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말렸던 와히드 탄핵 막전막후… 메가와티의 인도네시아호 앞에는 암초뿐인가
지금 아시아의 정치판은 어디 없이 탄핵의 소용돌이로 말려들고 있는 기운이다. 지난 2월 필리핀의 에스트라다가 쫓겨났고, 지난주 인도네시아의 와히드가 뒤를 이었다. 타이의 탁신 총리, 스리랑카의 쿠마라퉁가 대통령이 다음 후보자로 물망에 올라 있고. 서울에서도 김대중 탄핵이 거론되고 있다니.
3년 동안 3명의 대통령이 등장하다
7월20일 와히드 대통령의 탄핵을 준비하고 있는 자카르타에는 철지난 천둥과 폭우가 쏟아졌다. 무표정한 시민들은 총총걸음으로 어디론가 사라져갔고, 도심의 구석마다 진을 친 폭동진압군과 경찰은 옷깃을 여몄다. 이날부터 국민협의회(MPR·헌법상 최고 의사결정기구)는 무거운 긴장감에 싸였다.
09:00시, 각 정당 대표들이 침울한 표정으로 자리를 잡았고 16:00시 대통령은 국민협의회의 경고를 무시한 채 임시경찰 총수로 채루딘 이스마일 임명을 통보했다. 21:30시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아미엔 라이스 의장은 총회 개최 결정을 통보했다. 7월21일 10:00시 국민협의회는 총회 개회를 선포했고 17:00시 와히드 대통령이 특별위원회 불참을 통보하자 국민협의회는 7월23일 오전 대통령의 출석을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띄웠다. 7월22일 일요일, 대통령궁은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군·경찰 최고 수뇌부와 검찰총장 그리고 조언자들이 분주히 드나들면서 날카로운 긴장을 예고했다. 7월23일 01:10시, 와히드는 포고령을 내려 국민협의회와 골카르당의 정직을 명령했다. 01:30시 국민협의회와 각 정당대표들은 긴급히 회동했고 16:50시 국민협의회는 와히드 탄핵안을 통과시킨 뒤 17:10시, 메가와티 부통령을 신임 대통령으로 임명했다. 이렇게 4일 밤낮을 숨가쁘게 돌아간 자카르타 정치판에서 결국 와히드 대통령은 2년을 채우지 못한 채 쫓겨났고, 30년이 넘도록 대통령이라고는 수하르토 한명밖에 볼 수 없었던 시민들은 최근 3년 동안 4명의 대통령을 구경하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예견되었던 와히드 추종자들의 폭동도 군인들의 ‘장난’도 없이 인도네시아 전역은 평온했다. 이걸 ‘민주주의의 성숙’이라고 표현하는 이들도 있고 ‘정치적 무관심’이라 말하는 이들도 있다. 또 “돈이 안 풀려 깃발부대가 등장하지 않았다”고 비꼬는 이들도 있었다. 어쨌든 마지막 순간까지 “과연 와히드가 포고령을 발동할 것인지, 과연 국민협의회가 와히드 대통령을 탄핵할 것인지”를 놓고 피말리는 신경전이 벌어졌다. 대통령궁과 국민협의회가 서로 마지막 힘겨루기에 돌입한 7월20일부터 7월23일까지 4일간의 자카르타 정치는 말 그대로 긴장의 연속이었다. 새벽 1시30분에도 기자회견이 열리는가 하면, 아침 7시면 또다른 기자회견이 열리는 식이었고, 회의는 자정을 넘겼다. 이러다보니, 국민협의회 회의장과 대통령궁의 모퉁이마다 쓰러져 잠든 기자들로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7월25일 부통령으로 함자 하즈 연합개발당(PPP) 당수가 선출되고, 절대로 대통령궁을 벗어나지 않겠다던 와히드가 “헌법상으로는 아직도 내가 대통령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아님을 인정한다”는 말을 남기고 7월26일 신병 치료차 미국으로 떠나면서 인도네시아 탄핵정국은 막을 내렸다.
탄핵카드는 골카당과 군부의 음모?
