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죄의식에서 해방됐는가… 8월15일, 그곳엔 우익단체와 관료들의 축제가 있었다
2000년 8월15일 오전 8시30분. 일본 도쿄 야스쿠니(靖國)신사 앞마당에는 흰 비둘기떼가 한가로이 모이를 쪼고 있었다. 하지만 더욱 눈에 띄는 건 가끔씩 신사 위로 검은 날개를 활짝 펴고 유유히 날아드는 까마귀였다. 까마귀떼는 비둘기떼를 압도하고 있었다. 너무 뚱뚱해서 날지 못하는 흰 비둘기는 점점 불구가 되어가는 일본의 평화를 상징하는 듯했다. A급 전범 14명과 2차대전중 숨진 군인, 군무원 등 246만6천여 위패가 모셔져 있는 야스쿠니(靖國)신사. ‘평화의 나라’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일본군국주의 부활의 상징이 돼버린 곳이다.
일본군국주의는 현재진행형
15m는 족히 넘을 듯한 야스쿠니 정문을 지나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한 사내의 동상이었다. 일본도를 찬 오무라 마쓰지로. 일본 육군의 창시자이자 제2차 세계대전 참전군인인 그는 금방이라도 옆에 찬 칼을 빼내 들 듯한 자세였다. 신사 첫머리에서 맞닥뜨린 이 동상은 야스쿠니신사가 ‘어떤 시절을 그리워하고’, ‘누구를 추모하는 곳’인지를 웅변하고 있었다.
아직 이른 아침인데도 참배소로 향하는 양쪽 길가에는 벌써 관광버스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새벽같이 올라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히로시마’, ‘기후’, ‘와카타’ 등 각 지역 깃발을 앞세우고 참배소로 향하고 있었다. 이 행렬 앞에 일본회의가 주최하는 ‘제14회 전몰자 추모 중앙국민대회’ 현수막이 휘날리고 있었다. 한 40여m 더 걸었을까. 백발의 노인 두어명이 땀을 뻘뻘 흘리며 길 한쪽에 그림을 붙이느라 여념이 없었다. 강아지를 품에 안고 미소짓는 소년병. 장엄하게 자폭하는 가미카제 특공대, 지평선을 타고 쓸쓸히 퇴각하는 군인들, 전사자를 안고 분노하는 여신, 그리고 그림마다 선명한 붉디붉은 일장기…. 온통 2차대전 참전 일본군을 영웅적으로 묘사한 그림들이었다. 그 어디에도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의 기미는 찾아볼 수 없었다. 씁쓸한 기분을 곱씹으며 걷는 사이 향냄새가 코끝으로 밀려들었다. 드디어 야스쿠니신사 참배소 앞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가지런히 두손을 모으고 참배를 드리고 있었다. 백발의 노인에서 아빠 손을 잡고 온 아이까지, 가족단위 참배객도 여럿이었다. 오전 9시. 앞마당을 돌아 참배소 안으로 들어갔다. 우선 자위대 군인들이 눈에 띄었다. 현역군인이 야스쿠니에 와도 되는 걸까. 마치 현재진행형인 일본군국주의를 보는 듯했다. 하지만 이 젊은 하사관들은 “휴가중이라 들렀을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참배소 안쪽은 주로 단체 참배객들이 참배하는 곳이고, 개별 참배객들은 참배소 앞을 이용한다. 벌써부터 참배 접수처는 단체 참배객들로 북적댔다. 전체 분위기를 둘러보기 위해 참배소를 나와 앞마당으로 향했다. 울창한 숲 사이에서 한 꼬마가 비둘기떼에 먹이를 주고 있었다. 도쿄에서 유독 야스쿠니신사에만 많은 흰 비둘기. ‘평화’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어서 일부러 기른 것이다. 하지만 신사 위로 날아드는 까마귀들은 이런 의도를 무색케 했다. 아침 하늘로 까마귀가 “까아악∼ 까아악∼”거리며 날아오르면 불길한 기분이 번지곤 했다. 신사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사이 담 너머로 대학생들의 성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본은 아시아 인민에게 사죄하라!” “야스쿠니신사 참배각료 탄핵!”. 하지만 아무도 귀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비장한 추도의식, 참배객의 젖은 눈시울
본격적으로 일본 우익단체들이 모습을 나타낸 것은 9시30분 무렵이었다. ‘성전 대동아전쟁’ ‘침략전쟁론 분쇄’. 노골적으로 군국주의 부활을 내세운 우익단체 회원 예닐곱명이 참배소 앞으로 다가왔다. 일렬로 늘어선 군복 차림의 이들은 “천왕의 치세가 천년만년 계속되기를 비는” <기미가요>를 제창했다. 이어 고개를 푹 숙이고 ‘교육칙어’를 중얼중얼 외워댔다. ‘천왕에게 충성을 맹세한다’로 시작되는 교육칙어는 일본제국주의의 상징이다. 그래서 일본 우익들은 기를 쓰고 <기미가요>와 교육칙어를 부활시키려고 애쓴다. 이미 <기미가요>는 국가로 복권됐고, 교육칙어 부활운동이 한창이다.
