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다양성 보여주는 노르웨이 신문시장, 무가지와 경품보다 이념과 색깔로 승부한다
필자는 한국에서 한국의 보수적 언론들을 접할 때마다 항상 끝없는 궁금증을 가졌다. 필자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가 몇 가지 있었다. 그 하나는, 가장 주의깊게 살펴봤던 러시아와 동구권 관계의 지면이었는데, 보도라기보다는 차라리 소설에 가까운 그 내용을 어떻게 제대로 감수할 사람조차 없는가라는 의문이었다. 지금도, 자신의 아들을 사망률이 높은 체첸 전지로 보낸 러시아 장교에 대한 센티멘털한 찬사로 가득 찬 한 대표적 보수 신문의 소설 같은 기사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
지방 일간지 놓여 있는 오슬로 가판대
물론 그 기자가, 자신의 소유물인 부하들을 돈을 받고 노동 현장에 팔고 체첸 전역을 거의 완전한 폐허로까지 만든 러시아 관군 장교들에 대해 전혀 모르고 현지의 어용 언론을 그냥 “베꼈다” 해도, 한국의 ‘메이저’를 자칭하는 신문사라면 최소한 편집실에서 이와 같은 수준 이하의 기사들을 바로잡아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망설이는 구독자에게는 경품을, 완강하게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몇년 동안 무가지를 넣어줄 만한 재력이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가 매우 알고 싶었다. 거의 2년 가까이 돈 한푼 안 들이고 매일 ‘그냥 넣어주는’ 한 주요 보수 일간지를 받아볼 수 있었던 필자는, 국제통화기금(IMF) 위기에서도 세상에서 보기 드문 ‘공짜 신문’을 만들어줄 여력이 있는 해당 언론재벌에 감사를 보내야 할지, 그 일간지의 광고 유치 능력을 세계의 최고로 인정해주어야 하는지 헷갈리기도 했다. 주요 재벌언론과 언론재벌들의 세계에서 유례없는 탈세의 내력이 어느 정도 밝혀진 지금에 와서야, 필자를 놀라게 만든 그 재력의 원천이 무엇이었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거시적인 안목으로 봐서는 오랫동안 탈세를 해도 된다는 묵시적인 특권의 인정을 받아 경영되었던 거대 신문사들은, 지금이야말로 그들이 그토록 사모하는 박정희의 ‘특혜 자본주의’(후진형 개발독재)에서 정상적인 자본주의로 이동 가능하게 된 셈이다. 물론, 세금을 꼬박꼬박 내는 극히 정상적인 경영여건을 ‘탄압’이라고 부르는 그들에게, ‘정상’과 ‘비정상’을 분별할 능력조차 아직까지 없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노르웨이 신문 사정과 관련해서 맨 먼저 필자의 눈에 띈 것은, 한국에서 전혀 보지 못했던 신문시장의 놀라울 정도의 다양성이었다. 아무리 오슬로 외곽 변두리의 슈퍼·주유소의 신문 판매대라 해도, 베르겐(Bergen), 스타방게르(Stavanger) 등의 지방 도시의 일간지들이 반드시 놓여 있었다. 서울의 뒷골목 슈퍼나 가판대에서 과연 부산, 광주의 일간지들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자연 머리 속에서 떠올랐다. 전국적으로 잘 판매되는 한 지방 신문인 베르겐시의 일간지 <베르겐스 디덴데>의 발행부수(약 9만부)가, 중앙 일간지 중 최고의 부수를 자랑하는 <베게> 부수(약 37만 부)의 4분의 1이나 된다는 사실을 알고 더욱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부산 일간지 부수가 <조선일보>의 4분의 1이 된다는 것을, 한국에서 상상할 수 있는가? 그 차이점의 원인은, 공간적인 위계질서를 ‘후진성’과 동일시하는 노르웨이에서는, ‘지방’을 천시하는 풍토를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이념, 솔직하고 당당하게!
노르웨이에서의 지방 일간지의 성공적인 전국 판매를 설명해주는 또 하나의 이유는, 노르웨이 신문들의 당당하고 솔직한 사상·이념 지향이다. ‘온건 좌익’을 표방하는 유력 일간지 <베르겐스 디덴데>는, 전국적으로 그 이념에 공감하는 일체의 계층을 잠재적 독자층으로 간주하고 판매 전략을 세운다. 정반대인 ‘온건 우익’의 이념을 내세워 약간 못 미치는 부수를 판매하고 있는 드론하임(Trondheim)의 <아드레쎄 아비센>의 ‘이념적’ 판매 전략 역시 마찬가지다. 공공연하게 ‘이념의 종말’을 외치면서 사실상 상업적 극우주의에 치중하고 있는 한국의 보수적 ‘주류’ 일간지와 완전히 다른 방향인 것이다.
