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국 북부에서 발생한 백인과 아시아계의 유혈충돌을 어떻게 볼 것인가
“언제쯤 돼야 구식민지의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기를 펴고 당당하게 영국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최근 연쇄적으로 터져나오는 영국 북부 아시아계와 백인간의 인종갈등 소식을 접하면서 든 생각이다. 재일 한국인 동포들이 겪었던 숱한 차별의 이야기도 당연히 떠오른다. 그러나 적어도 경제적 조건만을 가지고 보면 영국 북부의 아시아계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은 훨씬 더 심각해 보인다. 언론에서 이구동성으로 현지 아시아계 사람들의 삶이 “극단적”인 상황이라는 말을 할 정도니까. 물론 이들이 재일 한국인들처럼 식민지 시절 어쩔 수 없이 현지 정착한 건 아니다. 70년대 영국에 한참 노동력이 달랄 때 기술이 전혀 없어도 가능한 방직산업 등에 파키스탄, 방글라데시의 가난한 지역사람들이 대거 이주해온 것이다. 필자는 그런 구제국주의의 질서가 묘한 형태로 3세계 사람들의 삶에 멍에로 남아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자연스레 어울리는 문화의 부재
런던대 킹스칼리지에서 해외이민자들의 영국 내 거주문제에 대해 연구하고 강의하는 마거릿 바이런 박사는 그 자신이 중남미 출신으로 이번 사태를 이렇게 본다. “이번 갈등의 근저에 심각한 빈곤의 문제가 깔려 있습니다. 인종갈등의 양상은 그저 그렇게 비치는 것일 뿐이죠. 물론 인종문제가 심각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빈곤이라는 경제문제가 인종문제 형식으로 터져나온 것이라는 뜻이죠. 인종갈등 양상으로만 보도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번 갈등을 보면서 80년대 초 런던서 발생한 중미지역에서 이주해온 흑인사회(이들을 웨스트인디라 부른다. 즉 서인도라는 서양인 중심의 용어다)와 백인간의 갈등을 떠올린다. 그러나 그것은 이번 사태와 비슷한 양상을 띠지만 중대한 차이점을 보인다. 이민온 사람들의 경제적 빈곤문제가 인종갈등 양상을 띠는 전체적인 양상은 같아 보이나 80년대 흑백갈등 때엔 비교적 흑백간의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런던의 경우 다인종문화가 폭넓게 자리잡아가고 있었다. 게다가 도시 규모가 커 다양한 직업의 기회가 존재하기 때문에 차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갈등 폭이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최근 갈등이 발생한 영국 북부지역(스코틀랜드 아래쪽이다)에서는 사회경제적 조건이 완전히 다르다. 섬유방직산업의 사양화를 대신할 새로운 지역경제시스템이 마련되지 못해 이주해간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어 극단적인 빈곤의 상황에 처해 있다. 여기에 이민 1세대와 달리 영국 현지에서 나고 자란 2세대들은 현지의 차별적 분위기와 경제적 빈곤을 순순히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특히, 다른 지역의 이민 2세대들이 현지 백인 또래들과 어렸을 적부터 자연스레 어울리며 서로 다른 색의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법을 배워가는 데 반해, 이들은 스스로가 영국사회의 일원으로 태어나 자랐지만 전혀 그런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지역의 주요 이주민집단은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인들인데, 이들의 거주지역은 인근의 백인사회와 단절되어 어떤 학교는 90% 이상이 아시아계 학생들로만 이루어져 있다. 이런 분위기는 자연스레 10대들 사이에서 백인사회에 대한 집단적인 저항의식을 낳고 있다. 물론 현지의 백인들 입장에서 보면, 산업구조 변화로 인한 피해를 자신들이 집중적으로 맞고 있다고 느끼고 있고, 여기에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거리를 건너편 지역에 사는 못하는 나라, 그것도 과거 자신들의 식민지에서 온 사람들한테 빼앗기고 있다고 느낀다. 이런 분위기는 극우백인우월주의가 성장할 좋은 토대가 되었고, 영국국민전선(British National Front)이라는 단체가 등장해 정치세력화를 시도, 이번 총선에서 공공연히 이민자들을 본국으로 돌려보내자는 주장을 해댄 것이다. 이런 지뢰밭과 같은 분위기에서 조그마한 충돌이 크게 번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여하튼 이들 국민전선은 당을 만들어 북부지역에서 11∼16%의 높은 득표율을 보이며 백인사회의 왜곡된 불만을 가시화했다. 크리켓 경기에서만 가슴 펴는 파키스탄인
