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연과 탈출행렬 가득한 현장을 찾아… 미군은 알바니아 게릴라를 의도적으로 지원했는가
“시외버스터미널로 갑시다.” “혹시 미국인이면 당장 내려요!”
마케도니아에서 택시운전사와의 첫 대화는 이렇게 시작됐다. 이 택시운전사는 미국이 마케도니아를 망하게 하려 한다면서 강한 분노를 표시했다. “알바니아인들보다 미국을 더 증오”한다는 택시운전사의 말에서 마케도니아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다.
알바니아인의 인권, 생각보다 좋다
벌써 몇달째 계속되고 있는 마케도니아분쟁은 알바니아인들이 모여 사는 작은 도시나 부락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수도인 스코피예 시민들의 극도에 달한 불안감은 어디에서나 확인할 수 있었다. 문구점을 하는 조란(30)은 “평화롭게 살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은 이 나라를 떠나기를 원하며 마케도니아인들뿐만 아니라 알바니아인들도 이곳을 떠나길 원한다”고 말했다. 그가 한 말은 그리스대사관 앞을 지나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100여명의 마케도니아인들이 그리스대사관 앞에 진을 치고 있었다. 비자를 받기 위해 모인 사람들인데, 모두 자신과 관계된 서류뭉치들을 들고 타는 듯한 한여름의 더위도 마다않고 굳게 잠긴 철제대문 앞에서 마냥 기다리고 있었다. 비자를 받기 위해 서류를 접수시키는 데만 이틀이 걸리기 때문에 하룻밤에 30달러를 받고 대신 줄을 서주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그리스대사관뿐만 아니라 다른 유럽국가들의 대사관들 앞에서도 장사진은 마찬가지였다. 인구 약 200만명의 작은 국가인 마케도니아는 인구구성만 본다면 64%가 마케도니아인, 30%가 알바니아인이고, 그외에도 터키인, 그리스인 등 소수민족들이 함께 살고 있는 다민족국가이다. 10년 전 마케도니아가 독립하면서 인구센서스를 실시한 적이 있는데 이에 따르면 알바니아인들은 전체 인구의 22%로 나타났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코소보 피난민 등 알바니아 이민자들의 급증과 출산증가로 인구비율이 급속히 늘어났다. 마케도니아를 돌아보며 수의 증가에 힘입어 알바니아인들의 권리가 많이 향상됐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섯명의 주요 장관들이 알바니아인이며 이외에 많은 알바니아인들이 행정부 관료로 일하고 있다. 알바니아인 정당이 있고 알바니아 의원들이 있으며 알바니아인들이 직접 운영하는 알바니아어 신문들과 잡지들, 알바니아 TV방송사들이 있다. 심지어 국영방송국 채널의 3시간을 알바니아어 방송이 메우고 있고 뉴스프로그램도 알바니아인의 입장에서 제작되고 있다. 또한 필자가 방문했던 ‘고스티바’시의 경우 알바니아인들이 경제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큰 상점과 건물들은 모두 알바니아인들의 소유였다. 가난한 마케도니아인들과 부유한 알바니아인들이란 그림은 〈CNN〉이나 〈BBC〉 같은 서방언론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이들 서방언론매체들은 알바니아인들의 인권문제를 집중적으로 과장 보도하고 있다. 물론 알바니아인들의 불만은 높았다. 그들이 제기하는 불만은 주로 실업문제다. 분쟁의 중심인 테토보거리 양쪽으로 알바니아청년들이 삼삼오오 무리지어 앉아 있었다. 모두 암달러상으로 보였는데 하나같이 “먹고살 방도가 없어서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마케도니아인들이 대부분 관공서나 공장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어쨌든 자본주의국가처럼 공무원들이나 공장의 월급이 이곳에서는 그렇게 높지 않다. 물론 차이는 있지만 평균적으로 받는 월급이 약 150달러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 암달러상들이 한달에 버는 돈은 재수 좋으면 수천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그날 미군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다섯달 전 마케도니아에서 일어난 내전은 많은 의혹을 불러왔다. 가장 큰 의문은 서방언론들이 보도했던 알바니아인들의 인권상황이 무기를 들고 마케도니아인들을 상대로 전면전을 벌일 정도로 심각하지 않다는 데 있다. 더구나 정치적 해결의 여지는 언제나 열려 있는 상태였다. 둘째로 갑작스런 게릴라전에 대한 의혹이다. 내전 이전까지 알바니아인들의 집단시위는 거의 없었다. 자신들의 불만을 표시하기 위해 집단시위의 방법을 쓰는 것이 상식이고 극단적인 시위도 통하지 않을 경우에 무기를 드는 것이 통례인데 이 단계들을 뛰어넘어 갑자기 무기를 들었다는 사실에 알바니아인들까지도 놀라고 있다. 마케도니아 최초의 민영 일간지인 <드네브닉>의 빌리아노프스키(34)는 다른 모든 마케도니아인들과 마찬가지로 “전쟁은 외부로부터 유입된 것”이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에 따르면 미국 CIA에 의해 만들어진 코소보해방군(KLA)과 같은 방식으로 민족해방군(NLA)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필자가 테토보의 알바니아인들에게서 확인한 바에 의하면 이들은 모두 코소보에서 게릴라훈련을 받는다고 한다. 