하건대 일본의 지원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길도 다리도 없었을 것이다.” 프놈펜에서 약국을 경영하는 멩 보파 라스(39)의 흥분처럼. 실제로 일본은 8천만달러를 들여 톤레사프와 메콩강에 신식 다리를 놓았고, 수백만달러를 투입해서 길을 보수해왔다. 곳곳에 일본마크가 새겨진 병원을 짓고 부두와 상수도와 발전소를 건설하고 있다. “일본의 지원은 캄보디아의 동맥이 될 사회기반시설에 집중되고 있어 매우 긍정적이다.” 굳이 캄보디아 평화협력연구소의 카오 킴 호른 소장이 말하지 않더라도 곳곳에 나붙은 일본 프로젝트를 보노라면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그러나 야당 정치인 삼 라인시 같은 이들은 완전한 조건이 성숙되기 전에 돈부터 풀고 보는 일본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일본은 돈이면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특히 캄보디아에서….” 전직 재무장관이었던 그의 독설은 이어졌다. “일본은 그 자신이 돈의 노예다. 여기에 말려들어 캄보디아가 원조의 하수구가 될 수는 없다.” 삼 라인시는 세금을 내는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돈이 어떻게 낭비되고 있는지를 눈여겨보는 것이 원조에 대한 자부심보다 더 중요한 시민의 의무라고 덧붙였다. 그는 올 6월 도쿄의 국제원조자회의에서도 쌍심지를 켰다. “국제사회의 대캄보디아 지원은 비효율적인 정책을 지닌 부패한 정부에 감시체계 없이 던져진 꼴로 원조가 오히려 캄보디아의 자연과 자원을 바닥내버린 실정이다. 원조금은 비생산적인 분야에 일관성 없이 투입되면서 모조리 허공으로 날아가버렸다.” 캄보디아는 없다, 일본은 있다 하지만 삼 라인시의 소리에 귀기울여 주는 이들은 별로 없다. 캄보디아에서도 일본에서도, 세상 어디에서도. 현실 속에서 일본, 시민들 사이에서 일본, 그 일본은 누가 뭐라고 떠들어대든 분명히 굉장한 이름이다. 앙코르와트보다도 더 자주 시민들의 대화에 오르내리는 걸 보면.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과거의 일본을 뒤적거려 그 물주의 심장을 상하게 할 만한 용기가 캄보디아에는 없다는 뜻일까. 일본의 교과서가 어떻게 돌아가든, 캄보디아에서는 역사 같은 무형적인 가치보다는 단 한푼의 유형적인 현찰이 중요하다는 뜻일까. 캄보디아에 일본은 있지만, 캄보디아는 없다. <한겨레21>이 던진 화두인 “일본은 무엇인가”를 대답하기 전에 “캄보디아는 무엇인가”를 대답할 자신도 근거도 없다는 게 정직한 나의 고민이었다. 푸 키아(Puy Kea) <교토뉴스> 프놈펜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