와히드의 치명적인 패착은 ‘현실정치’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데 있다. 정치는 ‘힘싸움’과 ‘타협’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룰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말인데, 7월23일 새벽 발동한 포고령에서 극치를 이루었다. 그는 군과 의회 어느 쪽에서도 자신을 지켜낼 만한 충분한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채 ‘대중정치’의 힘만 믿고 포고령을 발동하고 말았다. 적어도 포고령을 발동하기 위해서는 군이나 경찰 가운데 한 부분이라도 장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조건도 깨닫지 못한 채. 이미 몇달 전 비상사태 선포라는 말이 나돌 때부터 군과 경찰은 앞다투어 거부의사를 분명히 밝혀왔던 점을 가벼이 여겼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국민협의회의 의석 11%라는 치명적인 결함마저 그에게는 대수롭지 않게 보였던 셈이다.
결국 새벽 1시 “국민협의회의 기능을 정지시킨다”는 포고령을 내렸지만, 같은 날 아침 8시 국민협의회는 군·경의 보호 아래 비웃듯 전체회의를 소집해서 그를 탄핵해버렸다. 와히드의 자만심은 대중정치의 바탕이 정부의 ‘도덕성’이라는 사실마저 깨닫지 못한 한편의 촌극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메가와티 신임 대통령은 전임자가 지녔던 조건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대답은 회의적이다. 무엇보다 메가와티 개인의 능력에 대한 불신감이 팽배해 있는데다, 군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수하르토 잔재 수구세력인 골카당의 의욕적인 뒷받침으로 대통령이 되었다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군 내부에서는 ‘퀸 메이커’임을 자축하는 소리들이 나돈다고 한다. 골카당쪽에서는 ‘보상카드’에 대한 진지한 시나리오들이 흘러나오고도 있는 모양이다. 와히드와 메가와티의 차이라고는 국민협의회 의석 11%와 37%밖에 없다. 나머지는 골카당과 군부에게 주어진 의석 그리고 메가와티에게 비우호적인 회교정당들의 몫이다. 말하자면 11%와 37%는 별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적어도 대통령을 사수하기에는. 탄핵을 마친 의원들 사이에 공공연히 나돌던 “와히드가 미웠지 메가와티가 좋았던 것은 아니다”는 말을 귀담아 들어본다면, 메가와티의 앞날이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해진다. 심지어 메가와티의 민주투쟁당(PDI-P) 내부에서조차 이번 와히드 탄핵은 골카당과 군부의 음모라는 말들이 나돌면서 대통령직을 덥석 받아먹은 메가와티를 나무라는 소리가 나돌 정도니.
메가와티 진영에서 개혁을 외치고는 있지만 군과 수구세력을 안고 가야 하는 현실정치에서 메가와티의 정치력이 어떻게 발휘될 수 있을지가 지금부터의 과제로 떠올랐다. 최근 메가와티는 이런 현실을 인정한 듯 ‘협상’을 통한 개혁을 강조해온 모양인데, 이 두개의 상이한 개념을 또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도 대책없는 의문일 뿐이다. 와히드가 거칠게 개혁카드를 빼들고 혼란스럽게 국정을 운영하다 직격탄을 맞고 쓰러져갔다면, 메가와티는 개혁이 빠진 차분한 국정을 운영하다 유탄을 맞고 사라져갈 가능성이 크다는 인상이다.
정체불명의 말들만 해온 메가와티
그동안 ‘위대한 인도네시아’니 ‘인도네시아 민족주의’라는 정체불명의 말들만 해온 탓으로 아직까지도 메가와티의 정치철학이나 이념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정치적 한계를 안고 출발한 메가와티 정부가 시민들의 개혁 요구를 충족시키기에는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경제위기 극복이라는 최대 현안에다, 서파푸아와 아체의 분리주의 기운, 칼리만탄의 인종분쟁, 말루쿠의 종교분쟁을 비롯한 수많은 문제들이 인도네시아호의 항로에 암초처럼 도사리고 있는 현실 속에서, 이제 메가와티는 3년간의 고단한 항해를 시작해야 할 때가 왔다. 그러나 아직 아무도 이 ‘선장’의 속내를 알 수 없다. 어떤 항로를 따라 갈 것인지, 얼마나 속도를 낼 것인지, 어디서 보급을 받을 것인지, 누구를 조타수로 쓸 것인지, 호출부호는 무엇으로 잡을 것인지, 심지어 항해 일정조차 속시원히 드러난 것이 없다.
