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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그 순간, 경찰도 넋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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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8-0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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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바 시위에 참가한 그리스 활동가의 리포트…한국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경찰 폭력의 처참한 현장

사진/ 이탈리아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은 시위대를 완전히 '압도' 했다. 그리스로 돌아간 시위대 중에는 쇼크를 받아 정신적인 이상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7월18일, 하루가 넘는 길을 달려 제노바에 도착했다. 제노바사회포럼(GSF) 본부에 들러서 그리스 시위대의 현황을 파악한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우리 뒤에 출발했던 일행들이 앙코나(이탈리아 항구도시)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탈리아 경찰의 곤봉세례를 받고 많은 부상자를 낸 뒤 그리스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진압경찰의 연행으로 긴장감 고조

다음날(7월19일)의 시위는 이민자의 권리를 위한 시위였다. 약 5만명의 시위대가 평화롭게 행진하면서 이민자의 권리를 호소했다. 경찰들의 무장상태는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육상에는 탱크와 물대포가 대기하고 있었고 바다에는 경비정이 해안 곳곳에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늘에는 두세대의 헬기가 계속 공중을 맴돌면서 시위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다. 헬멧과 진압복으로 몸을 완전히 가린 진압경찰들은 보기에도 섬뜩할 정도로 방패와 곤봉, 가스총과 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종전 뒤 이탈리아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군사경계경보가 우리를 향해 내려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곳에 오기 전에 이미 언론보도를 통해서 들었던 ‘적색지대’(Red Zone)의 경계는 삼엄했다. G8정상회담이 열리는 칼레궁으로 통하는 모든 길목과 도로들은 철망과 철문을 설치해 일반인들의 출입을 금했다. 적색지대 내에 거주하는 일반인들은 적색지대 바깥으로 나올 땐 일일이 신분증을 경찰에게 제시해야 했다. 시위는 적색지대에서 2km나 떨어진 외곽에서 일어났고 경찰들도 이 부근에 대기하고 있었다. 이날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은 극히 드물었다. 그러나 저녁에 이탈리아 진압경찰들이 이탈리아 사회단체 사무실 두곳에 침입하여 컴퓨터를 부수고 이곳에 있던 활동가들을 연행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긴장감이 서서히 감돌기 시작했다. 이날 밤 시위대의 숫자는 눈에 띄게 늘어갔다.


다음날(20일)의 시위는 ‘블랙블록’(Black Block)이라는 검은 옷을 입은 전투시위대가 편성되면서 경찰과의 충돌로 이어졌다. 블랙블록은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폭력시위를 일삼는 특정한 단체가 아니라 G8회담을 최대한 방해하기 위해 ‘전술’ 차원에서 임의적으로 조직된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평화주의자들과 환경운동단체회원들, 반핵단체회원들, 기독교자선단체회원들은 평화시위를 주장하며 적색지대로의 접근을 피했다. 그러나 서쪽방향에서는 이탈리아의 노동조합원들과 블랙블록단원들이 적색지대를 넘어서기 위한 전투를 벌였고 동쪽에서는 ‘지구의 권리 네트워크’그룹의 회원들, 노동자들이 경찰과 공방을 벌였다. 또한 ‘핑크블록’(Pink Block)이라는 전투대도 편성되어 한 모퉁이를 맡아 적색지대를 넘어서기 위한 전투를 벌였다. 하지만 아무도 이 적색지대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제노바 시내는 경찰이 발사한 강력한 최루가스와 불타는 바리케이드의 검은 연기로 완전히 뒤덮였다. 이탈리아 백골단은 이들 블랙블록단원들을 검거하기 위해 검은 옷이나 손수건이 발견되면 누구에게나 잔인한 폭행을 가하고 연행했다. 거리 곳곳에서 백골단의 곤봉세례를 받고 피흘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앰뷸런스의 사이렌소리는 그칠 줄을 몰랐다. 시내중심가로 들어가는 광장에서 약 200명의 사람들이 조용히 넋을 잃은 채 50여명의 경찰과 대치하고 있었는데 나는 이들이 평화주의자들로서 침묵시위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맨 앞줄로 가면서 의료진들이 시체를 비닐에 싸는 것을 볼 수 있었고 길바닥은 피로 흥건히 물들었다. 이탈리아 무정부주의자인 카를로스 길리아니가 소화기를 들어 지나가는 경찰의 지프에 던지려는 순간 경찰이 쏜 두발의 총탄에 쓰러졌다. 첫 번째 총탄은 그의 양미간을 명중시켰고 두 번째는 그의 뺨을 꿰뚫었다. 그 자리에 있던 시위대나 진압경찰들은 모두 넋을 잃었고 잠시 뒤 시위대에서 울음과 절규가 터져나왔다. ‘살인마’라고 누군가 외치자 모두 따라 외치면서 경찰들에게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잠시 뒤 이곳은 꽃으로 단장되면서 ‘성지화’되었다. 경찰의 살해장소는 적색지대에서 약 2km나 떨어진 곳으로 경찰로서는 절대적인 방어구역도 아니었다. 나중에 제노바에서 발행된 신문에 실린 경찰의 횡설수설을 읽고 나는 더욱 분노했다. 살인혐의로 기소된 경찰은 총을 쏠 때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대낮에 그것도 정확하게 미간을 맞추면서 이렇게 발뺌하다니. 이날 밤 누구도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마지막 밤의 끔찍한 기억

