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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모독과 비웃음의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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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8-0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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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보는 세계/ <우리를 고통스럽게 한.com>

지난 25년 동안 매년 1권의 앨범을 펴내면서 왕성한 작품활동을 해온 르네 페티용은 앙굴렘 국제만화전의 단골 수상자이기도 하다. 올해에는 <코르시카 사건>으로 최우수상을 수상한 페티용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한.Com>(알뱅 미셸 출판사 펴냄)을 펴냈다. 이 책은 지난해 벌어진 크고 작은 국내외 사건을 중심으로 엮은 시사만화집으로 <카나르 앙셰네>에 실리지 않은 만화들의 모음집이다.

작가는 지난 94년 이래 프랑스의 대표적인 풍자 주간지인 <카나르 앙셰네>(‘쇠줄에 묶인 오리’라는 뜻)를 위해 시사만화를 그리고 있다. 날카로운 정치, 사회풍자로 독자들의 인기를 끌고 있는 이 주간지는 프랑스의 사정을 명쾌하게 파악하는 데 가장 적합한 신문으로 평가되며 꾸준히 50만부 이상이 판매되고 있다. 은어와 만화로 표현되는 고도의 풍자를 통해 프랑스 언론의 비판정신을 가장 앞장서서 보여주고 있는 이 주간지와 페티용의 작업은 안성맞춤으로 보인다.

작가는 이 책에서 새로운 경제, 시라크ㅡ조스팽, 환경오염, 코르시카의 민족주의 분쟁, 전 파리 시장인 장 티베리, 가톨릭 지도부, 피노체트, 하이더, 푸틴 등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한 존재로 꼽아 재미있는 삽화와 코멘트로 독자를 즐겁게 하고 있다.

6개월 만에 횡재했다고 자랑하는 사람에게 ‘그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어’라고 답변하는 표지와 첫장의 삽화들은 인터넷 사업으로 금방 몇십억대의 거금을 벌 수 있다는 환상 속에 너도나도 사업에 뛰어드는 사람들을 풍자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전 하이더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자신은 파시스트가 아니며 외국인을 혐오하지 않으며 나치즘에 대한 향수도 갖고 있지 않다고 선언한 뒤, 그러나 이 선언으로 자신을 판단할 필요는 없다고 덧붙인다.” 이렇게 지배자의 위선을 꼬집기도 한다.


시사만화들이 끊임없이 출판되고 그에 대한 대중적 호응도가 높은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국민 코미디언’이었던 콜류슈가 나체에 프랑스를 상징하는 삼색띠를 두르고 수탉 분장을 한 채 대통령 후보 출마 연설을 한 적이 있다. 당장 국가적 모독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기 십상일 텐데 오히려 그는 광범위한 지지를 얻으며 좌, 우파 후보들의 지지율을 앞서기까지 했다. 케이블 방송인 카날 플러스의 인기 장수 프로그램인 정치풍자인형극 <기뇰>도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모든 말과 행동은 웃음거리가 되고 만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이 정치인, 인기스타, 가톨릭의 지도부, 외국의 국가원수들을 그렇게 ‘모독’하고 있어도 고소되거나 방송중단 압력을 받았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언론의 성숙한 풍자와 비판의식을 드러내는 이 책은 우리 사회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파리=신순예 통신원 soonye.sin@libertysurf.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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