묵념을 마치자 이번에는 구호를 외친다. “패전 뒤 일본은 미국의 식민지다!” “국체 회복!”. 10분여 계속된 이들의 참배는 만세 삼창으로 끝났다. “천황폐하 만세! 만세! 만세!”. 줄곧 지켜보던 노인들이 따라서 만세를 부른다. 황국신민이고 싶은 우익들에게 천황통치 부활은 절체절명의 과제다.
10시쯤 되자 참배소 앞이 붐비기 시작했다. 열남은명씩 무리지어 다니는 ‘어깨’들도 눈에 띈다. 우익을 가장한 야쿠자들이다. 큰 덩치와 험악한 얼굴, 한껏 거드름 피우는 걸음걸이로 이들은 단박에 다른 사람들과 구분된다.
빼곡이 들어선 사람들 속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있었다. 가미카제로 유명한 일본군 조종사 복장을 그대로 재현한 70대 노인이다. 갈색털이 달린 모자, 그 위에 걸친 조종사 안경, 구명조끼에 낡은 군화, 가슴에 권총까지 꽂은 이 노병사(?)는 기념촬영에 응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우습기도 하고 심란하기도 한 풍경이었다. 그 옆 나무그늘에는 기모노를 입은 중년여성이 ‘대일본국방부인회’ 띠를 두르고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이런 살풍경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숲이 우거진 앞마당에는 한가로이 휴식을 즐기는 가족들이 많았다. 재미있다는 걸까, 아니면 암묵적으로 지지한다는 걸까. 파시즘은 무관심 속에 고개를 들게 마련이다.
묘한 풍경에 넋이 뺏겨 있을 즈음, 참배소 앞에서 군가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해군복을 입은 40여명의 노병들이 욱일승천기를 앞세우고 참배소 앞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당당하게 행진하는 이들을 향해 참배객들의 박수가 쏟아진다. 들고 선 총 앞머리에 일본도까지 꽂은 이 노병들의 모자에는 ‘대일본제국해군’ 마크가 찍혀 있었다. 이들은 노병인가 노전범인가.
곧이어 비장한(?) 추도의식이 거행됐다. 훈장을 주렁주렁 매단 퇴역장교가 “받들어 총!”을 외치면 40여명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추모의식이 이어지는 20여분 동안 군가는 끊이질 않는다. 은은한 트럼펫 소리가 분위기를 더욱 비장하게 몰고 간다. 향수 젖은 일부 참배객들의 눈시울이 어느새 촉촉히 젖어 있었다. 마치 시계추가 55년 전으로 돌아간 듯했다.
야스오카 법무상 “공인으로 왔다”
노병들이 뒤돌아서 나갔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이번에는 일본 육군복을 맞춰 입은 젊은이 100여명이 떼지어 참배소 앞으로 행진해 들어온다. 그 가운데는 갈색으로 머리를 염색한 여성도 서넛 끼어 있다. 이들이 간소한 참배식을 마치고 “에지, 니!”(하나 둘)를 외치고 나가면 곧바로 새로운 군복 무리들이 들어선다. 어찌보면 우스꽝스러운 풍경이었다. 이런 시대착오적인 풍경이 첨단의 일본사회에서 재현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것도 새 천년에. 어쨌든 이들은 하루종일 군가를 부르거나 구호를 외치며 신사입구에서 정문까지 뛰어다녔다.
잠시 짬을 내 쉬는 동안 우익단체 회원들끼리 인사를 주고 받기에 여념이 없다. 인사하는 폼새에서 연대의식이 느껴졌다. 현재 일본에는 이런 우익단체들만 4천개가 넘는다고 한다. 패전일인 8월15일, 야스쿠니신사는 일본 우익들의 총집결장이었고, 군국주의 부활의 축제일을 방불케 했다.