이념과 사상 차원에서, 노르웨이의 신문시장은 믿기 어려울 만큼 다양하다. 여기서는 극우파의 소식지들은 아예 명실상부한 신문으로 발전되지도 못했지만, 온건 우익과 기독교 계통의 우익, 온건 좌익(현재의 집권여당인 노동당)과 녹색주의·국제주의적 지성계 좌익(두 번째 좌익 정당인 사회주의 좌익당), 그리고 노동자 공산당(AKP) 등등의 각종 이념적 정파들의 노선에 각각 공공적으로 동조하는 다양한 언론은 각자의 독자층을 갖는다.
물론 노르웨이 신문사도 기업체인 만큼, 무가지 살포나 경품 증정과 같은 원시적인 형태는 아니지만 판매 경쟁이 벌어진다. 특히 부수가 상대적으로 많은 타블로이드형의 일부 중앙 일간지들은, 한국의 이른바 스포츠 관련 신문 못지않게 연예인 사생활 등 갖가지 스캔들을 경쟁적으로 파헤치기도 한다. 그러나 타블로이드가 아닌 종합 일간지라면, 판매 경쟁을 하기보다는 각자의 분야와 관점에서 보도의 질을 높여 독자층을 확대한다. 예를 들어 온건 좌익 노선에 따르는 오슬로의 <다그스아비센>만큼 노르웨이에서 국내의 인종·문화차별이나 해외의 사회문제들을 심층적으로 자세히 분석하는 신문은 드물다. 마찬가지로, 노동자 공산당의 기관지인 <글라쎈 캄펜>(직역하면 <계급투쟁>)은 농어촌문제와 증시의 모순점, 옛소련 및 동구권의 빈곤과 대형 부정부패의 사회·과학적 심층 분석으로 독특한 경지에 이른 유명한 일간지이다.
민영기업들의 부조리와 경영체계의 미비점을 논리적으로 잘 파헤치는 것으로 명성을 떨친 <글라쎈 캄펜>의 몇몇 기자들이 갑자기 노르웨이 최고의 경제전문 일간지로 스카우트됐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이념 차이를 분명히 밝히고 인정하는 사회에서는, 공적인 취직에서 사적인 이념보다는 재능·자질을 더 중요시한다는 이야기도 된다.
국고보조금, 마이너리티에 최우선권
부산의 인구만한 총인구 430만명에 무려 84개의 일간지를 가진 노르웨이의 신문시장은 그야말로 다양성 그 자체다. 각 정당이 동조 언론이나 직속 언론을 갖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지방마다 약 6∼8개의 일간지를 발행하는 것은 평균이다. 높지 않은 5천∼2만 정도의 부수를 갖는 대부분의 일간지들의 생존비결은 과연 무엇인가? 바로 비(非)인기 소형 신문일수록 반대로 좀더 많은 발행경비를 지원해주는 국고의 보조금 지급이다.
흑자의 폭이 일정액을 넘는 상업형 신문을 제외한 일체 종합시사 일간지들이 받을 수 있는 이 보조금의 분배원칙은, 부수가 가장 적은 2천∼6천부 신문과 소수 민족들을 위한 비(非)노르웨이어 신문, 한 지방에서 부수가 비교적으로 적은 일간지와 특수한 이념·종교를 표방하는 신문, 그리고 모든 정당들의 기관지 등에 우선권을 준다. 즉, ‘색깔이 다른 자’와 ‘마이너리티’가 최우선권을 갖는 셈이다. 전체 1년에 약 2천만달러에 이르는 이 보조금의 덕을, 노르웨이 현실을 가장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파헤치는 노동자 공산당 기관지 <글라쎈 캄펜>도 볼 수 있다. 한 정당의 기관지이자 소수자(발행부수 약 5천∼6천)이기 때문이다. 정부를 ‘자본가 계급의 시녀’라고 부르는 사상적 ‘극단 이색 집단’이 정부로부터 거금을 받을 수 있는 것은 꽤나 놀라운 현실이다.
