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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합리적이고 매력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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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8-1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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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주도권 쥔 국제연합개발계획 본격화에 반색… 교과서 왜곡은 너무나 먼 이야기

1970년대와 80년대 모든 아랍국가들이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벌일 때, 일본 기업들은 이스라엘과 아랍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선 적이 있다. 물론 일본 기업들은 이스라엘을 선택하면 대신 모든 아랍시장을 잃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도요타와 미쓰비시 자동차가 울며 겨자 먹기로 아랍을 택했던 것과 달리 수바루(스즈키자동차)는 유일하게 이스라엘을 선택했다. 그리고 소니 녹음기는 예나 지금이나 각종 상이한 이름을 달고 수입되고 있다. 말하자면 1990년대 평화회담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가자지구나 서안의 팔레스타인 시민들에게 일본은 단지 수바루 자동차와 소니 녹음기와 같은 하나의 이름일 뿐이었다.

처음엔 ‘이상한 부자나라’였는데…

사진/ 유엔의 구호물자를 공급받는 팔레스타인 난민들. 요즘 팔레스타인에선 일본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가고 있다.(GAMMA)
이 세계적인 경제대국 일본이 아랍의 원유에 의존하면서 아랍국가들과 관계 개선을 꾸준히 시도해온 것도 사실이지만, 팔레스타인 시민들에게 일본이란 나라는 이스라엘을 통한 이익 없이는 한푼도 쓸 줄 모르는 좀 이상한 부자 정도로만 인식돼왔다. 일본이 팔레스타인 시민들을 지원하고자 했던 것도 사실인데, 문제는 늘 이스라엘 단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팔레스타인을 지원하는 방식을 택했으니, 팔레스타인 시민들 입장에서는 별로 달갑게 여겨질 리가 없었던 것이다.


1980년대 들어, 아랍국가들과 팔레스타인에 우호적인 국제사회가 국제연합을 통해 팔레스타인의 지역개발을 위한 결의안을 통과시키면서부터 일본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시 국제연합개발계획(UNDP)이 주도한 이 프로젝트는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국제연합개발계획의 사업은 원칙적으로 독립국가를 대상으로 삼는다는 조항 탓이었다. 당연히 국제사회는 이스라엘 정부를 통해 팔레스타인을 지원하는 방식을 꺼렸다. 결국 1982년, 국제연합은 “국제연합개발계획의 프로젝트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공히 인정한 사업에 한해 지원할 수 있다”는 희한한 논리를 만들어 실행에 옮겼다. 그 무렵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의 주적이었고, 팔레스타인을 인정하는 이들은 누구든 범죄자로 취급해서 감방에 처넣던 시절이었다.

이러니 개발계획을 위해 사무실조차 열 수 없는 실정이었다. 이런 특수한 상황 속에서, 일본이 국제연합개발계획의 주도권을 쥐면서 팔레스타인 지원에 합리적인 방식들을 만들어나갔고, 이를 계기로 팔레스타인 시민들 사이에는 일본에 대한 인상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돈줄을 대다

1993년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의장과 라빈 이스라엘 총리가 백악관 뜰에서 역사적인 악수를 나누면서부터, 일본과 사우디아라비아가 돈줄을 댄 국제연합개발계획의 팔레스타인 개발사업은 본 궤도에 올랐다. 팔레스타인 땅에는 국제연합의 깃발이 올랐고 비로소 사무소 개설이 허용되었다. 일본은 팔레스타인 행정기구 설립에는 거리를 두면서 국제연합개발계획을 통해 팔레스타인 지원을 계속했다. 팔레스타인 시민들은 차츰 일본의 정체를 알게 되었고, 그 기적 같은 경제발전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팔레스타인은 군비에 예산을 쑤셔박는 이스라엘식 사회개발 대신 일본처럼 방위비 부담없이 미국을 포함한 서방세계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방식에 주목했다. 일본을 매력적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팔레스타인 시민들이 전통적으로 유럽 중심주의에 경도돼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일본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반적인 팔레스타인 시민들의 인상 속에 경제대국 일본이 정치·문화적으로는 여전히 미국의 입김 아래 있는 나라 정도로 그려져 있지만.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같은 일은 팔레스타인사회와는 너무 먼 거리의 이야기처럼 들리고 있는 현실이다.

다오우드 쿠탑(Daoud Kuttab)

전 <알쿠드스 신문> 기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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