정치인들이 탄 검은색 승용차도 속속 신사에 들어섰다. 참배객들은 길가에 비켜 선 채 그들을 맞았다. 초당파 의원들로 구성된 ‘다함께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소속 국회의원 78명은 11시쯤 모두 도착했다. 자민당 노나카 히로무 간사장을 앞세운 이들이 참배소로 들어서자 일부 참배객들은 “노나카 왔다!” “저기는 야스오카 법무상이네” 라며 자기네끼리 수군거렸다.
11시부터 시작된 정치인들의 참배는 약 20분 동안 이어졌다. 이날 참배한 현직 각료는 야스오키 오키하루 법무상, 모리타 하지메 운수상 등 10명이었다. 18명의 각료 중 반이 넘는 숫자다. 지난해에 비해서 한명이 늘었다. 각료 중 8명은 “개인적 참배”라고 했지만 아스오카 법무상과 모리타 운수상은 “공인으로 참배했다”고 밝혔다. 이날 하루 동안 직접 참배하거나 대리인을 보낸 국회의원은 중의원 145명, 참의원 55명으로 총 200명에 이른다. 지난해보다 무려 40명이 늘었다. 일본 우익의 선봉으로 떠오른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 도지사는 오후 늦게 따로 참배했다. 도쿄 도지사로서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모리 총리는 결국 참석하지 못했다. 주변국가들의 반감을 고려한 최소한의 조처였다.
정오가 되자 주변이 갑자기 고요해지면서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리둥절해 주변을 돌아보았다. 합동묵념. 모두가 멈춰서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천황이 항복을 한 정오에 맞춰 매년 야스쿠니신사에는 이런 풍경이 연출된다. 묵념이 끝나자 확성기를 통해 ‘천황의 말씀’이 흘러나왔다. 근처 부토칸(武道館)에서 열리는 공식 추모행사를 생중계한 것이다. 천황의 말이 흘러 나오는 내내 부동자세로 서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때 신사 입구쪽에서 열변을 토하는 웅변소리와 박수소리가 동시에 터져나왔다. 일본회의가 주최하는 ‘제14회 전몰자 추모 중앙국민대회’가 한창이었다. 연단 앞에 마련된 의자에는 약 700∼800여명이 운집해 있었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선 채로 집회를 지켜보고 있었다. 총 1500여명이 참석한 이날 집회에서 “A급 전범들의 위패를 다른 데로 옮기는 데 반대한다”는 결의가 채택됐다. 집회 내내 끊임없이 박수가 터져 나왔고 자주 고개를 끄덕이는 젊은 사람들도 있었다. 10대들도 드물지 않았다.
참배에 반대하는 자는 반일 조센징이다!
추모대회를 뒤로 하고 신사를 나서려는데 40대 남자가 다가와 유인물을 나눠준다. “남경대학살은 사실이 아니”며 “철저히 다시 검증해 바로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미 검증된 역사를 다시 검증하자니 도대체 무슨 말인가. 기막힌 역사왜곡이었다. 채 몇 발자국 못 가 다시 누군가가 유인물을 건넸다. 열살쯤 먹었음직한 소녀의 고사리손이었다. ‘교육칙어를 부활해서 일본을 위기에서 구하자’는 내용. 사실 일본의 위기는 우익에겐 기회였다. 90년대 중반 이후 일본경제가 깊은 불황의 늪으로 빠져들면서 우익들은 더욱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우익 중의 우익, 애국당 당원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들이 붙인 격문은 도쿄 시내 곳곳에 나붙어 있다. ‘천황통치의 부활’이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다. 이날도 이들이 들고 다니는 격문은 아주 노골적이었다. “일본국민이여 일어나라!”, “일본은 그대로 있으면 망한다”. 심지어 이날 야스쿠니에는 “야스쿠니 참배를 반대하는 자는 반일 조센징이다” “역사를 왜곡하는 중국인을 몰아내자”는 극렬한 구호까지 등장했다.
낮 12시가 조금 넘어 ‘대일본제국’의 요새, 야스쿠니신사를 빠져나왔지만 일본 우익의 품에서 놓여난 것은 아니었다. 신사 주변 좁은 4차로에 우익단체 차량들이 쭉 도열해 있었다. 온통 검게 도색한 대형버스에 ‘한’(韓)이란 글자가 크게 박혀 있었다. 어찌된 일인가. 내선일체론까지 부활한 건가. 다가가 살펴보니 “일본, 한국, 대만의 청년들이 힘을 합쳐 반공전선을 확대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 아래 박힌 이름은 ‘아시아 청년당’. 가두방송용으로도 쓰이는 이 버스 뒷면에는 ‘황통국’(천황이 통치하는 나라)이라는 말이 예외없이 씌여 있었다. 반공을 앞세운 신종 대동아 공영론인 듯했다.