이와 같은 현실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정부가 신문의 내용에 절대적으로 간섭할 수 없다는 것이 이곳의 법이자 관습이기 때문이다. 국고보조금으로 보장되는 신문시장의 다양성 덕분인지 노르웨이는 유럽에서 인구당 신문을 가장 많이 파는 기록을 세웠다. 1천명당 607부가 팔리는 노르웨이는 독일 317부나 영국 321부는 물론, 같은 스칸디나비아의 스웨덴 472부보다도 앞서간다. 경제적 우려로부터의 해방이 신문의 질을 크게 높이는 것은 자명하다. 러시아 북방의 핵폐기물문제에 대한 노르웨이 좌익 신문들의 심층보도들을, 현지의 러시아 신문들까지 번역해서 특집으로 내준다는 사실은, 노르웨이 신문들의 지면의 질이 어느 정도 높은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만약 여기에서 한국의 모 유력 일간지처럼, 체첸 전쟁을 찬양하는 러시아의 어용매체를 베낀 정도의 수준의 기사를 내는 신문이 있었다면, 아마도 국민의 멸시와 대대적 불매운동의 대상이 됐을 것이다.
지면의 질이 아닌 세무 특혜 획득과 독자에 대한 경품 증정으로 승부하려는 한국의 보수 일간지들이 선진화될 날은 언제 올 것인가? 어쩌면 경품보다는 신문 보도 관점의 독자성과 심층성, 그리고 독특한 경향을 중시하는 질 높은 독자층이 형성되어야 그 해결이 시작되지 않을까 싶다.
박노자/ 오슬로 국립대 교수·한국학

사진/ 오슬로 변두리 상점의 가판대. 지방신문뿐 아니라 다양한 외국신문들이 진열돼 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망설이는 구독자에게는 경품을, 완강하게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몇년 동안 무가지를 넣어줄 만한 재력이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가 매우 알고 싶었다. 거의 2년 가까이 돈 한푼 안 들이고 매일 ‘그냥 넣어주는’ 한 주요 보수 일간지를 받아볼 수 있었던 필자는, 국제통화기금(IMF) 위기에서도 세상에서 보기 드문 ‘공짜 신문’을 만들어줄 여력이 있는 해당 언론재벌에 감사를 보내야 할지, 그 일간지의 광고 유치 능력을 세계의 최고로 인정해주어야 하는지 헷갈리기도 했다. 주요 재벌언론과 언론재벌들의 세계에서 유례없는 탈세의 내력이 어느 정도 밝혀진 지금에 와서야, 필자를 놀라게 만든 그 재력의 원천이 무엇이었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거시적인 안목으로 봐서는 오랫동안 탈세를 해도 된다는 묵시적인 특권의 인정을 받아 경영되었던 거대 신문사들은, 지금이야말로 그들이 그토록 사모하는 박정희의 ‘특혜 자본주의’(후진형 개발독재)에서 정상적인 자본주의로 이동 가능하게 된 셈이다. 물론, 세금을 꼬박꼬박 내는 극히 정상적인 경영여건을 ‘탄압’이라고 부르는 그들에게, ‘정상’과 ‘비정상’을 분별할 능력조차 아직까지 없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노르웨이 신문 사정과 관련해서 맨 먼저 필자의 눈에 띈 것은, 한국에서 전혀 보지 못했던 신문시장의 놀라울 정도의 다양성이었다. 아무리 오슬로 외곽 변두리의 슈퍼·주유소의 신문 판매대라 해도, 베르겐(Bergen), 스타방게르(Stavanger) 등의 지방 도시의 일간지들이 반드시 놓여 있었다. 서울의 뒷골목 슈퍼나 가판대에서 과연 부산, 광주의 일간지들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자연 머리 속에서 떠올랐다. 전국적으로 잘 판매되는 한 지방 신문인 베르겐시의 일간지 <베르겐스 디덴데>의 발행부수(약 9만부)가, 중앙 일간지 중 최고의 부수를 자랑하는 <베게> 부수(약 37만 부)의 4분의 1이나 된다는 사실을 알고 더욱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부산 일간지 부수가 <조선일보>의 4분의 1이 된다는 것을, 한국에서 상상할 수 있는가? 그 차이점의 원인은, 공간적인 위계질서를 ‘후진성’과 동일시하는 노르웨이에서는, ‘지방’을 천시하는 풍토를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이념, 솔직하고 당당하게!

사진/ 맨 위부터 노동자 공산당의 <글라쎈 캄펜>(계급투쟁), 온건 좌익성향의 <다그스아비센>, 온건 보수성향의 <아프텐포스텐>, 온건 우익적인 지방일간지 <아드레세 아비센>, 최고부수의 타블로이드 <베게>의 인터넷 홈페이지.









