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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불량국가 위협론은 ‘엄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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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7-2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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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MD 추진의 이유로 든 북한 등 일부 국가의 미사일 개발이 과연 우려할 정도인가

사진/ 걸프전 당시 이라크 미사일 수준에서 보듯, 이른바 '불량국가'들의 미사일은 아직 대단한 것이 못 된다. 이라크 군대의 열병 장면.(AP연합)
지난 7월14일 미국이 미사일방어(MD) 체제 구축을 위한 시험발사에 성공함으로써 부시 정권의 MD 추진은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미국은 예정대로 내년 4월 알래스카에 요격미사일 발사대 건설을 강행할 채비다. 이번 시험발사에 든 비용만 1억달러였다. 오는 9월 말로 끝나는 올 회계연도의 국방비 2960억달러 가운데 MD 관련 예산은 약 50억달러로 조지 부시 대통령은 내년에 83억달러로 증액할 방침이다. 미국은 2004년 초 초기 형태의 미사일방어체제를 실전에 배치할 계획을 하고 있다. 실험발사가 성공했다 해도 앞으로 들 비용과 국내외 반대가 큰 걸림돌이다. 한마디로 부시 정권의 고집으로 MD가 추진되는 상황이다. MD에 참여할 최대 무기제작사인 보잉사를 비롯한 미국의 군수산업체들은 창사 이래 최대 호황을 맞을 채비다.

국제사회는 MD 구상이 실행될 경우 전세계적인 군비경쟁이 촉발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사실상 미국의 MD 체제는 중국을 핵심 위협국으로 상정하고 있다. 유럽 등 서구국가들도 70년대부터 조성돼온 군비통제 및 축소 움직임을 거스르고 21세기에 새로운 군비경쟁을 낳는 처사라며 반대하고 있다. 아울러 MD가 전제로 하고 있는 북한 등 ‘불량국가’의 위협도 과장됐다고 보고 있다.

공중 레이저 무기의 한국 배치 주장


미국은 북한과 이란, 리비아와 같은 이른바 ‘불량국가들’의 위협 때문에 MD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탈냉전 뒤 미국의 안보위협은 불량국가들과 테러집단으로부터 오며, 이는 2005년경 등장할 것”이라며 북한과 이란 등을 꼽아왔다. 현재 미국은 다방면으로 설득전을 펼치는 중이다.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지난 6월 말 하원 군사위원회에서 2002회계연도 국방예산에 관해 증언하면서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에 매우 근접해 있으며 소수의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핵물질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도 지난 7월12일 상원 군사위원회의 2002회계연도 국방예산 심의회의에 출석, MD 추진의 명분 중 하나로 북한 미사일 위협을 거듭 강조했다. 울포위츠는 “북한은 지금 미국 본토 깊숙이 좀더 큰 탄두로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대포동2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그는 이어 “이에 대한 방어대책을 수립하지 않을 경우 북한은 핵무기 및 화생물 탄두를 사용해 미국과 동맹국들을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공중 레이저(Airborne Laser) 무기의 한국 배치 필요성을 제기했다. 공중 레이저 배치는 미-러간 탄도탄요격미사일(ABM) 협정의 명백한 위반이다. 만일 한반도 배치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북한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도표에서 보듯, 미국이 불량국가로 꼽고 있는 나라들의 미사일 능력은 대단한 것이 못 된다. 대부분 사거리 1천km 안팎의 중단거리이고 ICBM 개발은 아직 멀었다. 걸프전 당시 이라크 미사일 수준에서 보듯 정확도에서도 미국, 러시아에 견줄 바가 아니다. 리비아는 초보 수준이라 말할 수 있다. 그나마 북한이 선두주자지만 현재로선 기술개발을 중단한 상태다. 어디까지나 추정이지만, 북한은 현재 사거리 6천km 이상으로 미국 본토까지 도달할 수 있는 대포동2호 미사일을 개발중이라는 의심을 받아왔다. 미국의 대표적인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는 최근 한 보고서에서 “북한은 올해 대포동2호 미사일을 시험발사할 가능성이 높으며 대포동2호 미사일을 언제든지 ICBM으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이 미사일 추진체 부분에선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을 수 있으나, 정확한 목표 타격을 위한 유도장치나 대기권 진입을 위한 열처리 기술은 열악한 것으로 알려진다. 따라서 대포동2호의 미 대륙 위협설은 과장됐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민주당도 북한 공격 가능성에 회의적

