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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올림픽 위협하는 ‘의적 테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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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08-2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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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7일단의 영국 군무관 암살사건 계기로 그리스 올림픽 개최에 서방국가들 '눈총'

(사진/올림픽의 성지로 자리잡은 성화봉송의 시발점인 아테네의 파나티나이콘경기장)
“테러위협이 있는 나라에 어떻게 올림픽을 맡길 수 있나.” 올림픽의 ‘성지’ 그리스가 2004년 하계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서방국가들의 눈총을 받고 있다.

지난 6월8일 발생한 영국대사관의 군무관 스티븐 손더스 암살사건 이후 미국과 유럽국가들이 2004년 올림픽의 안전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 핵심적인 이유는 그리스 정부가 ‘11월17단’(November17) 단원을 단 한명도 검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11월17일단은 25년 동안 수많은 암살과 테러를 해왔지만 단 한명의 단원도 검거된 적이 없는 ‘보이지 않는 유령’과 같은 존재로, 미국과 유럽의 기관요인들과 기업가들, 그리고 그리스의 관료들과 기업가들을 위협해 왔다.

현상금 올리고 조직위원장 교체해도…


그리스 정부는 지난주에 다시 이들의 목에 건 현상금을 10억드라크마(약 32억원)에서 15억드라크마(약 48억원)로 부랴부랴 인상했다. 현상금 인상발표는 가장 유력한 차기 미 중앙정보부(CIA) 국장후보이며 테러전문가인 닐 리빙스톤의 ‘경고’ 직후에 나온 것이어서 그리스 정부의 고심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닐 리빙스톤은 아테네의 주간지 <폰티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영국, 그리고 유럽 국가들은 2004 올림픽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그리스의 테러에 대응하는 능력에 심히 우려를 표시한다”며 “국제사회의 확신과 지원을 얻기 위해 그리스는 11월17일단을 체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또 “만약에 그리스가 올림픽게임을 잃는다면 그리스 경제는 비참해질 것”이라는 경고도 덧붙였다.

지난달에는 올림픽 스폰서 회사들 중 하나인 제록스(Xerox)가 <월스트리트저널>에 올림픽주최국인 그리스가 다른 나라로 대체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표시했다가 다시 정정하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다른 두 올림픽 후원 회사의 대표들도 “11월17일단이 강도높은 공격을 위하여 올림픽을 이용할 수 있다”면서 “다른 곳으로 올림픽이 옮겨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런 여론을 고려해 그리스 정부는 고육지책으로 2004올림픽조직위원장을 다시 교체했다. 이번으로 벌써 세 번째의 위원장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사마란치 IOC위원장과 집행위원들을 초청해 로비를 벌이면서 그리스의 2004년 올림픽 주최를 확고히 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새 조직위원장인 앙겔로풀로 다스탈라키는 기자회견에서 올림픽 준비 설비문제에 대해서는 답변을 하면서도 11월17일단과 관련된 안전 문제에 대해서는 답변을 회피하면서 단지 “정부에 대한 확신”만을 이야기했다.

영국대사관 군무관 스티븐 손더스는 지난 6월8일 대사관으로 출근하던 중 키피시아스 대로에서 러시아워의 교통혼잡 속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가 저격을 당했다. 오토바이에 탄 두 청년은 스티븐에게 네발의 총격을 가하고서는 유유히 사라졌다. 이들이 사용한 총은 45구경 칼리버. 지난 75년 미 CIA 그리스 지국장을 저격했을 때부터 25년 동안 써온 같은 총이었다.

군사독재정권에 복수의 총탄을

(사진/11월17일단의 결성의 계기가 되었던 1973년 아테네산업대학에서의 시위)
11월17일단의 이름은 1973년 11월17일 아테네산업대학에서 있었던 학생들의 대규모 시위를 그 당시의 군부독재 정부가 탱크를 동원해 유혈진압한 데서 유래됐다.

1967년 군사쿠테타로 집권한 군부독재정권은 7년 동안 그리스를 인권의 사각지대로 만들었다. 이는 남미의 군사정권처럼 CIA의 작품이었다. 터키의 미군기지를 얻기 위해 사이프러스를 분단시켜 반을 터키에 주고 이에 대항하는 그리스의 사회주의세력을 근절시키기 위한 목적이었다. 거의 7년 가까이 숨을 죽이고 있던 그리스 민중은 아테네산업대학에 집결한 학생들의 집회를 계기로 하나로 결집했다. 이에 위협을 느낀 군사정권은 탱크에 완전무장한 군인들을 투입해 무차별적인 사격을 가해 수십명이 숨지고 다쳤다. 그러나 들불처럼 일어서는 민중의 봉기를 막을 수는 없었고 곧 독재정권이 붕괴됐다.

독재정권이 붕괴하자마자 그날 이 대학에서 시위하던 학생들을 중심으로 11월17일단이 조직된다. 그들은 그뒤 최초의 복수의 총탄을 미국 CIA 아테네 지국장인 리처드 웰치에게 날렸다. 미국이 군사독재정권을 창출했으며 7년간이나 그리스 국민들의 인권을 유린했다는 이유였다. 그 이후로도 세명의 미국 군관계 요인들과 두명의 터키대사관 요인, 그리고 한명의 영국대사관 군무관을 비롯해 그리스의 대기업가들과 정치인들이 이들의 주표적이 되어왔다. 영국대사관의 스티븐 손더스의 죽음은 23번째이다.

