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입양 불가능한 장애아들, 프랑스 가정의 품으로… 해외입양 강제로 줄인다고 해결되나
지난해 초 프랑스3 텔레비전방송과 우르슬린 스튜디오에서 소피 브르디에의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들의 소리없는 흔적들>이 상영되어 프랑스사회에 큰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4살의 나이에 프랑스 가정에 입양된 브르디에가 자신의 몸에 남아 있는 화상의 흔적으로부터 한국에서의 짧았던 삶에 대한 기억의 파편들을 재구성해나가는 이야기이다. 후반부에서 브르디에가 그동안 억눌러왔던 눈물을 터뜨리는 장면은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다.
입양아 74명 중 17명이 지체장애아
전세계에 퍼져 있는 20여만명에 이르는 한국인 입양아들. 1958년부터 1999년까지 유럽에 입양된 한국인은 4만4천명이며 프랑스가 이 가운데 1만428명으로 가장 많다. 이국땅에 살면서 한국 입양인을 만나게 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또한 정치적 혼란, 분쟁을 겪거나 더이상 경제적으로 낙후된 나라가 아닌 한국인의 해외입양에 이해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는 외국인을 만나는 것도 그리 힘들지 않은 일이다.
지난해 한국 전체 입양기관의 통계를 보면 해외 입양자 수가 2374명, 국내 입양자 수가 1686명으로 갈수록 국내입양의 비중이 늘고 있는 것은 정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장애아 입양의 문제는 그렇게 크게 달라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지난 4월5일 한국프로야구 개막전에서 시구를 한 애덤 킹 이야기가 한국사회를 부끄럽게 한 일이 있었다. 선천적으로 손가락이 모두 붙은데다 뼈가 굳으며 다리가 썩어들어가는 희귀 질병을 앓는 중증 장애인이었던 애덤을 입양해 밝고 꿋꿋한 소년으로 키운 미국인 양부모에게 찬사를 보내면서 정작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를 돌아보지 않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프랑스의 한국입양인 모임인 ‘한국의 뿌리협회’에도 여러 명의 지체장애인들이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피레네 중부의 조그만 마을에서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마르셀 장소네씨는 세명의 한국 아이를 입양해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막내인 마리는 현재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입양될 때 손가락 두개가 없는 장애아동이었다. 물론 이 부부는 그들이 입양하게 될 아이에게 신체적 결함이 있다는 것을 알고도 기꺼이 이 아이를 입양했다. 지난해 프랑스 외무부에 의해 공인된 해외입양단체인 ‘세계 어린이의 친구’(Les amis des enfants du monde), ‘외국어린이의 햇빛’(Rayon de soleil de l'enfant) 두 협회가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입양한 한국 어린이는 모두 74명이며 이 가운데 17명이 지체장애아였다. “쿼터 늘려주면 장애아로 채우겠다” 필자는 지난 99년 입양단체 GOAL 주최의 세미나에서 홀트재단의 몰리 홀트가 한 연설을 결코 잊을 수 없다. “88올림픽을 전후로 한국 어린이의 해외입양이 국제적인 비난을 받기 시작하자 결국 1996년 한국 정부는 돌연 미국인과 한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를 제외한 순수 한국 아동들의 해외입양을 중지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러한 결정은 곧 연간 해외입양 수치를 전체 입양의 5% 이내로 제한하는 쿼터제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러한 쿼터 제한으로 인해 IMF사태 이후 급증한 수많은 고아들이 제때에 입양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다음해의 5% 쿼터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한국 아이들을 입양하기를 원하는 각국의 입양 희망자들은 한국 정부에 정식 서한을 보내 이 쿼터 제한에서 200명을 더 늘려준다면 한국사회가 돌보지 못하는 장애아동만으로 그 200명을 채워 입양하겠다는 서약서를 보냈다.” ‘한국사회가 돌보지 못하는 장애아동.’ 이 말이 함축하는 것은 무엇인가. 홀트아동복지회의 관계자에 따르면, 한국인 양부모들은 장애아인 것을 알고도 입양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며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장애가 뒤늦게 발견된 아이를 다시 입양기관에 데려와 바꿔달라고 하는 양부모들도 있었다고 한다. 물론 누구도 양부모에게 장애아를 입양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눈여겨볼 점은 경제적 부담을 떠나서(프랑스의 경우 장애아동은 100% 의료보험혜택을 받는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입양할 아이가 건강한가 아닌가에 구애받지 않고 사랑으로 맞이하는 인도주의적 자세가 아닐까. 파리=신순예 통신원 soonye.sin@libertysuf.fr