현재 북한은 사거리가 1700∼2200km인 대포동1호말고도 스커드C(사거리가 500∼600km), 노동1호(1천∼1500km)를 보유중이다. 북한이 지난 98년 8월 시험발사한 대포동 1호 미사일은 함경남도 김책시 부근 대포동기지로부터 1550km 떨어진 북태평양 공해상에 떨어졌다. 대포동1호는 375km 떨어진 동해상에 1단계 추진체를 떨어뜨린 뒤 300∼500km 고도를 유지하며 일본열도를 지나가 많은 일본인들을 놀라게 한 바 있다. 93년 5월 말 시험발사된 노동1호의 경우 시험발사 뒤 1년에서 1년 반 사이에 실전배치됐다. 그러나 대포동1호는 중거리인데다 액체연료를 사용하는 복잡한 2단로켓 구조라 기간이 더 걸릴 것으로 추정된다. 노동1호는 100기 정도 실전배치하고 있으며 개량형 스커드는 생산량을 꾸준히 늘려 현재 지난해보다 100기가 늘어난 600여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 7월 초 북한은 동북부 해안의 대포동 마을에서 장거리미사일 엔진시험을 실시했으며 그 결과가 미군 첩보기에 포착됐었다. 엔진시험은 추진체의 연소를 통해 추력(推力) 수치 등을 계산해내는 정(靜)적인 실험으로, 탄두를 실제로 발사하는 동(動)적인 비행시험과는 다르다. 엔진시험은 미사일 보유 국가가 성능 개량을 위해 주기적으로 하는 활동이다. 일부 미국 관리들이 대포동2호 미사일의 본격 개발 가능성과 관련해 이번 시험을 의심스런 눈길로 바라보는 것은 합당치 못하다는 게 중론이다.

MD 추진의 이유로 드는 불량국가들의 미사일 위협론은 발상 자체가 가설에 바탕을 둔 것이다. “만일 불량국가들이 미국과 해외주둔 미군기지를 향해 (핵무기를 탑재한) 미사일을 쏘아댄다면…” 같은 가설은 ‘막가파’식 도발위협을 상정한 것이다. 미 상원 군사위원장인 칼 레빈 의원(민주당) 같은 이들은 “북한이 우리에게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이는 그들의 즉각적인 파멸을 이끌 뿐 아니라 그들의 제1목표인 생존과 정면 배치되는 행위”라며 부시 정권의 주장이 지나치다는 점을 꼬집고 있다. 한마디로 럼스펠드-울포위츠 라인으로 이어지는 미 국방부의 불량국가 미사일 위협론은 현재 추진중인 MD를 정당화하고 예산을 더 타내기 위한 노력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 이란, 이라크, 리비아를 가리키는 불량국가는 때로는 범위가 넓어져 아프가니스탄, 수단, 시리아가 포함되기도 한다. 워싱턴 당국으로선 불량국가론이 편리한 점이 있다. ‘무시무시한 괴물’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MD를 비롯한 군비증강 명분과 예산 타내기에 편하다. 유럽연합 국가들의 비판적 포용(Critical Engagement) 정책과는 거리가 먼 강성 정책이다.

MD는 소련의 해체로 동서냉전시대가 막을 내린 뒤 형성된 미국의 유일패권(또는 일극) 체제를 확실히 굳히겠다는 배경을 깔고 있다. MD 구축은 어느 핵보유국이든 선제 핵공격을 했을 경우 보복공격을 받아 서로 망하고 만다는 통념(공포의 균형)에서 벗어나 “우리 미국만은 적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해야 한다”는 미국의 과학기술 이데올로기가 바닥에 깔려 있다. 이는 지난 70년대 이후 형성돼온 핵무기 세력균형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최후의 날’ 시계가 빨라진다

지구상의 인류가 직면한 핵전쟁의 위험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있다. 최후의 날 시계(Dooms’ Day Clock)다. 미국의 핵과학 전문지 <핵과학자들 회보>가 재고 있는 이 시계는 1998년 이후 현재까지 0시9분 전을 가리키고 있다. 0시란 인류의 파멸을 가져올 전면적인 핵전쟁을 뜻한다. 이 시계는 1947년 0시7분 전으로 시작, 미국과 소련이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한 53년에는 2분 전까지 갔다가 미·소가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을 체결한 91년에는 17분 전으로 늦춰졌다. 95년엔 미국, 러시아가 STARTⅡ를 비준하지 않자 14분 전으로 앞당겨졌고, 98년엔 인도와 파키스탄이 핵실험을 하면서 지금의 9분 전으로 옮겨졌다. 부시 정권의 MD 강행은 최후의 날 시계 분침을 0시 가까이로 밀어내고 있다. 미국의 안전이란 이름으로….

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 kimsphoto@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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