이들의 타격은 처음에는 군사독재잔재에 대한 복수의 성격을 띠고 있었지만 점차로 가난한 자들을 위한 투쟁으로 그 성격이 옮겨갔다. 그리스 대기업인들에 대한 암살이 80년 후반에 들어오면서 더욱 빈번해지고 있는 것이다. <로이터통신>의 한 기자는 “최근에 이 단체는 권력과 외세의 영향이 그리스를 파멸시켜가는 데 대항해 가난한 자들을 위한 로빈 후드와 같은 의적의 이미지를 새겼다”고 말한다.

(사진/영국대사관 군무원 스티븐 손더스 암살사건으로 서방국가들의 압력이 가중되고 있다.암살현장을 조사하고 있는 그리스 수사관들)
그래서인지 그리스 국민들의 영국대사관 군무관의 암살에 대한 반응도 공포보다는 소설과 같은 이야깃거리에서 그친다. 인명살상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비판하지만 11월17일단의 대의명분을 띤 정치적 암살에는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는 것이 이곳 분위기이다.

이 단체는 영국대사관 손더스를 암살한 직후에 ‘선언문’을 주요신문사 중 하나인 에프테로티피아사에 보내 그 사유를 밝혔다. “손더스를 표적으로 삼은 이유는 그가 지난해에 유고슬라비아를 폭격할 때 영국군무관으로서 폭격계획에 가담해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폭격은 나치범죄에 해당한다. 비무장의 유고 시민들에 대한 야만적인 폭격으로 수천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경제와 공공시설물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25년 동안 한 사람의 단원도 체포되지 않고 암살이 계속되자 미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그리스 정부에 따가운 의혹의 눈길을 보내며 공개적인 비난을 서슴지 않고 있다. 전 CIA국장인 제임스 울리는 그리스의 신문 <카티메리니>와의 인터뷰에서 “이 단체원들의 신원을 권력내부에서 알고 있으면서도 체포하지 않고 보호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뉴욕타임스>도 “11월17일단과 그리스 사회주의당이 과거부터 연계되어 있다”는 미 국무성의 관리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미 국무부 대변인인 켄 베이컨은 “그리스도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처럼 증인들에 대한 보호프로그램과 무배심원 재판제도를 도입해 테러단체를 제도적으로 근절해야 할 것”이라고 권고했다. 미국의 이런 발언들은 그동안 네명의 미국관료가 이 단체에 의해 쓰러지고 96년에는 아테네의 미국대사관이 11월17일단의 로켓공격을 받았으면서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각성에서 비롯된다.

영국대사관 군무관의 암살사건을 계기로 미국은 그 발언의 수위를 한층 더 높이고 있다. 그리스가 올림픽을 주최할 여건이 아니라는 주장에서부터 그리스를 파키스탄과 같은 무정부 국가로 취급하는 발언까지 나오고 있다. 특히 미국의회가 보고서를 통해 “그리스와 파키스탄의 테러에 대한 대응을 강화시킬 것”을 권고하면서 그리스와 미국간의 외교전 양상까지 빚어지고 있다.

그리스 대통령 스테파노 풀로스는 파트라에서 군중집회를 통해 미국의 태도에 대해 비판하면서 분노를 표시했다. 그는 “어떻게 미국이 그리스를 파키스탄에 비교할 수 있는가. 이렇게 안전한 나라를 마치 무정부주의자가 판을 치는 나라로 매도하느냐”고 하면서 미국의 그리스인들에게 미국 정부로부터 조국 그리스를 방어해줄 것을 호소했다.

체포에 안달하는 정부, 무덤덤한 국민

(사진/손더스의 장례식)
11월17일단의 정체에 대한 추측은 다양하다. 이번 영국인 암살을 수사하기 위해 그리스에 온 스코틀랜드의 테러전담반은 지난해 나토폭격 때에 가장 격렬한 반미시위의 무대였던 데살로니카를 이 단체의 ‘소굴’로 추정했다. 그리고 지난해 이 단체가 독일대사관저에 로켓공격을 할 때 남겨둔 튜브에서 DNA를 검출하였는데 이것을 1천만명의 그리스인 모두와 대조하겠다고 해서 물의를 빚기도 했다.

어쨌든 분명한 사실은 이 단체가 소수정예로 구성되어 있으면서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표방하고 있고, 이들이 작성한 선언문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최고의 인텔리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암살 뒤에는 언제나 언론사에 선언문을 보내서 그 이유를 논리정연하게 발표하는 여유를 보이는 것도 특징이다.

그리스 경찰쪽에서는 “이 단체가 불과 대여섯의 소수집단에 불과하고 안전을 최우선으로 지키면서 다른 나라의 테러집단과는 일절 관계를 맺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전혀 노출이 되지 않고 있다”고 수사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11월17일단을 추적하기 위해 영국과 미국에서 테러전문반원들이 급파돼 상주하고 있고, 그리스 정부에서도 이들의 목에 천문학적인 현상금을 걸고 검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아테네 시민들은 자신들과는 무관하다는 태도다.

아테네=하영식 통신원youngsig@otenet.g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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