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2일 그리스 의회에서 내각 신임투표가 통과된 뒤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총리(가운데)가 동료 의원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연합 AFP
[%%IMAGE2%%] 시민들, “내핍 생활 요구 공정하지 않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금 모으기 운동으로 세계인을 놀라게 했다. 장롱 속 돌반지와 결혼반지까지 꺼내들고 350만 명이 참여했고, 약 230t의 금을 수출해 21억달러를 조달했다. 그 실효성과 적절성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어찌됐든 위기 앞에 뭉치는 힘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리스에서 이런 단결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잘 알려진 그리스 고대 유적 가운데 하나가 콜로세움이다. 로마 제국을 상징하는 대형 원형 투기장 겸 극장이다. 검투사와 죄수, 맹수들의 피로 얼룩진 곳이다. 지금의 그리스가 그 모습이다. 위기 앞에서 사회 갈등을 풀고 나라를 구해줄 그리스신화 속 지혜의 여신 아테나도 보이지 않는다. 내각 신임투표가 통과된 만큼 긴축재정 계획도 통과되지 않겠느냐고 낙관하기는 어렵다. 사회당 내부에서도 신임투표에 찬성표를 던졌지만 긴축정책에는 반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는 의원들이 나오고 있다. 조기 총선을 우려한 의원들이 내각 신임투표에는 찬성했지만, 지역구 주민들을 의식해 긴축계획에 찬성하기를 꺼리고 있다. 특히 야당은 EU와 IMF가 제시한 조건으로 구제금융을 받는 게 옳으냐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안토니스 사마라스 신민주당 대표는 법안 통과에 반대하며 구제금융 지원 조건의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 안이 세금을 늘리고 소비 수요를 위축시켜 경기 후퇴를 부추길 거라는 것이다. 민영방송 <메가채널> 여론조사에서 그리스 국민의 43%는 그리스 정부가 EU와 IMF, 유럽중앙은행과 구제금융 지원 조건을 재협상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런 가운데 사회당과 86석을 가진 신민주당이 단합하지 않으면 긴축정책이 결코 시행되지 않을 것을 유럽 각국은 우려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긴축계획에 비판적인 신민주당의 태도는 내년에 조기 총선의 가능성이 제기되자 집권을 염두에 두고 국민 여론을 의식한 것이라는 분석도 일부에서 나온다. 6월21일 발표된 집권 사회당의 지지도는 20.1%로 바닥을 기고 있다. 공공 분야 임금 및 연금 삭감, 증세, 복지 혜택 축소 등이 국민에게 환영받을 리 없다. 그리스에서는 공공 분야에서 이미 8만2400명이 해고됐다. 공공 분야 일자리 보호와 전기·수도·가스 등 기간산업 통제는 사회당의 기본 정책이었다. 지난 5월25일 이후 수천 명의 시위대가 의회 앞 광장에서 시위를 벌여왔다. 의회에서 신임투표가 진행되는 동안, 의회 밖 광장에서는 “도둑놈들, 도둑놈들”이라는 시위대의 절규가 끊이지 않았다. 한 시민은 언론 인터뷰에서 “거리의 꼬마와 쥐꼬리 월급쟁이들에게 이 위기를 떠넘기며 끝도 없는 내핍 생활을 견디라고 요구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정치인 누구도 경제에 문제가 있다고 밝히지 않아서 문제가 있는지를 안 것도 얼마 전이다”라고 비판했다. “매주 긴축정책이 발표되고 있지만 어떤 조처도 그리스를 위기에서 구해준다는 보장이 없다. 이제 국가의 부와 우리의 기념비와 섬과 땅을 팔아치우고 모든 것을 민영화하려고 한다. 그것에 어떻게 동의할 수 있겠느냐”는 주장도 나왔다. 정부의 정책 실패 책임을 국민이 고스란히 떠안을 수 없다는 반발이다. 어두운 전망, 커지는 우려 노동계의 반발도 거세다. 전력 분야 노동자가 민영화에 반대해 파업을 벌여, 단계적 정전 조처가 이뤄지기도 했다. 그리스 최대 노조인 그리스노동자총연맹(GSEE) 지도자 스탈스 아네스티스는 “만약 긴축정책이 통과되면 그리스는 EU의 실험 대상이 될 것”이라며 “노조는 굴복하지 않을 것이며, 투쟁에 함께할 것”이라고 밝혔다. GSEE는 6월23일 성명에서 의회의 긴축계획이 논의되는 6월28~29일에 48시간 총파업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파판드레우 총리도 긴축정책이 혹독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그는 “길은 험하지만 터널의 끝에 빛이 있다. 그리스 각 가정의 불안정을 끝내고 이 위기에서 안전하게 벗어날 수 있도록 모든 조처를 다하겠다. 우리는 계획과 전망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경제위기를 초래한 실정 탓에 국민의 불신을 이기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몸이 달아오른 쪽은 EU다. 그리스가 디폴트에 직면할 경우 포르투갈과 아일랜드, 스페인 등 다른 17개 유로존 국가의 재정위기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조제 마누엘 바호주 EU 집행위원장이 그리스 내각의 신임투표 통과를 놓고 “이미 힘겨운 상황에서 불확실한 요소를 하나 제거했다. 그리스와 EU에 좋은 소식이다”라고 환영한 것도 이 때문이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6월22일 “만약 현 상황을 풀지 못하면 유럽의 금융체제는 물론 세계 금융 시스템과 유럽 정치 통합도 위협에 노출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총리 출신 6명을 포함한 유럽 지도자 15명의 최근 성명은 유럽이 그리스 사태에 갖는 위기감을 잘 보여준다. 이들은 “유럽은 요즘 좋은 상황이 아니다. 유럽 통합 심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가속도를 잃고 오히려 후퇴할 큰 위험에 처해 있다”며 “빠르게 변하는 국제사회는 분명히 유럽의 이익에 반하고 있고 유럽은 점점 더 주변적 역할에 내몰릴 위험에 처해 있다”고 우려했다. 6월23일 EU 정상회의에서는 그리스 위기가 집중 논의됐다. 유로화는 유럽 통합을 가속화하는 단계였다. 하지만 지금 유로화에 대한 신뢰가 크게 흔들리자 EU의 통합도 덩달아 위협받고 있다. 이 때문에 알랭 주페 프랑스 외무장관은 “지난 50년간 이뤄진 것을 구하기 위한 단호한 결의가 있다”며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만약 유로존이 사라지면 EU 자체가 위기에 빠질 것이며 우리는 그런 상황을 감당할 수 없다. 그리스가 디폴트를 빠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