길을 따라 가는 수백m 동안 청년행동대, 혈맹준비대 등 우익들의 차량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또한 이들이 외치는 구호소리는 끊이지 않고 따라왔다.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지 않는 모리 수상을 규탄한다!”. 애국당의 애끓는 구호소리가 고성능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온통 우익세상인 야스쿠니 옆길에서 만난 평화유족회 회원들의 뒷모습이 외로워 보였다.
이날 오후 내내 도쿄돔 면적의 두배에 달한다는 야스쿠니신사는 참배객으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8월15일 하루에만 야스쿠니신사를 다녀간 참배객은 5만5천여명. 지난해보다 5천명이 늘어난 숫자다. 2000년 8월15일, 55주년을 맞는 아시아의 해방 기념일에 오히려 해방되고 있는 것은 일본 우익이었다. 침략과 패전의 과거에서.
도쿄=신윤동욱 기자syuk@hani.co.kr

(사진/일본 우익에게 향수만 있는가.노골적으로 군국주의 부활을 외치는 우익단체들에게 침략전쟁에 대한 죄책감은 찾아볼 수 없다)
아직 이른 아침인데도 참배소로 향하는 양쪽 길가에는 벌써 관광버스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새벽같이 올라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히로시마’, ‘기후’, ‘와카타’ 등 각 지역 깃발을 앞세우고 참배소로 향하고 있었다. 이 행렬 앞에 일본회의가 주최하는 ‘제14회 전몰자 추모 중앙국민대회’ 현수막이 휘날리고 있었다. 한 40여m 더 걸었을까. 백발의 노인 두어명이 땀을 뻘뻘 흘리며 길 한쪽에 그림을 붙이느라 여념이 없었다. 강아지를 품에 안고 미소짓는 소년병. 장엄하게 자폭하는 가미카제 특공대, 지평선을 타고 쓸쓸히 퇴각하는 군인들, 전사자를 안고 분노하는 여신, 그리고 그림마다 선명한 붉디붉은 일장기…. 온통 2차대전 참전 일본군을 영웅적으로 묘사한 그림들이었다. 그 어디에도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의 기미는 찾아볼 수 없었다. 씁쓸한 기분을 곱씹으며 걷는 사이 향냄새가 코끝으로 밀려들었다. 드디어 야스쿠니신사 참배소 앞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가지런히 두손을 모으고 참배를 드리고 있었다. 백발의 노인에서 아빠 손을 잡고 온 아이까지, 가족단위 참배객도 여럿이었다. 오전 9시. 앞마당을 돌아 참배소 안으로 들어갔다. 우선 자위대 군인들이 눈에 띄었다. 현역군인이 야스쿠니에 와도 되는 걸까. 마치 현재진행형인 일본군국주의를 보는 듯했다. 하지만 이 젊은 하사관들은 “휴가중이라 들렀을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참배소 안쪽은 주로 단체 참배객들이 참배하는 곳이고, 개별 참배객들은 참배소 앞을 이용한다. 벌써부터 참배 접수처는 단체 참배객들로 북적댔다. 전체 분위기를 둘러보기 위해 참배소를 나와 앞마당으로 향했다. 울창한 숲 사이에서 한 꼬마가 비둘기떼에 먹이를 주고 있었다. 도쿄에서 유독 야스쿠니신사에만 많은 흰 비둘기. ‘평화’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어서 일부러 기른 것이다. 하지만 신사 위로 날아드는 까마귀들은 이런 의도를 무색케 했다. 아침 하늘로 까마귀가 “까아악∼ 까아악∼”거리며 날아오르면 불길한 기분이 번지곤 했다. 신사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사이 담 너머로 대학생들의 성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본은 아시아 인민에게 사죄하라!” “야스쿠니신사 참배각료 탄핵!”. 하지만 아무도 귀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비장한 추도의식, 참배객의 젖은 눈시울

(사진/오전11시부터 시작된 정치인들의 참배는 약 20분 동안 이어졌다.이날 참배한 현직각료는 18명중 절반이 넘는 10명이었고,국회의원도 무려 200명에 이른다)

(사진/2차대전 당시 일본군을 영웅적으로 묘사한 그림을 보고 있는 노인들)

(사진/신사 주변 도로에는 청년행동대.혈맹준비대등 우익단체들의 차량이 줄지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