이렇게 사회경제적으로 핍박받는 파키스탄인들이 딱 한번 가슴을 펴고 영국인들을 향해 대놓고 삿대질하며 소리지르는 때가 있다. 바로 영국판 야구인 크리켓 경기장에서다. 인도, 파키스탄 등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나라들에서 크게 유행하는 크리켓은 파키스탄이 전통적으로 매우 강한 면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영국-파키스탄간 크리켓 시합이 벌어지는 경기장은 파키스탄인들이 몰려와 열광적인 응원을 하고 월등한 실력으로 영국인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는 장면을 종종 연출한다. 와 영국신문에 파키스탄이라는 국가이름이 자주 불리고 오르내리는 건 크리켓 경기뿐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영국국가대표팀 주장이 나산 후세인이라는 파키스탄 2세라는 사실도 파키스탄의 크리켓 실력을 증명해준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점은 언론의 보도태도이다. 영국과의 결승전서 파키스탄이 우승한 직후 파키스탄 관중이 경기장으로 몰려 나와 열광하는 장면을 마치 ‘떼도둑놈’들이 물건 훔치러 경기장을 휘젓고다니는 양상으로 보도했다. 적어도 필자에겐 그렇게 보인다(물론 이들은 우승기념으로 경기장에 설치돼 있는 크리켓 경기 도구들을 집어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부 충돌이 빚어지기도 한다).
런던의 중심가 지하철역에 10분만 서 있어보면 얼마나 영국사회가 다인종사회인지 알 수 있다. 그야말로 세계 구석구석에서 온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오고간다. 이들이 이렇게 자연스레 섞여서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숱한 인종적 충돌과 화해가 반복되는 과정을 거쳐서 조금씩 개선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만 주의깊게 살펴보면 여전히 심각한 인종차별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바이런 박사의 이야기다. “다인종사회의 대명사인 런던도 여전히 갈등의 소지가 폭넓게 잠복하고 있습니다. 특히 런던 동부지역의 경우 스킨헤드들이 몰려다녀 밤에 이들 집단과 접촉하는 것은 절대 금기사항이죠. 여기에 경찰들의 차별도 노골적인데, 흑인이 고급차를 몰고 다니면 어김없이 도난을 이유로 검문을 당한답니다.”
이와 유사한 이야기를 런던에 조금만 있어보면 주변에서 곧잘 듣게 된다. 카리브의 자메이카 출신 2세로 영국서 나고 자라 지금은 학교다니는 세딸의 엄마인 클레어의 이야기다. “언젠가 마약문제가 크게 대두되었을 때 일이에요. 신문에 한 백인청년이 한 행사장 입구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꽃다발을 주는 사진이 실렸어요. 그런데 이 백인청년은 정부의 잘못된 마약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일부러 마약으로 분류되는 꽃을 몇 송이 섞어 여왕에게 줬던 것이죠. 나중에 이 사실이 알려졌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만약 이 청년이 흑인이었다면 그는 당장 구속되었을 겁니다.”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 분위기의 한 단면이다.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건물의 야간경비와 청소일을 거개가 흑인들이 하고 있다. 이는 시민운동단체인 그린피스 런던사무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다. 필자가 있는 런던대에서도 밤늦게 청소를 하는 사람들은 100% 흑인들이다. 가끔씩 이들과 차를 나눠 마시며 이야기해보면 영국사회의 밑바닥 집단이 겪는 고초와 분노 같은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다.
꾸짖는 언론이 오히려 부추긴다?
언론은 점잖게 꾸짖는다. 양쪽간의 상호의사소통이 이루어져야 하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건 폭력은 안 된다고. 그러나 누구나 알고 있듯 이들 지역에 특별한 경제대책이 세워져 극단적인 빈곤을 치유해가는 일이 먼저다. 그렇지 않고 대화와 존중을 말하는 것은 위선이다. 또 이 사태를 인종간의 갈등으로만 보도하는 언론들의 태도도 상황을 악화시키는 요소다.