코소보의 미군들이 코소보와 마케도니아 국경을 통제하게 돼 있지만 직무유기상태라는 것이다. 이 국경을 통해 마약과 무기가 자유롭게 밀수되기 때문에 알바니아 마피아들은 한해 약 70억달러의 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케도니아 사람들 모두는 미국을 전쟁의 주범으로 단정하고 있었다. 지난 6월25일 아라치노보전투에서 미국은 거의 항복 직전에 놓였던 알바니아 게릴라들을 구출하기 위해 마케도니아 정부에 압력을 넣어 전투를 중지시켰다. 그리고 코소보평화유지군(KFOR) 소속의 미군들과 16대의 군용차량을 동원하여 20대의 버스에 탄 약 400명의 알바니아 게릴라들을 보호해 탈출시켰으며 4대의 군용트럭을 동원하여 게릴라들의 무기를 옮겨주었다. 이 장면은 TV뉴스를 통해 방영되어 많은 시민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이날 밤 약 1만명의 성난 마케도니아 시민들은 국회의사당으로 진입하여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고 나토에 반대하는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시민들은 아라치노보전투에 참가했던 성난 군인들과 경찰들이 시위의 중심에 있었으며 이들은 공포탄을 쏘면서 시위를 했다고 전했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한 경찰관은 아라치노보전투가 못내 안타까운 듯 “그동안 약 40명의 병사가 게릴라들의 공격에 목숨을 잃었다. 이날 미군들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전쟁은 끝났을 것”이라고 자신의 심정을 밝혔다. 독일의 일간지 <함부르그아벤트블랏>은 “이날 아라치노보전투에 있었던 게릴라들 중에 17명의 미군 출신 미국 교관들이 함께 있었다”고 보도했다. 이들 미국 교관들은 알바니아 게릴라들의 군사교육을 담당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이 신문은 알바니아 게릴라들이 사용하는 장비들의 70% 이상이 미국 장비로 채워져 있으며 심지어 적외선야간탐색기까지 갖추고 있다고 마케도니아 군정보원의 말을 인용하여 보도했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미군의 개입은 부시 대통령과 안보담당 보좌관 콘돌리자 라이스, 국방장관인 도널드 럼스펠드의 선에서 내려진 결정이었다고 밝혔다. 미군의 개입은 당시까지만 해도 미국에 대해 막연한 기대를 가져왔던 마케도니아 시민들의 미국에 대한 인식을 180도로 돌려놓았다. 역사교사인 브란코비치는 “미국이 알바니아 게릴라를 지원한다는 의혹이 아라치노보전투에서 사실로 확인되었다”고 말했다. 미국은 마케도니아전쟁이 시작되면서 언제나 중립을 지키는 듯한 발언을 계속해왔으며 알바니아 게릴라들의 무장해제까지도 언급했다. 그러나 그동안 내뱉었던 말과는 다르게 알바니아 게릴라들을 보호해서 마케도니아 정부군으로부터 벗어나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 주었고 수송됐던 무기도 이들에게 되돌려 주었다. 이들 알바니아 게릴라들은 다른 곳에서 다시 전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미국이 마케도니아 정부에 원하는 것은 알바니아 게릴라들과의 협상이다. 6월25일의 아라치노보사건 이후 확산된 반미분위기로 인해 미국 정부는 마케도니아에 거주하는 모든 미국인들에게 마케도니아를 떠날 것을 종용한 바 있다. 필자가 둘러본 미국대사관은 온통 철제바리케이드로 차단돼 있었고 중무장한 병사들의 경비로 전쟁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암보프로젝트’와의 상관관계는?
영국의 <옵저버>는 5월11일치에서 “미국 CIA가 알바니아극단주의자들을 지원하여 마케도니아와 남세르비아에서 소요를 일으키고 있다”며 강한 어조로 고발한 바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마케도니아 기자들이나 관료들은 미국문제에 대해서는 마치 함구령이 떨어진 듯 입을 다물었다. 시민들은 모두 미국에 분노하고 있지만 기득권층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유일하게 미국에 대해 언급했던 마케도니아 총리 경제수석보좌관인 슬로보단카는 “미국과 유럽연합이 알바니아 게릴라들을 돕고 있음”을 한탄했다.
그렇다면 미국의 의도는 무엇일까. 우연히 무역중개상을 하는 한 마케도니아인을 통해 기업가를 소개받았는데 그로부터 문건 한부를 입수하게 됐다. 미국이 왜 발칸반도에 개입하고 있는가를 추정할 수 있는 ‘암보프로젝트’(AMBO Project)에 관한 것이었다. 이 프로젝트에 대한 의혹은 캐나다 오타와대학의 마이클 초수도프스키 교수가 이미 제기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기업가를 만난 뒤 암보프로젝트가 의혹 수준이 아니라 실제로 이 지역에서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불가리아, 마케도니아, 알바니아를 잇는 송유관건설계획으로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되는 대사업인데 미국과 영국의 석유회사들이 그 배후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건에는 “이 프로젝트가 미국의 발칸에서의 이익을 항구적으로 안정화시킨다”고 쓰여 있다.
