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술라웨시주의 바우바우시에 있는 찌아찌아족 마을 소라월리오의 카르야바루 국립초등학교에 한글로 표기된 팻말이 보인다.
일자리 기대하고 도입했으나 찌아찌아족의 한글 교육이 어려움을 겪는 현실은 충분한 준비 없이 지방자치단체장의 의지만으로 시작된 탓이 크다. 찌아찌아족과 한글의 인연은 2005년 바우바우시에서 열린 국제고문헌학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국외국어대 전태현 교수(마인어 통번역학)가 현 바우바우시 아미룰 시장에게서 찌아찌아족의 사정을 처음 접했다. 찌아찌아족이 바우바우시의 여섯 종족 중 경제적으로 가장 낙후한데다 이들의 언어가 소멸될 위기에 놓였다는 것이다. 이후 전 교수는 한글 세계화 사업을 구상하던 훈민정음학회에 찌아찌아족을 소개했고, 바우바우시와 훈민정음학회의 제안에 따라 찌아찌아족은 부족장 회의를 거쳐 한글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찌아찌아족과 한글의 공식적 만남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인도네시아 교육부 산하 언어개발기구의 수기요노 박사는 지난 11월11일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공식 문자로 도입한 것은 중앙정부의 언어정책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도네시아 헌법에 따라 제정된 법률 24호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인도네시아어를 공식 언어로 사용해야 한다. 공식 문자인 로만라틴이 있는데 또 다른 문자체계를 채택하는 것은 위법이다.” 수기요노 박사의 말은 단호했다. 이에 대해 찌아찌아족 한글표기법을 연구한 서울대 이호영 교수(언어학)는 10월24일 전화 인터뷰에서 “찌아찌아의 한글 보급은 잘못하면 외교 갈등으로 비화될 수도 있다. 한국 정부, 학계, 민간단체에서 돕겠다고 나서기엔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이렇듯 치밀한 정책적 협의 없이 추진된 터라 찌아찌아족의 한글보급사업은 불안정한 상태다.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던 바우바우시장은 임기가 2012년 12월에 끝나고, 3선이 금지돼 재출마할 수 없다는 사실도 불확실성을 키운다. “술라웨시섬에는 2000년대 초반부터 많은 한국 기업들이 들어왔다. 가스 등 지하자원 개발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낙후한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배워두면 한국 기업에서 일자리를 찾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판단했다.” 지난 10월31일 바우바우시청에서 만난 아미룰 시장은 ‘왜 찌아찌아족에게 한글 도입을 권했느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지만, 자신의 구실은 거기까지라고 잘라 말했다. 사실상 찌아찌아족의 한글 정착을 위한 재정은 전적으로 외부에 기대고 있다. 든든하던 외부 지원이 흔들리는 것도 한글 교육을 중단시키는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바우바우시와 훈민정음학회의 관계가 소원해졌기 때문이다. 지난 3월 바우바우시장은 훈민정음학회가 초기에 약속한 경제지원 등을 성실히 이행하지 않는다며 협력관계 결렬을 선언했다. 훈민정음학회 이기남 이사장은 지난 11월12일 전자우편을 통해 “훈민정음학회는 찌아찌아어 교과서 출판과 교사 아비딘 한국어 연수 비용을 전적으로 부담했다”며 “그외의 경제적 지원은 약속한 바가 없다”고 밝혔다. 바우바우시는 서울시와 2009년 12월, 농촌진흥청과는 2010년 10월 각각 문화와 농업기술 교류협력 의향서를 체결했지만 이 기관들은 한국어 교육 등 본격적 재정지원은 꺼리는 상태다. “찌아찌아어 위해 지키고 싶어” 한글 교육이 교착상태에 놓였지만 찌아찌아족은 여전히 기대하는 바가 크다. 지난해부터 제6고등학교에서 아비딘에게 한글 수업을 받는 삼실(18)에게는 작은 바람이 생겼다. “찌아찌아말은 우리의 상징이에요. 한글을 통해 찌아찌아어가 기록된다면, 고유의 문화와 역사를 지켜나갈 수 있다고 믿어요.” 와수디(54)도 한글을 배우고 싶어 한다. “한글로 표기된 찌아찌아 이야기책을 손주들 잠자리에서 읽어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한글이 찌아찌아어를 지키고 경제적으로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하는 희망이라고 생각해요.” 한글교사 아비딘은 찌아찌아어가 가정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라지는 찌아찌아어와 역사를 지켜나가야겠다고 이제 막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한글을 통해 보존 가능성을 확인했고, 찌아찌아어를 위해서 한글을 지키고 싶어요.” 바우바우(인도네시아)=글·사진 이슬기 통신원 skidolma@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