2001년 7월28일, 새 대통령을 맞이했지만 자카르타는 맥빠진 사람들의 무거운 어깨만 유독 눈에 띈다.
자카르타= 글·사진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아시아네트워크 팀장 asianetwork@news.hani.co.kr

사진/ 와히드 탄핵 이후에도 예견되었던 폭동이나 군인들의 장난 없이 인도네시아 전역은 평온하기만 했다.
09:00시, 각 정당 대표들이 침울한 표정으로 자리를 잡았고 16:00시 대통령은 국민협의회의 경고를 무시한 채 임시경찰 총수로 채루딘 이스마일 임명을 통보했다. 21:30시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아미엔 라이스 의장은 총회 개최 결정을 통보했다. 7월21일 10:00시 국민협의회는 총회 개회를 선포했고 17:00시 와히드 대통령이 특별위원회 불참을 통보하자 국민협의회는 7월23일 오전 대통령의 출석을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띄웠다. 7월22일 일요일, 대통령궁은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군·경찰 최고 수뇌부와 검찰총장 그리고 조언자들이 분주히 드나들면서 날카로운 긴장을 예고했다. 7월23일 01:10시, 와히드는 포고령을 내려 국민협의회와 골카르당의 정직을 명령했다. 01:30시 국민협의회와 각 정당대표들은 긴급히 회동했고 16:50시 국민협의회는 와히드 탄핵안을 통과시킨 뒤 17:10시, 메가와티 부통령을 신임 대통령으로 임명했다. 이렇게 4일 밤낮을 숨가쁘게 돌아간 자카르타 정치판에서 결국 와히드 대통령은 2년을 채우지 못한 채 쫓겨났고, 30년이 넘도록 대통령이라고는 수하르토 한명밖에 볼 수 없었던 시민들은 최근 3년 동안 4명의 대통령을 구경하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예견되었던 와히드 추종자들의 폭동도 군인들의 ‘장난’도 없이 인도네시아 전역은 평온했다. 이걸 ‘민주주의의 성숙’이라고 표현하는 이들도 있고 ‘정치적 무관심’이라 말하는 이들도 있다. 또 “돈이 안 풀려 깃발부대가 등장하지 않았다”고 비꼬는 이들도 있었다. 어쨌든 마지막 순간까지 “과연 와히드가 포고령을 발동할 것인지, 과연 국민협의회가 와히드 대통령을 탄핵할 것인지”를 놓고 피말리는 신경전이 벌어졌다. 대통령궁과 국민협의회가 서로 마지막 힘겨루기에 돌입한 7월20일부터 7월23일까지 4일간의 자카르타 정치는 말 그대로 긴장의 연속이었다. 새벽 1시30분에도 기자회견이 열리는가 하면, 아침 7시면 또다른 기자회견이 열리는 식이었고, 회의는 자정을 넘겼다. 이러다보니, 국민협의회 회의장과 대통령궁의 모퉁이마다 쓰러져 잠든 기자들로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7월25일 부통령으로 함자 하즈 연합개발당(PPP) 당수가 선출되고, 절대로 대통령궁을 벗어나지 않겠다던 와히드가 “헌법상으로는 아직도 내가 대통령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아님을 인정한다”는 말을 남기고 7월26일 신병 치료차 미국으로 떠나면서 인도네시아 탄핵정국은 막을 내렸다.

사진/ 탄핵을 마친 의원들은 "와히드가 미웠지 메가와티가 좋았던 것은 아니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미국으로 떠나기 직전의 와히드.

사진/ 대통령 수락연설을 하는 메가와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