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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중동 이발소 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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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8-0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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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설은영
이발소 가기가 겁이 난다. 그 두려움 때문에 머리 다듬을 때가 지나도 늘 망설이게 된다. 이발소에 다녀온 뒤 한동안은 거울 앞에 서기가 두렵다. 이발소에서 겪은 아니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씁쓸한 경험 때문이다. 아 그렇다고 퇴폐 이발소를 연상하지는 말라. 빡빡머리, 상고머리, 이층머리, 도토리머리 등 머리 스타일에 얽힌 이야기이다.

암만에는 이발소가 많다. 이발소간에 영업거리 제한도 없기에 몇집 건너 이발소가 눈에 띈다. 머리나 수염 다듬기를 즐기는 문화 덕분이다. 그런데 중동사람들은 수염은 물론이고 머리카락이 구불구불하다. 이들의 이발 방식은 당연히 우리와 다르다. 게다가 현지인들이 멋있다는 머리 모양도 우리식은 아니다. 이발사들이 한국인 머리 다듬는 것을 배운 바도 없다. 앞 머리카락을 다듬는데 자로 잰 듯 수평으로 잘라버리거나, 이층머리를 깎아주기도 한다. 아무런 어려움 없이 흘러간 옛날 연속극에 등장하는 머리 스타일의 주인공이 되어버린다.

이곳 이발소에는 이발 전에 머리를 감겨준다. 물론 주문하지 않는 경우는 이발이 끝난 다음에 머리를 감겨주지 않는다. 머리를 간단하게 감고 자리에 앉아 안경을 벗으면 이때부터 두려움에 빠져든다. 이발이 끝날 때까지 복잡한 계산이 머리 속에서 이뤄진다. “이것 참 오늘은 어떤 스타일로 변해 있을까?” 이발이 끝나면 이발사는 “나이만!(멋있습니다)”이라고 외치지만 집에 돌아오기까지 거울을 보지 않는다. 집에 돌아와 다시 머리를 감곤 아주 조심스럽게 거울을 바라본다. “악!” 아내는 무슨 일인가 싶어하다가 이내 알아차고 아들도 “아빠 머리 이상해”라며 거들고 나온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머리 스타일은 구겨져버렸다.

이발과 관련된 웃지 못할 이야기가 있다. 이곳에 있는 지호 아빠, 중동에서 일한 지가 8년이다. 어렵다는 아랍어가 안 될 것도 없다. 어느날 평소와 달리 조금 싼 이발소를 찾았다. “덥죠?” “여름이니까 그렇죠.” “시원하게 깎아드릴까요?” “예? ‘조금’ 짧게 깎아주세요.” ‘조금’ 깎아달라고 주문하고 안경을 벗었다. 눈앞이 잘 보이지 않는 동안 왠지 모를 불안감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발기가 머리를 횡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다 싶었을 때는 상황종료였다. 삭발을 해버렸다. 이 이발소 아저씨가 ‘조금’ 깎아달라는 말을 ‘조금(만 남겨두고) 짧게’라고 알아들은 것이다. 또다른 한인은 언제나 값싼 이발소를 즐겨찾는다. 그래서 그의 머리 스타일은 남다르다. 늘 앞머리가 수평선으로 자대고 자른 듯 깎여 있다. 두눈 멀쩡히 뜨고도 이런 판에 안경 벗고 이발하는 심정을 누가 알아줄까?

그래서 요즘은 새로운 이발소를 찾을 때 이발요금부터 물어본다. 싼 것이 비지떡이라고, 조금 싸게 주고 깎으려다 스타일 구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한인들이 모이는 자리가 되면 자연스레 다른 사람들 머리 스타일에 마음이 간다. 잘 깎았다 싶은 경우라면 의당 어디서 깎았는지를 물어본다. “이미 스타일 구겨졌지만 다음달에는 잘 깎을 수 있겠지. 인샬라!(신의 뜻이라면!)” 잊혀진 머리 스타일 빡빡머리, 상고머리, 이층머리, 도토리머리 등을 맛보고 싶다면 이곳 이발소에 맡기라.


암만=김동문 통신원 yahiya@hani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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