사진/ 프랑스 월간지 <가족>에 실린 해외입양을 설명하는 기사의 일부분. 프랑스는 유럽에서 한국 어린이를 가장 많이 입양하는 국가다.(FAMILLE)
지난해 한국 전체 입양기관의 통계를 보면 해외 입양자 수가 2374명, 국내 입양자 수가 1686명으로 갈수록 국내입양의 비중이 늘고 있는 것은 정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장애아 입양의 문제는 그렇게 크게 달라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지난 4월5일 한국프로야구 개막전에서 시구를 한 애덤 킹 이야기가 한국사회를 부끄럽게 한 일이 있었다. 선천적으로 손가락이 모두 붙은데다 뼈가 굳으며 다리가 썩어들어가는 희귀 질병을 앓는 중증 장애인이었던 애덤을 입양해 밝고 꿋꿋한 소년으로 키운 미국인 양부모에게 찬사를 보내면서 정작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를 돌아보지 않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프랑스의 한국입양인 모임인 ‘한국의 뿌리협회’에도 여러 명의 지체장애인들이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피레네 중부의 조그만 마을에서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마르셀 장소네씨는 세명의 한국 아이를 입양해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막내인 마리는 현재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입양될 때 손가락 두개가 없는 장애아동이었다. 물론 이 부부는 그들이 입양하게 될 아이에게 신체적 결함이 있다는 것을 알고도 기꺼이 이 아이를 입양했다. 지난해 프랑스 외무부에 의해 공인된 해외입양단체인 ‘세계 어린이의 친구’(Les amis des enfants du monde), ‘외국어린이의 햇빛’(Rayon de soleil de l'enfant) 두 협회가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입양한 한국 어린이는 모두 74명이며 이 가운데 17명이 지체장애아였다. “쿼터 늘려주면 장애아로 채우겠다” 필자는 지난 99년 입양단체 GOAL 주최의 세미나에서 홀트재단의 몰리 홀트가 한 연설을 결코 잊을 수 없다. “88올림픽을 전후로 한국 어린이의 해외입양이 국제적인 비난을 받기 시작하자 결국 1996년 한국 정부는 돌연 미국인과 한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를 제외한 순수 한국 아동들의 해외입양을 중지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러한 결정은 곧 연간 해외입양 수치를 전체 입양의 5% 이내로 제한하는 쿼터제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러한 쿼터 제한으로 인해 IMF사태 이후 급증한 수많은 고아들이 제때에 입양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다음해의 5% 쿼터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한국 아이들을 입양하기를 원하는 각국의 입양 희망자들은 한국 정부에 정식 서한을 보내 이 쿼터 제한에서 200명을 더 늘려준다면 한국사회가 돌보지 못하는 장애아동만으로 그 200명을 채워 입양하겠다는 서약서를 보냈다.” ‘한국사회가 돌보지 못하는 장애아동.’ 이 말이 함축하는 것은 무엇인가. 홀트아동복지회의 관계자에 따르면, 한국인 양부모들은 장애아인 것을 알고도 입양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며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장애가 뒤늦게 발견된 아이를 다시 입양기관에 데려와 바꿔달라고 하는 양부모들도 있었다고 한다. 물론 누구도 양부모에게 장애아를 입양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눈여겨볼 점은 경제적 부담을 떠나서(프랑스의 경우 장애아동은 100% 의료보험혜택을 받는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입양할 아이가 건강한가 아닌가에 구애받지 않고 사랑으로 맞이하는 인도주의적 자세가 아닐까. 파리=신순예 통신원 soonye.sin@libertysuf.f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