런던=최예용 통신원 choiyeyong@yahoo.co.kr

사진/ 영국 맨체스터주에서 발생한 백인과 아시아계의 유혈충돌은 긴급 출동한 폭동 진압 경찰에 의해 진압되었으나 많은 앙금을 남겼다.(SYGMA)
런던대 킹스칼리지에서 해외이민자들의 영국 내 거주문제에 대해 연구하고 강의하는 마거릿 바이런 박사는 그 자신이 중남미 출신으로 이번 사태를 이렇게 본다. “이번 갈등의 근저에 심각한 빈곤의 문제가 깔려 있습니다. 인종갈등의 양상은 그저 그렇게 비치는 것일 뿐이죠. 물론 인종문제가 심각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빈곤이라는 경제문제가 인종문제 형식으로 터져나온 것이라는 뜻이죠. 인종갈등 양상으로만 보도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번 갈등을 보면서 80년대 초 런던서 발생한 중미지역에서 이주해온 흑인사회(이들을 웨스트인디라 부른다. 즉 서인도라는 서양인 중심의 용어다)와 백인간의 갈등을 떠올린다. 그러나 그것은 이번 사태와 비슷한 양상을 띠지만 중대한 차이점을 보인다. 이민온 사람들의 경제적 빈곤문제가 인종갈등 양상을 띠는 전체적인 양상은 같아 보이나 80년대 흑백갈등 때엔 비교적 흑백간의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런던의 경우 다인종문화가 폭넓게 자리잡아가고 있었다. 게다가 도시 규모가 커 다양한 직업의 기회가 존재하기 때문에 차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갈등 폭이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최근 갈등이 발생한 영국 북부지역(스코틀랜드 아래쪽이다)에서는 사회경제적 조건이 완전히 다르다. 섬유방직산업의 사양화를 대신할 새로운 지역경제시스템이 마련되지 못해 이주해간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어 극단적인 빈곤의 상황에 처해 있다. 여기에 이민 1세대와 달리 영국 현지에서 나고 자란 2세대들은 현지의 차별적 분위기와 경제적 빈곤을 순순히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특히, 다른 지역의 이민 2세대들이 현지 백인 또래들과 어렸을 적부터 자연스레 어울리며 서로 다른 색의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법을 배워가는 데 반해, 이들은 스스로가 영국사회의 일원으로 태어나 자랐지만 전혀 그런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지역의 주요 이주민집단은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인들인데, 이들의 거주지역은 인근의 백인사회와 단절되어 어떤 학교는 90% 이상이 아시아계 학생들로만 이루어져 있다. 이런 분위기는 자연스레 10대들 사이에서 백인사회에 대한 집단적인 저항의식을 낳고 있다. 물론 현지의 백인들 입장에서 보면, 산업구조 변화로 인한 피해를 자신들이 집중적으로 맞고 있다고 느끼고 있고, 여기에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거리를 건너편 지역에 사는 못하는 나라, 그것도 과거 자신들의 식민지에서 온 사람들한테 빼앗기고 있다고 느낀다. 이런 분위기는 극우백인우월주의가 성장할 좋은 토대가 되었고, 영국국민전선(British National Front)이라는 단체가 등장해 정치세력화를 시도, 이번 총선에서 공공연히 이민자들을 본국으로 돌려보내자는 주장을 해댄 것이다. 이런 지뢰밭과 같은 분위기에서 조그마한 충돌이 크게 번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여하튼 이들 국민전선은 당을 만들어 북부지역에서 11∼16%의 높은 득표율을 보이며 백인사회의 왜곡된 불만을 가시화했다. 크리켓 경기에서만 가슴 펴는 파키스탄인

사진/ 아시아계의 불만은 절대적 빈곤이 원인이었다. 경찰에 쫓기는 아시아계 젊은이들.(SYGMA)

사진/ 폭동중 부상을 입은 백인청년. 북부지역의 백인들은 아시아계에 일자리를 뺏긴다고 느끼고 있다.(SYGM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