평화롭던 마케도니아가 어느날 갑자기 전쟁터로 변하여 6만명의 알바니아 난민과 3만5천명의 마케도니아 난민들을 양산시켰고 양쪽 모두 수십명의 사상자를 냈다. 발칸지역에서 미국(CIA)은 알바니아 게릴라 투쟁을 지원하고 부추겼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에 따르면 미국은 정부와 알바니아 게릴라 사이의 협상을 벌이는 중재자로 자처해 나서고 타협이 결렬되어 전쟁이 격화되면 당당하게 미군을 투입하여 그 지역에서 근거지를 확보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필자는 지금도 마케도니아에서 만났던 미국인 작가 마테오 보자노비치(60)의 우스갯소리를 잊지 않고 있다. “미국의 대통령들은 자기가 대통령임을 증명하기 위해 다른 나라에 반드시 폭탄을 떨어뜨려야 한다.”
스코피예=글·사진 하영식 통신원 youngsig@otenet.gr

사진/ 그리스대사관 앞에 장사진을 치고 있는 마케도니아인들. 탈출을 위한 몸부림이다.
벌써 몇달째 계속되고 있는 마케도니아분쟁은 알바니아인들이 모여 사는 작은 도시나 부락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수도인 스코피예 시민들의 극도에 달한 불안감은 어디에서나 확인할 수 있었다. 문구점을 하는 조란(30)은 “평화롭게 살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은 이 나라를 떠나기를 원하며 마케도니아인들뿐만 아니라 알바니아인들도 이곳을 떠나길 원한다”고 말했다. 그가 한 말은 그리스대사관 앞을 지나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100여명의 마케도니아인들이 그리스대사관 앞에 진을 치고 있었다. 비자를 받기 위해 모인 사람들인데, 모두 자신과 관계된 서류뭉치들을 들고 타는 듯한 한여름의 더위도 마다않고 굳게 잠긴 철제대문 앞에서 마냥 기다리고 있었다. 비자를 받기 위해 서류를 접수시키는 데만 이틀이 걸리기 때문에 하룻밤에 30달러를 받고 대신 줄을 서주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그리스대사관뿐만 아니라 다른 유럽국가들의 대사관들 앞에서도 장사진은 마찬가지였다. 인구 약 200만명의 작은 국가인 마케도니아는 인구구성만 본다면 64%가 마케도니아인, 30%가 알바니아인이고, 그외에도 터키인, 그리스인 등 소수민족들이 함께 살고 있는 다민족국가이다. 10년 전 마케도니아가 독립하면서 인구센서스를 실시한 적이 있는데 이에 따르면 알바니아인들은 전체 인구의 22%로 나타났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코소보 피난민 등 알바니아 이민자들의 급증과 출산증가로 인구비율이 급속히 늘어났다. 마케도니아를 돌아보며 수의 증가에 힘입어 알바니아인들의 권리가 많이 향상됐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섯명의 주요 장관들이 알바니아인이며 이외에 많은 알바니아인들이 행정부 관료로 일하고 있다. 알바니아인 정당이 있고 알바니아 의원들이 있으며 알바니아인들이 직접 운영하는 알바니아어 신문들과 잡지들, 알바니아 TV방송사들이 있다. 심지어 국영방송국 채널의 3시간을 알바니아어 방송이 메우고 있고 뉴스프로그램도 알바니아인의 입장에서 제작되고 있다. 또한 필자가 방문했던 ‘고스티바’시의 경우 알바니아인들이 경제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큰 상점과 건물들은 모두 알바니아인들의 소유였다. 가난한 마케도니아인들과 부유한 알바니아인들이란 그림은 〈CNN〉이나 〈BBC〉 같은 서방언론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이들 서방언론매체들은 알바니아인들의 인권문제를 집중적으로 과장 보도하고 있다. 물론 알바니아인들의 불만은 높았다. 그들이 제기하는 불만은 주로 실업문제다. 분쟁의 중심인 테토보거리 양쪽으로 알바니아청년들이 삼삼오오 무리지어 앉아 있었다. 모두 암달러상으로 보였는데 하나같이 “먹고살 방도가 없어서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마케도니아인들이 대부분 관공서나 공장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어쨌든 자본주의국가처럼 공무원들이나 공장의 월급이 이곳에서는 그렇게 높지 않다. 물론 차이는 있지만 평균적으로 받는 월급이 약 150달러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 암달러상들이 한달에 버는 돈은 재수 좋으면 수천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그날 미군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사진/ 알바니아 게릴라를 직접 만나서 받은 게릴라사진들. 이들은 사진이 마케도니아 경찰에 들어가면 필자의 목숨이 위험할 것이란 말도 남겼다.

사진/ 테토보시 거리의 암달러상 젊은이들. 직업이 없어서 한다고 하지만 벌이는 훨씬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