다음날(21일) GSF 지도부 일부에서 시위를 취소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어제의 죽음으로 폭력시위가 더 격렬해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취소를 주장하는 이들은 기독교나 가톨릭의 자선단체, 평화주의자들, 환경단체들, 반핵단체들이었다. 이들은 어제 경찰과 전투를 벌였던 블랙블록전투대를 이탈리아 경찰의 ‘프락치’로 몰면서 폭력시위를 블랙블록의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대부분의 그룹들은 시위를 계속하기로 결의하고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이날의 시위규모는 거대했다. 수천번의 시위로 잔뼈가 굵은 나로서도 이런 규모의 시위인원은 처음이었다. 어떤 사람은 50만명을 주장하기도 했고 어떤 사람은 35만명을 주장했다. 어쨌든 최소한 3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60억 지구인들을 대표하여 시위에 참가한 것이다.

시위를 마치고 미디어센터로 돌아와 마지막 밤을 정리하는 모임을 마친 우리는 건물입구쪽에서 들리는 고함소리와 집기 부수는 소리에 놀라서 내려갔다가 백골단이 침입했음을 알아채고 입구쪽으로 갔다. 그러나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 빠져나가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친구와 함께 제일 꼭대기층인 5층으로 올라갔다. 우리는 공포를 느끼며 숨소리조차 죽인 채 책상 아래에 숨어 있었다. 권총과 곤봉으로 무장한 백골단에 대항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곧이어 불이 켜졌고 경찰은 우리에게 책상 밑에서 나오라고 명령했다. 그들은 3층에 우리를 모두 모이게 한 다음 벽을 향해 머리를 맞대고 양팔을 올리게 했다. 그러나 갑자기 누군가와 승강이 벌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경찰들이 철수했다. 운좋게 공산당소속 이탈리아 상원의원이 경찰을 저지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러나 백골단은 곧 다른 건물을 습격했다. 길가에는 백골단이 타고온 미니버스 5대가 서 있었고 공중에는 헬기가 조명을 비추면서 공중에 정지해 있었다. 다른 건물에서 들리는 신음소리와 구타소리에 이어 곧 앰뷸런스 행렬이 이어지고 백골단에 의해 부상당한 사람들이 들것에 실려나오기 시작했다. 수를 세다가 너무 많아서 포기해버렸다. 이들이 남기고 간 흔적은 끔찍했다. 벽은 구타당했던 사람들의 피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이때 연행됐던 동지들은 병원으로 후송되어 응급조치만 받고 곧바로 경찰서로 넘겨졌다고 했다. 그중 한명은 구타로 부상당한 곳을 다시 경찰들로부터 집중적으로 구타당하는 고문을 당했다고 했다. 500명 이상의 사람들이 경찰의 곤봉세례를 받고 뼈가 부러지고 머리가 터지는 부상을 당해 병원에 실려간 뒤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고 경찰서 유치장으로 넘겨지는 가혹한 대접을 받았다.

사진/ 대낮에 그것도 정확하게 미간을 맞추면서 아무것도 못 봤다고 발뺌하다니…길리아니가 쓰러진 순간 모두가 넋을 잃었다.
시위대를 압도한 경찰의 폭력

제노바 시위는 ‘허구적인 유럽민주주의’라는 가면을 벗겼다. 민중에게는 집회·결사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도 없다는 사실을 똑똑히 보여준 것이다. 물론 폭력시위는 나쁜 것이고, 이전 반세계화 시위에서 일부 무정부주의자들이 과격한 행동을 보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시위에서는 ‘선제공격’을 가한 이탈리아 경찰의 잔인한 폭력이 시위대를 완전히 ‘압도’해버렸다. 그리스로 돌아온 시위대 중에는 경찰의 폭력에 쇼크를 받고 정신적인 치료를 요하는 상태에 이른 사람들도 있다. 반세계화 시위대는 다음해 G8정상회담장소를 캐나다의 산간벽지로 몰아냈다. 앞으로 반세계화 시위대는 도망다니는 세계화 지도자들을 따라가지 않고 이슈가 있을 때마다 전세계에서 동시다발적인 시위를 할 예정이다. 내겐 시위대의 단결된 힘이 인류의 또다른 희망으로 보인다.

아테네=코스타스 피타스/ 그리스사회주의노동자당 기관지 편집장
정리·번역 하영식 통신원 youngsig@otenet.g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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